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26 서울줄풍류보존회의 영산회상 (국립국악원 풍류사랑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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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화요일 국립국악원 풍류사랑방에서는 서울줄풍류보존회의 현악영산회상 전곡 연주가 있었습니다.
많은 국악 공연들이 그렇듯이 이날 공연도 전석초대인 무료공연이었습니다.

 

공연 목록에서 이 공연이 예정되어 있는 것을 보고
화요일만 되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국악 공연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중2 아들에게
어떤 공연인지 대충 설명한 다음 같이 가자고 권했더니
"무지 재미없을 것 같지만, 들어는 보고 싶다"는 반응을 보여서 일단 녀석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데는 성공했습니다.

 

공연시간인 7시 30분에 간신히 맞춰서 도착한 탓에
그리 좋은 자리를 차지하지는 못했습니다.
무대를 보고 왼쪽으로 치우친 자리였고 앞에서 네번째 줄이었습니다.

국악원 공연을 가끔 가지만 대부분 우면당이나 예악당의 공연이었기 때문에
2013년에 새로 만든 이 풍류사랑방에서 공연을 보는 것은 저로서는 처음이었습니다.

 

입구의 신발장에 신발을 넣고 입장하도록 마루바닥에 의자도 반좌식인 독특한 공연장이었습니다.
모두들 양말만 신은 채라, 공연 중에 관객이 입장해도 소리가 전혀 안나는 장점이 있었습니다.

 

총 130석 밖에 되지 않는 작은 홀이지만 마이크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
음량이 작은 국악기 공연을  열 수 있도록 했다는 설계 취지를 공연 뒤에 알게 됐습니다.
예악당은 마이크가 필요하겠지만
더 작은 규모의 우면당에서는 마이크 없이 공연이 많이 이루졌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이날 공연을 주최한 서울줄풍류보존회는 세 번째 정기 연주회를 갖는 국악단체였습니다.
주로 국립국악원 정악단 및 경기도립국악단 단원들로 구성된 이 단체의 설립 취지는
일제시대 일본 컬럼비아사에 의해 취입된 조선정악단의 SP 음반의 연주를 현대에 복원하는 작업이라고 합니다.

1929년부터 1933년 사이에 발매된 이 최초의 영산회상 음반은
CD로는 서울음반의 국악 복각 시리즈인 불멸의 명음반 Vol. 6-7에 나누어 수록되어 있고
그 음원을 바탕으로 채보하여 연주하는 공연만 벌써 3회에 이르게 됐다고 합니다.

 

그 SP 음반의 단체는 조양구락부, 조선정악전습소, 정악구락부, 조선정악단 등의 이름으로
활동했는데 이름이 많지만 모두 동일한 민간 단체가 시대별로 다른 이름을 사용한 것이라고 합니다.

 

서울음반의 CD는 SP의 짧은 수록시간 때문에 악장이 이어지지 않고, 뒤죽박죽 섞여 있는 데다가
두 장에 나눠 수록되어 있기 때문에 감상용으로는 불편한 면이 많았습니다.
부분만 떼서 보면 관악기 중에 피리가 주가 되어 있긴 하지만
대금 연주가 놀랍도록 유창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공연 시작 전에 먼저 나오셔서 해설을 해주신 거문고를 맡으신 박성아씨에 의하면
이 유성기 음반에 수록된 연주들은 연주자 개인의 즉흥성으로 인해
현행과 다른 선율 및 리듬형태를, 예를 들어 삼분박 대신 이분박, 보여주는 부분들이 군데군데 있다고 하였습니다.

 

마침 그날 오전에 노동은 교수님의 친일음악론을 읽고 있었던 저는
책에서 한국 민속 음악은 3박자이고 트로트가 2박자라는 부분을 읽은터라
손을 들어 '혹시 일제의 영향일까요?'라는 질문을 할 뻔했습니다.

 

만약 그렇다면 강압적인 일본식 음악교육이 행해지던 일제시대에 박자가 일본식으로 변형된
조선정악단의 연주를 복원하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하는 의구심이 살짝 들었습니다.

 

악기배치는 제가 앉은 자리에서 가까운 무대 좌측 앞줄에 가야금이, 가운데에 양금, 그 우측에 거문고가 자리잡고
그 뒷줄에 해금, 대금, 피리 그리고 가장 먼 자리에 장구가 위치했었습니다.
대금과 장구만 흰색 상하의 남성이고 여성단원들은 상의는 보라빛으로 통일하고,
치마색은 오색의 다양한 색깔로 배분되어 있었습니다.

 

위의 내용에서 아시겠지만 통상적인 편성에서 단소가 빠졌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사실은 공연 전에 웹을 통해 미리 알고 있었고, 단소가 빠지고 공연되는 영산회상 공연이
처음도 아니어서 어느 정도 각오를 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전까지 영산회상 전곡 공연을 2회 본 경험이 있습니다.
아음회의 2008년 3월 공연 그리고 정농악회의 2011년 3월 공연이었습니다.
두 공연 모두 우면당에서의 연주였는데, 그중 아음회의 공연이 단소가 빠져있었습니다.

 

영산회상에서 왜 단소를 빼고 연주하는 공연이 흔한지 그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단소가 관악기 중에서는 '체력적으로' 연주하기 쉽기 때문일까하는 생각도 해봤고,
대금과 피리 소리에 비해 너무 튀기 때문일까도 생각해봤지만 정확한 이유를 알 수 없었습니다.

 

2003년에 최초로 유성기 음반을 복원해서 연주해온 아음회가
단소 단원이 없는데 서울줄풍류보존회가 그 컨셉을 그대로 계승했기 때문일 수도 있고
단순히 이 단체에 단소단원이 없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정작 조선정악단의 음반에는 단소와 피리 모두 쓰였고 (음반에는 피리주자 고재덕의 이름이 누락됨)
악단 구성상의 한계로 가야금이 빠져있습니다.

 

상령산 처음을 보통 강한 거문고 독주로 시작하는데
이날 공연은 조선정악단 연주처럼 모든 악기가 같이 시작하는 방식이어서
상령산의 인상은 흔히 음반으로 듣던 연주들과 매우 달랐습니다.

 

이 곡이 처음엔 매우 느리지만 갈수록 점점 빨라지는 템포를 가진 것은 아시죠?
템포와 함께 그 음량마저 상령산에서 가장 여리게 시작해서 뒤로 갈수록 음량을 키워가는 해석을 선택했습니다.
상령산에서 남성적인 호연지기를 기대했지만 이런 맛도 있구나 하고 새로운 체험을 하게 됐습니다.
집에 와서 가지고 있는 음반들을 들어보니 더욱 그렇게 느껴졌습니다.

 

이날 공연에서는 정농악회의 가진회상 음반(신나라)처럼 상현도드리와 하현도드리 사이에 도드리를 넣었는데
SP 음반에 수록된 것과 같은 잔도드리인데다 주선율보다 리듬이 강조되면서
도드리적인 위풍당당함 보다는 타령을 빨리 연주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뒤에 진짜 타령이 나올 때에 앞선 악장이 반복되는 느낌이 들었을 정도였습니다.
이런 부분이 아마도 유성기 음반과 현행 악보의 차이가 아닌가 추측됩니다.

 

가장 잔가락을 많이 연주하는 단소가 없기 때문에 선율이 도드라지지 않는 점은
어쩔 수 없었지만 보통 여러 악기 중 한 악기가 돋보이는 결과를 낳을 가능성이 높은데도 불구하고
악기간에 고른 음량으로 매끈하고 세련된 합주를 들려준 점이 돋보였습니다.

 

후반부로 가면 대금과 피리주자들이 아껴둔 체력을 모두 쏟아부으면서
상당히 큰 음량이 되었는데 곧 있을 삼일절 100주년을 축하하는 듯한 경사스러움이 공연장에 가득했습니다.

 

염불이 끝나갈 때쯤 제 오른쪽 자리의 여학생들은 모로 누워 자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왼쪽 자리 아들을 보니 눈을 감고 있길래 깨웠더니 안잔다고 짜증을 내더군요.

 

곡 시작 전 해설에서 50분 동안 쉬지 않고 연주될 것이기 때문에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격언을 언급했었는데,
이 곡의 군악에 이르면 서양음악의 브루크너 교향곡의 절정과도 같은 음악적 황홀경에 도달하는 곡임에도
그 멋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은 것이 저로서는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일반적인 영산회상의 끝 곡인 군악이 끝나고 바로 천년만세로 이어지게 되니
후반부의 경쾌함이 꽤나 길게 지속되는 효과가 있었습니다.
오른쪽의 여학생들은 이때쯤엔 이미 깨어나서 장단을 맞추며 즐거워하더군요.
흡사 슈만 피아노 곡 사육제의 끝 곡과도 같이 경사스런 우조가락도드리가 끝났을 때
그 사그라지는 멋진 잔향이 지금도 귀에 선한 것 같습니다.

처음 접한 풍류사랑방은 국악기에 맞게 잔향 시간이 짧게 튜닝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선지 우면당에서 보다 훨씬 소리가 작게 들리는 단점이 있었습니다.
국악에서 풍성한 울림이 과하면 독이 되겠지만 적당한 울림은 작은 악기 소리를 키워주는 역할을 했었거든요.

 

한편 장구 소리는 전혀 모난 데 없이 그 특유의 중독적인 소리를 뽐낼 수 있는 울림이 나왔는데
아무래도 홀의 고음과 저음의 잔향이 다르게 튜닝되어 생긴 결과 같습니다.
고음은 흡음제를 줄여 좀 더 살리고, 저음은 반대로 더 죽여도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날 공연에서 가장 아쉬운 것은 음악외적인 부분이었습니다.
바로 객석 뒤 출입구 쪽에서 들리는 온풍기 소리였습니다.

 

공연이 시작되기 전, 청중들의 박수가 끝나고 연주를 시작하려고 연주자들이 앉은 상태에서
완전한 무음이 되지 못하고 귀 뒤로 웅하는 팬소리가 들리고 있었기 때문에
비어있는 가운데 라인 뒷자리에 앉을 걸 그랬다는 욕심이 쑥 들어가게 했습니다.
무대에서 멀수록 그 잡음은 더 크게 들렸을 테니까요.

 

그 잡음은 후반부가 되어서 악기들의 소리가 커지자 잠시 묻히기도 했지만
모든 연주가 끝난 직후 그 적막을 비집고 들어왔습니다.
당일 날씨도 포근했는데...
좀 춥더라도 공연 중에는 온풍기 제발 꺼주시기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공연이 끝나고 오는 길에 아들의 소감을 물으니 "예상보다 더 재미가 없었다"였습니다.
모든 곡이 템포만 다를 뿐 비슷하게 들린다나 ㅠㅠ 자기는 흥이 넘치는 공연을 기대했다고 합니다.
그래도 어떤 악기가 제일 멋지더냐고 물었더니 '겁나 큰 피리'라고 답하더군요.
또 다른 여섯 명의 단원들과 달리 유일하게 악보 없이 연주한 양금 연주자는 '고인 물'이라고 놀라워했습니다.

 

한가지 더 건의하면
저 같이 이 곡을 수십년째 듣고 있는 사람들도
어디까지가 상령산이고 어디부터가 세령산인지 구분이 어렵습니다.
앞으로 영산회상 공연을 하면 현재 연주하는 악장이 무엇인지
자막 등으로 알 수 있게 해주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보통 클래식 음악 공연은 실황으로 들은 적이 있는 곡은 피하게 되는 경향이 생기는데
영산회상은 다른 연주로 듣고 또 듣고 싶은 매력이 있어 다른 단체의 영산회상 공연도 앞으로
빠지지 않고 들을 계획입니다.

 

이날 공연은 객석이 모두 차지는 않았고 그나마 연주자들의 친지들이나
인접한 한국종합예술학교의 학생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영산회상 전곡이 국립국악원에서 무료로 열리는데 130명짜리 홀을 다 채우지 못하는 것은
홍보부족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국악애호가들이 너무 없다는 안타까운 마음에 긴 글 남기게 됐습니다.

 

이런 국악 공연을 들을 수 있는 서울은 오스트리아 빈 보다 더 살기좋은 도시입니다.

작성 '19/03/02 2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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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

좋은 후기 잘 읽었습니다 관심은 있는데 아직 국악은 좀 더 많이 들어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19/03/03 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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