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17 박영민/부천필하모닉오케스트라의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6번
http://to.goclassic.co.kr/concert/3109

그저께 수요일 저는 또 부천으로 향했습니다.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6번을 듣기 위해서였죠.
이로써 이번 2019 교향악 축제에 참여하는 오케스트라의 3개의 공연을
모두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듣는 것이 아니라
각기 해당 도시(인천, 서울, 부천)의 홀에서 듣고 온 셈이 됐습니다.

 

저는 평소 쇼스타코비치 교향곡은 5, 7, 10번 정도만 즐겨 들어왔었기 때문에
앞으로 이어질 부천필의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공연들을 따라 가면서
그간 잘 듣지 않던 나머지 교향곡들의 재미를 찾는 계기로 삼기로 했습니다.

 

교향곡 6번이 세 악장으로만 된 비교적 짧은 곡이기 때문에
1부에서는 유명한 스트라빈스키의 불새 모음곡 (1919년)이 포함되어 있는 것도
이날 공연의 관람 포인트였습니다.

 

앞서 지난 두 번의 부천시민회관 대강당에서의 공연을 본 경험에 비추어
제가 이번에 선택한 자리는 앞에서 3번째 줄의 정 가운데 바로 오른쪽 자리였습니다.

 

콘서트홀이 단점이 있는 경우에 그 단점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법은 홀의 반사음을 최소화하고 오케스트라의 직접음을
최대한 많이 들을 수 있는 자리를 선택하는 방법 밖에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너무 앞자리에 앉으면 악기간의 조화로운 밸런스를 느낄 수 없죠.
예를 들어 가장 가까운 자리에 있는 악기 소리가 너무 커지는 문제점이 있습니다.

 

부천시민회관의 경우, 일반적인 콘서트홀과 다르게 무대의 높이가 1층 바닥에서 약 30cm밖에 되지 않을 정도로 낮습니다.
그래서 지난 번 공연에서 좀 더 앞자리에서 들으면 어떨까하는 호기심이 들었습니다.

 

또 무대 뒤에 위치한 반사판을 이용할 수 있기 위해선지
단원들이 무대 앞으로 바짝 당겨 앉지 않고 약 4m 정도 뒤로 물러나 있기 때문에
맨 앞자리를 앉더라도 유럽의 콘서트홀 관행대로라면 앞에서 4-5번째 정도의 자리에 해당됩니다.

제가 선택한 앞에서 3번째 줄은 현악기 소리가 모두 섞여서 들릴 정도의 거리는 유지되면서도
홀의 반사음이 최소한으로 개입하여, 지휘자가 실제로 듣고 있는 소리와 흡사할 것으로 판단됩니다.
부천시민회관의 단점 중 하나인 공기조절 시스템에서 들리는 환풍기의 화이트 노이즈도

객석 뒷부분에서 크게 들리기 때문에 앞자리에서는 거의 들리지 않았습니다.

 

제가 공연장을 찾는 근본적인 이유는
집에서 오디오로 감상하는 차원을 넘어서는 경험을 하기 위해서입니다.

 

흔히 음반에서 듣는 것과 유사한 현악기 소리의 입자 크기는

1층 가운데나 2층 앞자리 정도에서 들리기 때문에
그간 앞자리는 좀 피해왔었는데,
홀에 따라서는 뒷자리에 앉았다간 음반보다 못한 사운드를 경험하는 위험이 있기 때문에
음반이 주는 현의 입자 크기에 집착하는 것만 포기하면
적어도 음반보다 못한 경험을 할 가능성은 확실히 줄어들 것이라 생각했는데
결론적으로 제 예상은 옳았고 아주 만족스런 공연이었습니다.

 

1부에서 연주된 스트라빈스키의 불새 모음곡은 이날 공연 중 가장 성공적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정말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연주였습니다. 팜플렛에 손을 얹고 있었는데 인쇄된 글자가 뭉개질 정도였습니다.
첫 서주를 여리게 연주하는 첼로와 콘트라베이스 파트만 듣고 있어도

'공연 오길 잘 했다'는 느낌이 팍 들었습니다.
이런 소리는 음반에서 도저히 들을 수 없을 것만 같았습니다.

 

매우 큰 음량을 만들어내는 '카슈체이 일당의 춤'을 알리는 큰북 소리가 터지자
아마도 졸고 있다가 깜짝 놀라서 깼는지 제 뒷자리에 앉은 분이

갑자기 제 등받이를 여러 번 당기며 자세를 고쳐 앉더군요.
곡 자체의 재미를 조금의 어색함도 없이 모두 뽑아낸 훌륭한 연주였습니다.
다만 '카슈체이 일당의 춤'에서 약하면서도 빠르게 연주해야하는 트럼펫 패시지는 음반들과 비교하면
아티큘레이션이 모두 살아있는 완벽한 연주는 아니었는데, 실제 관람 중에는 별로 의식하지 못했습니다.

 

특히 이날 1부 스트라빈스키에서 훌륭했던 것은 팀파니였습니다. 자장가 마지막 부분의 총주에서
울리는 팀파니의 음색은 거의 빈 필의 그것을 연상시킬 정도로

팀파니 고유의 음색을 푸짐하게 만끽할 수 있었습니다.
금관악기들도 대활약을 펼쳐서 금관과 타악기들의 밸런스가 뒤집어지는 현상도 없었습니다.

 

이날 협주곡은 마르티누의 오보에 협주곡 H. 353으로 매우 생소한 곡이었습니다.
팀파니 없이, 피아노, 트럼펫 1대, 호른 2대 그리고 2대의 플루트, 2대의 클라리넷, 1대의 바순

그리고 현 5부가 동원되는 독특한 편성이었습니다.
공연 전에 CAPRICCIO의 1981년 음반을 미리 들어보고 가긴 했지만 익숙하지 않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협연은 현재 핀란드 방송 교향악단 제2수석이신 함경 씨가 맡아주셨습니다.
오보에의 고음에서 제가 좋아하는 알토 색소폰의 느낌이 언듯언듯 나서 듣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오보에의 직접음과 함께 홀에 반사되어 들리는 음이 그림자처럼 따라 다녀서
특별히 홀이 협연자에게 도움을 주고 있다는 느낌은 받지 못했습니다.
목관소리가 황홀하게 들리는 아트센터 인천에서 들었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하는 욕심이 들었습니다.

 

3악장 빠른 코다에서 오보에와 오케스트라가 서로 달리기 시합을 하듯이 냅다 달리는 부분에선
독주자가 체력이 살짝 고갈되기도 해서 음량이 줄어든 탓도 있지만
오케스트라 반주, 특히 트럼펫이 너무 커서, 코다 끝부분에서

흡사 1등으로 달리던 오보에 주자를 넘어뜨리고
오케스트라가 먼저 결승점에 도착하는 느낌이 났습니다.
악보를 보니 코다는 f로 되어 있고, ff로 커지도록 되어 있지는 않네요.

 

이날 공연에서 호른은 무대 왼쪽에, 트럼펫은 무대 정 가운데에 위치했었는데
1명의 트럼페터가 부는 트럼펫 소리가 들리는 위치와 오보에 주자가 선 자리가 각도상 큰 차이가 없었는데
트럼페터가 소리를 살짝 줄이거나,

협주곡에선 가운데를 피해 오른쪽에 앉았더라면 더 낫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앵콜 곡은 처음 듣는 곡이었는데 언듯 시작부분이 영화 미션의 유명한 주제와 살짝 비슷한 느린 곡이었습니다.
부천 필 홈페이지에 의하면

벤자민 브리튼: 오비디우스에 의한 여섯 개의 변용, 작품 49: 1번 Pan이라고 합니다.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6번은 그의 교향곡 중에서 가장 밝고 명랑해서 봄의 느낌이 강한 곡입니다.
아마 그래서 지휘자 박영민 씨가 이 4월에 연주되는

쇼스타코비치 시리즈의 첫 곡으로 선택한 곡이 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2부에서 지휘자는 암보로 지휘했습니다 (1부는 암보였는지 아닌지 기억이 안납니다).

 

1악장은 나머지 악장과 다르게 느리고 어두운데,

그 느린 시작을 연주하는 바이올린의 합주 소리는 어둡고 진했으며 날이 잘 살아 있었습니다.

악보에 express.라고 표기된 지시를 충실히 따라 다른 쇼스타코비치의 다른 교향곡들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비극성이 매우 강조됐습니다.
마침 앞자리에 앉아서 그 까칠까칠한 보풀이 다 느껴져서 음반들 보다 더 비극적으로 들렸던 것 같습니다.

 

1악장 초반부의 클라이막스 이후에 마치 꽁꽁 얼어붙은 긴긴 동지 밤같이

조용하게 플루트와 현만 등장하는 중간부를 지나

다시 깨어나듯 여리게 하나 둘 악기가 등장하는 후반부에 호른 독주가 살짝 불안했던 것은 아쉽습니다.

 

1악장에서 베이스 클라리넷과 잉글리시 호른이 중요하게 사용되는데
1층에서는 목관 주자들이 모두 앞자리 현악기 주자들에 가려서 누가 누군지 보이지 않아
시각적으로 이를 확인할 수 없었던 것이 좀 답답하긴 했습니다.

 

2악장에서 바이올린부터 큰북까지 오케스트라의

전체 음색이 하나의 톤으로 통일된 것을 잘 유지했다는 점이 좋았습니다.
흔히 국내 오케스트라에서 현과 목관, 목관과 금관의 음색 차이가 심해서

언듯 화려하긴 하지만, 정돈된 느낌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데
부천필의 이날 연주에선 그런 단점을 전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흡사 모든 악기들이 조금씩 자신의 색깔을 양보하면서 전체적인 조화에 힘쓰고 있는 듯했습니다.
제가 앞자리에 앉아 홀의 영향이 줄어서 그렇게 느끼기 쉬웠을 수도 있습니다.

 

3악장에서는 1악장과 확연히 다른 완연한 봄 기운을 느낄 수 있기를 기대했는데
바이올린의 음색은 1악장과 크게 다르지 않게 진한 색깔을 간직하고 있는 듯해서

1악장과 대조감이 쉽게 느껴지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지휘자의 해석은 전체적으로 이 곡의 밝은 면보다는 풍자적인 면을 강조한 것 같습니다.
실로폰 소리가 장식적인 정도가 아니라 거의 팀파니처럼 크고 신랄하게 들려서 더욱 그러했습니다.

 

이 곡의 하이라이트라 할 3악장 코다는 조금 실망스러웠습니다.
제가 몇가지 음반을 들어봐도 이 3악장 코다가 마음에 드는 연주가 드문데,

딱 하나 번스타인/빈 필 (DG)은 정말 좋습니다.
그 음반은 공연 전날도 들었고, 오늘 또 다시 들었는데 오늘 들으니 정말 눈물나게 흥겹군요.

 

쇼스타코비치의 다른 교향곡도 그렇지만 교향곡 6번은 음식으로 치면 매운 맛이 나는 음식 같습니다.
매운 음식은 밥을 많이 먹게 해서 자칫 과식을 하게 하는 단점이 있다네요.
이날 부천필 3악장은 음식이 너무 매운데 같이 먹을 밥이 없는 그런 상황이었습니다.

 

번스타인/빈 필의 음반을 지금 다시 들어보니 비법은 설탕에 있었습니다.
번스타인은 코다에서 팀파니를 제외한 다른 타악기들은 약하게 연주하게 해서

정말이지 장식으로만 사용하고 있습니다.
흡사 설탕인 것이죠. 쫄면 맛을 좌우하는 것은 양념장에 첨가된 설탕의 양입니다.
반면 부천필은 심벌즈, 큰북 그리고 작은북까지 팀파니와 꼭 같이 맹렬하게 두들게 됐습니다.
식사 마지막에 앞서 먹던 매운 양념들을 모두 입 안에 쏟아 부어버린 격입니다.

 

마지막의 리듬감과 흥겨움을 위해서는 팀파니가 부각되어야 하는데
이날 공연에선 중앙의 팀파니가 오른쪽의 작은북 소리에 묻혀버렸습니다.
락음악에서 1명의 드러머가 연주하는 드럼세트라면 이런 소리가 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큰북은 팀파니가 내지 못하는 초저음을 내기 위해서만 사용하고
심벌즈도 장식적으로 사용했을 것입니다.
결국 지휘자는 교향곡 6번을 혁명적인 선동이 가득한 곡으로 해석한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앵콜로 연주된 2곡은 분명 분위기를 중화시키기 위한 가벼운 곡들인데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달가닥 달가닥 갈롭 op. 466과

헬메스베르거 2세의 비엔나 양식으로라는 폴카. 출처: 부천필 홈페이지)
흡사 TV예능에서 매운 음식 못 먹는 외국인들이 들이키는 우유 같았습니다.

 

밤 늦게 집에 와보니 저 없이 아내와 아들이 저녁을 해먹느라고 고생이 많았더군요.
이래서 그간 공연 다니기가 쉽지 않았던 것이죠.
부천필의 다음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공연도 정말 기대됩니다.
저는 꼭 참석하겠습니다.

작성 '19/04/19 13:35
th***수정 삭제 트랙백 보내기
링크 글 (Trackback) 받는 주소: 로그인 필요
be***:

음식 비유가 재미있네요. 흥미로운 후기 잘 읽었습니다.

19/04/19 22:40
덧글에 댓글 달기    
ba***:

부천필이 좋은 곡들을 많이 하는 듯한데... 거리상, 시간상...(다른 곳처럼 8시에 시작만하여도 좋은데...) 한번도 가보질 못했네요...
참 아쉽다고 느낍니다.

19/04/24 12:11
덧글에 댓글 달기    
0/1200byte
한 줄 덧글 달기
 
 1
 


내가 본 공연은 내가 평한다, 공연 후기는 이곳에
번호 글쓴이 제목 날짜 조회추천
2404km*** '19/05/24753
2403th*** '19/05/20169 
2402th*** '19/05/053592
2401th*** '19/04/283091
2400th*** '19/04/226353
2399km*** '19/04/222652
2398th*** '19/04/194021
2397th*** '19/04/154691
2396th*** '19/04/076512
2395th*** '19/04/014525
2394km*** '19/03/306794
2393th*** '19/03/244821
2392th*** '19/03/224452
2391th*** '19/03/133371
2390th*** '19/03/114594
2389th*** '19/03/094153
2388th*** '19/03/046684
2387th*** '19/03/023453
2386th*** '19/02/265865
2385th*** '19/02/256745
2384sk*** '19/01/139812
23831y*** '19/01/0116004
2382cd*** '18/12/0818985
2381hh*** '18/10/2819276
2380jy*** '18/10/2318223
새 글 쓰기

1  2  3  4  5  6  7  8  9  10  다음  마지막  
총 게시물: 2789 (1/112)  뒤로  앞으로  목록보기
Copyright © 1999-2019 고클래식 All rights reserved.
For more information, please contact us by E-mai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