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10 김미진 소리/김태영 고수의 만정제 흥보가 (국립국악원 풍류사랑방)
http://to.goclassic.co.kr/concert/3102

지난 2월 26일 국립국악원 풍류사랑방에서의 공연관람을 마치고
나오는 길에 공연장에 흔히 전시된 다른 공연 홍보물에서
김미진 씨의 흥보가 완창이 예정되어 있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역시 전석초대인 무료 공연으로, 공개된 휴대전화나 이메일을 통해 예약이 되는 방식이었습니다.
정악에 비해 판소리 팬층은 훨씬 두터울 터라 바로 다음날 문자로 1자리를 요청했습니다.

 

예상대로 일요일 낮 3시에 열린 공연에는 빈 자리가 없을 만큼 많은 관객들이 오셨습니다.
가운데 줄에는 앉지 못하고 그나마 왼쪽 줄에서 가장 가운데 쪽과 가까운
제일 뒷자리 오른쪽에 앉을 수 있었습니다.
빈 자리가 없어서 통로에 앉아서 보시는 분이 계실까 기대했는데
공연이 시작하고 입장하신 손님들까지 모두 찼을 때 빈 자리가 하나 정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제가 그간 판소리 완창을 들은 적은 두 번이 있었는데
한승석 씨의 적벽가 (2007년)과 수궁가 (2008년)로 모두 우면당에서 공연됐었습니다.
우면당이 규모가 큰 편이라 당시 객석이 꽉 차지 않았었기 때문에
그 이후 새로 생긴 풍류사랑방이 이제 이런 수요를 만족시킬 수 있는 좋은 공연장으로 자리잡은 것 같습니다.
이날은 날씨가 포근해서 온풍기도 작동하지 않아서 다행이었습니다.

김미진 씨는 국립창극단 단원으로 소리의 고장 전남 보성이 고향이라고 합니다.
유튜브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인터뷰를 보면 창극 서편제에서
주인공 송화의 젊은 시절을 맡을 정도로 국립창극단의 중요한 단원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녀는 지난 2016년 3월 심청가를 완창한 적이 있어서
이번이 판소리 완창 프로젝트 두 번째로 흥보가에 도전하게 된 것이라고 합니다.
이날 고수는 최근 왕성한 활동을 하고 계시고, 진도 씻김굿 전수자이신 김태영 씨가 맡아주셨습니다.

 

이날의 흥보가는 만정제로 되어 있어서 만정이 누구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으나
김소희 명창의 호가 만정이라는 사실을 공연 전에 검색하고 알게 됐습니다.
김소희 명창의 스승이 박록주 명창이고, 김미진 씨가 안숙선 명창에게 흥보가를 배웠고
안숙선 명창은 만정의 애제가였기 때문에
결국 박록주 - 김소희 - 안숙선 - 김미진으로 이어지는 계보로 정리된다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음반으로 김소희 명창의 흥보가는 창극 형식으로만 나와있고,
안숙선 명창도 흥보가를 완창으로 녹음한 적이 없어서
만정제 흥보가가 어떠한지 정확히 알 수 없었습니다.
대신 여창 흥보가의 원류인 박록주의 2종의 음반 (중앙일보 LP, JIGU)은 들은 적이 있기 때문에
대략 그 구성을 미뤄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공연 전 해설을 맡으신 김기형 씨에 의하면
판소리 다섯 마당 중 흥보가는 재담의 성격이 가장 강한 판소리이라
보성 소리에서는 아예 전수를 하지 않는다고도 합니다.

 

하지만 적벽가에 비하면 한자로 된 고사성어가 적어 이해하기가 쉽고
수궁가에 비하면 우화가 아니라 더 현실적이고
심청가에 비하면 슬픈 장면이 적어 더 재미있고
춘향가에 비하면 로맨스가 없어서 더 보편적이라는 장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길이도 상대적으로 짧은 편이라 판소리를 완창으로 감상하기에는 가장 문턱이 낮은 작품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판소리는 원래 완창으로 부르는 전통은 없었으나
그 전통을 처음으로 만든 박동진 명창의 판소리 음반들 (SKC)을 보면 삭제가 많은 다른 작품과 달리
유독 흥보가만 CD 5장에 달하는 긴 시간에 수록되어 있는데
2장짜리 박록주 음반과 비교해보면 일종의 디렉터스 컷으로
깨알같은 에피소드까지 모두 포함되어 있기 때문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1968년 박동진 명창이 최초로 완창한 작품도 흥보가이기 때문에 각별한 애정이 있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예전 김미진 씨의 인터뷰를 보면 판소리 완창은 혼자서는 힘들고 청중들의 추임새가 있어야 가능하다는 내용이 있었습니다.
이해는 가지만 판소리 초보로서 그게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앞자리 앉으신 분들이 추임새가 많았지만 저는 생각만 있고 입만 뻥긋했지 정작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박수는 다른 관객들 보다 한 템포 빨리 쳐서 흥을 돋구는 정도로만 참여했습니다.

 

이날 공연은 중간 휴식 15분을 넣어 1, 2부로 약 2시간 40분 가량 소요됐습니다.
1부는 정말이지 눈물이 나고 감정이 북받쳐오르는 무대였습니다

 

여창 흥보가다 보니 특히 흥보 마누라가 부르는 장면은 몰입감이 대단했습니다.
김미진 씨는 장가 보내달라고 조르는 큰 아들 목소리를 굵직하게 내 청중의 웃음을 유도했고
곧 이어 무대에 주저 앉아 부르는 흥부 마누라의 한탄에서 저는 일단 한번 눈물이 터졌습니다.

 

보통 공연을 가기 전에 예습을 하는 것이 도움이 되는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것이 도움이 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흥보가처럼 잘 알려진 이야기는 망각이 고마운 경우가 많습니다.
흥보가 없는 살림에 돈 구하러 읍내 행차하는 장면에서는 웃음이 터져나왔습니다.

 

제대로 된 검은 갓이 없어서 왕비 국상에 얻어 쓴 흰 색 갓을 굴뚝 속에 넣어놨다가 그을음에 검게 했다는 내용,
장 속에 둔 도복을 꺼내오라고 아내에게 부탁하자, 우리집에 장이 어딨냐는 말에 달구장(닭장)은 장이 아니냐는 대답.
울렸다, 웃겼다 하는 것이 우리 판소리의 미학입니다.

 

대신 매맞으러 병영 가라고 교통비로 받은 5냥에 부르는 돈 타령은 참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줬습니다.
예전에 듣던 그 돈타령의 느낌과 또 달랐습니다.
이어지는 신세 한탄까지 듣고 나니 흥보가의 주제는 이거구나 새삼 새롭게 깨달았습니다.
혹자는 무능한 흥보 대신 놀보 편을 들기도 하지만 그것까진 오버고,
돈 벌기가 이렇게 힘들구나, 돈 귀한 줄 알고 아껴쓰고 살자는 얘기구나 하고...
지금 생각하니 구한말에 그렇게 낭비하던 조선 왕실이 들었어야 할 곡은 흥보가구나 싶기도 합니다.

 

하지만 박록주 명창이 짠 흥보가는 흥보를 최소한의 자존심 있는 사람으로 그리고 있기 때문에
시장에서 밥을 얻어 먹는다거나 하는 비굴한 재담을 삭제해서 이야기의 주제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하고 있었습니다.

 

이날 하이라이트는 매맞으로 병영 갔다가 어떤 놈이 선수쳐서 30냥을 뺐기고
허탈하게 집으로 돌아온 흥보를 맞이한 흥보 아내의 반응이었습니다.
"옷을 헐벗어도 나는 좋고, 굶어 죽어도 나는 좋네, 얼씨구나 절씨구"
김미진 씨는 이 부분의 반전을 너무나 잘 표현해주었습니다.
저는 이 대목에서 울컥해서 눈물을 참느라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습니다.
흥보도 아내가 화를 낼 줄 알았다가 뜻 밖의 반응을 보이자 "열녀났네 아니 백녀났어"라고 웃어 넘기는 여유를 보입니다.
흥보가의 또 하나의 주제는 바로 부부애였던 것입니다.

 

팟캐스트 죽은 작곡가 소셜 클럽을 녹음하면서 서양 오페라에서 한국 판소리의 내용과 유사한 소재를
발견하곤 했는데 (심청가와 모차르트의 "이도메네오", 춘향가와 몬테베르디의 "율리시스의 귀환"),
이제 거꾸로 흥보가에서 베토벤의 "피델리오"와 같은 주제를 발견하니 정말 반가왔습니다.

 

집에 와서 박동진이나 박록주의 음반의 이 부분을 들어봐도 이날 공연같은 반전이 잘 느껴지지 않더군요.
소리꾼으로서 김미진 씨는 그 목소리도 훌륭하지만
극적으로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호흡감이 탁월했습니다.
그래서 저에겐 이날 공연은 정말 소중한 경험이었습니다.

 

또한 이날 관객들로 하여금 엄청난 박수를 받은 장면은
돈 빌리러 놀보집을 찾은 흥보를 놀보 마누라가 밥 푸던 주걱으로 때리는 장면이었습니다.
키가 큰 편인 김미진 씨는 비녀와 한복이 너무나 잘 어울렸는데
북치던 고수 쪽을 바라보면 졉혀진 부채로 좌우로 한 번씩 휘두르자
정말로 딱 그 장면을 연상시켜서 박수가 절로 나왔습니다.

 

중타령은 제가 흥보가에서 가장 좋아하는 대목인데
몇 년 만에 흥보가를 이날 다시 들어보니 흥보의 가난의 원인을 잘못된 집터 때문으로 보고
새로이 명당자리를 찾아주는 내용이 솔깃했습니다.
2부에서 등장하는 제비 점고 대목을 보면 제비무리의 장수가 흥보제비 나갈 적에
출행날을 받아 그 날짜에 나가라는 대목도 솔깃하더군요.

 

제비가 물어준 박씨로 부자가 된다는 허무맹랑함이 흥보가의 한계라 생각했었는데
흥보가에서 고생의 원인과 해결책으로 풍수지리와 사주명리를 쓰고 있구나 하는 것도 알게됐습니다.

 

김미진 씨는 2부에선 아래위 다홍빛 한복을 갈아입고 놀보가 제비 후리러 나가는 대목까지
아름다운 목소리와 대단한 성량 그리고 고운 자태로 훌륭히 마무리해주셨습니다.

 

저는 무르익은 명창들의 소리보다 비록 부족함이 있더라도 젊은 소리꾼의 판소리를 선호합니다.
이미 대가가 되고 나면 아이러니하게도 할머니, 할어버지가 들려주는 이야기가 되버리는
판소리가 아니라 이날 판소리에서는 실제 흥보 내외와 놀보 내외의 나이인
삼십대의 목소리를 생생히 들을 수 있어서 정말 몰입감이 높았습니다.

 

또한 마이크를 사용하지 않은 공연이라 작은 목소리와 큰 목소리의 다이내믹이 잘 느껴졌습니다.

북소리는 시종일관 풍성했으며 저음역대를 잘 채워줬습니다.

 

김미진 씨는, 흔히 젊은 소리꾼이 남발하기 쉬운,
강하게 쥐어짜서 만드는 날카로운 고음을 자제하는 미덕도 갖추어서

기품있는 소리를 추구한 박록주 명창의 이상과 잘 맞았습니다.

 

생전의 박록주 명창이 정권진 고수와 한 1967년 녹음에서는 놀보 박타는 데까지 포함되어 있지만

김동준 고수와의 녹음에는 제비 후리러 나가는 대목까지만 불렀고 그 이후 여창 흥보가에서는
내용이 저속하고 재담 위주로 흐르는 마지막 놀보 박타는 장면은 부르지 않는 전통이 생겼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날 판소리 마지막에 나오는 '그 뒤야 누가 알리, 더질 더~질'을 들을 수 없었는데
놀보가 박을 타서 망했고 형제가 화해했다는 짧은 사설로 대신하고
마무리로 더질 더질을 부르는 방법도 한번 시도해볼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비록 김미진 씨의 첫 번째 완창 심청가는 듣지 못했지만
세 번째 완창 프로젝트에는 꼭 참석하도록 하겠습니다.

작성 '19/03/13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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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m***:

국악까지 섭렵하셨다니 존경스럽습니다.

19/03/20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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