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먼 래틀과 베를린필...그 마지막 여정
http://to.goclassic.co.kr/concert/3073

네...

 

주지하디시피 지난 11월 19~20일(일, 월) 양일간에 걸쳐 베를린필 연주회가 예술의전당에서 열렸습니다. 16년간 베를린필을 이끌어온 사이먼 래틀의 마지막 아시아 투어라는 점, 랑랑의 부상에 따른 대타적 성격이긴 하지만 현재 아이돌급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조성진이 협연자로 나선다는 점에서 국내 클래식계를 술렁이게 만든 연주회였습니다.

 

어렵게, 큰 맘먹고 합창석 티켓을 예약해서 이틀간 공연을 볼 수 있었습니다.

 

첫째날은 합창석 정면 자리, 비록 음향적 측면에서는 불리한 자리지만 지휘자 래틀의 지휘 동작, 표정 그리고 협연자 조성진의 건반 터치를 잘 볼 수 있는 자리였습니다. 래틀의 얼굴 표정은 연주가 계속되는 2시간 15분 내내 시시각각으로 변하더군요. 래틀과 조성진과의 눈길 교환을 통한 하모니도 잘 볼 수 있었습니다.

 

둘째날은 좌측 날개쪽...지휘자 래틀은 물론, 클래식계의 세계적 스타인 플루트의 임마누엘 파위, 오보에의 알브레히트 마이어, 클라리넷의 벤젤 푹스, 첼로의 마르틴 뢰어 등등 그야말로 별들의 잔치였습니다. 게다가 C 블록에 앉아서 공연을 감상하는 작곡가 진은숙씨까지...한눈에 볼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였습니다. 우선 눈이 호강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첫째날

 

조성진이 협연한 라벨의 피아노 협주곡 G장조는 협연 느낌보다는 조성진이 오케스트라에 녹아 들어 일체가 되는 듯한 연주였습니다. 좋게 말하면 그만큼 조화롭고 균형 잡힌 연주였다는 것이고, 반대로 표현하면 협연자인 조성진의 개성이 크게 드러나지는 않은 연주로 보였습니다. 어쩌면 협주곡을 실내악처럼 연주하는 것이 '조성진다운 것'인지도 모르지요.

 

그래도 조성진의 존재감이 두드러진 부분이 있었습니다. 바로 2악장 초반의 독주...조성진은 부드러운 터치로 연주홀을 황홀경으로 이끌었고, 그가 누르는 한음 한음에 관객들은 숨을 죽였습니다. 강렬하고 짧은 3악장이 끝나고 관객들은 래틀과 조성진에게 우뢰와 같은 박수를 보냈음은 물론입니다.

 

조성진의 앵콜곡은 드뷔시의 '물의 반영'...래틀은 바이올린 파트 맨 뒷쪽에 앉아서 마치 관객인양 천진스런 표정으로 조성진의 연주를 경청했고, 앵콜 연주가 끝나자 바로 앞 여성 바이올린 연주자와, 피아노 건반을 누르는 시늉을 하면서 뭔가 짧은 대화를 나누고는 박수를 보내더군요.

 

후반부는 브람스교향곡 4번...깊이 있고 음울한 연주라기보다는 현대적으로 개량된 20세기적 브람스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래틀이 베를린필과 작업한 전곡음반집 그대로의 분위기라고나 할까요? 호불호가 갈릴 수 있는 래틀식 해석의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는데, 빠른 부분에서는 춤곡처럼 경쾌하기도 했고 강렬한 느낌도 드는 연주였습니다.

 

관객들의 높은 집중력을 이끌어냈다는 점에 있어서는 앵콜곡으로 연주한 드보르작의 슬라브 무곡이 더 나았다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일요일이어서 연주가 오후 5시에 시작되어 대략 7시 15분 내외에 끝났는데, 깊은 감동을 가슴에 담고 귀에 맴도는 라벨의 피아노협주곡 2악장 전반부 음율을 되뇌이면서, 예당 앞 앵콜칼국수에서 느긋하게 저녁을 먹었습니다.

 

둘째날

 

그러니까 이번주 월요일 저녁 8시지요. 단원들이 등장하자 관객들이 술렁이기 시작했습니다. 앞서 적은 바와 같이 파위, 마이어, 푹스, 뢰어 같은 스타급 연주자들이 대거 등장했기 때문입니다. 그중에서도 파위의 인기는 압권인 것 같더군요.

 

첫번째 연주곡인 스트라빈스키의 페트루슈카...래틀의 힘차고 경쾌한 지휘 아래 시작된 연주는 얼마되지 않아 파위의 강렬한 플루트 사운드와 더불어 분위기가 고양되었습니다. 불협화음의 아름다운 조화, 매우 어지러운 것 같은 음들의 집합이 얼마나 아름답게 들릴 수 있는지 그 진수를 보여준 연주가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평소 이 음반을 오디오를 통해 들으면, 통쾌하지만 시끄럽다는 느낌도 있었는데, 베를린필의 실연으로 들으니 수많은 색깔의 물감을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공중에 흩뿌려서, 방울방울 형형색색의 보석을 만든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스트라빈스키 음악에 전혀 관심이 없던 나의 동행인도 그의 음악이 이토록 아름다울 수 있다는 점에 새삼 감탄했다고 하더군요.

 

전반부는 스트라빈스키의 현란한 음표를, 래틀이 지휘봉에 실어 최고의 연주자들과 함께 예당 구석구석까지 흩뿌리는 것으로 그렇게 끝났습니다.

 

후반부는 진은숙의 창작곡, 인터미션때 보니 진은숙씨가 C블록 앞쪽에 앉아 지인과 함께 감상할 준비를 하고 있더군요. 타악기 주자들이 바르락거리는 기름 종이를 구기면서 진은숙의 작품 '코르스 코르돈-현의 춤'이 연주되었습니다. 진은숙씨는 10분이 넘는 연주시간 내내 고개를 숙이고 감상하더군요. 작곡가-지휘자 그리고 스타급 연주자들이 한눈에 보이는 풍경...

 

그 순간에는 1백만원을 줘도 아깝지 않을 경험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후반기는 라흐마니노프 교향곡 3번이 연주되었구요. 솔직히 자주 접하는 곡이 아니라서 창작곡 만큼이나 생소한 느낌이었습니다. 그렇게 두 차례에 걸친, 사이먼 래틀과 베를린필 연주회가 끝이 났습니다.

 

뭐 아무리 저렴한 좌석이라고는 하지만 이틀에 걸쳐 두 사람이 공연을 보다보니 지출은 만만치 않았습니다만, 정말 흔치 않은 소중한 경험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키릴 페트렌코의 지휘로 베를린필의 연주는 계속될 것이고, 래틀 역시 독일에서의 화려한 성공을 뒤로 하고 고국으로 돌아가 LSO를 이끌겠지만, 조성진(진은숙)-베를린필-래틀의 조합은 아마도 다시 보기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논자에 따라 다르겠지만 세계 5대 오케스트라를 대개는 베를린필, 빈필, RCO, LSO, 시카고 심포니를 꼽는다고 하던가요? 이번에 이틀에 걸쳐 베를린필 공연을 관람함으로써 5대 오케스트라 연주를 다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왠지 무슨 난해한 퍼즐을 완성한 것같은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다만 아쉬운 점은, 최고급 음악을 들으면서도 그걸 세밀하게 차별화하여 감상할 수 없는 내 능력의 한계(막귀라고 표현하는 것이 정확할듯)였습니다. 음악이 직업도 아닌 다음에야, 음악이란 들으면서 즐기면 충분한 것이고, 굳이 그걸 분석하고 비평할 필요는 없겠지만 마치 '미진한 학습능력'처럼 오래 들어봐도 잘 안되는 부분이 있어 개인적으로 안타까움은 있습니다.

 

연주회가 끝난 후 몇일간 네이버를 조회해봐도 이번 베를린필과 사이먼 래틀의 연주회에 대한 평론이 잘 눈에 보이지 않고, 최은규(부천필 단원 출신 평론가)씨 외에는 전문가들의 감상문도 거의 없는 것 같아 몇자 적어봤습니다. 좀 더 전문적이고 날카로운 안목을 가진 고클 회원분의 감상문을 기다려봅니다.

 

감사합니다.

 

 

 

작성 '17/11/23 16:52
oi***수정 삭제 트랙백 보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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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

저도 예매했던 공연인데 가족중의 한명이 아픈 바람에 결국 취소하고 못가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후기로라도 접하니 무척 반갑네요....^^
그러고 보면 예전에 비해서 이 공연감상문 게시판이 좀 침체된 느낌이 들긴 합니다.
앞으로는 저부터 감상문을 좀 올려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17/11/24 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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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oi***:

직접 보셨으면 좋았을텐데요. 부족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17/12/01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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