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24 최영주/고양시청소년교향악단의 주페 시인과 농부, 하이든 트럼펫 협주곡, 드보르자크 교향곡 9번
http://to.goclassic.co.kr/concert/3097

저는 지난 1월 중순에 오스트리아 빈으로 8년만에 여행하여
빈 필 공연 두 차례를 포함해 빈 심포니와 빈 국립 오페라 등 총 네 번의 공연을 보고 온 적이 있습니다.
빈은 네 번째 방문이었지만, 과거엔 테아터 안 데어 빈이나 폭스 오퍼에서 오페라만 본 적이 있었서
이번엔 꼭 뮤직페어아인 (이하 뮤직페라인)과 빈 국립 오페라 하우스에서 공연을 보겠노라 철저히 계획을 세워 한풀이를 하고 왔습니다.

 

과연 뮤직페라인 황금홀과 빈 국립 오페라 하우스의 공연 모두

음반으로 듣던 것 이상의 놀라운 음향을 들려주어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런 결과가 온전히 오케스트라나 가수들의 탁월함 때문만이 아니라
그들의 사용하는 공연장의 우수함도 많은 기여를 하고 있다는 것이 저의 결론이었습니다.

 

빈에서 1주일간 머물고 있던 당시에는 이렇게 좋은 공연들을 볼 수 있는 빈이 천국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처자식만 없다면 한국 관광객들을 가이드하면서 빈에서 평생 살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한국으로 돌아와 보니
'듣기 좋은 꽃노래도 한 두 번이지'라는 생각이 들면서 항상 좋은 공연들만 보다보면

질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과 함께 (만약 천국이 있다면 그래서 지루할 것입니다)
좋은 홀이나 좋은 좌석에서 듣는다면 빈에서와 같은 경험이
한국에서도 불가능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슬슬 들었습니다.

 

빈 여행 후 생긴 이런 깨달음은 저로 하여금 오히려 국내 공연들에 더 많은 관심을 갖게 했습니다.
전과 다른 것은 연주자나 단체의 네임밸류 보다는,
연주되는 프로그램과 공연장을 훨씬 더 중요하게 보게 됐습니다.

 

롯데콘서트홀에서 공연을 처음 들은 토요일 밤,
그 공연장에 대한 나무위키 자료에서 뮤직페라인 홀처럼 신발상자 모양의 직사각형 홀이
국내에는 고양에 있는 아람음악당 등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검색해보니 실제로 고양의 아람음악당(하이든 홀)은 호세 카레라스 등 내한한 음악가들이 극찬한 바 있고,
동일한 오케스트라가 한국을 방문하여 예술의전당과 아람음악당에서 연이어 공연을 가진 결과,
후자가 더 좋은 음향을 들려준 바 있다는 기사도 발견하였습니다.

 

호기심이 발동한 저는, 지난 달에 들었던 뮤직페라인 홀 및 당일의 롯데콘서트홀과 비교해보고 싶은 마음에
고양문화재단 홈페이지에서 공연을 조회해봤습니다.
마침 다음날 일요일 저녁에 고양시청소년교향악단의 신년 음악회를 발견하고
예매를 시도했으나, 공연 전날밤이라 온라인에서 더 이상 예매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결국 공연일 저녁, 공연 시작 1시간 전인 6시 30분에 아람음악당 현장에서 티켓을 구매할 수 있었습니다.
전날 들은 공연도 유스 오케스트라의 연주였는데, 이날도 고양시청소년교향악단의 공연으로
로비에는 단원들 가족들이 많이 보였습니다.

 

남은 좌석은 노른자위, 2층 가운데 맨 앞 몇 줄들.
아마도 초대권을 배포하고 판매용으로 가장 좋은 자리들만 남겨둔 것 같았습니다.
'이게 웬 떡이냐'며 2층 맨 앞 맨 가운데를 골라 앉았는데, 역시나 제 좌우와 바로 뒤 쪽은 좌석이 모두 비어있었습니다.

제가 과문한 탓에 고양아람누리 아람음악당은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이날 프로그램은 1부에서 주페의 시인과 농부 서곡, 하이든의 트럼펫 협주곡 E flat장조 그리고 2부는 드보르자크의 교향곡 9번 "신세계'였습니다.
주페를 제외하고는 과거에 국내에서 실황으로 접한 다른 공연들의 기억이 있어 이날 공연은 프로그램 보다는
주로 공연장에 대한 기대감만으로 좌석에 앉아 있었습니다.
프로 오케스트라의 공연이 아니기에 오히려 저의 방문 목적에 더 부합하는 면이 있었습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감동의 도가니 그 자체였던 공연입니다.
아람음악당은 정말 한국의 뮤직페라인 홀이었습니다.

 

첫 곡 주페의 시인과 농부 서곡을 듣는 순간, 바로 소름이 돋으면서 제 눈엔 눈물이 고였습니다.

 

과거 기억을 되돌아 보면 제가 공연장에서 들은 최고로 감동적인 순간 중의 하나는
이름도 없는 지역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던 바그너의 탄호이저 서곡을 대학교 강당 2층에서 들었던 기억입니다.

 

누가 얼마나 높은 기교로 연주하냐 보다는 음악성을 잘 표현해낼 수 있는 최소한의 능력을 가진 사람이 연주하더라도
그 진심이 전해진다면 청중들에게 감동을 의외로 쉽게 전할 수 있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외국의 유명 오케스트라의 연주를 수십만원에 예매했다가, 가격에 비례하는 더 높은 감동을 느끼지 못한 과거의 경험도 있구요.

 

고양시청소년교향악단 음악감독 겸 상임지휘자 최영주씨는 작품마다 장내 마이크를 이용해서

간단한 해설과 함께 각 작품의 마지막 악장에 나오는 주제를 부르며

그 부분이 등장할 때까지 박수를 치지 말라는 멘트를 날리실 정도로 유머가 넘치는 분이셨습니다.
때로는 그 솔직함이 과해서 객석의 빈자리를 안타까워하기도 했지만 끝까지 유쾌함을 주었습니다.

 

하이든 트럼펫 협주곡의 협연자는 러시아 출신의 알렉스 볼코프 (Alex Volkov)라는 젊은 트럼페터였습니다.
지휘자가 연주에 앞서 테너로 치면 헬덴 테너 (heldentenor)에 해당하는

영웅적인 사운드를 가진 연주자로 소개하셨는데
과연 볼코프의 이날 협연은 놀라운 수준의 최정상급 연주였습니다.

 

제가 트럼펫을 좋아해서 하이든의 이 곡도 마음에 드는 연주를 찾아 한때 많은 음반을 사모았던 적이 있습니다.
당시 주된 불만은 독주 트럼펫이 아니라 오케스트라에 포함된 2대의 트럼펫이 연주하는 부분이었습니다.
이 곡은 트럼펫 협주곡임에도 오케스트라 반주에 또 트럼펫 파트가 맹활약을 하도록 되어 있는 곡입니다.
말 그대로 풋고추를 고추장에 찍어 먹는 그런 곡인 것입니다.

 

이날의 하이든은 마치 나라 뺏겨 피해 간 만주 벌판에서 같은 뜻을 가진 애국 동포를 만난 듯 반가운 연주였습니다.
너무나 잘 불어서 신경쓸 여지가 1도 없는 협연자는 저는 별로 안중에 없었습니다.
1악장에서 트럼펫을 맡은 3명의 젊은 트럼페터가 협연자에 질세라 당당히 주제를 불러줄 때
과연 이것이 청소년 오케스트라가 맞는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어쩌면 '왜 그래야만 하느냐'는 질문을 던지는 듯, 때 묻지 않은 연주자들이 택하는 당연한 해석일 것입니다.
오랫동안 찾아 헤매던 이상적인 1악장 연주를 실황에서 접한 고마움에 또 한번 눈물이 왈칵했습니다.

 

2부의 드보르자크 교향곡 9번은 지휘자가 연주 시작 전에 미리 밝혔지만

(주로 대학생으로 이루어진 관악기 파트와 달리)
바이올린 파트가 초등학생과 중학생이 대부분인 이 유스 오케스트라에겐 버거운 곡임이 틀림없습니다.
가속과 감속을 반복해야하는 총주에서 앙상블이 어긋나거나 제 속도를 못내는 부분이 있었지만
아람음악당의 홀륭한 울림 덕분에 소리를 감상하고 또 감동하는 데에는 조금의 부족함도 없었습니다.

특히 팀파니는 세계적인 오케스트라의 수준과 비교될 만치 훌륭했습니다.
기량이 뛰어나지 않은 연주자들도 용기를 내어 연주할 따듯한 온실을 제공해주는 곳이 바로 아람음악당이었습니다.

 

지휘자는 비록 유스 오케스트라지만 프로 오케스트라들이 감히 실수를 할까 두려워
근처에 가기 꺼려하는 한계까지 모험을 하는데 조금의 주저함도 없었습니다.
보통 그런 모험이 흉하고 어색한 음색과 음량으로 실패하는 것이 흔한 일이지만
이날의 드보르자크에선 대부분 화려함과 신선함을 던져주며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끝으로 불만 한가지만 적고 싶습니다.
8명으로 구성된 플루트 파트. 플루트 지원자가 많아서 모두 무대에 올리신 지휘자님의 고민은 알겠지만
총주에서 8명이 불더대는 플루트 소리는 2층에서 들어도 귀가 아플 정도로 소리가 컸습니다.
다음 공연에선 3명 정도로만 줄여주시기 부탁드립니다.

 

자, 지금부터는 사족입니다.

 

본 프로그램이 끝나고 박수 갈채가 이어질 때 2번 째 등장만에 '커튼 콜을 5번 정도 할려다가'라며
바로 지휘자석에 다시 올라갈 정도로 지휘자는 소탈했습니다.
1부 첫 곡 주페에서 하프 대신 연주하기 위해 무대 좌측 뒤에 반사판을 조금 연 피아노가 있었는데

그 자리에 다시 사무국장님이 앉으시더니
연주된 앵콜 곡은 퀸의 보헤미안 랩소디였습니다.

 

사실 팝 애호가던 고등학생 시절 전 퀸을 싫어했고, 그 중에서도 보헤미안 랩소디를 끔찍하게 여겼습니다.
저는 밥 겔도프가 주관한 라이브 에이드에서 퀸이 연주하기 바로 직전에 연주하고 퇴장한
다이어 스트레이츠의 광팬이었습니다 (팝은 동지를 만나는 게 더 어렵습니다).

 

얼마 전 접한 영화에서도 별 감흥을 받지 못했지만
이날 앵콜을 들으며 보헤미안 랩소디의 가사, 특히 "Mama, just killed a man"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제 나름의 의견이 생겼습니다.
그것은 바로 자신 안에 있던 남성성을 죽였노라는, 게이로서 프레디 머큐리의 커밍 아웃인 것입니다.

 

끝곡으로 슈트라우스 1세의 라데츠키 행진곡이 연주됐습니다.
2월이지만 신년 음악회고 매년 라데츠키 행진곡을 청중들의 박수와 함께 연주했었다네요.
한국의 뮤직페라인 홀 답죠?

 

앞으로 보다 많은 공연들이 이 훌륭한 홀에서 열릴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작성 '19/02/26 11:30
th***수정 삭제 트랙백 보내기
링크 글 (Trackback) 받는 주소: 로그인 필요
su***:

dire straits… 저도 좋아하는 팬입니다.
고양 근처에 산다면 자구 가보고 싶군요.

19/02/27 12:07
덧글에 댓글 달기    
0/1200byte
한 줄 덧글 달기
 
 5
 


내가 본 공연은 내가 평한다, 공연 후기는 이곳에
번호 글쓴이 제목 날짜 조회추천
2402th*** '19/05/052912
2401th*** '19/04/282741
2400th*** '19/04/226053
2399km*** '19/04/222492
2398th*** '19/04/193801
2397th*** '19/04/154471
2396th*** '19/04/076312
2395th*** '19/04/014325
2394km*** '19/03/306624
2393th*** '19/03/244651
2392th*** '19/03/224282
2391th*** '19/03/133241
2390th*** '19/03/114444
2389th*** '19/03/093993
2388th*** '19/03/046544
2387th*** '19/03/023353
2386th*** '19/02/265745
2385th*** '19/02/256585
2384sk*** '19/01/139652
23831y*** '19/01/0115924
2382cd*** '18/12/0818835
2381hh*** '18/10/2819146
2380jy*** '18/10/2318053
2379hh*** '18/10/141399 
2378hs*** '18/08/1810261
새 글 쓰기

1  2  3  4  5  6  7  8  9  10  다음  마지막  
총 게시물: 2787 (1/112)  뒤로  앞으로  목록보기
Copyright © 1999-2019 고클래식 All rights reserved.
For more information, please contact us by E-mai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