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21 제임스 저드/대전시립교향악단의 말러 교향곡 7번 (대전예술의전당 아트홀)
http://to.goclassic.co.kr/concert/3123

지난 금요일 6월 21일 대전예술의전당 아트홀에서는
제임스 저드가 지휘하는 대전시립교향악단의 말러 교향곡 7번 공연이 있었습니다.

 

말러 교향곡 7번은 가장 좋아하는 말러의 교향곡이라
가고는 싶었지만 수도권 공연이 아니라 포기하고 있었는데
대전을 거쳐 처가인 광주로 가는 걸로 계획을 짰더니
와이프의 결재가 났습니다.
 
저로선 대전은 1994년 경에 'CD 사러' 갔던 적은 있었지만
그후로 한번도 머문 적이 없어서 25년만의 방문이었습니다.

 

동서울터미널에서 오후 4시 40분 버스를 탔는데
금요일이라 고속도로가 막히면서 결국 공연장에 5분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15분간 로비에서 1악장이 끝나기를 기다리는 '대참사'가 벌어졌습니다.
돈과 시간 써가며 이렇게 마음 졸이기는 또 오래간만이네요.

 

그보다 앞선 지난 6월 14일 인천시향의 슈만 교향곡 4번은
공연장의 음향도 별로고 연주도 별로여서 후기를 쓰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가 이병욱 지휘자가 진정 원했던 것인가
아니면 2명의 트럼페터가 지휘자를 엿먹인 것인가 저로선 판단이 서질 않았습니다.

 

그런데 금주에는 정반대의 이유로 후기를 쓰고 싶지 않았습니다.
가장 중요한 1악장을 듣지 못했기 때문이죠.

 

차라리 나머지 악장들이 나빴다면 또 몰라도
5악장 끝나고 10여명의 관객들이 기립박수를 할 정도로
성공적인 공연이었기 때문에
저로서는 1악장 못 들은 것이 작은 트라우마가 되어
후기를 쓰기가 꺼려졌습니다.

 

공연은 7시 30분에 시작했는데 끝나고 나서 스마트폰을 켜니 8시 55분이더군요.
이렇게 빨리 끝날걸 8시에 시작하거나,
저같은 사람을 위해서 서곡이라도 한 곡 하고 시작하면 좀 좋아...하는
서러움이 일었습니다 ㅠㅠ

 

공연 끝나고 재활병원에 계신 장모님을 다음 날 병문안하기 위해
광주로 향했는데 야간우등까지 매진이라 결국 서대전역에서
0시 4분 출발하는 무궁화를 타고 광주로 갔습니다.
이날 일진이 저로선 단단히 꼬인 날이었습니다.

 

플랫폼에서 하이팅크/콘서트헤보우의 1985년 실황 중 1악장을 다운로드 받아
이어폰으로 들으며 아쉬움을 달래봤는데 1악장 마지막
작은북이 등장하면서 완전한 군악풍이 되는 부분을 듣고 있자니
교향곡 7번을 다시 꼭 실연으로 듣겠노라는 갈증만 더 심해졌습니다.

 

이날 제가 예매해둔 자리는 1층의 좋은 자리였으나
1악장이 끝나기가 무섭게 제일 먼저 좌측 입구로 들어와서 허겁지겁
앉은 자리는 좌측으로 치우친 중앙의 자리였습니다. (E열 앞에서 오른쪽)

2악장을 들으며 파악한 대전예술의전당 아트홀은 매우 좋은 음향을 갖고 있는 홀이었습니다.
지자체에 흔한 부채꼴 모양의 홀이지만 소리가 들뜨지 않고 착 가라앉은 느낌이 들었고,
악기들의 음색이 진하게 느껴졌습니다.
직사각형 (직육면체) 모양의 홀에서 느낄 수 있는 풍성함이나 따스함은 없었지만
소리에 포커스가 잘 잡혀있어서 해상도가 높게 들렸습니다.

 

이런 홀에 익숙한 대전시향의 연주를
교향악축제 때 예술의전당에서 공연한 것으로 판단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이날 비올라 파트가 첼로보다 더 무대 앞쪽에 앉아있었는데
첼로 주자들이 지휘자를 바라보고 앉은 쪽 맞은 편이 제 자리다 보니
왼쪽에 치우친 자리지만 첼로 파트가 매우 선명하게 들렸습니다.

 

2-3악장에서 가장 인상적인 악기는 팀파니였습니다.
사실 제가 생각하는 이 곡에서 가장 중요한 악기는 팀파니이기도 하지만
대전시향의 이날 팀파니 소리는 근래 들은 팀파니 소리들 중 가장 황홀한 아름다움을 갖고 있었습니다.
팀파니스트는 대전예술의전당 아트홀의 특성을 완전히 파악하고 있다는 듯
명료한 음색을 만드는데 조금의 부족함도 없었습니다.

 

팀파니스트는 주로 나무로 된 끝이 딱딱한 말렛을 써서
음반으로 접할 수 있는 이 곡의 녹음들 중 베를린 필보다는 빈 필이나 뉴욕 필의 연주를 연상시켰습니다.
저로서는 1악장을 듣지 못한 것이 더욱 아쉬워지는 이유였습니다.

 

제임스 저드가 선택한 악기 배치도 참 마음에 들었습니다.
물론 팀파니는 무대 맨 뒤의 가운데에서 살짝 오른쪽에 높게 위치해 있었으며
객석에서 보아 가장 왼쪽에 호른, 팀파니보다 왼쪽에 트럼펫이,

팀파니 오른쪽에 트롬본 및 튜바가 앉아있었습니다.
그래서 클라이막스에서 내지르는 트럼펫의 소리는 가운데에서 살짝 왼쪽으로 치우치게 들렸는데
이런 배치는 딱 취향저격으로 흔히 이 곡의 음반에서는 접할 수 없는 배치라 좋았습니다.

 

4악장에만 등장하는 기타와 만돌린 주자가 어디에 앉아있는지 찾지 못하고 있다가
4악장이 시작되고 알게 됐는데 왼쪽 바이올린과 하프 주자 사이에 나란히 앉아있었습니다.
이날 기타와 만돌린 및 1악장에서만 쓰이는 테너 호른은 모두 객원주자였습니다.

 

테너 호른은 1악장만 연주되기 때문에 2-5악장 동안 우두커니 앉아 있어야만 하는데
지휘자가 공연이 끝나고 맨 먼저 일으켜 세우신 분이

바로 이날 객원으로 테너 호른 파트를 연주한 중국인이었습니다.
이때 언듯 들고 있는 악기를 보니 테너 호른 같지 않고 바리톤 호른 같아서 고개를 갸우뚱 했는데
공연이 끝나고 팜플렛을 보니 테너 호른 대신 유포니움이 사용된 것이 확인됩니다.
물론 전 듣지 못했습니다.

제이스 저드는 제가 생각하고 있는 이상적인 템포보다 조금 빠르게 곡을 몰고 갔습니다.
악구간 프레이징이 짧아서 이 곡이 가진 적막한 외로움을 별로 느낄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불만을 갖기에는 5악장이 너무나 성공적이었습니다.
그의 살짝 빠른 템포 설정은 5악장에서 김이 빠지는 부분이 전혀 없이 끝까지 열기를 잘 가두는데 도움이 됐고
조금의 미진함이 없는 폭발적인 코다를 만들어주었습니다.

 

대전시향 트럼페터들의 실력도 뛰어났습니다.
감동적인 클라이막스를 위해 혼신을 다한다는 느낌이 관객들에게 잘 전달됐습니다.
그런 진심이 객석에 통했기에 많은 분들이 서슴치 않고 기립박수를 보내셨을 것입니다.
저도 5악장 클라이막스에서 전율을 느낄 수 있었고, 브라보를 외치며 환호했습니다.

 

이날 공연에 아쉬운 부분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느린 부분에서 호른 파트의 잔 실수가 있었긴 했지만 굳이 삑사리라고 할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또 카우벨 등 금속성 타악기들의 울림은 분위기를 깰 정도로 소리가 너무 크고 추하게 들렸습니다.

 

그보다 제가 아쉽게 생각됐던 부분은 5악장 시작을 여는 팀파니 독주였습니다.
악보에 '용감하게'라고 되어 있는데 팀파니스트는 너무 가벼운 말렛을 선택해서
너무 안전한 선택을 해버린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영상물로는 리카르도 샤이/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 공연이 그런 선택을 하더군요.
번스타인/빈 필이나 하이팅크/베를린 필처럼 '위험을 무릅쓰고' 좀 더 무게감 있는 말렛을 선택했다면
더 장대한 느낌이 나지 않았을까 생각했습니다.

 

대전시향은 2012년 빈 필의 본거지 뮤직페라인 홀에서 공연을 가진 것으로 팜플렛에 홍보하고 있습니다.
일개 감상자인 저도 올초에 뮤직페라인 홀에서 3차례 공연을 듣고 온 것이
음악애호가로서 하나의 분기점이 됐는데
시립오케스트라 단원들이 그 홀에서 공연을 해봤다면 훨씬 더 많은 것을 느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이날 공연에서 느낄 수 있었던 인상도 대전시향 단원들이 흡사 뮤직페라인에서 공연하듯
개별 악기 음색의 아름다움을 신경쓰면서 연주하고 또 그 표현에 성공하고 있다는 것이어서 좋았습니다.

 

이런 훌륭한 공연이 대전에서 단 하루만 공연되기에는 아깝다고 생각합니다.
정말이지 말러 교향곡 7번은 국내에서 아무리 자주 공연되어도 지나치지 않을 곡입니다.
조만간 수도권에서 앵콜 공연되기를 기대합니다.

작성 '19/06/25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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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

전 한번쯤 공연의 반정도 날려먹은 적도 있었는데 그나마 1악장 소실 정도면 ...ㅠㅠ

7번 5악장 실연으로 제대로 들으면 얼마나 아름다울지..

19/06/30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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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t***:

대전시향의 말러7번은 참 훌륭했습니다. 작년엔 말러 9번을 했는데... 그것도 좋았지만 저는 이번 7번이 더 좋더라구요
제임스 저드선생님의 오픈 리허설(화수목금)로 저는 연습과정과 리허설에 대해서 1주일을 참관했는데 연습과정도 좋았고, 연습실과 연주홀의 음향의 차이를 극복하는 과정도 좋았습니다.
특히 저드선생님과 말러7번에 대해서 참관자들과 제법 깊이 있게 질의응답을 하면서 말러의 세계를 지휘자의 입장에서 경험하게 되었어요, 연습과정 전체를 참관한 이후 3주째 7번만 매일 듣고 지내고 있습니다. 들으면 들을수록 곡으 구석구석에 음악적 영양분이 너무 많아 그 기쁨이 끊이질 않네요^^
본문 내용중에 5악장 도입의 팀파니 소리에 대해서 아쉽다고 하셨는데, 제 기억으로는 팀파니 주자는 리허설때 용감하고 강력하게 했었는데 5악장의 분위기를 고려해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저드선생께서 무거운 포르테보다는 밝은 포르테를 요구하셨던거 같아요
중독성 있는 리듬과 압도적인 5악장으로 인해 7번이 참 사랑스럽습니다.

19/07/08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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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

오, 부럽습니다. 후기를 남긴 보람이 있네요. 덧글 감사합니다.

말씀대로 두고 두고 기억에 남는 공연이었습니다.
5악장 팀파니를 그렇게 지시한 것은 물론 지휘자의 뜻이었겠죠.

어떻게 하면 그렇게 리허설에 참여할 수 있는지 노하우도 알려주시면 좋겠습니다.
대전시향만 특별히 그런 행사를 갖나요?

19/07/08 2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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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ot***:

대전시향에서 1년에 한번 정도 행사로 하는거 같아요
신진지휘자와의 만남이라는 타이틀로 이력서와 참가신청서를 받고 참가여부를 알려줘요^^

19/07/09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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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m***:

공연후기를 보고 말러 7번을 다시 들었는데 저에게는 여전히 말러 7번이 어렵더라구요.

19/07/10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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