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01 노블아트오페라단, 장윤성/뉴서울필하모닉의 푸치니 나비부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http://to.goclassic.co.kr/concert/3120

피상적으로 알던 오페라를 깊이 좋아하게 되는 것은 참 즐거운 일입니다.
지난 토요일 3회에 걸쳐 공연된 노블아트오페라단의 제10회 대한민국오페라페스티벌 참여작인
푸치니의 나비부인 중 이틀째 공연을 본 것은 제게 그런 수확이었습니다.

 

보통 오페라에 A팀과 B팀 두가지 캐스팅이 있을 경우 저는 첫날 공연팀을 선택하는데
이날은 하루만 공연하도록 되어 있는 B팀을 고르게 됐습니다.
그 이유는 단순히 토요일 공연에 좋은 자리 (4층 맨 앞)를 구할 수 있었기 때문으로
예약해놓고 보니 A팀 테너가 지난 5월 3일 세종문화회관에서 베르테르를 맡았던 신상근 씨고
당시 B팀이라 제가 듣지 못했던 테너 김동원 씨가 출연하는 공연이어서
마침 잘 됐더군요.

푸치니의 유명한 네 작품 중 유독 나비부인은
저로선 왜색을 견뎌내기 힘들어 오랫동안 애써 무시해오던 작품이었습니다.
게다가 제 평소 오페라 취향이 이탈리아 작곡가의 오페라를 별로 듣지 않아왔기 때문에
나비부인은 이중으로 멀어져있던 곡이었습니다.
전곡으로 DVD를 감상한 것도 오래되서 공연 전 다시 한번 볼려다 졸려서 고생했습니다.
물론 이날 공연으로 실연은 처음 들었습니다.

 

operabase.com에 의하면 나비부인은 2004년부터 2018년 사이 국내에 9회 공연되어
전체 오페라 공연 순위에서 15위로 조회됩니다.
반면 미국과 일본에서는 각각 930회, 49회로 모두 2위, 이탈리아에서는 557회로 6위,
전세계에서 오페라가 가장 많이 공연되는 (보통 국가들보다 10배 많더군요!)
독일에서 1146회로 16위입니다. 한편 전세계 통계는 7위입니다.
일단 통계로 봐도 국내에서 이 오페라가 홀대를 받고 있는 경향이 있는 것은
사실 같습니다.

 

하지만 이날 공연을 보고 전 생각이 많이 바꼈습니다.
나비부인이 특별히 일본이나 미국을 미화한 것이냐 하면
(일본 애호가들이 이 의견에 동의하듯 하지 않든 간에)
나비부인의 스토리에 기반한 뮤지컬 미스 사이공이
베트남에서 차지하는 위치를 생각하면
차라리 그 반대에 해당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나비부인이야 말로 한국에서 공연하기
가장 적합한 오페라 중의 하나가 아닌가,
오페라 공연을 수출할 수 있다면 수출해도 되겠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날 제가 앉은 자리는 객석 오른쪽으로 치우친 4층 맨 앞자리였습니다.
원형으로 된 2-4층 객석이 곡률이 크지 않았지만
그래도 생각보다는 무대에 훨씬 더 가까와지더군요.
무대를 정면으로 바라보지 않고 비켜나 있었던 것만 빼면
오케스트라 피트에 몇 미터 더 가까와졌습니다.
실제 음향을 들어보니 가운데 보다 이 쪽 자리가 더 음향적으로 좋다고 판단됐습니다.

 

이날 공연의 지휘는 군포 프라임필하모닉 상임이신 장윤성 씨가 맡았으며
오케스트라는 뉴서울필하모닉오케스트라였습니다.
예매해둔 지 꽤 됐고, 5천원짜리 팜플렛도 공연 끝나고 샀기 때문에
실제 공연 중에는 오케스트라 이름을 잊고 있었는데
첫 음을 딱 듣는 순간, '아 한국에 좋은 오케스트라가 왜 이렇게 많은 거야'하면서 놀랐었습니다.
그런데 쌍안경으로 호른 주자들을 보고는 눈에 익은 분이 계셔서
'뉴서울필하모닉 = 고양시교향악단'이라는 사실을 기억해냈고 수수께끼 하나가 풀린 느낌이었습니다.
고양시교향악단이 외부 활동시에는 여전히 뉴서울필하모닉이라는 이름을 쓰고 있는 것을 몰랐네요.

피트에 오케스트라 배치는 좀 특이했습니다.
현악기 배치는 4명의 비올라 주자가 맨 앞 줄 오른쪽에 (피트에 가려서 앉아있을 때는 안보임)
4명의 첼로 주자가 지휘자 앞 오른쪽에, 가운데에서 살짝 오른쪽 뒤에 2명의 콘트라베이스 주자가 있었으며
지휘자 왼편에 바이올린 주자들, 하프 및 모든 목관악기, 그 맨 뒤에 4명의 호른주자가 앉았습니다.
피트 오른쪽 남은 공간에 트럼펫, 트롬본 그리고 팀파니 및 타악기들이 앉았습니다.
보시다시피 생각보다 현악 주자들이 적은 편이고 실제로 피트에는 빈 공간이 보일 정도로

현악기 단원수가 많지 않았습니다.

 

2명의 콘트라베이스 주자, 4명의 첼로주자만으로도

그토록 풍성한 사운드가 나올 수 있다는 것이 놀라왔습니다.

뉴서울필하모닉의 기량 뛰어나기 때문이기도 하고,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이 그만큼 음향이 좋기 때문일 것입니다.

 

바이올린 파트의 소리도 참 좋았습니다.

앞서 고양시교향악단의 공연에서 들었던 그 끝이 잘 여며진 소리 그대로였습니다.

지휘자는 좌우로 포진한 호른과 트롬본의 저음을 풍부하게 이용하고, 무엇보다 팀파니를 중용하여,
상대적으로 가볍게 들릴 수 있는 현악기의 부피감을 보완했으며
그 결과 매우 해상도 높은 음향이 들려왔습니다.

 

지휘자는 (흔히 이탈리아 오페라의 오케스트라 반주에서 발견되는)
오케스트라의 화려함에 일찌감치 질려버리게 하는 함정을 잘 피해주었습니다.
2막과 3막의 클라이막스에서 참았던 에너지를 터트려주는 치밀함을 발휘해주었습니다.

 

이날 제가 가장 인상적으로 들은 최고의 하이라이트는
3막의 피날레에서 울려퍼지는 팀파니였습니다.
나비부인의 음반들 중 제가 아는 가장 '빵빵한' 녹음인 시노폴리/필하모니아 (DG) 음반을
넘어서는 선명하고도 박력 넘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시노폴리 음반은 팀파니 타격이 뒷부분으로 갈수록 강조되지만
이날 공연에서는 첫 타격이 가장 강조되도록 했고 뒤로 갈수록 그 존재감을 거의 그대로 유지해주었습니다.
아마 앞으로 음반으로는 그런 공포스런 느낌을 다시 받기는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가수들은 균형이 잘 갖춰져 있었습니다.
주연부터 조연들까지 누구하나 모자라거나 튀는 배역이 없이
미스캐스팅이 전혀 없다는 점이 놀라왔습니다.

 

흔히 서양 오페라를 한국인이 연기하면 외모를 포함, 그 목소리까지 어딘가 어색하다는 느낌을 받으며
한국적인 요소가 두드러질수록 몰입에 방해를 받는 경우가 많지만
등장인물 중 3명을 제외하면 모두 일본인으로 설정된 이 오페라만큼은
한국인이 가장 소화해내기 좋은 오페라였다는 뻔한 사실을 이날 공연에서 깨달았습니다.
(물론 이 부류에 푸치니의 투란도트나 레하르의 슬픈 미소의 나라도 포함됩니다)

 

이날 주연을 맡은 소프라노 이다미 씨는 정말로 10대의 일본 미인처럼 보였습니다.
목소리 자체도 뭔가 외국의 소프라노들에게선 들을 수 없을 것만 같은
동양적인 갸냘픔을 담고 있었습니다.
이런 부분은 일반적인 서구의 배역이었다면
단점으로 작용할지도 모를 부분이지만 초초 상에선 도리어
흔히 음반이나 영상물로 느낄 수 없던 몰입감을 선사해주었습니다.

 

그녀의 연기도 뛰어났습니다. 특히 3막에서 케이트 핑커톤을 발견하고 혼자 미친 듯이 읆조리는 부분에선
정말로 미쳐가는 사람처럼 뒤틀린 발성을 보여줘서 공감이 됐습니다.

 

테너 김동원 씨도 배역에 매우 잘 어울렸습니다.
커튼 콜에서 나오자마자 인사 대신 무릎을 꿇고 관객들에게 비는 모습을 보일 정도로
'악역' 핑커톤을 너무 잘 소화해주었습니다.
그의 목소리에 기름진 화려함이 살짝 부족한 것이 이 배역에 감정이입할 여지를
만들어주지 않아 오히려 좋았습니다.

 

샤플리스 역의 바리톤 최병혁 씨와 스즈키 역의 메조소프라노 최승현 씨 모두
깊은 음색의 목소리를 들려줘서 두 남녀 주인공과 좋은 대조를 이뤘습니다.

이 오페라에 매우 중요한 합창도 참 좋았습니다.
멀리서 여리게 들리는 이런 합창보다 실연에서 듣는 것과 음반에서 듣는 것의
격차가 큰 것은 없을 것입니다.

 

이날 연출은 간략하게 표현된 기하학적인 무대 장치로 우리가 보아 거부감이 들 정도의
왜색은 자제하면서도 일본 의상과 분장은 충분히 일본적으로 만들어서
한국적으로 소화해낸 일본의 분위기를 잘 만들어주었습니다.

 

사대주의적으로 미국군인에게 넙죽넙죽 절하는 일본인들을
실제 일본인들이 연기하는 것과 우리 한국인이 하는 것과는 의미가 다르게 느껴질 것인데
그런 일종의 '객관화'도 잘 느껴졌습니다.

 

나비부인의 연출에서 가장 다양한 선택지가 가능한 부분인 마지막 자살 장면에서는
초초 상이 검은 색 칼로 자신의 복부를 찌르는 것을 수차례 주저주저하다가
멀리서 버터플라이라고 자신을 부르는 소리와 함께 쓰러지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관객들은 근래 보기 드물게 환호했으며 저에게도
올해 본 국내 오페라 공연들 중 가장 완성도 높은 공연이었습니다.
무엇보다 푸치니의 이 오페라를 정말 좋아하게 됐습니다.

작성 '19/06/03 2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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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l***:

전 6월 2일 공연을 보았는데, 6월 2일 공연의 성악가들의 역량도 뛰어났다고 생각합니다, 오케스트라 연주는 말할 것도 없고요!^^

19/06/04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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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

2일 공연 보신 분을 게시판서 만나 반갑습니다. 덧글 감사합니다.

19/06/04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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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

저는 5월 31일 공연을 봤습니다만, 그날 공연도 성악가들이 뛰어나더군요. 초반에만 소프라노 한지혜씨가 약간 목소리가 덜 풀렸나 싶은 느낌이 들긴 했는데 3막에서는 정말 전까지 아껴둔 에너지를 터뜨리는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사실 한국 오페라가 이렇게 수준이 높은지는 처음 알았습니다ㅎㅎ

19/06/04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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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

'한국 오페라가 이렇게 수준이 높은지 ' <- 저도 같은 생각을 했습니다.

19/06/06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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