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카롭고 강렬한 브람스의 추억..
http://to.goclassic.co.kr/concert/1810

아직도 떨리고 흥분되는 마음을 진정할 길이 없어 기어이 키보드를 두드리게 되었습니다.

 

길고도 먼 귀양살이.. 제가 여건상 몇 년째 경북 어느 소도시에 머물면서 문화적인 소외감을 단단히 경험하고 있습니다만, 오늘 정명훈과 드레스덴 향(이하 Staatskapelle Dresden을 편의상 이렇게 부르려고 합니다.)덕에 단번에 그 목마름이 해결되었습니다.

 

길게 쓸 생각은 없습니다. 연주회를 다녀 오신 분들은 아마 모두 공감하시리라 믿습니다. 오늘 밤 지휘자 정명훈은 독일의 이 유서 깊고 자존심 강한 오케스트라를 손아귀에 넣고 마음껏 자신의 음악을 노래했습니다. 스쳐가는 스산한 바람에도 마음 속에 낙엽이 우수수 떨어져 버릴 것 같은 가을 날의 차가운 공기도 오늘 밤 그가 만들어 낸 뜨거운 브람스의 열기를 금방 삭이지는 못했습니다.

 

브람스 교향곡 1번에서 정명훈은 마지막 남은 불씨까지도 온전히 산화하는 가슴 벅찬 피날레를 선사했습니다. 아 얼마만에 미친 듯이 날뛰는 저의 심박동을 느껴보는건지 모르겠습니다. 가슴을 찢는 듯 비수처럼 내리치는 팀파니.. 그리고 웅혼한 호른의 함성, 후반부로 갈수록 지휘자의 교묘한 템포의 완급 조절이 빛나고 말 그대로 '마법의 하프'처럼 조였다 풀었다 가슴을 옥죄는 통에 숨이 막혀서 나중에는 탄성조차 나오지를 않더군요. 종결부를 향해 치고나가는 현악기군과 팀파니, 금관의 넘실거림이 빈틈없이 맞물려나가면서 장쾌하게 전곡을 마무리하는 순간, 오늘 연주는 이것으로 끝나도 좋다 싶었습니다.

 

후반부의 4번 교향곡은 차라리 1번과 순서를 바꾸어 연주했어야 했다고 생각합니다. 1번 피날레의 흥분이 채 가시기도 전에 쉬는 시간이 끝나버리는 통에 4번 교향곡은 덤으로 듣는 기분이었습니다. 덕분에 후반부는 드레스덴 향의 아름다운 음색에 마음껏 취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사실 브람스 1번은 종악장만 아니었다면 자칫 평범한 연주가 될 뻔 했을 정도로 현악부와 목금관이 완전히 조화를 이루지 못한 모습이었습니다. 호른의 음색은 간간이 생경하게 들렸고 2악장의 유명한 클라와 오보의 대화도 그냥 평범하게 들렸습니다. 하지만 4번 연주는 달랐습니다. 단원들의 기량이 물이 오를대로 올라 보이더군요. 드레스덴 향의 음향은 음반에서 듣던 것처럼 포근하고 부드럽게 들렸습니다. 4번의 2악장이 이렇게도 아름다운 음악인 줄 처음 알았습니다. 세종 측도 무대 양옆에 흡음판(제 추정입니다.)을 쳐 주어 지나친 잔향을 막아주어서인지 현악기군의 음색은 정말 황홀하더군요. 종악장 느린 변주부의 플룻 솔로도 정말 감미로웠구요.

 

마무리하면, 오늘 연주는 드레스덴 향의 음악이라기보다 정명훈의 음악에 가까웠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그렇게 느꼈습니다. 그의 연주를 실황으로 자주 접한 것은 아니지만, 십여년 전 멋모르고 들었던 바스티유 오페라 관현악단과의 생상 교향곡이나 몇 년전의 라디오 프랑스 필과의 드뷔시 바다 같은 연주들이 얼마나 훌륭한 것이었는지 감회가 새롭습니다.

 

정말.. 브람스 때문에 향기롭고 또 감미로운 밤입니다. 이런 경험이 언제 또 제게 찾아올까요?

 

 

 

작성 '06/11/17 2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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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

오랜만에 재인님 공연후기를 보니 기분 좋네요. ^^ 전 일요일 인천공연 예매하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재인님 후기를 보니 더 기대되네요. ^^

06/11/17 2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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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l***:

앙콜곡이 무엇이었습니까?

06/11/18 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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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a***:

헝가리 무곡1번이었습니다...

06/11/18 0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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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k***:

임재인님의 감상에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1번과 4번이 바뀌었으면 좋았을껄...4번에서는 음색에 취해서..저는 1번 피날레때 눈물이 왈칵 나왔습니다. 정명훈선생은 칼 한자루 가슴에 품은 검객 같았습니다. 때로는 천근추의 술법을 쓰듯 무겁게, 때로는 섬광같은 검기로 산악을 쪼갤 듯 강렬하게. 신검합일의 경지로 악단을 다루어 잊지못할 브람스를 들려준 마에스트로에게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두달전 베를린 슈타츠카펠레-바렌보임의 브람스4번을 듣고 왔는데, 그보다 좋으면 좋았지 조금도 못하지 않은 4번이었습니다.

06/11/18 0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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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w***:

이거는 좀 딴지입니다만...
차라리 교향악단 내지 악단으로만 쓰는 것이 낫다고 봅니다. 어차피 교향악이란 한자어가 일본서 나온 것은 아시아 한자권 공히 쓰는 것인데, 교향악단을 줄여서 '향' 하는 것은 축소지향의 일본식 언어인지라 쪼매~ 거시기합니다...
드레스덴 국립(악단)이라고 쓰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요? 아무래도 '드레스덴 향'은 일본 냄새가 너무 나서요...
(그렇다고 일본어 안쓰는 국수주의자는 아니구요...)

06/11/18 0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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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

제가 무지한 관계로 '** 향'하는 표기가 일본식 냄새를 풍기는 표현인줄 미처 생각을 못했습니다. 여러 번 쓸 용어를 굳이 '** 교향악단'하기도 뭐하고 해서 그랬을 뿐이랍니다. 사실 'staatskapelle'를 적절한 표현으로 줄여쓰기 곤란한 면이 있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베를린 필'이나 '빈 필'과 같은 표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조희영님? 마찬가지로 일일이 '베를린 필하모닉'또는 '빈 필하모닉'이라고 써야하겠군요? 각각 BPO또는 VPO라 줄여쓰는 방법도 있겠습니다만 아직은 '** 필'이 한국인에게는 더 친숙한듯 합니다만..

06/11/18 0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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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

작은 파도처럼 시작한 물결이 조금씩 조금씩 높아져 웅대한 해일이 되어 가슴을 뒤덮어버리는 쾌감을 느끼게 해줘서.... 그런 피날레를 가진 브람스 1번을 좋아해왔고 어제도 그런 기대감으로 연주회를 보았습니다. 그 이상을 , 말로 표현하기 힘든 그 이상을 보고 느끼고 돌아왔습니다. 정말 멋진 피날레였습니다.

06/11/18 1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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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

브람스 1번&4번이라 갈까말까 진짜 갈등했었는데 결국 세종홀에서 연주해서 포기. 그런데 좋으셨다니 정말 아쉽네요ㅜ.ㅜ 근데 재인이형 뵌지 진짜 오래된것 같네요. 얼굴 까먹겠다-_-;

06/11/18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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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

석현.. 오랜만이네 그려^^ 조만간 웅이랑 대구에서 바렌보임 '신들의 황혼'이나 냅다 때리며 옛 추억을 되살려볼까 하는데.. 자네도 시간되면 오게나~

06/11/18 2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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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

멀리 사는 친구가 금요일 공연을 선택했군...나도 사실 브람스 더 보고 싶었지...하지만 어제 공연도 후회없는 최고의 연주였고...덤으로 <마탄의 사수>까지 들었으니...그거 들으니 대구에 사는 모 바그네리안 생각이 나더군...아 옛날이여.

06/11/19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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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

그러잖아도 자네가 토욜 공연 갈 걸로 예상했네 친구.. 브람스는 정말 평생 잊을 수 없는 기억이 될 거야.^^ 그나저나 웅이 설올라오면 회포나 한번 풂세..음악얘기도 실컷하고~

06/11/19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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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

네 시간되면 내려갈께요.

06/11/19 2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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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u***:

Sächsische Staatskapelle Dresden은 외국에서는 SSKD 혹은 SKD 정도의 이니셜을 쓰는 모양입니다. 한국말로 번역하면 드레스덴 국립관현악단 정도 되니… "드레스덴 국립관" 정도의 약칭이 있겠지만 차라리 SKD 쪽을 쓰는 쪽이 보기도 편하고 길이도 짧고 그러네요…

06/11/22 2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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