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렌굴드의 마지막 고해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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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렌 굴드. 내게는 익숙한 그 이름이지만 누군가에는 낯선 그 이름. 캐나다에서 태어난 이 피아니스트는 평생이 평범하지 않았다. 태어날 때부터 의사는 그의 손을 보고 "이 아이는 의사가 아니면 피아니스트가 될거요"라 말함으로 놀라운 우연의 일치인지는 모르겠지만 굴드는 결국 나중에 피아니스트가 되고야 만다. 동시에 의학에 대한 놀라울 정도의 지식과 어쩌면 강박관념처럼 보일 정도로 자신의 몸을 관리하게 되기까지 한다.

그가 이토록 자기 몸에 대해 신경을 썼던 것은, 역설적으로 그만큼 그가 자신의 몸을 희생했기 때문이다. 결핍의 상태에서 느끼는 결핍된 것의 소중함. 마치 정말로 몸이 많이 아파본 사람이야말로 건강의 소중함을 아는 것과 마찬가지다. 굴드는 한마디로 예술을 위해 자신의 몸을 희생한 순교자다.

굴드에게는 음악이 전부였다. 마치 그리스도인에게 예수가 전부이듯, 굴드의 삶은 음악을 위해 바쳐졌다. 그는 음악을 위해 결혼도 하지 않았으며, 부와 온갖 화려한 생활도 포기했으며, 외로움을 순순히 받아들였으며, 자신의 건강을 헌납했다. 마치 십일조를 드리듯 굴드는 자신의 건강의 일부분을 늘 음악이라는 신에게 바쳤다. 어렸을 때 다이빙을 하다가 등을 다쳤을 때, 그의 아버지는 그를 위해 손수 의자를 빚어 주게 되고, 굴드는 평생 그 의자로 연주를 한다. 그 때 발견한 완벽한 음색을 굴드는 버릴 수 없었기 때문에 매일 같이 어깨와 등의 통증에 시달리면서도 허리를 구부리고 팔꿈치를 매우 내린 상태로 독특하게 피아노를 평생 친 것이다.




도대체 굴드는 왜 그렇게 특이하게 살았던 것일까? 피아노에 평생을 바친 사람으로서 자신이 가짜 피아니스트라고 불리는 걸 감수하면서까지 기이한 자세로 피아노를 쳐야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모짜르트의 곡을 그렇게나 파격적으로 빨리 칠 필요가 있었는가? 바그너의 곡을 그렇게나 느리게 지휘해야 했던 것은 무엇인가? 아예 천재적으로 뛰어나지 못할 것이라면 튀어서라도 살아남기 위한 그야말로 관심끌기 차원의 기행에 불과했던 것인가? 정말로 그는 괴짜에 불과했던 것일까?

신이 음악을 알려주기 위해 바흐를 세상에 내려보냈다면, 바흐는 자신의 곡을 피아노로 연주하는 법을 알려주기 위해 굴드를 세상에 내려보냈다. 굴드의 음색은 놀라울 정도로 끊어지며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단절적이다. 음들은 전혀 레가토나 현의 느낌이 나지 않고 단절되고 하나씩 끊어진 독립된 개체들로 나타난다. 굴드는 이를 두고 피아노로 합시코드를 묘사한 것이라 한 바 있지만, 이 말을 오해해서는 안된다. 그는 결코 바흐의 음악을 합시코드화 하기 위해 그런 연주를 한 것이 아니다. 그는 바흐의 음악을 그리고 그 바흐의 음악 철학을 구현하려 한 것이다. 다시 말해 굴드는 단순히 바흐의 음색만을 재현하려 한 것이 아니라, 바흐의 음악 나아가 삶을 재현해내려 한 것이다. 굴드에게 하나님은 음악이었으며 바흐는 그의 아들 예수였던 것이다.

굴드에게 바흐의 음악이란 신과의 소통이었다. 그리고 그 소통에는 세상적인 의미에서 고난이라는 순교는 필연적이었으나, 순교자 스스로 느끼는 희열은 세상적인 고통을 넘어서는 기쁨이었으리라. 다시 말해 굴드는 정말로 바른 뜻에서 예술을 하는 사람이었으며, 자기가 속한 시대성과 공간성 안에서 진정한 예술을 추구했던 것이다.

그가 레코딩 기술에 그토록 놀라워하고 매료되었던 이유는, 그것이 실황이 줄 수 없는 너무도 큰 매력이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영원성과 절대성, 그리고 완벽성이다. 실황은 그 순간이 가지는 개별적인 매력으로 가득차 있지만, 너무도 큰 단점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실수와 불완벽성이다. 실황에서는 연주자가 집중력을 놓치는 바로 그 순간으로 인해 모든 완벽성이 무너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레코딩은 수 없이 다른 녹음을 반복할 수 있으며, 연주자는 자신의 연주를 직접 들어본 뒤에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시 레코딩을 할 수 있다. 굴드는 바로 이 점에 매혹된 것이다. 자신이 추구하는 음악이란 전세계를 일주하며 실황에서 돈을 벌거나, 레코딩으로 엄청난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오직 완벽한 소리를 만들어내는 것이었다.

완벽한 소리를 추구하는 것이 모든 음악가의 공통점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무지에서 비롯된 오해다. 프로 음악가들에게는 더이상 '음악가'에 비중이 두어지지 않고 '프로'에 모든 것이 달리게 되었다는 것은 이미 프로의 세계가 생긴 바로 그 순간부터 자명했던 것이다. 프로란 오로지 그 작업을 업으로 하는 사람을 말하며, 이런 의미에서 그들은 돈과 이익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다. 세간의 평가와 금전적인 손익계산. 이것이 바로 프로의 세계다.


이런 뜻에서, 굴드는 철저히 아마추어였으며, 이는 다시 말해, 프로 세계속에서 완전한 이방인이었다. 그에게는 중요했던 것은 소리 그 자체였으며, 프로 음악세계를 이루는 다른 모든 선입견들은 그에게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했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에게는 피아노의 제조사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오직 그것이 바르게 조율이 되었는지만이, 그가 그 피아노로 연주를 할 것인지를 결정하게 하는 요인이었던 것이다.

굴드의 삶에 대한 이러한 평가는 굴드의 팬들이나 그에게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들 양 방향으로 비판을 받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내가 이런 식의 주장을 하는 근거로, 내가 그의 전기를 다 읽었다느니 그의 인터뷰를 수십개 넘게 모두 찾아 보았다느니 하는 식의 양적 허세를 드는 것은 오히려 내 논조를 흐리게 할 것이다. 다행히도 내가 아는 한 가지 다른 것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그의 골드베르크 연주들이다.

굴드는 1955년에 JS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녹음한다. 이 녹음은 바로 센세이션을 일으켜 굴드를 단숨에 유명인사로 만들었다. 이 연주에서 드러난 그의 천재성이 사람들을 매료시킨 것이다. 놀랍도록 깍아지른 듯한 음색과 정확한 템포감, 그리고 성부들을 이루는 음들끼리 가지는 음의 관계를 정확히 짚어낸 그의 연주에 사람들은 골드베르크의 새로운 매력을 느끼게 된 것이며, 그것이 바로 굴드의 골드베르크 연주가 가지는 '굴드베르크'적인 매력이다.

바로 이러한 '새롭다'는 매력이 굴드의 음악세계를 한마디로 정리할 수 있는 표현 가운데 하나이다. 왜냐하면 그는 이방인이었기 때문이다. 이방인은 기존 사람들에게 새로운 존재이지만, 이는 꼭 바로 위에서처럼 긍정적인 의미로만 쓰이지는 않는다. 오히려 더 많은 경우에 이방인 새롭기 때문에 낯선 존재, 그리고 꺼려지고 비판의 대상이 되기 쉽다.

그리고 굴드처럼 극도로 예민한 감각을 타고난 사람에게는 이러한 점이 너무도 견딜 수 없었다. 이방인으로 태어났지만 영웅이 되기에는 너무도 예술적이었던 운명. 세상과 전혀 타협할 수 없었던 그의 삶.

이는 1959년 잘츠부르크 실황에서 증명된다. 1955 녹음의 명성에 힘입어 1959년 잘츠부르크에서 가진 골드베르크 실황은 완벽한 실패였다. 왜나하면 그것은 실황이었기 때문이다. 실황은 본질상 녹음처럼 완벽할 수 없고, 굴드에게는 오직 그 완벽성만이 그를 스타로 만들어주었기 때문이다. 아리아 다음의 제1변주부터 1955 녹음과는 사뭇 다른 음색이 나오며 굴드는 이에 스스로 적잖이 당황을 한다.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허밍은, 녹음에서 들을 수 있는, 자신의 음색과 놀랍도록 같은 세계를 구성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탄식과 안타까움에 가깝다. 음색이 음악세계를 따라가지 못하여 일탈해버린 점에 대한 절규. 그리고는 굴드는 실황을 포기하게 된다.



그에게 남은 것은 오직 순수한 음의 세계임이 더욱 분명해진 뒤로부터, 오히려 역설적으로 그는 더욱 예술가의 본모습에 가까워진다. 그것이 어우러져 마지막 걸작을 탄생시켰으니 바로 1981년, 그가 죽기 한 해 전에 마지막으로 녹음한 골드베르크다. 이 녹음에 대한 가장 일반적인 평가는, 체계성과 곡들 가운데 유기적인 관계, 그리고 이 모든 것을 합해서 결국 구성력을 꿰뚫어 본 연주라는 것인데, 이는 내가 보기에도 정확하며 굴드 스스로도 그렇게 자신의 연주를 스스로 평가한 바 있다.

그렇다면 그 구성력은 도대체 무엇을 말해주는 것인가? 정확히 말하자면 굴드는 어떠한 이유로 또다시 골드베르크를 녹음했던 것일까? 정말로 흔히 알려진대로 새롭게 발명된 녹음기술에 매료된 점과 골드베르크에 대한 큰 눈을 가지게 되었기 때문, 바로 이 두가지 점 때문만이었을까?

아니다. 그것들이 전부였다면 굴드는 녹음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의 이전 삶에서 그가 바로 위 두가지 새로움이 줄 수 있는 장점들을 모두 보여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굳이 골드베르크를 새로운 녹음기술로 연주하지 않았어도 이미 수많은 다른 레코딩이 새로운 돌비 스타일로 이루어져 있었던 것이다. 또한 골드베르크를 꿰뚫는 거대한 체계성에 대한 통찰을 가지게 된 것, 따라서 곡에 대한 해석이 더욱 완숙미를 가지게 된 점은, 그의 다른 녹음에서도 나타나는 완숙미다. 다시 말해, 1981 녹음은 그 스스로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만은 아니라는 점이 가장 중요하다. 1955, 1959년이 있음으로 바야흐로 1981 이 있게 된 것이다.

1955 연주에 대한 깊은 반성과 회개가 1981 의 고백이다. 천재성의 발현이 곧 자기 자신이 아니었다고 굴드는 죽기 직전 고해성사를 한 것이다. 1955 이 가져다 준 온갖 스타덤과 유명세, 그리고 재정적인 부유함에 취해 살았던 당시의 음악과 삶에 대한 반성이자, 그 교훈을 우리에게 던져주고자 1981 을 녹음한 것이다.

예술가는 오직 삶으로 예술을 말해야 하며, 세상이 흔히 말하는 예술이라는 장르로서의 예술이 만약 그 어떠한 진정한 예술적인 가치를 가질 수 있다면, 그것은 바로 그 예술행위를 하는 예술가의 모든 순간이 곧 진정한 삶으로서의 예술일 때만 가능하다. 쉽게 말해, 굴드가 1981을 녹음한 것은 분명 누구나 보기에 피아노라는 악기를 통해 음악 작품을 연주했기에 예술행위이지만, 그것이 진정한 뜻에서 예술행위 일 수 있는 유일한 근거는, 그것이 예술이라는 장르를 드러냈기 때문이 아니고, 오직 그 녹음 자체, 그 녹음이 굴드의 삶으로서 가지는 가치, 그것을 통해 우리에게 예술의 본질을 말해주기 때문이리라.

1959의 처절한 실패를 통해 굴드가 1981에 다시 고백하는 또다른 메세지는, 피아니스트에게 가장 본질적인 것은 음의 세계라는 것이다. 피아니스트는 그가 프로가 된 이상 사람들의 평가와 시선으로 먹고사는 존재가 된다. 이 때 만약 그 피아니스트가 자기 자신으로서 존재하는 그러한 독립적이고 자립적인 인간이기를 포기한 채, 오직 세상사람들의 눈과 귀에 의존하는 사람이 된다면, 그는 프로 피아니스트일 뿐이지 결단코 예술가라 불리울 수 없다. 1959의 실황에 대한 평가가 어떠했건 간에, 다시 말해 그 실황에 대한 평가가 호평이었건 악평이었건 간에, 그런것들은 굴드에게 전혀 중요하지 않게 된 것이다. 그렇기에 굴드의 1959 실황은 우리에게 너무도 소중한 교훈이며 더우기 굴드 자신의 삶 가운데 하나의 결정적인 전환점이었던 셈이다.

1981의 녹음은, 1955의 천재성도 없으며, 1959의 비완벽성도 없다. 오직 이러한 해석만이 1981의 진정한 고해성사적인 면을 바로 본 것이라 하겠다. 1981이 가지는 완숙미와 체계성은, 1955과 1959의 교훈을 통해서 빚어진 마지막 작품이다. 진정한 예술가의 최후의 걸작. 마지막 메세지. 마지막 고백.


그러므로 굴드의 음악세계는 그의 삶과 떨어져 말한다면 충분하지 못한 것이며, 실황과 레코딩에 대한 그의 태도를 빼고 논한다면 공허해질 뿐이다. 그의 월광 소나타가 지나치게 아마추어적이라서 그 곡을 완전히 버려놓았다는 많은 비판은, 음악 그 자체적으로는 설득력이 있을지 모르지만, 한 사람의 음악세계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그의 음악만을 두고 말하는 것이, 마치 예술을 장르로서의 예술로 보는 것이요, 영화를 종합예술로서의 영화로 보는 것과 다르지 않다.

명민한 독자라면 이미 의문이 들었겠지만, 그렇다. 역설적으로 굴드는 오직 음의 세계만을 추구 했기 때문에, 우리는 그를 평가할 때 오직 옴으로만 평가해서는 안된다. 다시 말해, 오직 음의 세계를 추구한 굴드의 삶 전체가 우리에게 드러내는 메세지가 바로 그가 가지는 예술성이며, 오직 이 점만이 예술적 비평이 가능한 지평이다. 예술은 삶이며, 예술가의 삶만이 그를 예술가로 있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굴드가 피아니스트다 아니다 하는 논쟁은 굴드 자신에게는 아무런 영향도 주지 못할 것이며, 못했을 것이다. 또한 소박하고 진지한 예술가들에게도 마찬가지이며, 겸손한 비평가에게도 그런 것은 아무런 논의의 대상이 되지 못해야 마땅하다.

레코딩을 통해 수많은 인공적인 수정을 했기 때문에 그것은 예술이라고 할 수 없다는 평가는 일면 타당하다. 하지만 예술을 장르로서의 예술로만 보는 그러한 시각이 만약 굴드의 레코딩을 예술이 아니라고 한다면, 기꺼이 굴드는 그런 의미에서 예술가이기를 기쁘게 포기했으리라. 바로 이 점이 굴드의 삶이 가지는 이방인의 모습이요, 예술적인 교훈이다.

이 마지막 문단을 다 읽은 뒤에는 1981 녹음을 들어보는 것을 권한다. 거기에는 굴드가 이방인으로서 살아온 삶에 대한 서러움, 탄식, 비탄 뿐 아니라, 그 세상적인 고난 속에서 순교함을 통해 기꺼이 기쁨으로 순화하는 희망, 기쁨이 있다. 죽어가는 육체가 가지는 한계를 인정하고 자기 자신을 완전히 내려놓는 마지막 고해성사.


한 예술가의 마지막 고해성사에 묵묵히 함께하자.


ⓒ聖在 ighim.tistory.com 에 오시면 더욱 많은 음악 이야기가 있습니다.^^

2010/03/28 - [새 포대/예술철학] - Glenn Gould: Goldberg Variations (Salzburg recital, 1959)
작성 '10/05/19 12:31
ko***수정 삭제 트랙백 보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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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d***:

굴드는 아무리봐도 천재연주자인 것 같습니다.

10/05/21 0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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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l***:

바흐의 음악 특히 골드베르크 만큼은 수많은 연주가의 앨범을 들어서 능가하는 앨범은 없는거 같습니다. 어떻게 보면 굴레이지만 굴드에게는 골드베르크 자체라고 말해도 이상할것이 없을거 같네요^^

10/05/27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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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을 작성자가 직접 삭제하였습니다

10/05/29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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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

너무 훌륭한 평입니다. 마지막 말씀처럼 굴드의 인생철학과 고해의 내용이 마직막 골드베르그변주곡에 담겨있다면. 꼭 듣고 그것을 느끼고 싶네요. 하지만, 음악을 들을때 편견(하나의 견해)을 가지고 듣는 것보다. 있는 그대로를 느끼고 감상하는 것이 바람직하겠죠..!!

10/07/28 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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