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소년의 모습을 간직한 지휘자 다니엘 하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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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휘자 또는 마에스트로라는 단어는 우리에게 무엇을 연상 시키는가? 경험,연륜,엄격함,품위,학구적 진지함,삼단 같은 은빛 머리 등등 세월의 깊이와 연관된 것들이 쏙쏙 머리를 박차고 나오게한다. 그만큼 우리의 인식 속에는 경험과 연륜이 지휘자가 되기 위한 필요 조건이라는 인식이 뿌리 깊이 박혀 있다. 이처럼 지휘자에게 있어서 오랜 경험의 축적은 수많은 개성과 음의 무리로 이루어진 오케스트라를 통솔하기 위한 필수불가결한 요소일지도 모른다. 이러한 인식이 뿌리 깊게 박혀있는 우리에게 24살의 지휘자 다니엘 하딩은 어떻게 다가올까? 24살이란 나이는 10대의 신동 연주자들이 하루가 다르게 이름을 더해가는 기악 연주계에 그리 놀라움을 불러일으키지는 않지만 지휘계에서는 확연히 다르다. 놀라움에 앞서서 '과연 그 나이에 잘 해낼수 있을까?' 라는 석연치 않은 물음을 던져준다. 그런 가운데 베토벤의 음악을 연주한다 하면 도박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안심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의 화려한 이력이나 오페라 하우스에서 시드니 싶포니와의 시드니 데뷰 공연은 이러한 선입견을 불식 시켰고 나아가 재능 있고 패기 넘치는 젊은 지휘자의 발전 가능성을 엿보게 해 주었다.
6월 30일 저녁 하딩에 대한 호기심을 잔뜩 안고 오페라 하우스를 찾았다. 이번 데뷰 무대의 프로그램은 베토벤 레오노레 서곡 3번 op.72와 쇼스타코비치 첼로 협주곡 1번 op.107 그리고 시벨리우스 교향곡 6번으로 구성돼 있었는데 고전과 현대의 대비되는 레퍼토리가 흥미를 불러 일으켰다. 협연자는 노르웨이 태생의 첼리스트 트룰스 뫼르크 였다.
드디어 지휘자 다니엘 하딩이 등장 했다. 아직 미소년의 모습을 간직한 하딩은 잠시 나의 머릿속에 '미소년이 지휘하는 베토벤은 어떨까?' 하는 철없는 생각이 떠오르게 했다.
베토벤의 레오노레 서곡 3번은 오페라 '피델리오' 의 흐름을 서사적으로 함축하여 제시하고 있는데 레오노레의 남편을 구출하겠다는 확고한 결의와 승리의 기쁨이 담긴 곡으로써 긴장감이 넘친다. 다니엘 하딩은 이 곡이 갖는 서사적 흐름을 잘 살려냈고 다이내믹의 폭이 큰 격정적 연주를 들려 주었는데 젊은 연주자들이 범하기 쉬운 지나친 열정의 분출로 인한 전통의 거슬림 같은 실수를 범하지 않는 매우 신중한 모습을 보여 주었다. 하딩은 지휘할때의 동작이 매우 큰 편이었는데 결코 과장되거나 거북스러운 느낌을 주지 않았고 오히려 음을 타는 자연스러운 움직임으로 인식되어 청중에게 시각적 즐거움을 선사했다. 그리고 유연하고 아름다운 바톤 테크닉 또한 인상적이었다. 연주회 전반부의 첫머리에서부터 강하고 비범한 인상을 남긴 하딩은 오늘의 연주회를 끝까지 성공적으로 이끌어 가겠다는 믿음을 주었다.
드디어 기대하던 쇼스타코비치 첼로 협주곡 1번의 차례가 되었다. 이 협주곡은 쇼스타코비치가 로스트로포비치에게 헌정한 작품인데 첼로의 한계를 시험하는 듯한 고난도의 기교로 연주자에게 내적 에너지 뿐만 아니라 엄청난 외적 에너지를 요구한다. 수줍은듯한 미소를 머금고 등장한 뫼르크는 그러한 내향적 인상과는 달리 첫반부터 무시무시한 보잉과 집중력으로 열정을 쏟아내며 연주에 몰입하기 시작했다. 연주자에게 잠시도 쉴틈을 주지않는 1악장 알레그레토에서 뫼르크는 그야말로 온몸에 소름이 돋게 만드는 초인적인 기교와 날카로운 음색으로 한시라도 긴장을 늦출수 없게 만들었다. 러시아적 우수와 투박함이 뫼르크의 날카로운 음색 아래 피부로 침투하며 서늘함을 느끼게 했다. 숨막히는 열전의 1악장 뒤에 2악장 모데라토의 로맨틱하고 명상적인 멜로디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뫼르크는 여유를 실어가며 쇼스타코비치의 냉소적 메세지를 한음한음 풀어냈다. 날카로움을 한층 배제시키고 러시아적 우수를 투박한 필치로 그려내며 점점 카덴차로 몰고 갔다. 어느 협주곡에서나 카덴차에 이르러서는 숨을 죽이며 연주자의 비르투오시티에 몰입하게 되는데 뫼르크는 현란한 테크닉의 구사를 넘어 작곡가의 심성을 담아내는 깊이 있는 해석을 더해 감흥을 주었다. 그의 어둡고 투박한 피치카토는 이 곡이 갖는 심각성을 한층 깊게 표출시켰으며 치열하고 드라마틱한 기교의 나열은 눈이 부실 정도였다. 어쩜 그리 피치카토 하나에도 그런 무게를 실을수 있는지 과연 세계적 연주자는 뭐가 달라도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3악장에 이르러서 분위기는 한층 고조되었고 마지막까지 뫼르크는 혼신의 힘을 다해가며 활털이 너덜너덜해질 정도로 첼로와 싸워 나갔다. 그랬다. 그의 연주는 치열한 불꽃이 튀는 싸움이었다. 악기를 사랑스럽게 다루며 유연하고 부드러운 해석을 선보이기 보다는 악기에 온갖 정열을 쏟아부으며 극대화된 비르투오시티를 날카롭게 표출시켜 스포츠적 쾌감을 느끼게 하며 첼로가 가진 잠재력을 무한히 표출시키기 위해 자신과 악기와 싸웠기 때문이다. 그렇다고해서 그의 연주가 섬세함이 결여돼 공허함을 남긴것은 절대 아니었다.
언젠가 필자는 FM에서 그가 연주하는 프로코피예프 협주곡을 듣고 깊은 인상을 받은적이 있는데 그곡을 생전 처음 듣는 입장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주 깊게 몰입시키는 뫼르크의 흡입력에 놀란적이 있었다. 오늘 연주회에서도 그러한 그의 특유의 흡입력을 체험했는데 그의 초인적인 비르투오시티를 바탕으로 한 깊이 있는 음이 하나하나 울릴때마다 청중들은 작곡가의 미로와도 같은 내면 세계로 빨려 들어갔다.
뫼르크는 어두운 빛이 감도는 1723년산 도메니코 몬타냐나산 첼로로 연주 했는데 그의 투박하고도 날카로운 음색을 부각시켜주는 이상적인 벗이었다.
인터미션후 시벨리우스 교향곡 6번이 연주되었다. 북구의 정서가 가득 느껴지는 이곡은 작곡가가 교향곡의 전통에서 벗어나려는 움직임이 느껴지는 작품이다. 1악장의 잔잔히 떨리는듯한 멜로디가 울려퍼지는 순간 머릿속에 사방이 설원으로 둘러싸인 잔잔한 물결이 이는 핀란드의 호수가 그려졌다. 시드니 심포니는 이곡이 갖는 다이아몬드빛 색채를 잔잔히 펼쳐냈고 하딩은 전반부처럼 열정을 분출하기 보다는 내적 에너지를 발산시켜 잔잔한 울림을 더욱 매끄럽고 격조있게 승화시키는 탁월한 감각을 보여주었다. 고요하고 아름다운 2악장에서 선선한 바람을 일으키는듯한 현의 속삭임은 매우 정감있었고 3악장의 리드미컬한 움직임은 매우 활기찼다. 다시 4악장에서는 예쁘고 잔잔한 멜로디가 울려 퍼지다가 밝고 활기찬 에너지가 분출되는데 여기서 현악기군에 미치지 못하는 관악군의 부진함은 못내 아쉬움을 남겼다. 기존의 교향곡이 정열의 발산으로 호쾌한 결말을 맺는데 반해 이 6번 교향곡은 모든 에너지를 수렴하여 고요하고 아련한 침묵으로 결말을 맺는다. 시벨리우스의 6번 교향곡은 기존의 교향곡처럼 확고부동한 움직임이나 강렬함은 없어도 잔잔한 여운을 남기는 섬세함으로 매우 친숙하게 와 닿았다. 기존의 교향곡이 터프한 남성적 체취가 느껴진다면 시벨리우스의 교향곡은 내향적이고 수줍은듯하나 속으로는 강인한 의지를 지닌 외유내강형의 아름다운 여인과도 같았다. 하딩은 유려한 바톤 테크닉으로 오케스트라를 조율해 나가며 최대한 소박하도 아름다운 음색을 뽑아내어 소박한 악상을 잘 살려냈다.
전체적으로 매우 만족스러웠고 다니엘 하딩이라는 약관의 지휘자의 거장 발전 가능성을 확인할수 있었던 매우 기쁜 무대였다. 거기다 북구 사나이의 강렬한 카리스마까지 맛볼수 있었으니 이번 연주회는 매우 특별하고도 신선한 기쁨이었다. 어린 나이답지 않게 지휘자로써의 덕목을 고루 갖추고 만족스런 연주를 선사했던 하딩은 우리 시대를 빛낼 지휘자의 출현을 예감케 할 정도로 비범하고 경이롭기 그지 없었다. 연주회 이후 사인회에서 만난 하딩은 무대에서의 엄숙하고 품위있는 모습과는 180도 달랐다. 너무나 수수한 옷차림에 장난기 가득한 미소를 띄운 모습은 이웃집 소년을 연상케 했다. 또래 연주가에게서 발견되는 화려함이라고는 눈 씻고도 찾아볼수 없던 수수함은 무대에서 느꼈던 아련한 거리감을 한층 좁혔다.
연주회장을 나서는 발걸음에 아쉬움이 가득했다. 약관의 지휘자와 노련한 첼리스트의 이상적 하모니가 지울수 없는 인상을 남겼기 때문이었다.



작성 '00/07/04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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