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1 이지윤, 마시모 자네티/경기필하모닉의 브람스 바이올린 협주곡, 베토벤 교향곡 3번 (안성)
http://to.goclassic.co.kr/concert/3134

저는 지난 9월 5일과 7일 공연 이후에
그 사이 세 번의 공연에 참석했습니다.

 

부천필의 9월 25일 예술의전당, 쇼스타코비치 공연과
고양시교향악단의 10월 5일 고양아람누리 아람음악당, 파가니니와 레스피기 공연
그리고 경기필의 10월 11일 안성맞춤아트홀, 베토벤 & 브람스 공연인데요,
그 중에서 10월 11일 경기필의 공연에 대해 쓰고 싶어졌습니다.

 

세 공연들이 모두 기억에 남지만 안성 공연에 대해서만 글을 쓰기로 한 것은
그 마지막 공연에서 비로소 1달만에 '감동'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제 의지와 관계없이 앞선 2번의 공연에선 소름돋는 전율을 느낄 수가 없었거든요.

 

경기필의 마스터시리즈 XI 베토벤 & 브람스 II라는 타이틀을 가진 이 공연은
경기필의 다른 프로그램들처럼
금요일에는 안성맞춤아트홀 대공연장에서
그리고 바로 다음날인 토요일에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같은 프로그램으로 연이틀 공연하도록 기획되어 있습니다.

 

저는 지난 8월에 멀리 안성에서 하는 금요일 공연을 예매해두었습니다.
이유는 단 하나,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의 음향을 싫어하기 때문입니다.
지난 부천필의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10번은 1회 뿐인 공연이라
어쩔 수 없이 예술의전당 1층 11열 가운데를 예매했었는데
홀의 한계를 다시금 철저히 느끼고 왔을 뿐이었습니다.

 

이번 경기필의 공연을 조퇴할 필요가 없는 토요일로 예매를 바꿀까도 고민했지만,

9월 25일 부천필의 공연을 듣고 그러면 안되겠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왕복 5시간의 고통을 겪으면서도 평생 처음 안성을 찾은 것을
저는 올 가을 가장 잘한 선택이라고 기뻐하고 있습니다.
오후 5시에 조퇴하고 안성행 시외버스를 탔지만
공연 시작 2분 전에 택시를 타고 도착할 수 있었던 그 아슬아슬함은 굳이 자세히 적지 않겠습니다.

 

전 올해 들어 바이올린 협주곡만 꽤 다양한 공연장에서 다양한 곡을 들었습니다.
브루흐, 드보르자크, 파가니니 그리고 9월 5일 인천 공연도 마침 브람스였습니다.
그런데 협연자들은 대부분 고만고만한 사운드를 들려줬습니다.
그래서 솔직히 별 감흥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지난 금요일 안성에서 들은 브람스는 오케스트라 반주가 끝나고 협연자가 첫 음을 연주하는 순간
'허걱'하는 놀라움이 있었습니다.
'그래 바로 이런 소리야'라는 탄성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습니다.

 

오페라로 비유하면 꼭 같은 아리아를 단 10초만 듣더라도 파바로티나 칼라스가 내지르는 소리는
다른 가수들의 그것과 확연히 구분되는 그런 다른 차원의 '천재적인' 소리였습니다.

 

이지윤 씨가 연주해준 브람스는 지극히 화려하면서 탐미적이었습니다.
바이올린의 고음이 가진 매력을 거의 모든 음에서 놓치지 않고 들려줬습니다.
소리 하나하나에 협주곡의 협연자가 갖추어야 할 카르스마로 넘쳐있었습니다.
녹음해서 음반으로 듣고 또 듣고 싶은 그런 소리였습니다.
(마침 그런 생각에 공연장 천장을 보니 전혀 마이크가 없더군요.)

 

음반에서 대가들의 연주로만 듣던 그런 소리를 오랜만에 실연으로 들을 수 있었습니다.
지금 떠오르는 유사한 음색으로는 나탄 밀스타인의 1986년 연주인 바흐 무반주 바이올린 음반 (TELDEC)의 그런 소리였습니다.

 

처음에는 이 소리가 이지윤 씨 덕분인지 공연장 덕분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는데
이날 오케스트라의 현 파트는 훌륭하긴 했지만
국내 다른 좋은 공연장에서 듣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게 들렸기 때문에
협연 바이올린의 차원이 다른 소리는 공연장 덕분이라기 보다는 협연자의 실력이라고 결론내렸습니다.

 

그 바이올린 소리 하나로 이날 브람스는 충분히 소름돋는 연주였습니다.
협연자의 소리에 넋을 잃고 있었지만, 오랜만에 듣는 경기필의 사운드도 너무 반가왔습니다.

 

지난 여름 고양에서의 말러 교향곡 4번 이후로
그 로터리 밸브 트럼펫 소리가 계속 그리웠는데 이날 마음껏 듣고 왔습니다.
제가 이날 예매한 곳은 가운데에서 약간 왼쪽으로 치우친 자리였는데
무대 왼쪽에 앉은 호른과 그 뒤의 트럼펫을 정면으로 바라보는 위치였습니다.
그래서 공연 중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면서 수석 트럼페터 얼굴만 주로 쳐다 보고 있었습니다.

브람스가 끝나고 지휘자 마시모 자네티는
협연자 이지윤씨랑 열렬한 볼키스를 나눴는데 지휘자 스스로 연주에 만족했다는 느낌이 확 전해왔습니다.

 

이때 저는 기립박수를 보냈습니다. 협연자 이지윤 씨에게 보내는 박수였습니다.
제가 나이 마흔 넘고는 기립박수를 쳐본 기억이 없습니다.

 

이런 사운드로, 이런 연주를 들려줬는데 아무도 기립박수를 보내지 않았다는 기억을

협연자에게 남겨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일어선 사람이 저 혼자 뿐이었다는 게 좀 뻘줌하긴 했지만 후회는 없습니다.

 

2부 베토벤 교향곡 3번이 끝난 다음에는 저 대신 3-4명의 관객분들이 기립박수를 보내시더군요.
베토벤 교향곡 3번도 브람스 못지 않게 인상적인 연주였습니다.

 

지휘자는 1악장 후반부의 클라이막스에서 터트리는 것을 조금 자제하고
2악장도 지나치게 신파조로 흐르는 것도 자제하면서
3악장부터 발동을 걸어, 4악장에 방점을 찍는 연출을 선보였습니다.

 

자네티는 유독 이날 다이내믹에 신경을 써서 여린 파트에서는 거의 포디움에서 쪼그려 앉을 정도로
큰 모션을 취했는데, 강약의 변화에 거의 한몸처럼 반응하는 경기필의 순발력도 돋보였습니다.

 

특히 4악장의 빠른 변주곡에서 현파트의 일사분란함은 온몸에 좌악 전율이 돋게 했습니다.
그 전에는 몰랐는데 자네티의 지휘 폼이 클라우디오 아바도를 좀 닮았다는 생각을 이날 처음 했습니다.

 

지휘자는 금관과 대등한 정도의 음량을 목관에게 요구했습니다.
최근 들은 국내 공연들이 목관 중 주로 클라리넷이 도드라지는 경우가 많았던 것에 비하면
이날 공연은, 고전파라는 곡 자체의 이유도 있겠지만, 오보에 수석이 단연 돋보였습니다.

 

안성맞춤아트홀은 오케스트라 뒷쪽을 막고 있는 짙은 갈색의 얇은 나무 판들이
팀파니 소리에는 좋지 않은 결과를 낳는 옥의 티가 있었습니다.

 

그 나무판에 가장 가깝게 위치한 악기인 팀파니는 특정한 낮은 음표를 연주할 때는 공명을 일으키면서
흡사 큰 한옥 대청마루의 바닥이 들떠있다가 맨발로 밟을 때 나는 '탁'하는 소리 같은
나무 때리는 소리로 들리는 문제가 서너번 있었습니다.

 

안성맞춤아트홀 대공연장은 이런 단점에도 불구하고 수도권의 내노라하는 공연장 못지 않은
음향을 들려줬으며 특히 군더더기 없는 잔향과 연주 중이 아닐 때 고요한 적막함은 매우 좋았습니다.

 

경기필은 그 본분에 맞게 클래식 불모지인 안성에까지 방문해서 공연을 갖는 것은
칭찬 받을 일이지만, 왜 두번째 공연이 경기도에 위치한 또 다른 공연장이 아니라
서울에서, 그것도 예당에서 열리는지 솔직히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만약 이튿날 공연이 예당이 아니었다면 저는 둘째날 공연에
남은 자리가 없는지 찾아보고 싶은 욕심을 억누르려 노력했을 것입니다.

이지윤 씨의 바이올린 연주를 또 들을 수 있는 날을 기다려봅니다.

작성 '19/10/13 15:17
th***수정 삭제 트랙백 보내기
링크 글 (Trackback) 받는 주소: 로그인 필요
0/1200byte
한 줄 덧글 달기
 
 5
 


내가 본 공연은 내가 평한다, 공연 후기는 이곳에
번호 글쓴이 제목 날짜 조회추천
2428  '19/11/1821 
2427ch*** '19/11/153306
2426el*** '19/11/134297
2425ha*** '19/11/027556
2424sa*** '19/10/144994
2423th*** '19/10/135955
2422ko*** '19/10/044773
2421km*** '19/10/012782
2420th*** '19/09/167864
2419km*** '19/09/023733
2418km*** '19/08/303531
2417km*** '19/08/264012
2415th*** '19/07/249685
2414th*** '19/07/1511998
2413er*** '19/07/077132
2412th*** '19/06/2512702
2411km*** '19/06/176932
2410th*** '19/06/13937 
2409th*** '19/06/039233
2408th*** '19/06/02783 
2407km*** '19/05/295431
2406th*** '19/05/2713881
2405km*** '19/05/264832
2404km*** '19/05/245415
2403th*** '19/05/201304 
새 글 쓰기

1  2  3  4  5  6  7  8  9  10  다음  마지막  
총 게시물: 2812 (1/113)  뒤로  앞으로  목록보기
Copyright © 1999-2019 고클래식 All rights reserved.
For more information, please contact us by E-mai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