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 오후 5시, 지하철 1호선 병점역 근처에 있는 유앤아이센터 화성아트홀에서는 KBS교향악단의 특별연주회가 있었습니다.
올해 들어 국내 오케스트라 공연에 재미를 들인 저로서는 KBS교향악단을 꼭 접하고 싶었습니다. 기왕이면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대신 다른 공연장에서 이루어지는 공연을 듣고 싶었기에 같은 프로그램으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전날 공연 대신 화성까지 지하철로 2시간이나 걸리는 먼 길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이날 공연에 '발칸반도의 낭만'이라는 부제가 달린 이유는 아마도 발칸반도 '옆'에 위치한 조지아 출신의 피아니스트 카티아 부니아티쉬빌리가 협연자로 차이콥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을 연주하기 때문으로 추측됩니다. 상임 지휘자 요엘 레비가 루마니아에서 태어났다는 것도 하나의 이유가 될 수 있을까요?
과문한 저로서는 KBS교향악단을 실연으로 듣는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지난 3월 21일 이진상 씨와 이병욱/경기필하모닉의 연주로 차이콥스키 피협 1번을 좋게 들었던 터라 부니아티쉬빌리에게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고 하면 거짓말이고, 비록 차피협 1번이긴 하나, 부니아티쉬빌리도 '볼' 겸, 무엇보다 레비와 KBS교향악단이 연주하는 버르토크의 오케스트라를 위한 협주곡에 더 큰 관심이 있었습니다.
화성아트홀은 수용인원이 682석으로 객석수가 적은 편이라 대편성 오케스트라를 수용하기에 규모가 작지 않을까 조금 걱정이 되긴 했습니다만 의외로 매우 훌륭한 음향을 들려주는 홀이었습니다.
홀의 규모는 부천시민회관 대강당이나 성남아트센터 콘서트홀과 비교하면 조금 작은 듯하다는 정도의 크기로 비교적 최근에 지어진 홀 (2009년 개관)이라 그런지 예술의전당이나 여타 지자체의 공연장과 비교하면 공조시스템에서 들리는 잡음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래서 매우 낮은 노이즈 레벨이 유지되는 기본이 된 홀이었습니다.
제가 앉은 자리는 1층 정중앙이지만 뒷 쪽 줄이었습니다. 홀이 작은 편이라 비교적 뒷 좌석임에도 오케스트라 소리를 만끽하는 데에는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무대 자체의 높이가 1m 정도 되고, 1층 객석의 경사가 꽤 있어서 제가 앉은 자리의 높이는 지휘자 머리보다는 위였고 팀파니스트의 위치와 높이가 비슷했습니다.
첫 곡 스트라빈스키의 환상적 스케르초 op. 3은 별로 익숙하지 않은 곡이지만 공연장 사운드와 오케스트라 특성을 파악하기에는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화성아트홀은 잔향이 짧은 편이었습니다. 그래서 매우 깔끔한 울림을 들려주었으며, 저음악기에 불필요한 부밍이 없었습니다. 대신 특별히 오케스트라 소리에 뭔가를 더해줘서 소리가 실제보다 더 멋지게 만들어주는 점은 거의 없는 정직한 홀이었습니다.
부니아티쉬빌리의 연주는 SONY에서 발매된 쇼팽 피아노 소나타 2번 녹음에서 받은 인상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한마디로 이 곡이 얼마나 어려운 곡인지 알게 해주는 그런 연주였습니다. 지난 3월 이진상 씨가 연주했던 차피협 1번이 얼마나 대단했었던가 새삼 깨닫게 됐습니다.
1악장 시작부터 고음을 연주하는 그녀의 오른손 넷째 손가락과 새끼 손가락은
음을 제대로 짚어주는 것이 아니라 흡사 먼지털이로 청소하듯이 그냥 홅고 지나가는 정도였습니다. 빠른 부분에서 고음은 온음표의 검은 테두리 속 흰 공간처럼 비어있었고, 그런 쭉정이 소리를 1악장과 3악장에서 듣고 있어야 했습니다.
저런 타건으로는 유명한 콩쿨에 입상하기는 힘들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지금 찾아보니 일본어 위키를 통해 그녀의 입상 경력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그래도 그녀의 연주는 재미는 있었습니다. 중간중간 템포를 흔들어주는 부분이 많았습니다. 1악장 초반에는 템포를 갑자기 빠르게 해서 오케스트라 반주가 따라가느라 애를 먹기도 했고 집중해서 연주할 때는 곱슬머리가 얼굴을 온통 가려서 오케스트라 연주 중엔
손으로 머리를 넘기기도 했습니다. 그 지루한 차피협 1번 1악장이 후딱 지나가더군요.
화성시민들분들은 클래식 공연을 접할 기회가 많지 않아선지 1악장이 끝나고 박수가 제대로 쏟아졌고, 카티아는 미소 지으며 자리에 앉은 채 가볍게 목례로 답했습니다.
KBS교향악단은 1악장에서는 피아노와 맞붙어서 종종 피아노 소리를 압도하는 큰 음량을 들려줬습니다만 3악장에서는 어떻게 손 써볼 여지가 별로 없어서 쌓았다가 터트리는 부분을 만들어내지 못했습니다.
어깨가 드러나고 발목까지 오는 회색의 드레스를 입고, 족히 10cm는 돼 보이는 검은 반짝이 하이힐을 신고 연주하는 여성미 넘치는 외모 때문인지, 아니면 이날 차이콥스키에 제가 처음부터 별로 기대하지는 않았기 때문인지 저로서는 원망하는 마음이 별로 생기지 않았습니다.
연주가 끝나자 부니아티쉬빌리는 인사와 함께 객석을 향해 손키쓰를 날렸습니다. 커튼콜이 반복될 때마다 손키쓰를 날리는 것을 잊지 않았습니다.
의외로 앵콜을 연주했는데 리스트 편곡의 슈베르트 백조의 노래 중 세레나데였습니다. 약음에서 깊은 낭만성을 느낄 수 있었고 곡이 끝나자 1층 오른쪽에 앉은 한 중년신사분은 기립박수를 보냈습니다.
1부가 끝나고 인터미션 중 바로 앞 열에 앉은 3-4명의 여성 관객들끼리 나누는 대화가 귀에 들렸습니다. "첫 음을 듣고 깜짝 놀랐다", "영창 피아노를 쳐도 저 소리보다 낫겠다" 2가지가 기억에 남네요. 이날 공연은 매진이었고, 빈 자리가 거의 없었는데 2부에서는 아까 그 여성 관객들을 포함해 빈 자리가 좀 생겼습니다.
2부 버르토크는 1부 첫 곡처럼 8명의 콘트라베이스 주자와 10명의 첼로 주자가 참여한 대편성이었습니다. (참고로 앞선 차피협 1번에서는 콘트라베이스 6명, 첼로 8명이었습니다) 현은 비올라가 첼로보다 더 안쪽에 앉아있는 배치였고, 무대 오른쪽 맨 뒤에 팀파니가, 뒷 쪽 가운데에 큰북이 위치했습니다. 금관은 왼쪽에 호른이, 가운데에서 살짝 오른쪽에 트럼펫이 그 오른쪽에 트롬본과 튜바가 앉았습니다. 2대의 하프는 바이올린 파트 뒷쪽에 있었습니다.
이날 요엘 레비가 지휘한 버르토크 오케스트라를 위한 협주곡에 저는 대단히 감동했습니다. 최근 연달아 오페라 공연들만 다니다 보니 잘 느끼지 못했던 전율을 3악장과 5악장에서 느꼈습니다.
이 곡은 오케스트라 단원들 특히 금관 주자들의 실력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곡입니다. KBS교향악단은 금관 파트는 이 곡의 유명 음반들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만치 뛰어났고, 오디오로는 들을 수 없는 월등히 높은 다이내믹을 들려줬습니다.
메타/베를린 필 (SONY)처럼 어려운 악구를 무심한 듯 (과시하듯 쉽게) 연주해버리는 쪽이 아니라 외야수가 뜬 공을 전력질주해서 다이빙 캐치하는 듯한 묘미가 있었습니다.
특히 5악장 현 5부가 열심히 연주하고 있을 때
그 위를 덮듯이 트럼펫의 행진곡 풍 주제가 나오는 대목에서는 속으로 '이런 장관이 있나'하고 감탄할 정도였습니다. 군더더기 전혀 없는 울림을 가진 화성아트홀에서 들었기에 가능한 결과였을 것입니다.
레비의 연출력은 실로 놀라와서, 5악장 마지막 코다의 그 맛을 제대로 살려줬습니다. 오늘 제가 가진 음반 7종을 들어봤는데 이날 공연에서 들었던 그 맛이 잘 나지 않았습니다.
프로불편러로서 굳이 두 가지만 아쉬운 부분을 적자면, 우선 바이올린 파트가 생각보다 가늘게 들렸다는 점입니다. 음식으로 치면 봉지라면보다 컵라면이 더 면발이 얇은 느낌 정도로 기대했던 것만큼 두터운 바이올린 소리를 들을 수는 없었습니다. 흔히 다른 국내 오케스트라들에서 듣던 소리보다는 확실히 더 깔끔했습니다. 아마도 화성아트홀이 너무 잔향이 적기 때문이 아닌가 추측됩니다.
또, 팀파니가 뒷 악장으로 갈수록 더 전면으로 나서긴 했는데 1악장에서 좀 더 팀파니가 용감하게 속살을 드러내줬다면 좋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버르토크 곡이 연주시간이 40분이 채 안되기 때문에 앵콜을 기대했었는데 반갑게도 베를리오즈의 파우스트의 겁벌 중 헝가리 행진곡을 연주해줬습니다. 흔히 앵콜 곡에서 별 재미를 느끼기 어려운 경우가 많은데 저는 이 베를리오즈에서 앞선 버르토크보다 더 큰 감동과 전율을 느꼈습니다.
뭔 길 오신 손님에게 섭섭하지 않게 푸짐하게 퍼주는 인심이 느껴지는 연주여서
흐믓한 미소와 함께 들었습니다.
요엘 레비는 같은 유대인 출신 지휘자 중 게오르그 솔티나 레너드 번스타인처럼 화려한 사운드를 만들어 내는데 대단한 솜씨가 있는 지휘자였습니다. 이날 버르토크와 베를리오즈로 저는 요엘 레비/KBS교향악단의 팬이 됐습니다.
KBS교향악단이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뿐만 아니라
수도권의 여러 콘서트홀을 골고루 찾고 있는 것은 정말 반가운 기획입니다. 다음 공연들도 참석하고 싶습니다.
지난 토요일 오후 5시, 지하철 1호선 병점역 근처에 있는 유앤아이센터 화성아트홀에서는
KBS교향악단의 특별연주회가 있었습니다.
올해 들어 국내 오케스트라 공연에 재미를 들인 저로서는
KBS교향악단을 꼭 접하고 싶었습니다.
기왕이면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대신
다른 공연장에서 이루어지는 공연을 듣고 싶었기에
같은 프로그램으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전날 공연 대신
화성까지 지하철로 2시간이나 걸리는 먼 길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이날 공연에 '발칸반도의 낭만'이라는 부제가 달린 이유는
아마도 발칸반도 '옆'에 위치한 조지아 출신의 피아니스트 카티아 부니아티쉬빌리가
협연자로 차이콥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을 연주하기 때문으로 추측됩니다.
상임 지휘자 요엘 레비가 루마니아에서 태어났다는 것도 하나의 이유가 될 수 있을까요?
과문한 저로서는 KBS교향악단을 실연으로 듣는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지난 3월 21일 이진상 씨와 이병욱/경기필하모닉의 연주로
차이콥스키 피협 1번을 좋게 들었던 터라
부니아티쉬빌리에게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고 하면 거짓말이고,
비록 차피협 1번이긴 하나, 부니아티쉬빌리도 '볼' 겸, 무엇보다
레비와 KBS교향악단이 연주하는 버르토크의 오케스트라를 위한 협주곡에 더 큰 관심이 있었습니다.
화성아트홀은 수용인원이 682석으로 객석수가 적은 편이라
대편성 오케스트라를 수용하기에 규모가 작지 않을까 조금 걱정이 되긴 했습니다만
의외로 매우 훌륭한 음향을 들려주는 홀이었습니다.
홀의 규모는 부천시민회관 대강당이나 성남아트센터 콘서트홀과 비교하면
조금 작은 듯하다는 정도의 크기로
비교적 최근에 지어진 홀 (2009년 개관)이라 그런지
예술의전당이나 여타 지자체의 공연장과 비교하면
공조시스템에서 들리는 잡음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래서 매우 낮은 노이즈 레벨이 유지되는 기본이 된 홀이었습니다.
제가 앉은 자리는 1층 정중앙이지만 뒷 쪽 줄이었습니다.
홀이 작은 편이라 비교적 뒷 좌석임에도 오케스트라 소리를 만끽하는 데에는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무대 자체의 높이가 1m 정도 되고, 1층 객석의 경사가 꽤 있어서
제가 앉은 자리의 높이는 지휘자 머리보다는 위였고 팀파니스트의 위치와 높이가 비슷했습니다.
첫 곡 스트라빈스키의 환상적 스케르초 op. 3은 별로 익숙하지 않은 곡이지만
공연장 사운드와 오케스트라 특성을 파악하기에는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화성아트홀은 잔향이 짧은 편이었습니다.
그래서 매우 깔끔한 울림을 들려주었으며, 저음악기에 불필요한 부밍이 없었습니다.
대신 특별히 오케스트라 소리에 뭔가를 더해줘서
소리가 실제보다 더 멋지게 만들어주는 점은 거의 없는 정직한 홀이었습니다.
부니아티쉬빌리의 연주는
SONY에서 발매된 쇼팽 피아노 소나타 2번 녹음에서 받은 인상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한마디로 이 곡이 얼마나 어려운 곡인지 알게 해주는 그런 연주였습니다.
지난 3월 이진상 씨가 연주했던 차피협 1번이 얼마나 대단했었던가 새삼 깨닫게 됐습니다.
1악장 시작부터 고음을 연주하는 그녀의 오른손 넷째 손가락과 새끼 손가락은
음을 제대로 짚어주는 것이 아니라
흡사 먼지털이로 청소하듯이 그냥 홅고 지나가는 정도였습니다.
빠른 부분에서 고음은 온음표의 검은 테두리 속 흰 공간처럼 비어있었고,
그런 쭉정이 소리를 1악장과 3악장에서 듣고 있어야 했습니다.
저런 타건으로는 유명한 콩쿨에 입상하기는 힘들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지금 찾아보니 일본어 위키를 통해 그녀의 입상 경력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그래도 그녀의 연주는 재미는 있었습니다.
중간중간 템포를 흔들어주는 부분이 많았습니다.
1악장 초반에는 템포를 갑자기 빠르게 해서 오케스트라 반주가 따라가느라 애를 먹기도 했고
집중해서 연주할 때는 곱슬머리가 얼굴을 온통 가려서 오케스트라 연주 중엔
손으로 머리를 넘기기도 했습니다.
그 지루한 차피협 1번 1악장이 후딱 지나가더군요.
화성시민들분들은 클래식 공연을 접할 기회가 많지 않아선지
1악장이 끝나고 박수가 제대로 쏟아졌고, 카티아는 미소 지으며 자리에 앉은 채 가볍게 목례로 답했습니다.
KBS교향악단은 1악장에서는 피아노와 맞붙어서 종종 피아노 소리를 압도하는 큰 음량을 들려줬습니다만
3악장에서는 어떻게 손 써볼 여지가 별로 없어서 쌓았다가 터트리는 부분을 만들어내지 못했습니다.
어깨가 드러나고 발목까지 오는 회색의 드레스를 입고,
족히 10cm는 돼 보이는 검은 반짝이 하이힐을 신고 연주하는 여성미 넘치는 외모 때문인지,
아니면 이날 차이콥스키에 제가 처음부터 별로 기대하지는 않았기 때문인지
저로서는 원망하는 마음이 별로 생기지 않았습니다.
연주가 끝나자 부니아티쉬빌리는 인사와 함께 객석을 향해 손키쓰를 날렸습니다.
커튼콜이 반복될 때마다 손키쓰를 날리는 것을 잊지 않았습니다.
의외로 앵콜을 연주했는데 리스트 편곡의 슈베르트 백조의 노래 중 세레나데였습니다.
약음에서 깊은 낭만성을 느낄 수 있었고 곡이 끝나자 1층 오른쪽에 앉은 한 중년신사분은 기립박수를 보냈습니다.
1부가 끝나고 인터미션 중 바로 앞 열에 앉은 3-4명의 여성 관객들끼리 나누는 대화가 귀에 들렸습니다.
"첫 음을 듣고 깜짝 놀랐다", "영창 피아노를 쳐도 저 소리보다 낫겠다" 2가지가 기억에 남네요.
이날 공연은 매진이었고, 빈 자리가 거의 없었는데 2부에서는 아까 그 여성 관객들을 포함해 빈 자리가 좀 생겼습니다.
2부 버르토크는 1부 첫 곡처럼 8명의 콘트라베이스 주자와 10명의 첼로 주자가 참여한 대편성이었습니다.
(참고로 앞선 차피협 1번에서는 콘트라베이스 6명, 첼로 8명이었습니다)
현은 비올라가 첼로보다 더 안쪽에 앉아있는 배치였고, 무대 오른쪽 맨 뒤에 팀파니가, 뒷 쪽 가운데에 큰북이 위치했습니다.
금관은 왼쪽에 호른이, 가운데에서 살짝 오른쪽에 트럼펫이 그 오른쪽에 트롬본과 튜바가 앉았습니다.
2대의 하프는 바이올린 파트 뒷쪽에 있었습니다.
이날 요엘 레비가 지휘한 버르토크 오케스트라를 위한 협주곡에 저는 대단히 감동했습니다.
최근 연달아 오페라 공연들만 다니다 보니 잘 느끼지 못했던 전율을 3악장과 5악장에서 느꼈습니다.
이 곡은 오케스트라 단원들 특히 금관 주자들의 실력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곡입니다.
KBS교향악단은 금관 파트는 이 곡의 유명 음반들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만치 뛰어났고,
오디오로는 들을 수 없는 월등히 높은 다이내믹을 들려줬습니다.
메타/베를린 필 (SONY)처럼 어려운 악구를 무심한 듯 (과시하듯 쉽게) 연주해버리는 쪽이 아니라
외야수가 뜬 공을 전력질주해서 다이빙 캐치하는 듯한 묘미가 있었습니다.
특히 5악장 현 5부가 열심히 연주하고 있을 때
그 위를 덮듯이 트럼펫의 행진곡 풍 주제가 나오는 대목에서는
속으로 '이런 장관이 있나'하고 감탄할 정도였습니다.
군더더기 전혀 없는 울림을 가진 화성아트홀에서 들었기에 가능한 결과였을 것입니다.
레비의 연출력은 실로 놀라와서, 5악장 마지막 코다의 그 맛을 제대로 살려줬습니다.
오늘 제가 가진 음반 7종을 들어봤는데 이날 공연에서 들었던 그 맛이 잘 나지 않았습니다.
프로불편러로서 굳이 두 가지만 아쉬운 부분을 적자면,
우선 바이올린 파트가 생각보다 가늘게 들렸다는 점입니다.
음식으로 치면 봉지라면보다 컵라면이 더 면발이 얇은 느낌 정도로
기대했던 것만큼 두터운 바이올린 소리를 들을 수는 없었습니다.
흔히 다른 국내 오케스트라들에서 듣던 소리보다는 확실히 더 깔끔했습니다.
아마도 화성아트홀이 너무 잔향이 적기 때문이 아닌가 추측됩니다.
또, 팀파니가 뒷 악장으로 갈수록 더 전면으로 나서긴 했는데
1악장에서 좀 더 팀파니가 용감하게 속살을 드러내줬다면 좋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버르토크 곡이 연주시간이 40분이 채 안되기 때문에 앵콜을 기대했었는데
반갑게도 베를리오즈의 파우스트의 겁벌 중 헝가리 행진곡을 연주해줬습니다.
흔히 앵콜 곡에서 별 재미를 느끼기 어려운 경우가 많은데
저는 이 베를리오즈에서 앞선 버르토크보다 더 큰 감동과 전율을 느꼈습니다.
뭔 길 오신 손님에게 섭섭하지 않게 푸짐하게 퍼주는 인심이 느껴지는 연주여서
흐믓한 미소와 함께 들었습니다.
요엘 레비는 같은 유대인 출신 지휘자 중 게오르그 솔티나 레너드 번스타인처럼
화려한 사운드를 만들어 내는데 대단한 솜씨가 있는 지휘자였습니다.
이날 버르토크와 베를리오즈로 저는 요엘 레비/KBS교향악단의 팬이 됐습니다.
KBS교향악단이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뿐만 아니라
수도권의 여러 콘서트홀을 골고루 찾고 있는 것은 정말 반가운 기획입니다.
다음 공연들도 참석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