래틀 베를린 필 베토벤 교향곡 사이클
http://to.goclassic.co.kr/concert/2975
사이먼 래틀이 지휘하는 베를린 필의 베토벤 교향곡 사이클을 돌고 왔습니다. 두 주에 걸쳐 두 번 사이클을 돌렸는데 저는 주로 첫 주의 공연을 갔고 4 번, 7 번만 둘째 주 공연을 보고 왔어요. 바쁘신 분들을 위해 두괄식 한 줄 요약하자면 전체 방향성을 보여준 개성적 연주는 1 번, 래틀이 제일 자신있게 준비한 카드는 7 번(근데 목관이 삑삑거림ㅋㅋㅋ), 정석적으로 호연이었던 건 5 번, 기본은 했다 싶었던 건 3 번, 9 번, 제 주관적으로 좋은 인상 받았던 건 2 번, 아쉬운 부분이 있었던 건 4 번, 6 번, 아예 안 맞는 옷처럼 느껴졌던 건 8 번이었습니다. 연주 영상들이 제깍제깍 베필 홈페이지에 올라와있으니 래틀의 베토벤이 어땠나 맛배기 보고싶은 분들께는 1 번과 7 번 추천드립니다. 제가 느끼기에 제일 개성이 뚜렷했던 연주들이라 얼추 이 곡들이 맘에 드신 분들은 래틀과 상생이 맞는 거고 영 아니다 싶으신 분들은 인연이 아니구나 하심 될 듯요.

이제 본격적인 수다. 얼핏 봐서는 베를린 사는 사람들은 베필이 연주하는 베토벤은 실컷 들을 것 같지만 유명한 곡들 단품 말고 교향곡 전체를 한 시즌에 다 연주하는 건 의외로 드뭅니다. 오히려 2 차 대전 전에는 자주 있는 이벤트였는데 카라얀 시대 와서부터는 주로 돈 되는 해외에서나 연주하고 정작 베를린 현지에서는 잘 안 해줬대요. 카라얀 임기 전체를 통틀어 베를린에서 베토벤 교향곡 전곡 돌린 건 딱 한 시즌밖에 없었답니다. 베를린 주민들보다 도쿄 사는 사람들이 더 카라얀이 지휘하는 베필의 베교 세트를 더 자주 들었다고….역시 엔화 앞에 장사 없다는 건 공연계 진리입니다.

아바도는 숫제 해외 투어에서만 베토벤 전곡을 돌리는 바람에 베를린 사람들이 아바도가 지휘하는 베필 베교 사이클이 궁금하면 음반을 사서 듣는 수밖에 없었고(…) 래틀은 몇 년 전에 한 시즌에 베토벤 교향곡을 다 돌리긴 했었는데 베토벤만 모아서 한 게 아니라 베베른 작품이랑 짝을 맞춰 돌린 탓에 안티들에게 베토벤만으로 승부하기에는 쫄렸냐는 둥 역시 지도 모르고 남들도 모르는 현대 음악으로나 먹고 사는 지휘자답다는 둥 까였습니다…. 아무래도 그걸 유일한 베토벤 사이클 기록으로 남기고 퇴임하기에는 뭣했는지 드디어 래틀이 진검승부 하겠다고 나왔는데 앞으로 이걸로 빈, 뉴욕, 도쿄 등 해외 열심히 돌 거라고 하니 역시 이번 달에 베를린에서 한 건 리허설이었던 거 같습니다(…). 음반 내는 것도 일단은 베를린 공연 녹음이 기반이긴 한데 그거 그대로 내는 게 아니라 다시 수정 연주해서 낸다고 하니까 제가 본 건 유료 리허설이 맞습니다.

이번 사이클이 래틀의 베필 최종 성적표나 다름 없고 이걸로 음반 장사도 해야 하다보니 래틀이나 연주자들이나 무척 공들여 준비한 게 첫날부터 감지됐습니다. 저는 그간 베필 연주회는 객원들이 지휘하는 공연들을 봤고 그나마도 영상 녹화 안 하는 날들 위주였어요. 당연히 군기들이 빠져 있죠. 그래서 평소 좀 나사가 빠져 있던 베필에 익숙해져 있다 „우리는…음반을…팔고 말 것입니다….팔아야만…합니다….“하고 이 악물고 연주하는 연주자들을 보니까 와 얘들이 사실은 이렇게 연주할 수 있는 애들이었나 하고 어안이 벙벙했습니다. 2 번이랑 5 번 보고 온 날 제가 평소 일기 쓰는 카페에 남겼던 후기가 뭐였냐면 „안드로메다에서 리허설 하던 베필 1 군이 마침내 돌아온 모양입니다.“ 였습니다.

단원들 기합 들어간 거 말고 해석 측면에서도 곡이 작은 부분들까지도 꼼꼼히 다듬어져 있는 게 귀에 뜨이더군요. 제가 본 그간의 정기 공연들은 객원들이라 시간이 없어서였는지 아님 지휘자들이 레퍼토리에 완전히 익숙해져 있지 않았던 건지 관객들에게 큰 인상을 줄 수 있는 극적인 포인트들은 나름 잘들 잡는데 곡 전체적으로 해석이 완전히 다듬어져 있다는 느낌은 없었어요. 오히려 저한테 그런 느낌을 준 건 베필 말고 다른 오케 공연이었죠. 지난 여름 주빈 메타가 베를린 슈타츠카펠레랑 말러 3 번 연주하러 왔을 적에 전체적인 완성도가 젊은 지휘자들이랑은 클래스 차이가 있길래 와 이게 연륜이구나 이래서 지휘자는 좀 묵혀야 된다는 거구나하고 감탄했던 기억이 납니다. 제가 더 놀랐던 건 그게 원래 바렌보임이 하기로 되어 있다 메타가 대타로 뛰어들었던 공연이었는데도 결과물이 그랬단 점이었는데…사실은 바렌보임이 다 해놓고 간 거에 메타는 숟가락만 올린 거였다면 뭐 할 말은 없고….

헌데 그 ‚지휘자가 곡의 모든 부분을 열심히 공부해서 자기 주관을 세운 뒤 악단에게 실행을 시키는‘ 느낌이 래틀이 1 번 지휘할 때부터 팍 느껴지더라고요. 1 번이 첫 곡이다 보니 래틀로서는 „봐라, 이게 내 베토벤이다!!!“하기 위해서라도 뭔가 뚜렷한 컨셉을 보여줄 필요가 있었는데 래틀의 1 번 특징은 ‚마치 후기 작품들처럼 연주하는 1 번‘이라는 데 있었습니다. 뭔 소리냐면 1 번이 베토벤 초기작이라 아직 선배 작곡가들의 고전파적 색깔이 많이 남아있잖아요. 우리가 베토벤 교향곡, 하면 흔히 떠올리는 괜히 심오하고 괜히 드라마틱하고 우르르쾅쾅 하는 이미지는 1 번이 아니라 좀 더 뒷시기의 작품들과 낭만주의적 해석 경향이 만들어낸 거죠. 근데 래틀은 우리가 베토벤에 대해 갖고 있는 이미지를 바로 1 번에다 뒤집어 씌웁니다. 1 번이 벌써 드라마틱하고 강렬해요. 첫날 공연 끝나고 나온 언론평 중 하나가 „1 번부터 이리 연주해서 나중에 5 번이나 9 번은 어떡하려고 그래?“였을 정도로요. 스포일러 해드리자면 마치 „걱정 ㄴㄴ해.“하듯 5 번이랑 9 번은 당연히 더 요란했죠.ㅋㅋㅋ 근데 5 번이랑 9 번은 그렇게 연주하는 게 정석이니까 래틀의 해석이 특별히 튄다는 느낌은 없었어요.

래틀이 1 번을 연주한 방식은 고증이랑은 하등의 상관이 없습니다. 베토벤이 1 번을 작곡할 당시 머릿속으로 상상했던 음악은 절대 래틀의 지휘봉 아래서 베를린 필이 내던 소리가 아니었을 겁니다. 그런데 저는 그 부분이 재밌었어요. ‚베토벤이 상상하던 바로 그 음악‘에 충실하자면 시대 연주라는 대안이 있죠. 고증 면에서는 베필이 시대 연주 단체들의 경쟁 상대가 될 수 없어요. 베필이 상징하는 건 다른 겁니다. ‚그 시절의 진짜 베토벤‘ 말고 ‚우리 문화의 일부가 된, 우리 머릿속의 베토벤‘이요.

베토벤 사후 악기들이 개량되고 악단의 규모가 커지고 연주자들이 전문화 되고 음악학이 하나의 학문으로 정립되고 클래식 음악이 교양의 한 요소가 되는 등 클래식 음악과 예술의 위상이 높아지면서 베토벤과 베토벤의 음악은 신화화가 되었습니다. 베토벤은 악성이고 베토벤의 음악은 무겁고 심오하죠. 그런데 이게 진짜 베토벤이냐 아니냐를 따지는 건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왜냐면 이렇게 후세가 해석해내고 가꿔온 이미지 또한 이미 우리 문화의 일부가 되었으니까요.

그리고 독오계 오케스트라들은 베토벤 신화의 중요한 축을 담당하고 있죠. 저는 독오계 오케스트라들이 베토벤을 연주하다 소리가 무거워진 건지 아님 원래 소리가 무거운 독오계 오케스트라가 레퍼토리로 삼아 줄창 연주해대는 바람에 베토벤 해석이 무거워진 건지 선후 관계가 궁금한데 아마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같은 우문일 겁니다. 오케스트라와 음악 산업의 발전, 베토벤의 신화화가 맞물리면서 함께 무게를 얻은 거겠죠.

이런 무거움이 제 취향이냐면 그건 아닙니다. 9 월 초에 마이클 틸슨 토마스가 샌 프란시스코 심포니를 이끌고 베를린에 와서 베토벤 3 번을 연주했었는데 제 입맛에는 그 가볍고 고운 소리가 더 맞았어요. 제가 어쩌다보니 베토벤 교향곡을 첼리비다케로 배우는 바람에;;; 저는 극적인 부분을 뚜렷하게 강조하는 것보다는 차곡차곡 꼼꼼하게 쌓아올리는 스타일을 더 선호합니다. 이 바닥이 원래 작곡가 의도고 해석 전통이고 나발이고 내 취향이면 장땡인 바닥 아니냐능. 돈 내는 건 난데 작곡가 귀신이랑 평론가들 눈치 봐야겠냐능.

근데 취향 스트라이크 존은 아니더라도 이거 재밌네 할 수는 있는 거잖아요? 래틀이 지휘하는 1 번을 들으며 제가 그랬습니다. 제 본래 취향도 아니고 고증에 맞는 것도 아닌데 19 세기와 20 세기를 거치면서 쌓아올려진 어떤 유서 깊은 전통 위에 래틀이 있는 게 보였어요. 전세계에 베토벤 신화를 전파하는 데 일익을 담당한 묵직한 악단을 데리고 ‚우리가 생각하는 전형적인 베토벤‘을 1 번에다 뒤집어 씌우는 바람에 진짜 베토벤보다 어떤 의미에서는 더 베토벤스러운 게 나왔어요.ㅋㅋ

한편 2 번은 제가 베필의 연주력 자체에 감탄한 곡이었습니다. 평론가들은 2 번 얘기를 별로 안 하는 걸로 봐서 그냥 저만 평소 제대로된 베필 연주를 못 봤다 보니 혼자 놀란 것 같은데ㅋㅋ 제 자리가 마침 악단이 전체적으로 조망되는 위쪽 좌석(다른 말로 하자면 제일 싼 자리)였거든요. 그래서 연주자들이 일사불란하게 팔을 움직이는 게 시각적으로도 잘 보였고 그래서 귀로만 듣는 것보다 더 인상이 강렬했어요. 1 악장이 특히 마법같았죠. 오케스트라의 각 파트가 주거니 받거나 서로 대화를 하기도 하고 으르렁거리며 긴장도 타면서 유기적으로 살아 날뛰는데 그 파트 내 개개의 연주자들은 마치 한 사람인 것처럼 딱딱 맞춰 연주를 하는 거예요. 개개인은 오히려 전체의 일부로서 기계들인가 싶을 정도로 정확하고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데 그 개인들이 모여 만들어진 파트는 생생하게 살아서 감정과 이야기를 담는 게 뭔 마술쇼도 아니고…. 베필은 다른 날들도 대단한 연주력을 보여주긴 했습니다만 뭐든 초반이 더 강렬하고 시간이 지나면 익숙해지다보니 제일 제 인상에 강하게 남은 건 2 번 1 악장이었어요. 내 평생 이 곡을 이 정도 수준으로 연주하는 걸 어디서 또 생으로 들어보려나 싶었습니다. 베필이 드뷔시나 차이코프스키는 다른 나라 악단들보다 못해도 그러려니 할 수 있지만 베토벤을 남들보다 못해서는 곤란하잖아요? 2 번 듣는데 „이 곡은 우리가 세상에서 제일 잘 합니다. 우리는  이 작곡가의 곡을 세상에서 제일 잘 연주하기 위해 존재하는 악단입니다.“라는 포스가 느껴졌어요.

이번 사이클을 돌면서 저는 베필과 래틀이 얼추 시너지가 맞는 편이라고 느꼈습니다. 좋은 쪽과 나쁜 쪽 모두로요. 베필은 기본적으로 무겁고 억센 소리를 내는 악단이고 래틀은 다이나믹함에 대한 감각이 있어요. 래틀의 그 장점이 특히 잘 산 게 7 번이었습니다.

이번 사이클에서 4 번과 7 번은 특별히 영화관에서까지 생중계가 됐습니다. 래틀이 특별히 공들여서 자신 있게 내세운 곡들이라는 거죠. 제 입맛에 4 번은 3 악장까지는 영 밍밍해서 래틀이 무슨 근자감으로 그 곡을 내세운 건지 모르겠는데(…) 7 번은 처음에 음 몇 개 울리자마자 아 이래서였구만 하고 알겠데요. 4 번 연주하고 나서 휴식 시간에 지휘자 이하 단원 전원이 찬물로 세수하고 온 거 같았음요.

래틀은 7 번의 특징을 극한까지 끌어올렸습니다. 7 번이 원래 곡 자체가 좀 정신 사납잖아요. 래틀 버전은 좀 사나운 게 아니라 완전히 사납더라고요. 아니, 이게 욕이 아니고, 되게 강렬한 연주였어요. 일반적인 7 번 연주가 와인 한두 잔 마시고 기분 내며 춤추는 느낌이라면 이건 거의 원시성까지 느껴질 정도로 강강강강으로 밀고 나가는 게 완전 술 처먹고 날뛰는 것 같은…. 다시 말하지만 이건 까는 게 아니라 칭찬입니다. 오케의 기술적인 연주력도 미친 수준이었고 지휘자 해석도 좀 미친 거 같은 게 일부러 저리 연주하려고 해도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근데 그래서 저는 괴로웠습니다. 왜냐면 7 번 자체가 원래 제가 별로 안 좋아하는 곡이거든요. 원래 취향 아닌 곡을 그 곡의 개성을 극한까지 강조해서 연주해주니까 생리적으로 괴롭기까지 한 게 고문이었습니다. 근데 괴로운 와중에도 느껴졌어요. 내가 지금 이 연주를 싫어하는 것과 바로 동일한 이유에서 이 연주를 무지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겠구나 하고요. 개성 있는 연주일수록 호불호가 뚜렷하게 갈리잖아요. 취향 맞는 사람은 이거 미치도록 좋아할 수도 있겠네 싶었습니다. 그리고 누가 래틀 베토벤 어땠냐고 물어보면 1 번이랑 7 번 권유해주면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한편 저는 7 번을 들으면서 래틀이 목관에는 별로 신경 안 쓰나하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6 번 들을 적에 숑 가야 하는데 안 가는 순간들이 있어서 베필이 목관이 좀 약한가 했는데 7 번에서 그놈의 피리들이 열심히 삑삑거리고 있길래(저 악기 소리 구별 못해서 목관 중 구체적으로 어느 악기였는지는 모르겠어요) 지휘자가 얘들한테 무심하구만 -_- 했습니다. 7 번이 래틀의 회심의 카드라서 자기 맘에 들 때까지 엄청 연습 시키고 다듬었을 거거든요. 근데도 피리가 저러는 건 그게 래틀 귀에는 안 거슬렸단 얘기겠죠. 그리고 래틀이 여기서 두 자릿수 세월 해먹으면서 자기 입맛대로 소리 다듬을 시간은 충분히 있었을텐데 탑 오케치고는 목관이 약하다는 건 그 쪽은 상대적으로 신경을 덜 쓰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여간 한국이고 독일이고 현악 주자 구하기보다 관악 주자 구하는 게 더 힘든가봐요.ㅋㅋㅋㅋ

반면 8 번은 제 귀에는 총체적 난국으로 들렸습니다. 이건 기대치의 문제예요. 베필이 베토벤 전곡 연주한다면 사람들은 역대급까지는 아니더라도 현재 시점에서는 레퍼런스 급이 될만한 연주를 기대하기 마련이잖아요? 그치만 8 번은 베토벤 교향곡들 중 이질적으로 가볍고 상큼우아한 곡입니다. 제 생각에는 연주력 웬만큼 되는 챔버 오케스트라들이 베필보다는 이 곡의 매력을 더 잘 살릴 것 같습니다. 그리고 래틀은 장단점의 방향성이 베필과 비슷한 지휘자라 베필이 원래 잘할만한 곡에서는 긍정적인 시너지를 내는데 베필이 약한 곡에서는 그걸 커버쳐주지 못하는 듯요. 제가 왜 이리 생각하냐면 같은 베필이라 해도 아바도랑 8 번 연주할 때는 달랐거든요. 아바도는 제가 유투브 영상으로밖에 못 봤습니다만 베필이랑도 8 번을 말이 되게 연주하는 것처럼 보였어요. 근데 래틀 버전 8 번 듣고 온 날 제 일기는 „베토벤이 현대음악처럼 들립니다. 뭐하자는 곡인지 모르겠는데 지휘자도 모르는 것 같습니다. 지금이 1812 년인가효?“ 였더랬죠.

하지만 이건 제 인상이고 제가 읽어본 베를린 일간지들은 8 번도 호평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다른 분들 중에는 래틀 버전 8 번 좋아하는 분들도 계실 듯요. 저도 제가 기대치가 너무 높았던 게 문제였던 것 같다는 생각을 하긴 하는데(그 전날의 2 번과 5 번을 좋게 들었었거든요) 다만 8 번을 더 낫게 연주할 수 있는 악단과 지휘자는 현 시대에도 여러 곳에 있을 것 같다는 게 제 감상이었어요. „이 곡은 우리가 세상에서 제일 잘합니다.“가 아니라 „음반을 세트로 팔려면 어쨌든 8 번도 있어야 하니까…최대한…귀척을 해보이겠읍니다.“로 들렸음. 평론가들 말로는 8 번 때 베필에서 챔버 오케같은 매력을 느꼈다는데 제 소감은 내가 살면서 챔버 오케 한 번도 못 본 줄 아나 어디서 약을 팔아 베필이 머릿수만 줄인다고 챔버 오케되면 아무 챔버 오케나 머릿수만 늘이면 베필되냐 였을 뿐이고…. 

6 번도 곱고 예쁘게 연주해야 되는 전반부는 좀 기대에 못 미치고 슬슬 시끄러워지는 후반부가 더 낫게 들렸습니다. 베필과 래틀 둘 다 예쁜 부분보다는 역동적인 부분에서 더 빛을 발하는 것 같았어요. 그러다 보니 5 번은 호연이었고 3 번도 체면치레는 했습니다. 9 번은…불행히도 제 소감이 안 남은 게 제 자리운이 나빴어요. 주위 다른 관객들이 부산스러웠던 데다 심지어 제 뒤에 앉은 사람은 막 4 악장 성악 파트 시작될 즈음에서 종이를 찢더군요. 누군가의 멱살을 잡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며 인류애를 노래하는 가사에 몰입하기란 매우 어렵잖아요? 전 베토벤과 달리 귀머거리가 아니라서 누가 뒤에서 그러면 몹시 신경이 쓰인단 말입니다…. 립싱크로 가사 따라 부르면서 쉴러뽕이나 빨다 오려고 했더니만, 망할.

이제 1 번부터 9 번까지 다 한 줄 이상 언급은 했나요? 헥헥…. 평소 성악 오페라 코너에 서식하던 성악빠로서 베교 사이클을 돌아본 소감은 거 오케 덕후들은 체력도 좋구만이었습니다. 오페라는 반지 사이클도 쉬엄쉬엄 올리건만 이놈의 기악 공연은 왜 관객들한테까지 주5 일 출근을 시키는 겁니까? 그 탓에 저는 이 사이클 도는 동안 저녁이 없는 삶을 살았습니다. 기악 덕질하려면 보약 먹어가며 해야할 듯요.
 
작성 '15/10/17 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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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

잘 읽었습니다.
9번 부분은 글로만 읽어도 현장에서 느끼셨을 괴로움이 그대로 전해지는 것 같습니다.

15/10/17 0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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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

간간이 듣는 래틀/베필의 베교는 그렇게 무거운 연주가 아니었는데, 이번엔 강성(?) 연주를 들려준 모양이군요. 아마도 베를린필 자체 레이블로 나올 가능성이 많아 보이네요. 잘 읽었습니다.

15/10/17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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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i***:

네.....잘 봤습니다. 이번 사이클을 통해 베를린필과의 베토벤교향곡 작업을 마무리하겠네요. 이런저런 연주와 리허설을 섞어서 음반을 내겠지요. 래틀은 빈필과 함께 이미 베토벤교향곡 전집을 냈지요? 베를린필과의 브람스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그렇게 큰 주목을 받지는 못했던 걸로 기억합니다. 래틀의 베토벤이나 브람스는 솔직히 그렇게 기대가 되진 않네요. 너무 국수주의적 발상인지는 모르겠으나 차라리 그 지휘봉을 정명훈 선생에게 주면 베토벤이나 브람스교향곡은 더 잘할 수 있지 않겠나 싶습니다. 베를린필도 정히 그렇게 마음에 드는 지휘자를 구할 수 없다면 빈필처럼 상임이 없는 체제로 가면 어떨까요? 영국 등 비독일 출신 지휘자들이 와서 오케스트라의 색깔을 애매모호하게 이끌어가는 것보다는 독일다운 색채를 견고히 하면서 필요한 지휘자를 불러다쓰는 시스템이 더 바람직하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또 베를린필 자체 레이블로 나오면 가격도 만만치 않겠네요. 슈만처럼 말이죠. 아무튼 글쓰신 분 소중한 경험을 하셨네요. 최고 악단 베를린필의 베토벤교향곡 사이클을 전부 보시다니...글에 있는 바와 같이 베를린 시민들도 쉽게 접하기 어려운 경험일텐데 말이죠...

15/10/17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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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

2008년 모스크바에서 래틀은 베토벤 7번 연주할 때 콘트라바순을 가필했었는데 이번에도 그것을 고수했는지 궁금하네요.

15/10/17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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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

올해 4월 RCO 베토벤 내한공연 4일동안 볼 때 휴가를 냈는데, 정말 휴가 아니었으면 완전히 쓰러졌겠구나 싶었습니다. 이번에 베를린필은 다섯번으로 나눠서 연주하는데, 이게 맞는 것이겠지만, 4일에 전곡하는 것은 경제적인 문제가 있겠죠. 연주자들도 짧은기간에 전곡 하려면 엄청난 집중력 필요할 것 같습니다. RCO는 서울에서 시차 및 체력적 문제, 일부 핵심멤버 결장으로 인한 흔들림에서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보니까 아예 파리에 개관한 새로운 콘서트홀에서 하는 베를린필 베토벤 전곡을 보는 투어 패키지도 한국에서 모집하더군요.

15/10/17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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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0/18 0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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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평소 래틀에 대해서는 거의 기대와 관심이 별로 없었고 그래서 덩달아 필하모니커에 대해서도 관심을 상당히 잃은 터였는데 공연 소감 재미있게 읽으면서 호기심이 불쑥 생기는군요. 그 정신사나운 7번 꼭 들어보고 싶습니다. 특히 목관이 7번답게 제대로 삑삑거리는지 궁금합니다.

15/10/18 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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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

저도 지난주와 이번주 내내 베토벤 치클루스를 들었는데, 어떤건 글쓰신 분과 의견이 같지만, 어떤건 좀 다른면이 있네요. 전체적으로 래틀이 정말 열심히 준비한게 보였던 연주들이었구요, 저 역시 5번 7번은 상당히 멋진 연주였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만약 래틀/BPO의 베토벤 전집을 구입한다면, 이 두 연주만으로도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구요. 하지만 저는 지난주에 9번을 들었는데, 다른 번호에서 들려주었던 짜임새나 합주력보다는 조금 못한 연주를 보여주었고, 특히 지난주엔 독창자, 특히 소프라노가 재앙 수준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호흡도 몇번이나 끊기고 소리조차 오케스트라에 완전히 뭍혀버렸었죠. 앞으로 투어를 통해서 더 다듬어진다면 분명 훌륭한 전집이 되지 않을까 기대하는 바입니다.

15/10/18 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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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

솔직한 후기 잘 읽었습니다. 11월 빈에서의 사이클은 사정상 3일만 가게 되는데 기대감이 좀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베를린필이 DCH 생중계할 때와 그렇지 않을 때 집중력 차이는 큰 것 같다 생각했는데 heilt님 글 읽고 확인된 것 같아 기분 좋네요 ^^

15/10/19 0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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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0/19 0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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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0/19 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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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

ㅋ 잘나가다가 삼천포로 빠지는..금년 봄 틸레만과 베를린필의 베토벤 3번 영상을 보시고도 그런 생각이 든다면???

15/10/19 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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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0/22 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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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b***:

글을 너무 잘쓰시네요 좋은 후기 잘 읽었습니다ㅏ;-)

15/11/24 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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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

아주 흥미롭게 감상평 잘 읽었습니다. 제가 평상시 생각하는 래틀의 역동성, 다이내믹한 측면의 강점과 악단 특색에 대한 인상을 바탕으로 감상평을 읽으니 안봐도 본것같이 생생하게 어땠을지가 그려지네요. 또 시대 고증적인 측면에 대한 고민이나 5일 연짱 출근하다시피 하며 들으러 가는것의 체력적인 부담감에 대한 서술은 올해 있었던 RCO의 베토벤 전곡 사이클 때의 제 개인적인 경험과 어우러져서 매우 공감하며 읽었습니다. 다만 베필의 목관이 약하다는것은... 알브레히트 마이어, 에마뉴엘 파위, 벤젤 푹스같은 슈퍼 솔리스트들이 즐비한 베필의 단원 구성으로 보나, 제가 갔었던 콘서트에서 느꼈던 래틀/베필 목관의 아름다운 음색의 경험으로 비추어볼때 잘 상상이 가지 않는군요. 마치 하늘에서 별사탕이라도 내리듯이 아기자기 천상의 음색의 향연이라고까지 느꼈던 베필의 목관이 시끄러울정도로 삑삑대기만 했다면 그것은 의도적인 연출이거나 싸이클의 특성상 그날은 언급한 목관 수석들이 교대 차원에서 안나왔을수도...? 하이튼 이부분은 미스테리네요. ^^::

16/01/09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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