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22 박영민/부천필하모닉오케스트라의 닐센 플루트 협주곡, 라흐마니노프 교향곡 2번
http://to.goclassic.co.kr/concert/3104

최근 제가 시작한 국내 오케스트라 공연들을 참석하고 후기를 써가는 과정에
국내 최정상급 오케스트라인 부천필이 빠질 수 없을 것입니다.

 

부천필하모닉은 저의 과거 감상문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서울시향과 함께 제가 가장 많이 접했던 오케스트라 중의 하나입니다.
하지만 모두 LG아트센터나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의 연주여서
부천필의 상주 홀인 부천시민회관 대강당에서의 공연은 아니고, 게다가 10여 년전 임헌정 씨의 지휘였습니다.
돌이켜보면 10년 넘게 맞벌이하면서 애 키우느라 국내 공연들을 그새 제대로 본 기억이 없습니다.

 

제가 부천필의 연주를 부천시민회관에서 처음 들은 것은

작년 11월 23일 부천시립합창단 창단 30주년 기념 음악회였던
베르디 레퀴엠 공연이었습니다. 당시 지휘는 부천필의 상임 지휘자인 박영민 씨 대신에
부천시립합창단의 지휘자이신 조익현 씨가 맡아주셨습니다.

 

그 공연에는 합창단 바로 앞에 독창자들이 서지 않고
협연자처럼 무대 맨 앞에 독창자들이 서면서 독창자들의 목소리가 매우 도드라졌습니다.
특히 슈투트가르트 오페라에서 활약하신 전승현 씨가 베이스로 참여하여 아주 인상적인 공연이었는데
막상 부천필의 연주는 삑사리도 많았고, 리허설이 좀 부족한 느낌이었습니다.

 

당시 베르디 레퀴엠을 특히 좋아하는 아내의 강권으로 서울 광진구에서

부천까지 온 식구가 먼 길을 다녀왔었는데
그때 앉은 자리가 1층 맨 왼쪽 열, 뒤쪽 줄이어서 홀 자체의 울림도 제대로 듣지 못했었기 때문에
언제고 상임지휘자의 연주로 좋은 자리에서 제대로 들어보고 싶었습니다.
그러니까 이날 공연이 저로서는 박영민 지휘자가 지휘하는 부천필과의 첫 만남이었습니다.

 

고클래식 티켓 이벤트로 무료로 받는 티켓으로는 부천필의 경우

1층 가장자리 밖에 앉을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2층 앞자리를 예매하길 원했지만, 1층이 모두 매진되어야

2층 자리를 오픈한다는 부천필 담당자의 말을 듣고 실망했습니다.
결국 이날 공연은 1층이 모두 매진되지 않아서 제가 예매한 티켓을 받으러 줄을 설 때 보니

2층으로 가는 계단은 테입으로 막혀져 있었습니다.

 

제가 예매한 자리는 1층의 다섯 열 중 가운데에서 왼쪽 열(라열)의 앞에서 여섯번째 줄,

무대에 가까운 쪽인 맨 오른쪽에서 두번째 자리였습니다.
부천시민회관은 많은 대도시 시민회관들처럼 콘서트 전용홀이 아닌 다목적홀입니다.
시설도 오래됐고 해서, 부천필의 단원과 지휘자가 모두 등장하는 프로필 사진들이 예술의전당이나

고양 아름음악당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
정작 상주홀인 부천시민회관을 배경으로 남긴 사진을 쓰지 않는 것만 봐도

홀 자체가 가진 한계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역시 부천필이 보기에도 국내 최고의 홀은 고양 아름음악당인가 봅니다.

SONY에서 발매된 말러 음반들이 모두 거기에서 녹음됐네요.)
그럴수록 좋은 자리에 앉는 수 밖에 해결책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틈만 나면 부천시향 홈페이지를 방문해서 좋은 자리가 환불되길 기다리다 겨우 잡은 자리였습니다.

1부의 차이콥스키 이탈리아 기상곡과 닐센의 플루트 협주곡을 듣고 든 생각은
그래도 부천필이 국내 최정상 오케스트라로 발돋움할 수 있었던 데에는

부천시민회관이 덕이 됐다라는 것이었습니다.
부천시민회관이 엉터리 수준이라면 오늘날의 부천필이 있을 수 있었을까라고 생각해볼 수 있겠습니다.
부천시민회관은 바로 전날 들은 성남아트센터 콘서트홀과 성향이 완전히 다른 홀이었습니다.
무대에 부채꼴 모양의 반사판을 설치해서 흔한 부채꼴 모양의 홀처럼 보이지만
실제 규모나 구조는 성남아트센터 콘서트홀처럼 세로가 짧은 직사각형의 홀입니다.

 

바이올린의 고음의 화려함을 줄인 대신 비올라와 첼로와 같은

중저음 악기의 선명함이 살아있는 홀이었습니다.
그것은 현악기 주자들 바로 옆에 위치한 반사판 때문으로 추측됩니다.
하지만 뒤로 갈수록 좁아지는 반사판의 모양 때문에 팀파니와 북 등 대음량의 타악기들의 소리의
최저음이 강조된다는 점은 지난 번 베르디 레퀴엠에서도 확인한 바 있었습니다.
요약하면 바이올린만 날라다니는 그런 홀은 아니라서

현악기 간의 앙상블을 이루는데 도움이 되는 홀이라고 생각합니다.

 

닐센의 플루트 협주곡은 트럼펫과 플루트가 편성에서 빠지고

2대의 호른과 1대의 트롬본 그리고 팀파니가 있는
독특한 편성의 협주곡인데 비좁은 무대의 단점을 이런 소편성의 곡에서는 전혀 느낄 수 없었고
악기간의 넉넉한 거리에서 오는 여백의 미를 충분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호른 소리도 그 여운이 길고 가늘게 잘 빠지는 울림이어서
자신의 안방에서 연주하는 오케스트라답게 매우 돋보이는 오케스트라 반주였습니다.

 

닐센 플루트 협주곡은 아직 제게 익숙하지 않은 곡이기 때문에 긴 얘기는 할 수 없겠습니다.
뭔가 깊은 얘기를 하고는 있지만 막상 그 뜻은 통하지 않는

외국인의 열변을 듣고 있는 그런 느낌의 곡이었습니다.
이날 협연자 김유빈 씨는 강약의 낙차가 매우 큰 다이내믹한 연주를 들려줘서 많은 갈채를 받았습니다.
앵콜로는 림스키-코르스코프의 왕벌의 비행을 연주해주셨습니다.

 

1부가 끝났을 때 제 오른쪽에 앉은 여자분이 맨 가운데 열(다열) 빈 자리로 옮기길래,

저도 빈 자리를 찾아보다가 더 좋은 자리(다61)로 업그레이드했습니다.
부천필 고위 직원으로 보이는 중년의 여성분이 손님들과 얘기하시다가

2부가 시작되자 바로 제 옆에 앉으셨는데
그걸로 보아 제가 앉은 1층의 가운데 통로를 앞에 둔 자리가 제일 명당으로 판단되었습니다.

 

저는 음식 중에 단 음식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설탕이 들어가도 들어간둥 만둥 잘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만 들어간 음식을 좋아하죠.
음악도 달콤하기만 한 음악은 금방 질려서 잘 듣지 않게 되는 편입니다.

 

라흐마니노프 교향곡 2번도 너무 달콤해서 제 취향은 아니었습니다.
애니메이션 "미녀와 야수"의 주제가의 작곡가가 표절했다는 의심을 들을 때마다 하게 되는

3악장의 주제만 너무 사랑받는다거나
2014년 영화 "버드맨"에 삽입된 1, 2악장의 유명한 선율들 때문에
이 곡이 교향곡으로서 갖는 음악사적 위치는 그리 높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우연히 2006년에 예브게니 스베틀라노프와 USSR 국립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1985년 연주 (SCRIBENDUM)를 접하고는

이 곡이 이토록 심포닉하고 남성적인 곡이었나 하고 곡을 다시 보게 됐습니다.

 

구체적으로 이 곡에 새롭게 눈을 뜨게 된 계기는 바로 1악장 코다의 맨 끝음에서

거의 fff로 울리는 팀파니의 울림 때문이었습니다.
그 이후 다른 연주들을 들어봐도 아예 팀파니가 들리지 않는 연주들이 많아서 (아쉬케나지 지휘의 음반들)
고개를 갸우뚱하고 이 곡도 매우 '정치적'인 곡인가 하고 오랫동안 잊고 지냈습니다.

 

과거 임헌정 씨가 지휘한 부천필에서 저는 매우 동질감을 느꼈기 때문에
그의 제자로 알려진 박영민 씨가 지휘한 라흐마니노프 교향곡 2번이
제가 선호하는 스타일로 연주될지 하는 것이 저로서는 이날 공연을 듣기 전에 가졌던 큰 궁금증이었습니다.

 

과연 1악장 마지막의 코다의 마지막 울림이 끝났을 때 불끈 쥐고 있는 지휘자의 왼손과 함께
팀파니의 강력한 울림이 들려왔습니다. 달콤한 선율에 도취한 영국 스타일의 자본주의적 연주가 아니라
러시아 스타일의 사회주의적인 느낌의 그런 연주여서 아주 반갑고 고마왔습니다.

그런데 어제 imslp.org에서 이 곡의 악보를 찾아보니 정작 라흐마니노프가 남긴 악보에는
1악장 마지막의 팀파니 강타가 없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전 멘붕에 빠졌습니다.
음반을 찾아보면 절반 정도는 팀파니 강타가 있고,

절반 정도는 첼로와 베이스의 강한 울림으로만 끝나고 있습니다.

 

누가 먼저였는지는 알 수 없으나, 러시아 쪽 지휘자들은 1악장 마지막에

팀파니를 가필해서 때리는 것이 전통이 되었다고 합니다.
여기에 팀파니를 넣으면 멋지긴 하지만, 사실 1악장 마지막이 너무 도드라져서
뒤이은 4악장 보다 1악장의 코다가 더 전체 곡의 코다처럼 느껴지는 인상을 주는 것도 사실입니다.
라흐마니노프가 왜 그토록 4악장 마지막에 규모를 키웠는지도

결국 1악장의 기억을 넘어서기 위함이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 음표 하나가 있고 없고가 곡의 전체 인상을 좌지우지할 만큼 크다는게 문제입니다.
흡사 좌표값에 곱해지는 +1 혹은 -1처럼 영향이 커서,
좌표평면 위에 1사분면의 점을 3사분면으로 옮겨놓을 만큼 전체적인 인상이 달라집니다.

 

어찌됐든 저는 1악장에 대만족했고, 3악장까지 연달아 등장하는 현을 위주로 한 달콤한 선율에는
별로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그 부분들은 충분히 달콤했고 충분히 아름다웠습니다.
사람은 듣고 싶은 것만 듣게 되는 편이지만, 위의 해프닝에서 보다시피

제가 이 곡에 대해 쓸 만큼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뜻도 됩니다.

 

이날 오케스트라 배치는 팀파니가 맨 뒤의 가운데 그 오른쪽에 3대의 트롬본이 위치하고
바이올린 파트 뒤에 4대의 호른과 팀파니 왼쪽에 3대의 트럼펫이 자리 잡았습니다.

전곡 내내 비올라와 첼로 소리가 묻히지 않고 잘 들려서 1부에서 받은 인상을 재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목관들도 풍부한 음색을 마음껏 뽐냈으며 곡의 서정미를 손색없이 모두 표현해줬습니다.

 

트럼펫은 뭉뚝한 울림은 아니고 뾰족하게 깎은 연필 같은 느낌의 소리를 들려줬습니다.
원뿔 보다 좀더 그 끝의 존재감이 있는 십자드라이버 같은 느낌의 소리였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팀파니는 존재감이 너무 두드러져서 살짝 과하다 싶은 울림이었기 때문에
제 취향에는 팀파니를 조금 자제시키고, 트럼펫을 더 키웠다면 어땠을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4악장은 흡사 말러를 연상시킬 만큼 대단했습니다.
집에 와서 이 곡의 유명한 음반들을 5-6종 들어봐도
오디오에서 그 악기들을 모두 분간해내기에는 4악장은 너무 복잡하고 악기가 많습니다.
그래서 음반으로는 도저히 들을 수 없는 거대함을 느끼고 왔습니다.

 

단지 무대와 홀이 작아서 그 큰 울림을 홀이 충분히 소화해내지 못한다는 인상을 받은 것이 아쉽습니다.
다음 공연부터라도 1층이 매진되고, 저는 2층 앞자리에서 그 소리를 듣고 싶을 따름입니다.

 

이날 연주된 라흐마니노프 교향곡 2번은 말러부터 프로코피예프를 거쳐

쇼스타코비치로 이어지는 그 길목에 있는 교향곡으로서의
라흐마니노프를 대우했다고 생각합니다.
4악장의 그런 대편성 오케스트레이션을 보면 작곡가 스스로도 그런 대접을 기대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날 앵콜로는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관현악곡이 한 곡 연주됐습니다.
아마 트리치 트라치 폴카였던 것 같은데 어떤 곡인지 찾다가 헷갈리는 바람에

지금은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박영민 씨와 부천필하모닉은 4월에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6번을 시작으로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들을 연주할 예정인데 쇼스타코비치의 공연들도 참석하고 싶습니다.

작성 '19/03/24 16:07
th***수정 삭제 트랙백 보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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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m***:

앵콜곡 기억이 안나면 정말 미칩니다. 저같은 초보자도 그런데 고수들은 더하시겠지요?
공연후기를 적기위해 음반 여러개를 들으시는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19/03/25 2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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