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23 정명훈/원 코리아 유스 오케스트라의 슈만 피아노 협주곡, 브람스 교향곡 2번
http://to.goclassic.co.kr/concert/3096

전날부터 미세먼지가 심했던 토요일.

아침과 달리 점심이 되자 웬일인지 공기질이 좋아지면서 환기를 할 수 있는 상태가 됐고
저는 기분까지 좋아져서 즉흥적으로 그날 저녁에 있을 롯데콘서트홀의 공연 표를 예매하겠다고

가족들에게 통보를 했습니다.

 

사실 그 전 주말에 롯데월드몰 7층에서 식사할 기회를 어렵게 잡았는데,

바로 윗층의 콘서트홀로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만 쳐다보고 그냥 돌아온 것이
찜찜하던 차에 가족들에게 개장한지 4년째 되어가는 이 홀을 구경시켜주고 싶은

(물론 저도 처음입니다) 생각이 컸습니다.

 

표는 거의 매진이었지만, 마침 시야방해석 세 자리를 구할 수 있어서

저와 아들은 무대를 바로보고 오른쪽의 R석,
무조건 싼 표를 외치던 아내는 무대 좌측의 S석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롯데콘서트홀이 처음인 저는,

그 옛날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을 처음 접했을 때와 같은 시각적인 감동을 받았습니다.

중학생인 아들은 객석에 들어서자 마자 눈앞을 압도하는 공연장의 화려함에 '와~'하는 감탄을 하더군요.

베를린 필하모니 홀과 같은 국내최초의 포도밭식 콘서트홀의 내부 모습은 정말 멋졌습니다.

 

이날 공연의 전반부는 슈만의 피아노 협주곡.

조만간 죽은 작곡가 소셜 클럽에서 다룰 예정이었기 때문에 저로서는 반가운 선곡이었습니다.

 

협연자는 2000년생으로 갓 고등학교를 졸업했을 것으로 보이는 임주희씨.

작곡가 스스로가 피아니스트인 아내 클라라를 위해 작곡한 만큼
여성 피아니스트가 독주를 맡기에 가장 적합한 협주곡 중의 하나일 것입니다.

 

지휘를 맡은 정명훈씨도 평소 슈만은 자주 연주하지 않았지만
DG에서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과 2001년 녹음한 아르헤리치의 음반이 있기 때문에

(그 음반은 아직 못들어 봤습니다)
이날 연주도 아르헤리치 스타일의 열정적인 무대가 되지 않을까 기대했습니다.

 

오케스트라는 이번 공연이 제3회 정기연주회인 신생 단체로,

정명훈씨가 음악감독을 맡고 롯데문화재단이 지난 2018년 1월 창단한 원 코리아 유스 오케스트라였습니다.

 

저는 지난 2009년, 정명훈씨가 아름다운 가게에서 주최한 세종문화회관에서의 자선 콘서트에서

당시 15세였던 조성진씨가 협연한 쇼팽 피아노 협주곡 1번을 들은 기억이 있었기 때문에,
이런 젊은 협연자 및 오케스트라와 함께하는 지휘자의 노력이,

클라우디오 아바도가 젊은 단원들로 창단한 말러 체임버 오케스트라가 연상되어,
신생 오케스트라를 키워내는 데까지 이르렀구나 하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예상대로 슈만 피아노 협주곡의 연주는 공연 팜플렛의 협연자 소개 문구에 표현된 그대로
'망설임 없는 과격한 표현과 비극적인 정서를 풍부한 감성으로 승화하는 방법론'을 선보였습니다.

 

임주희씨는 대단한 음량과 그에 못지 않은 집중력을 가진 피아니스트로,

슈만과 결혼하기 전인 10대 후반의 클라라와 같은 나이이기 때문에
그녀의 연주는 클라라가 당시 빈이나 프라하에서 가진 공연들이

이런 정열에 찬 무대가 아니었을까하는 상상을 하게 만들어줬습니다.

 

오케스트라 반주는 음반에서는 도저히 접할 수 없는 약음의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목관 독주가 공간을 가르고 존재감을 내비칠 때에는

군더더기 없이 깨끗한 음향의 롯데콘서트홀의 장점이 돋보이는 순간이었습니다.

전체적으로 보면 조화를 깨고 돌출하는 부분없이 매끈하고 세련되어 있는 점이 놀라왔습니다.

 

지휘자는 처음부터 끝까지 오케스트라에게 절제된 음량을 요구했지만,

3악장의 코다만큼은 아주 예리하면서도 눈부신 클라이막스를 선보여서 짜릿한 쾌감을 선사했습니다.

 

앵콜로 아마도 쇼팽을 연주할까 예상했었는데 역시나 야상곡 20번을 연주했습니다.
슈만 때와 달리 오른손의 아티큘레이션이 조금 흐트러지긴 했지만
청소년 오케스트라인 만큼 객석에 단원들의 가족분들이 많이 참석했다는 것을 감안하면

안성맞춤의 선곡이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1부가 끝나고 앞에 앉은 아들놈에게 어땠냐고 물어봤더니, 대뜸 '소리가 작다'라고 불만을 토로했습니다.
아무래도 좌우가 탁 트인 홀이다 보니 객석 쪽으로 음향을 몰아주지 못하고 분산되면서
일반적인 콘서트홀에서 보다는 더 큰 음량으로 연주해야만 하는 홀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협연자를 배려하는 마음에 오케스트라가 어깨 힘을 빼고 있었던 것도 사실이기 때문에

그렇게 들렸을 것입니다.

 

로비에서 만난 아내는 연주자들 뒷통수만 보인다고 불만을 토로했고,

다른 자리에도 앉아보고 싶은 아들과 뜻이 맞아 둘은 서로 자리를 바꿔서 앉았습니다.

저 옆에서 1부 내내 꾸벅꾸벅 조시던 중년의 신사분은 동행하신 다른 분들과 달리 돌아오지 않으셔서

제 옆자리는 2부에는 비어있었습니다.

 

후반부의 곡은 브람스 교향곡 2번. 정명훈씨의 디스코그래피를 보면

그가 가장 자주 녹음한 브람스 교향곡이 2번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2014년 5월, 필하모니 홀에서 있은 베를린 필과의 콘서트에서, 1부의 진은숙 첼로 협주곡에 이어

2부의 교향곡으로 그가 선택한 곡도 이 곡이었습니다.

 

평생을 독신으로 살다 간 브람스를 이해하는 키워드는 '욕구불만'일 것입니다.

그 화두가 가장 깊이 박혀있는 곡이 이 작품이 아닐까하고 저는 생각합니다.
또한 브람스의 교향곡 4곡 중 음반따라 지휘자들의 해석의 편차가 그나마 작은 편이기도 해서,
어떤 철학이나 이념 보다는 감각적인 아름다움과 찰나의 쾌락을 찾게 되는 곡 같습니다.

 

협주곡에서 왼쪽에 호른, 트럼펫이 가운데, 그 오른쪽으로 살짝 치우쳐서 팀파니가 자리잡았던 것과 달리
교향곡에서는 트럼펫 뒤로 무대 정 가운데 팀파니가 자리잡았습니다.
또한 팀파니스트가 1부의 여성과 달리 남성 단원으로 바꼈는데,

팀파니 주자가 2명인 오케스트라에서 흔히 있는 일입니다.

 

오케스트라는 1부 때와 다르게 음량을 대폭 키운 것을 '한귀에' 알 수 있었습니다.
지휘자는 1악장 제시부의 투티에서 금관의 총주를 살짝 모호한 쪽을 선택하여 고삐를 쥐어잡고 있었습니다.
독특한 것은 팀파니의 울림이었습니다.

흡사 음반으로 접하던 바그너를 연주하는 바이로이트 페스트벌 오케스트라의 그것처럼
음색이 매우 짙은 소리가 나서 실제보다 훨씬 더 멀리에서 울리는 듯한 소리를 들려주는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롯데콘서트홀이 처음인 저로서는 이것이 홀의 특징인지 해당 팀파니스트의 개성인지 구분할 수 없었습니다.

목가적인 주제를 연주하는 독주 호른주자의 음색도 매우 훌륭해서 안정감 있는 소리를 들려주었습니다.

 

이날 가장 놀라웠던 악장은 2악장이었습니다.

2악장을 여는 첼로의 합주는 이날 연주 중 가장 돋보였던 부분이 틀림없습니다.
그 풋풋하게 온몸을 감싸오는 입체적인 울림은 시작될 때부터 갑자기 마법의 문을 연 것처럼

2악장 내내 신비한 힘을 발휘했습니다.

평소 이 곡의 2, 3악장을 지루하다고 생각하던 저로서는

이 악장이 가진 아름다움을 새삼 깨닫게 되는 계기가 됐으며,
이 익숙한 선율에서 이러한 신선함을 느낄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실연으로 접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리라 생각했습니다.

 

3악장은 시원시원한 바이올린의 합주를 즐길 수 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잔향이 특별히 적은 편도 아니었지만, 연주자가 자신의 악기소리를 들어가면서,

연주하기 편안한 그런 성격의 홀이 아니기 때문에
앞선 악장에서 현 파트의 존재감에 갈증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작년에 이탈리아에 있은 교통사고로 오페라 지휘를 취소한 적이 있던 정명훈씨는

우려와는 달리 건강한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악장 중간중간 지친 듯한 느낌도 받을 수 있었습니다.

특히나 높은 합주력이 요구되는 4악장을 앞두고는 더욱 그러했습니다.

 

4악장은 1악장처럼 초반 투티에서 트럼펫은 폭발하는 대신 에너지를 아껴두는 쪽을 택하고 있었지만

그 존재감을 확인하는 데에는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다양한 표정을 가진 이 악장에서 자칫 흐름이 끊어질 수 있음에도,

청소년 오케스트라에서 이러한 집중력을 끝까지 유지할 수 있었던 점은

지휘자의 오케스트라 조련사로서의 면모가 돋보이는 부분이었습니다.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코다. 이 곡 연주의 성패는 바로 이 코다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중턱까지 완만한 경사를 가졌지만 정상은 급격히 솓아오른 산을 연상시키기라도 하듯이

오케스트라는 코다에서 그간 아껴놓은 모든 힘을 폭발했습니다.

순간 저는 소름이 쫘악 돋았는데, 멋진 클라이막스였습니다.


이날의 해석은 코다에서 총주 사이에 사이에 조였다 풀었다를 반복하여 극적 효과를 내는

번스타인과 같은 스타일 보다는 막힘없이 돌진하는 줄리니 스타일의 연주였습니다.
코다에서 들은 은색으로 빛나는 트럼펫 소리는 아직도 기억에 생생합니다.

 

1부 때와 달리 무대 좌측 높은 자리에서 감상하고 온 아들은

이번에는 자기 자리에서는 '첼로 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았다'고 투덜거렸습니다.
오케스트라의 소리를 가감없이 그대로 들려주는 홀의 특성상 좌석 위치에 따라 음향이 많이 다른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이런 형태의 홀은 보다 많은 사람들이 무대를 시각적으로 감상하는 데는 유리함이 있지만,
반대급부로 청각적으로 자리마다 편차가 심해지는 것을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원 코리아 유스 오케스트라와 정명훈씨는 연2회 정기공연을 가질 예정이라고 합니다.
이 오케스트라의 다음 공연을 기대하게 하는 높은 완성도의 공연이었습니다.

작성 '19/02/25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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