쿠프랭, 비올을 위한 작품집.
http://to.goclassic.co.kr/alte/256

 

쿠프랭의 이 비올을 위한 소품들은 아름답다는 말이 적합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보다는 아련하다, 혹은 모든 종류의 감정을 누그러뜨린다는 말이 이 음악에 알맞는 표현이 아닐까 합니다. 사람으로 비유하면 절대 목소리를 높이지 않고 차분하게 말하는 경우랄까요.

 

그래서인지 이 음악은 한적한 겨울 오후, 시골집의 난로가에서 듣고 싶습니다. 창 밖엔 눈이 날리고 도로엔 지나가는 차도 거의 없는 오후 5시쯤, 적당한 시장기가 돌고 실내가 어두워졌을 때, 불을 켜지 않고 레몬 홍차 한 잔을 들고 듣는 게 딱 좋지 싶습니다. 물론 누구와 나누기보다는 혼자서 들어야 하는 음악입니다. 사람마다 지난 시간은 있으니까, 그것을 돌아보게 하는데 최적이지 싶습니다. 그 시간을 지워버릴지, 가슴 한 편에 새겨 영원히 간직할지, 이 음악을 들으며 결정하기에 적합할 것 같네요.

 

비올(지금 연주한다면 첼로겠지만)과 하프시코드는 어쩐지 잘 어울리지 않는다는 느낌이 듭니다. 각자의 길을 가고 있다고나 할까요. 이 음악에서 두 악기는 남녀의 모습을 닮았습니다. 말은 서로가 없으면 못 산다고 하지만, 실상 각자의 길을 가다가 필요할 때만 서로를 찾기 일쑤인 많은 남녀들, 그것에 운명까지 끌어들여 사랑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만족하는 남녀의 모습과 흡사합니다.

 

그렇지만 그게 우리의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늘 단언하지만 실상 하나도 단언할 게 없는 삶, 당장 내일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삶을 살면서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만만해 하고, 반대 의견에 인색합니다. 어쩌면 그건 빈약한 자신의 의지를 확실히 하려는 몸부림 같은 건 아닌지, 확언할 수 없는 일에 의미를 부여해 돌아오지 못하는 다리를 만드려는 건 아닌지...

 

그런데 음악은 이런 이기심과 억지까지도 녹여냅니다. 사람은 혼자 있을 때 가장 솔직해지는데, 이 음악은 그런 시간을 제공하는 것만으로도 존재 가치가 있습니다. 저도 20대 때는 이런 애매모호함에 귀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젊음이란 확실한 것, 선명하고 강한 소리에 매혹되기 마련이지, 이런 낮은 울림은 지나치기 마련이지요. 그런데 진실이 화려함이 아닌 소박함 속에 존재하듯, 정말 마음을 울리는 음악은 테크닉이 아니라, 마음이 들어있다는 걸 최근에야 깨닫네요. 그래서 유명한 연주자보다는 잘 알려지지 않은 연주자를 찾고, 대중 음악도 뛰어난 가수보다는 아마추어가 부르는 노래나 아이돌의 어설픈 노래를 찾아 듣게 되네요.

 

비올의 울림은 일정한 사이클을 한 없이 순환하는 느낌입니다. 

그래서 삶은 처음부터 끝까지 되풀이되고, 다음 세대로 이어져도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고 속삭이는 듯 합니다. 그래서인지, 이 음악을 다 듣고나면 시장기를 뒤로 하고 바다가 보이는 곳으로 차를 몰고 달리고 싶어지네요.

 

작성 '16/04/23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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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u***:

음악도 글도 예술입니다. 감사드립니다.

16/04/28 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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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

멋진 글입니다. 저도 하나 구해서 들어봐아야 겠습니다.

16/05/30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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