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17 마르코 발데리/프라임필하모닉의 도니체티 사랑의 묘약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http://to.goclassic.co.kr/concert/3114

지지난 금요일과 토요일, 저는 각각 인천시향과 국립오페라단의 공연을 예매해뒀었는데
5월 10일 금요일, 장모님의 건강이 좋지 않아 급히 광주로 내려갔다가 일요일 저녁에 상경하는 바람에
두 공연 모두 참석할 수 없었습니다.

 

지난 5월 17일 금요일 공연은 참석할 수 있었습니다만, 바로 다음날 다시 광주로 갔다

어제 상경하여 후기가 좀 늦어졌습니다.
이날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는 글로리아오페라단의 도니체티 "사랑의 묘약"이
제10회 대한민국오페라 페스티벌 개막공연으로 열렸습니다
(포스터 등에는 '도니제티'로 오기됨, 이탈리아어 z는 ㅊ으로 표기되어야 합니다).

 

예술의전당에 중요한 홀이 둘이 있는데 흔히 콘서트가 열리는 콘서트홀은 꽤 가봤지만
이날 방문한 오페라극장에서 오페라를 본 것은 저로서는 이날이 처음이었습니다.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은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처럼 대규모의 공연장은 아니고
오스트리아 빈의 테아터 안 데어 빈 (Theater an der Wien)과 유사한 규모의 오페라극장이더군요.
내부 디자인 자체도 객석 위 천장이 원형으로 되어 있어서 테아터 안 데어 빈과 흡사했습니다.

 

반면 객석만 보면 오페라 극장 치고는 2-4층 객석들의 굴곡이 완만해서
좌우의 좌석들이 일반 콘서트홀 수준 정도로만 무대에 가까와지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정면을 포기하고 좌우 좌석에 앉을 경우 무대에 (삐딱하나마) 가까와지는 재미는 거의 없었습니다.
객석 좌우의 발코니 석은 몇 석 되지 않았으며 이날 공연에서는 모두 비어있었습니다.
그래서 객석 구조는 빈의 폭스 테아터 (Volks Theater)와 유사한 오페라 극장이었습니다.

 

객석마다 뒷자리에 LCD로 자막이 표기되는 세종문화회관과 달리
무대 맨 위에 LED로 자막이 표기되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참고로 빈에서도 빈 국립 오페라 극장에만 좌석마다 개인 디스플레이로
몇가지 유럽 언어의 자막을 선택할 수 있도록 되어 있고
나머지 두 극장은 예당처럼 무대 위에 자막 (당연히 독일어)이 제공됩니다.

제가 앉은 자리는 4층의 맨 가운데 자리로 앞에서 2번째 줄이었는데
기대했던 것보다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은 음향이 좋은 편이었습니다.
천장에 위치한 공기조절시스템에서 화이트노이즈가 들리는 것만 제외하면
특별히 단점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4층 앞줄에서 들어도 콘트라베이스 소리가 풍부하게 들릴 정도로
소리가 '살아있는' 홀이었습니다. 무엇보다 가수들의 목소리나 합창이 선명하게 들렸으며
오케스트라 음향에도 특별한 착색이 없고 대음량에서도 지저분해지지 않았습니다.

 

적어도 오페라극장의 음향이 나빠서 오페라를 보러 가기 꺼리게 되는 걱정은 잊을 수 있는,
2층 앞자리 정도에서 듣는다면 아주 훌륭한 경험이 될 거 같다는 욕심이 생기는 홀이었습니다.
다만 완전한 적막이 유지되지 않고, 지하 노래방을 닮은 인테리어 때문인지
간혹 먹먹한 소리가 나기도 했는데 특정 중저음 대역에서 해상도가 낮아지는 약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날 오케스트라 반주는 군포 프라임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맡았으며
지휘는 마르코 발데리라는 이탈리아 지휘자였습니다.
오케스트라 피트의 악기 배치는 현이 왼쪽, 관과 타악기가 오른쪽에 위치한 흔한 배치였습니다.
맨 왼쪽에 레치타티보 반주에 쓰일 쳄발로 대신 신디사이저가 보였고,
3대의 콘트라베이스가 지휘자의 왼팔 끝 정도의 위치에, 꽤 가운데에 위치한 것이 특이한 점이었습니다.
그래선지 이날 공연에서 콘트라베이스 소리가 적절하게 울리면서 풍성한 소리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목관들의 소리도 매우 선명해서 오케스트라 반주는 만족스러웠습니다.

도니체티의 "사랑의 묘약"은 오페라 부파의 마지막 히트곡이라고 할 수 있고,
다르게 보면 이탈리아어로 된 최초의 뮤지컬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가벼운 내용의 오페라입니다.

 

연출은 도니체티 오페라극장 예술감독 겸 극장장을 역임한

프란체스코 벨로토라는 이탈리아 연출가가 맡고
남녀 주인공 모두 외국인이어서 절반 정도는

거의 외국 오페라단의 내한 공연이라고 해도 될 수준의 기획이었습니다.

 

이날 공연은 오페레타적인 성격이 강한 이 곡의 성격에 걸맞는 많은 볼거리를 제공하는데는 성공했지만
빈약한 무대 미술 때문에 그 흥이 반감되는 한계를 보여줬다고 생각합니다.
가수들은 주연 테너를 제외하면 모두 수준급의 높은 완성도를 들려줬습니다.

 

연출가는 흔히 볼 수 없는 독특한 설정을 이 "사랑의 묘약"에 적용하는 아이디어를 들고 나왔습니다.
원작은 네모리노는 가난한 농부이고 아디나는 부유한 지주의 딸로 설정되어 있지만
아디나를 연극 연출가로, 네모리노를 극장 잡부로 배정하고
시대는 금주법 시대인 미국의 1920년대로 설정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무대에는 또 다른 무대가 설치되어 있어서 무대 속 무대를 볼 수 있었습니다.
재밌는 아이디어라고 생각합니다.

 

이 아이디어는 1막에서 빛났습니다.
아디나가 오케스트라에 가까운 바닥의 탁자에서 트리스탄과 이졸데를 읽고 있을 때
정말로 계단 위 작은 무대에서는 합창단들이 트리스탄과 이졸데를 리허설 중인 상황이 연출되는 모습은
이날 공연의 하이라이트였습니다.

1막에서 군인 대신 음주를 단속하는 경찰로 벨코레가 등장하는 것까진 좋은데
2막에선 1막의 설정이 독으로 작용해서, 네모리노에게 입대를 권하는 대목이 되면 벨코레의 직업이
갑자기 경찰에서 군인으로 바껴버리는 모순이 남게 됩니다.

 

그런 것은 어느정도 애교로 넘어가더라도 이 연출가의 설정의 가장 큰 단점은 다른 곳에 있었습니다.
모든 사건들이 극장 안에서 일어나다 보니 실제 리허설 중이 아닌 불꺼진 무대는

볼거리가 전혀 없는 삭막한 곳이 되어 버려서
시골을 배경으로 한 일반적인 연출에서 볼 수 있는

노을이나, 풋풋한 풀과 흙 냄새를 전혀 맡을 수 없다는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이런 단조로움을 극복하기 위해 연출가는 발레리나를 6명이나 동원하였습니다.
극단이니까 전속 발레리나가 있을 것이고
그 발레리나들이 서곡이 연주될 때부터 무대 오른쪽에서 몸을 풀면서 관객들의 시선을 끌더니
약장수 둘카마라의 똘마니들과 놀기도 하고, 벨코레의 부하들과 이별의 춤을 추기도 했습니다.
등장인물이 많지 않은 오페레타에 대본에 없는 댄서들을 투입하여

볼거리를 제공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는데

같은 맥락이라고 할 수 있겠고, 저로선 대환영이었습니다.
쌍안경으로 가수들보다 발레리나들을 더 자주 보게되는 부작용이 있긴 했습니다 (흠흠).

네모리노를 부른 알레산드로 루치아노는 이날 공연을 보신 분들은 누구나 인정할 단점이 있었습니다.
성량이 너무 작았습니다.
가수는 무대 앞 쪽에 서있었지만 목소리는 무대 뒤에서 부르는 것 같은 희한한 상황이

1막 처음부터 2막 끝까지 계속 됐습니다.
혹시나 2막의 '남몰래 흘리는 눈물'을 위해 체력을 아끼는 중인가 기대했었으나 그마저도 아니었습니다.

 

여자 주인공 아디나를 부른 소프라노 이라나 이오나 바이안트는 많은 미덕이 있었습니다.
그녀는 프로필 상으로는 금발이지만 이날 공연에선 다른 한국인 가수들과 맞추기 위해선지 흑발로 분장해서
언듯 보이기에는 이목구비가 또렷한 한국인처럼 보일 정도로 잘 어울렸습니다.
그녀의 목소리는 음반에서 흔히 듣는 아디나에선 찾아볼 수 없는 카리스마 있는 소리였습니다.
순박한 시골 처녀가 아니라 여성 연출가가 어울릴 법한 그런 강렬함이 느껴지는 목소리였습니다.
그녀의 목소리는 언듯 칼라스를 연상시키기도 했고, 에바 메이 (Eva Mei)를 닮았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1막에선 그런 그녀의 목소리가 연출의 컨셉과 잘 맞아 떨어지면서 어울린다고 생각했는데
2막에서 갑자기 청순한 스타일로 노래부르는 방식이 바뀌면서부터는

극의 내용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긴 했습니다.

 

원작 오페라는 2막에서 네모리노가 거액의 상속을 받게 된 사실을 동네 처녀들은 다 알지만

아디나만은 모른 채로 단순히 질투심에 네모리노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대본에는 없지만 동네 처녀들에게 귓속말로 전해듣는 방식을 통해서라도

네모리노의 상속 소식을 아디나가 미리 알았다는 설정을 추가했더라면

1막에서 보여준 아디나 캐릭터와 더 일치하고 보다 현실성 있는 연출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해봤습니다.

그렇게 되면 결국 사랑의 묘약은 '돈'이 되는 것인가요?

 

지휘자는 감정의 기복이 크지 않은 담담한 해석을 들려줬습니다.

도니체티가 이 곡을 작곡하고 불과 3년 뒤에 람메르무어의 루치아를 작곡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흡사 로시니의 오페라 부파를 듣고 있는 듯하게 고전주의적인 느낌을 받았습니다.

 

한국 가수들이 부른 조연들은 모두 훌륭한 성량과 연기력을 보여줬습니다.
특히 둘카마라를 부른 유준상 씨는 언듯 배우 송강호 씨를 연상시키는 마스크로 몰입감이 좋았습니다.

 

주연 테너를 열외로 놓고 보면, 오케스트라부터 합창까지
모두 완성도 높았던 음악을 들려준 공연으로 요약할 수 있겠습니다.

 

오페라 공연이 끝나고 혹시 이 후기를 쓰는데 도움이 될까 싶어 팜플렛을 구매하러 갔더니
신용카드를 받지 않아 결국 사지 못했던 것은 씁슬합니다.
평소 공연장 가기 전에 현금을 챙기는데 팜플렛이 1만원이나 할 줄은 몰랐습니다.

끝으로 이날 공연장을 찾은 관객들의 2/3 정도는 여성관객들로 보였습니다.
말러, 브루크너가 인기를 끌고 있는 콘서트 공연과 달리
이런 TV 드라마 같은 내용을 다루는 이탈리아 오페라에는 (저를 포함한)
남자 관객들의 선호도가 낮은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런 상황은 여성 시청자들의 구미에 맞는 내용들로만 짠 지상파 TV 드라마가
결국에는 시청률이 떨어지게 된 것과 유사한 상황이라고 생각됩니다.
남성들도 좋아할 수 있는 오페라를 자주 올리는 길만이
국내 오페라 시장을 활성화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구체적으로는 후기 낭만파 교향곡에 열광하는 남성 청중들이 좋아하는 오페라 (즉 독일 오페라)가
더 자주 국내에 연주되어야만이 오페라 공연들에 보다 많은 남성들이 찾아올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작성 '19/05/20 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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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m***:

사실 정통 클래식공연도 잘 없는 지방에서 오페라는 더더욱 불모지입니다.
오늘 여수에서 창작오페라 "봄봄"을 공연하는데 저는 순천에 있는 이반돈체프 리사이틀 갈 예정입니다. 오페라가 어려워요.

19/05/23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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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

마침 어제 부산 오페라하우스에 대한 뉴스가 있더군요. https://news.v.daum.net/v/20190522160221782

19/05/23 23:08
덧글에 댓글 달기    
      km***:

공무원이 관여하는 공사의 경우 공무원이 어디서 쓸데없는 정보를 듣고 공사진행을 방해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제발 그런 경우는 아니길 바랄뿐입니다.

19/05/24 0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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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m***:

관련 소식을 보여주셔서 감사합니다.

19/05/24 0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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