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리뷰] 오페라 페스티벌 2000 <토스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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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연리뷰 : 푸치니 <토스카> 2000.10.7 ⊙

지휘 : E.마스키오
연출 : 이소영
무대 디자인 : 박동우
토스카 : 이지은
카바라도시 : 이 현
스카르피아 : 고성현
수원시향 & 수원시향 합창단, 오페라페스티벌 합창단

<토스카>의 새 장(章)을 연 놀랍고도 완벽한 공연이었다. 승리의 결정적인 동력은 작품의
문맥을 적확하게 집어낸 연출가 이소영의 손에서 나왔다. 기존의 (어떤 고정 관념과도 같았
던) 극사실주의적 연출 경향을 정면으로 거부한 이소영은, 매장면 심리적 정황들을 섬세하
면서도 밀도짙게 묘사하여 자극적인 대중물 정도로만 치부되던 <토스카>의 드라마성을 극
적으로 '구출'하는데 성공했다.

1막의 무대는 피라미드형의 가파른 계단구조로 만들어졌다. 이는 드라이하고 긴장감이 넘치
는 <토스카> 특유의 음악과 잘 어울렸으며, 무대의 리듬감을 살리고 등장 인물들간의 어떤
심리적 거리감을 표현하는데에도 톡톡히 한 몫 했다.

반면 음악쪽은 출발이 불안했다. 마스키오와 수원시향은 덜 달궈진 석쇠마냥 뜨거운 응집력
이 부족했고, 테너 아리아 '오묘한 조화' 또한 관객들의 집중력을 끌어올리는데 아무런 도움
이 되지 못했다.

토스카역의 이지은은 발군이었다. 그녀의 등장을 터닝 포인트로 음악과 무대는 서서히 밀도
의 균형을 찾아가기 시작했으며, 마스키오 또한 초반부의 부진에서 벗어나 자신감있게 음악
을 전개시켜 나갔다. 이지은은 중.저역의 맺힘이 또렷하지 못하고 성량 또한 풍부한 편이
못되었으나, (비브라토가 많이 형성되는) 그녀 특유의 아름다운 고음을 절묘하게 구사하여,
격정적인 토스카상에 대비되는 여성적인 토스카로서의 음악적 설득력을 확보하는데 성공했
다. 이 점은 연출가가 미리 밝힌 작품 해석의 주된 컨셉이기도 했는데, 이지은은 감성적이
고 섬세한 노래외에 날씬하고 아름다운 용모, 우아한 동선의 연기 등 여러모로 연출가의 의
도에 충실하기도 한, 대단히 매력적인 토스카였다.

그를 빼놓고는 더 이상 스카르피아를 논할 수 없다는, 마치 '곱비의 스카르피아냐 스카르피
아의 곱비냐'는 영광된 찬사를 받았던 티토 곱비와 같이, 이제는 스카르피아의 대명사가 되
어버린 고성현은 특유의 카리스마로 무대를 완벽하게 장악했다. 지난 한국오페라단 등과의
일련의 공연을 통해서도 찬사와 감탄의 대상이 되었던 고성현이지만, 이번 공연에선 예의
그 특유의 펄펄끓는 뜨거운 목소리에다 정교하게 연출된 극적인 연기가 더해져서 그 어느
때보다 더욱 강한 흡인력을 지닌 캐릭터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 특히 지나치게 강성 위주였
던 과거와는 달리, 일정부분 소리 자체의 완전함을 희생시켜 가면서도 표현적인 부분에 더
욱 주력하는 모습은 그의 음악적 성장을 웅변적으로 드러냈다.

1막 피날레 "테데움"은 영화적인 '멋진 그림'이 만들어졌다. 추기경, 사제들, 여왕 마리나 카
롤리나 등이 피라미드형 계단의 상층부에서부터 서서히 아래로 내려오면서, 객석의 시점에
선 쿼터뷰로 보이도록 사선으로 늘어섰고, 무대 정중앙 상단의 조명은 대각으로 밝은 조명
을 쏘면서 마치 대관식을 연상케하는 장중하고 화려한 장면을 만들어냈다. 여기에 두터운
합창단을 뚫고 포효하는 스카르피아의 목소리가 더해지면서 피날레는 그야말로 일대장관을
이뤘다.

한편 오케스트라와 가수간의 호흡 불일치와 실수도 적잖이 보였다. 테너 이현은 저 유명한
'Qual occhio al mondo' 패시지에서 그만 음을 놓쳐버려 지켜보던 사람을 조마조마하게 만
들었으며, 다른 가수들도 오케스트라와의 호흡이 어긋나는 아찔한 경우가 종종 있었다. 마
스키오는 서정적인 분위기의 흐름을 만드는데는 뛰어났으나 극적 긴장을 구축하는 기술이
부족해서 템포를 당겨줘야 할 때 당기지 못해 가수들을 당황스럽게 만들었다. 특히 2막에서
스카르피아와 토스카가 만들어 놓은 팽팽한 긴장감을 엇박자의 오케스트라가 계속 딴죽을
걸었던 장면은 대단히 유감스러웠다.

2막 무대는 우리가 글라인본 페스티벌에서 종종 보기도 하는 경사진 무대와 좁은 방으로
만들어졌다. 기울어지고 뒤틀린 공간은 상황의 부조리함을, 무대의 2/3 정도만 활용한 '좁은
방'은 탈출구없는 절망적 강박감을 나타냈다. 방의 왼쪽 뒤로 트인 통로로 등장 인물들이
들고 나갔는데, 그때마다 뒤틀어 기울어진 어두운 그림자가 벽에 길게 늘어뜨려져 대상없는
불안감과 공포심을 자극했다. 2막 전체를 관통한 우울한 블루톤의 조명도, 사실주의 계열의
연출에서 자주 보이는 난색(暖色) 위주의 무대보다 더욱 인상적이었다. 방의 좌우로 두 개
의 테이블을 배치한 것도 그냥 쉬 넘겨볼 일은 아니었다 (기존의 국내 연출의 상당수는 원
테이블이었다). 객석을 중심으로 오른쪽 테이블은 스카르피아가 집무를 보는 책상이고, 왼
쪽은 그가 식사를 하는 곳으로 만들어 놓은 이 날의 투테이블 무대는 스카르피아의 큰 동선
에 어떤 무리없는 설명을 부과하는 기능을 하였다. 고성현은 디테일한 면까지 세심한 준비
를 한 듯 매우 뛰어난 연기를 보여주었는데, 창문을 거칠게 닫는 장면에서 기대한만큼의 '
무시 무시한 소리'가 나지 않으니까 아예 두 번을 연달아 세차게 닫았으며 (거개의 국내 연
출은 베니어판 따위로 세트를 만들기 때문에 이 '창문을 세차게 닫는' - 생각보다 굉장히
중요한 무대 효과다 - 장면에서도 그저 '틱'하는 소리 밖에 안들린다), 고문실의 문을 열게
하는 장면('Aprite le porte che n'oda i lamenti')에서는 고문실 벽을 주먹으로 강하게 두들
기면서 섬뜩함 광기를 드러냈다.

'노래에 살고 사랑에 살고'는 매우 감동적이었다. 부담스러울 정도의 극적인 긴장이 계속되
다가 어느 일순간 마치 참았던 울음을 터트리듯, 긴장과 이완의 경계부에서 처연히 흐르는
애잔한 선율은 가슴 깊은 곳을 울리기에 충분했다. 미묘한 완급 조절을 통해 긴장감을 극적
으로 폭발시키는 푸치니의 이런 절묘한 수법은 역시 실제 무대에서 보아야만 그 극대화된
효과를 제대로 느낄 수 있다. 이지은의 호소력 넘치는 절절한 가창이 청중들의 깊은 공감을
자아내는데 큰 몫을 했음은 물론이다. 한편 이지은은 2막 마지막 대사 'E avanti a lui
tremava tutta Roma!(그 앞에서 온 로마가 떨었네)'를 울먹이듯한 어조로 처리하는 유니크
한 해석으로 토스카의 어떤 미묘한 여성 심리를 효과적으로 부각시켰다.

3막은 휴식없이 바로 2막과 이어졌다. 3막은 <토스카>의 트레이드 마크인 산탄젤로성을 배
경으로 하고 있지만, 이번 무대는 산탄젤로성의 저 유명한 천사상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아무 장식없이 마냥 가파르게 기울어진 성벽으로만 무대를 꾸몄는데 매마른 분위기를 조성
하면서 동시에 사나운 위험의 엄습을 예고하는 듯 했다. 무력한 분위기로 가득찬, 피곤에
찌든 병사들이 좌우로 널부러져 눈을 부치고 있는 첫새벽에 한 아이가 나타나 노래를 부르
고는 그 후에 '공놀이'를 하는 장면은 효과적인 아이디어였다. 대본에는 이 소년이 '목동'으
로 나오지만, 이번에는 성벽을 청소하는 아이로 나왔다.

조역진 중에는 간수역을 맡은 바리톤이 당당한 소리를 갖고 있어 장래성을 엿보게 했다. 테
너 이현은 2막 이후로 집중력있는 연주를 들려주었는데, 음성 자체의 탁월한 트임은 없었지
만, 음악적 긴장감의 유지 능력은 뛰어난 편이었다.

1막의 2중창과 3막의 2중창은 일종의 수미쌍관의 형세를 이루지만, 절박한 정황에서 파생
되는 정서적 밀도의 농밀함에선 3막이 단연 앞선다.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나 '하늘의 구름
과 같이 바다를 향해 떠나자'는 갈망의 외침은 사실적 묘사를 배제하고 극도로 단순화된 -
가파른 경사의 성벽으로만 묘사된 무대 배경과 대단히 잘 어울려, 오히려 그 불안한 희망의
분위기를 강력하게 폭발시킬 수 있었다. 마지막 처형 장면도 배우들의 어색하지 않은 연기
와 청각적인 익사이팅함을 강조한 강렬한 총소리 등이 비극적 아이러니를 더욱 강조하는 효
과를 가져왔다.

이번 <토스카> 무대는 세계 유수의 오페라단과 견줘도 결코 손색이 없을만큼 훌륭한, 참으
로 우리가 자랑스러워해야 할 뛰어난 공연이었다. 특히 연출가 이소영은 (국내의 열악한 제
작 환경 탓도 있겠지만) 덩치가 크고 돈이 많이 드는 사실주의적 연출 대신 극도로 내밀한
심리주의적 연출 기법을 선보이면서 작품을 바라보는 또 하나의 시각을 훌륭하게 제시했다.
특히 세심하게 준비된 공연 - 자막기의 대사까지도 참으로 정교하게 번역되었다 - 은 그간
의 오페라 공연에서 단지 달콤한 성악적 울림의 쾌감만을 찾아왔던 일단의 관객들에게 '드
라마'로서의 예술적 재미를 던져줌으로써 상당히 교육적인 효과도 거두었다. 또한 노래에만
관심이 있고 배우적 철학이 부족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과 질타를 받았던 국내 성악진들도
그간의 저평가를 불식시키듯 적극적인 연기를 펼쳤다.

물론 아쉽고 안타까운 점도 없진 않았는데, 마스키오의 지휘는 푸치니의 선율미를 과장없이
잘 살렸으나 극적인 정서의 고양에 미흡했으며, 이 때문에 연출의 밀도에 비해 음악이 밀리
는 감이 없지 않았고, 결정적으로 연출의 호흡과 음악의 호흡이 명백히 다른 방향으로 진행
되는 장면들이 간혹 눈에 띄어 안타까움을 주었다. 마지막으로 가장 큰 옥의 티는 관객들의
관람태도였다. 특히 테너 이현을 응원(?)하러 나온 박수부대들의 생각없는 환호성과 암구호
화된 'Bravi'(남자성악가에게 보내는 환호)의 반복은 오페라 공연을 무슨 스포츠 경기인양
착각하는 수백년 전의 퇴행적인 속물 관객들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또한 '감동받을 준비가
덜 된' 일부 관객들의 적극적이지 못한 관람 태도도 무대 위의 뜨겁고 열정적인 감흥을 상
승시키는 데 큰 걸림돌이 되었다.

우리나라에서 '페스티벌' 형식의 오페라 공연은 아직 걸음마 단계다. 그러나 이번 <토스카>
와 같이 예술적 완성도가 높은 공연들이 계속 이어진다면 우리도 선진 외국의 무대처럼 레
퍼토리 시스템을 갖추고 좀 더 많은 수의 오페라를 상연하는 본격 오페라 시즌을 갖게 될
날도 멀지 않을 듯 싶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현장의 예술가와 관객들 모두가 서로 더한 노
력을 기울어야 할 것임은 주지의 사실이다.

- 황지원
작성 '00/10/09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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