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08 국립오페라단, 차그로제크/코리안심포니의 바그너 갈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http://to.goclassic.co.kr/concert/3121

지난 주말,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국립오페라단에 의해 2회 열린
제10회 대한민국 오페라 페스티벌의 폐막 공연 중 첫날 토요일 공연을 봤습니다.

 

이날 1부에서는 바그너의 발퀴레 1막을, 2부에서는 파르지팔 3막을
연출 없이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에 의해 콘서트 형식으로 공연했습니다.

 

이번 오페라 페스티벌 중 가장 관심이 갔던 공연이라 일찌감치 예매해두었었습니다.
앞서 4층에서 봤던 두 번의 오페라극장 공연과 달리 좌석도 3층에 예약했습니다.

 

저로서는 발퀴레는 올해 1월 악셀 코버 (Axel Kober)의 지휘로
빈 국립 오페라 극장의 공연을 봤던 적이 있지만 파르지팔은 실연 감상이 처음입니다.

 

국내 오페라 극장에서 바그너는 여러 여건상 공연되기 힘든데
파르지팔은 이날 지휘자인 차그로제크의 지휘로 국립오페라단에 의해 2013년에 국내초연된 바 있지만
(본 게시판에 다른 회원님들의 후기도 있습니다)
발퀴레는 2015년 서울시향이 역시 이날처럼 콘서트 버전으로 전곡을 연주한 적은 있지만
정식 무대 공연으론 아직 초연된 바가 없다고 합니다.

지휘자 로타 차그로제크 (차크로섹이나 차그로섹이 아닙니다)는 2002-2003년에 걸쳐 공연된

독일 슈투트가르트 오페라단의 "링" 전곡 DVD-V로 국내에 잘 알려진 지휘자입니다.
제가 지난 2005년 고클 웹진 DVD 리뷰에서 그 프로덕션의

"라인의 황금"을 입이 닳도록 칭찬했던 적이 있습니다.

 

사실 슈투트가르트 오페라단의 링을 제가 좋아했던 주된 이유는 연출 때문으로
지휘자 차그로제크의 역량이 차지하는 비중은 그리 높게 생각하고 있지는 않았지만
차그로제크가 지휘하는 바그너 공연을 국내에서 볼 수 있다는데 지갑을 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또한 이날 공연에는 비록 콘서트 버전이긴 하지만 최근 발매된 블루레이 영상물에서 접할 수 있는
현역 최고의 바그너 가수들이 캐스팅됐기 때문에 더욱 기대가 됐습니다.

 

베이스 연광철 씨는 말할 것도 없고, 2004년 켄트 나가노 지휘 DVD에서 파르지팔을,
2011년 크리스티안 틸레만 지휘의 발퀴레에서 지크문트를 불렀던
크리스토퍼 벤트리스가 바로 그 지크문트와 파르지팔을 노래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또한 1부에서 지클린데를 부를 에밀리 매기도 바렌보임 지휘의 1999년 모차르트의 피가로의 결혼
DVD에서 백작부인을 맡았던 것으로 낯익은 가수였습니다.

한편 이번 페스티벌이 개막한 직후인 지난 5월
국립오페라단장이 채용비리 의혹으로 해임됐다는 기사를 접하기도 했었습니다.
https://news.v.daum.net/v/20190527033623956

 

이날 공연이 연출 없이 콘서트 버전으로 이루어진데에는
"바그너 공연을 위해 얼마나 많은 오케스트라 단원이 필요한지
관객들이 볼 필요가 있다는 판단에 연출을 과감하게 포기했어요.
오케스트라를 무대 위로 올립니다.
바그너의 예술세계를 인지할 수 있는 기회"라고 전 국립오페라단장이
인터뷰한 기사를 봤었습니다.
http://www.newshankuk.com/news/content.asp?news_idx=201904251743560104

 

해당 기사에는 "오페라 주관객에게도 어렵게 느껴지는 바그너는
대중과 함께 하는 것을 표방하는 대한민국오페라페스티벌 레퍼토리로 어울리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다."라고
해놨는데 그런 의견에 저는 전혀 동의할 수 없습니다.

 

지금 국내 오페라 산업이 이렇게 침체된 것은
막장 소재만 다루는 지상파 TV 드라마를 사람들이 외면하고
보다 다양한 소재를 다루는 미국 드라마에 더 관심을 갖는 상황과 유사합니다.

 

(이미 비슷한 내용을 게시판에 쓴 적이 있지만)

즉 말러, 브람스, 베토벤 등 오스트리아-독일 작곡가를 선호하는 콘서트 고어들이
이탈리아 오페라 위주로만 짜여진 오페라하우스를 외면하고 있는 것이 문제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독일 오페라를 포기해서는 오페라 산업이 제대로 설 수 없는 것은 너무나 당연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날 공연은 비록 전곡이 아닌 1막씩만 공연한 갈라 콘서트였지만 보배로운 기획이었습니다.

 

현재의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의 피트는 바그너의 오페라를 올리기에는 좁은 것이 사실입니다.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과 비슷한 규모인 빈의 테아터 안 데어 빈에서도 바그너는 공연되지 못하고
훨씬 규모가 큰 빈 국립 오페라 극장에서 바그너가 공연되고 있습니다.
문제는 그런 규모를 갖춘 오페라 전용극장이 국내에 없다는 점입니다.

 

어차피 연출이 없는데 이날 공연이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리지 않고
오페라극장에서 이루어진 것을 의아해하실 분이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콘서트홀보다 오페라극장의 음향이 훠얼씬 좋다고 생각하는 저로서는 역시 쌍수를 들고 환영할 기획이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두껑을 열고 보니 제가 생각하지 못했던 복병이 있었습니다.
바로 아래 사진 (인터미션 중에 찍음)처럼 무대 뒤로 반원 모양의 기둥만 있지 오케스트라 옆과 뒤로 반사벽이 없는 상태라는 점입니다.
애초 오페라극장이 무대 위에 오케스트라가 올라와서 연주하는 것을 염두해두고 설계되지 않았기 때문에
오페라극장에 맞는 반사벽이 아예 준비되어 있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지자체마다 있는 다목적 공연장에 오케스트라가 공연할 때에는 반드시 무대 뒤를 막아서
음향이 객석 쪽으로 반사되도록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굳이 오케스트라가 객석 쪽으로 바짝 당겨 앉지 않고
반사된 음향을 적절히 이용하기 위해 뒤로 멀치감치 물러나서 공연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날 공연은 무대 좌우와 뒤에 반사벽이 없음에도 앞뒤로 길게 오케스트라가 배치되어 있었습니다.

 

결국 오케스트라 피트에서 연주될 때보다 단순히 비교해도 객석과의 거리가 5-10m 정도 떨어지게 되고
좌우나 뒤로 가는 음향을 객석으로 반사시킬 벽이 없다는 불리함이 생겼습니다.

 

비록 2m도 되지 않지만 피트의 뒷 벽은 오케스트라의 저음을 증폭해주는 역할을 해줍니다.
실제 바로 1주일 전에 들은 나비부인 공연에서 2대의 콘트라베이스만으로도

충분히 풍성한 저음이 만들어졌었습니다.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은 IBK챔버홀과 함께 제가 아는 한 서울에서

가장 좋은 어쿠스틱을 갖춘 공연장 중의 하나입니다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피트에서 오케스트라가 반주를 하고 가수들은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는
일반적인 오페라 공연을 가정했을 때 얘기고

이날과 같은 콘서트 공연에선 저음 현악기가 빈약하게 들렸습니다.

 

이 문제는 1부 발퀴레에선 그리 심각하게 두드러지지 않았습니다.
바이올린 파트가 반사음이 부족한 상태로 직접음만 들리다 보니 가늘게 들리는 단점이 있긴 했지만
8명으로 구성된 첼리스트들의 맹활약과
독일식 로터리 트럼펫을 쓰는 트럼페터들의 열정적인 연주로 아주 감동적인 무대를 만들어주었습니다.

 

참고로 이날 공연에는 바이올린 악장과 트럼펫 수석이 외국인 객원이었습니다.

호른은 수석 포함 2명이 외국인 객원이었습니다.

4대의 바그너튜바는 아주 새 것처럼 빛이 났으며 모두 한국인 객원이었습니다.

 

비록 목관악기 연주자들이 너무 긴장했는지 악구를 시작하는 부분에서

소리가 제대로 안나는 대목이 몇 군데 있었고
지휘자가 한 악구가 끝나고 다음 악구가 겹치면서 연주될 때 그 가르마를 확실히 타주지 않아서
몇 군데 어색하게 들리는 대목도 있었서 제 머리 속은 곡에 집중하지 못하고 주의력이 분산되는 듯했지만
제 의지와 상관없이 제 몸은 1막 클라이막스에서 반응해서 전율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지난 빈 오페라 공연에서는 1막에서 사랑하지 않는 사람과 억지로 결혼생활을 하고 있는
지클린데에 대한 연민과 마침내 진짜 사랑을 찾게된 기쁨에 공감하여 저는 울컥하고 눈물이 났었는데
이날 공연에서 받은 감동은 극의 내용보다는 

교향곡 공연을 들을 때와 같은 음향 자체에 의한 감동이었습니다.

 

1부의 3명의 가수들은 모두 배역에 딱 들어맞는 최적의 목소리를 들려줬습니다.
벤트리스와 매기의 목소리를 듣고 있자니 결국 국내에서 바그너가 공연되기 어려운 것은
공연장 탓도, 오케스트라나 무대, 연출 탓도 아닌 가수가 없기 때문이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들의 목소리는 한국인이면 낼 수 없을 것 같은 게르만계 특유의 음색이긴 하지만
비록 정통적인 목소리가 아니라 하더라도, 적당히 타협해서 한국인 가수들을 써서 못할 것도 없지 않는지...
왜 발퀴레가 아직 국내 초연되지 못하고 있는지 이해가 되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2부의 파르지팔 3막은 좀 혼란스러웠습니다.

 

파르지팔은 바이로이트 페스티벌 하우스의 풍부한 잔향을 염두해두고 작곡된 곡입니다.
음반으로 들어봐도 현악기의 풍성한 반사음이 매우 중요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발퀴레 1막에서 가장 중요한 악기가 첼로였다면
파르지팔 3막에서 가장 중요한 악기는 콘트라베이스라고 생각합니다.
실제 유명한 음반들에는 콘트라베이스 음향이 매우 잘 살아있습니다.

 

이날 6명으로 구성된 콘트라베이스 파트는 반사벽의 도움을 받지 못해서 매우 빈약하게 들렸는데
그 단점이 2부 파르지팔 3막에서 너무 두드러졌습니다.

 

저는 3층 4열 (C석)에서 들었던 1부에서와 달리 2부는 두 칸 더 내려와서

비어있는 3층의 2열 (B석)에서 들었음에도
무대에 가까와져 에어콘 바람만 더 강해질 뿐 음향 차이는 크지 않았습니다.

3막 초반에 쿤드리가 짧지만 대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날 갈라에는 아예 쿤드리 부분은 불려지지 않았는데
콘트라베이스의 빈약함이 거기에 곁들여지면서

연광철 씨가 부른 구르네만츠의 독백은 매우 지루하게 들렸습니다.
판소리에서 고수가 장단을 제때 쳐주지 못하고 있는 경우처럼 도대체 맛이 살지 않았습니다.

 

집에 와서 오랜만에 음반과 DVD로 3막을 다시 들어보니 그렇게 재밌을 수가 없더군요.
덕분에 주초에 파르지팔만 4종을 비교감상하느라 후기가 늦어졌습니다.

 

파르지팔이 나타나고 이어서 합창단과 양준모 씨가 부른 암포르타스가 등장하면서 지루함은 가셨습니다.
한편 이날 교회 벨소리 대신 사용된 사각형의 금속판은 너무 고음이 강조되어서 생경하게 들렸습니다.

 

파르지팔 공연에 대해 더 쓴다면 아쉬운 부분만 계속 쓸 것 같아서 이 정도로 줄여야 될 것 같습니다.
아직 걸음마 단계의 바그너 공연에 쓴소리는 아끼고 싶습니다.

 

비록 아쉬운 부분이 있긴 했지만 이런 바그너 공연은 가뭄에 단비같은 고마운 공연이었습니다.

작성 '19/06/13 0:55
th***수정 삭제 트랙백 보내기
링크 글 (Trackback) 받는 주소: 로그인 필요
kl***:

저도 관심이 있었지만 가지 못했는데 재밌는 후기 남겨주셔서 감사드립니다!^^

19/06/13 09:19
덧글에 댓글 달기    
0/1200byte
한 줄 덧글 달기
 
 0
 


내가 본 공연은 내가 평한다, 공연 후기는 이곳에
번호 글쓴이 제목 날짜 조회추천
2415th*** '19/07/244912
2414th*** '19/07/156657
2413er*** '19/07/074801
2412th*** '19/06/258672
2411km*** '19/06/174961
2410th*** '19/06/13685 
2409th*** '19/06/036873
2408th*** '19/06/02497 
2407km*** '19/05/293611
2406th*** '19/05/2710061
2405km*** '19/05/263012
2404km*** '19/05/243705
2403th*** '19/05/20570 
2402th*** '19/05/057153
2401th*** '19/04/286623
2400th*** '19/04/2210333
2399km*** '19/04/225212
2398th*** '19/04/196761
2397th*** '19/04/157371
2396th*** '19/04/079442
2395th*** '19/04/017105
2394km*** '19/03/309844
2393th*** '19/03/247461
2392th*** '19/03/227072
2391th*** '19/03/136021
새 글 쓰기

1  2  3  4  5  6  7  8  9  10  다음  마지막  
총 게시물: 2800 (1/112)  뒤로  앞으로  목록보기
Copyright © 1999-2019 고클래식 All rights reserved.
For more information, please contact us by E-mai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