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클 합창단, 시시포스의 운명
http://to.goclassic.co.kr/concert/2980
부산 문화회관 대극장.
여기서 얼마나 많은 연주자들이 웃고 혹은 울었을까?

세상에서 가장 잔인한 경기장 가운데 하나가 이곳일거라는 생각을 한다.

대극장 1층을 거의 메웠던 관객들이 빠져나간 극장 로비가 바라보이는 벤치에 앉아 나는 다소 우울한 상념에 젖는다.

신의 저주를 받은 시시포스는 거대한 바위를 굴려 산 정상으로 올린다.

그러나 항상 그 끝점에 이르기전 바위는 굴러 떨어지고 그래서 다시 올리기 시작한다.

그런 노동의 반복이 신이 시시포스에게 내린 저주다.

대신 시시포스는 영원히 죽지 않는다. 뮤클 합창단은 시시포스의 형벌을 받았다.

음악의 산은 높고 험하다.

지난 10여년 동안 레퀴엠 혹은 테데움 혹은 미사곡, 그러니까 음악의 무겁기 짝이 없는 여러 바위들을 산 정상으로 끌어 올렸다.

그러나 시시포스가 그랬듯 바위는 항상 정상에 오르기전 굴러 떨어졌다.


뮤클 합창단의 베토벤 칸타타 '고요한 바다와 즐거운 항해'는 참으로 즐거운 항해였다.

바다는 깊고 푸르렀으며 청량한 바람이 불고 있었다. 능숙한 선장이 조심스럽지만 기분좋게 배를 몰고 있었다.

깨끗하고 아름다운 합창이 바닷바람을 극장안으로 끌고 들어왔다.

베토벤 소나타 열정의 1악장 연주는 내게 의문으로 남는다.

왜 피아니스트는 베토벤의 많은 단악장 피아노 연주곡을 두고 열정의 1악장만을 쳤을까?

그것은 긴 소설의 처음부분만 읽고 전부분을 이해하라는 것과 다르지 않다.

시간이 없었다면 짧은 수필이나 시를 연주했으면 되었다.

1악장만 연주를 하고 박수하는 관객과 박수를 받는 연주자 모두 민망하고 생뚱맞다.

미사 c장조를 작곡한 베토벤은 아마 독실한 기독교인은 아니었을것이다.

무엇보다 실존적인 사유에 음악적 몸부림을 친 인간 베토벤은 하늘의 울림에 가까운 미사곡은 '체질'에 맞지 않았을 것이다.

미사곡은 바흐의 담백하고 자연스런 종교적 일상이나 부르크너의 처절한 기도가 더 아름답다.

미사 솔렘니스나 미사c를 작곡하는 베토벤은 그래서 맞지 않은 옷을 입고 꽤나 불평하고 힘들었을 터다.

베토벤의 성악은 그의 합창교향곡에서 최고의 모습을 보인다.

베토벤은 기도하는 신의 아들이 아니라 피터지게 절규하는 인간의 아들이다.

아벨이기보다 카인이다. 카인이 신의 노래를 부른다는 것은 아무래도 어색하다.

나는 베토벤의 종교음악을 듣고 있으면 동생 아벨을 돌로 쳐죽인 나쁜 남자 카인이 기도하고 있다는
느낌을 어쩔수 없이 받는다.

그런 어색함의 탓일까. 아니면 곡을 완전히 장악하지 못한 합창단의 역량 때문인가?

고요한 바다에서 즐거운 항해를 하던 합창단이 돌연 거친 바다를 만나 비틀거린다.

힘겨운 항해가 시작된다.
반쯤 새어든 물을 담고 합창선은 무겁게 항해한다.

균형잡힌 노의 역할을 해야하는 네명의 솔리스트는 힘있고 균형잡힌 노가 되기엔 다소 벅차다.

서로 각개전투로 난국을 헤쳐나가는 모습으로 비친다.

베토벤 미사c장조는 들떠있다. 음악은 관객을 편하게 주저 앉히고 영혼을 흔들어댈 의무가 있다.

그러나 지금은 나를 불안하게 하고 영혼은 혼란스럽다.

이것이 미사곡을 지은 베토벤의 한계인지, 아니면 합창단의 한계인지 알 수 없다.

이제 관객이란 어떤 존재인가라는 생각을 할 때가 되었다.

한국만해도 5천만명의 사람이 있고 듣는 귀가 있다. 결국5천만의 느낌이 있고 그래서 평가의 잣대가 있다는 말이다.

하나의 음식을 두고 짜다는 사람이있고 싱겁다는 사람도 있다. 어쨌든 맛이 있어야 한다.

그럼 지금의 베토벤 미사c장조는 내게 어떤 음식일까?

수많은 관객중 하나에 불과한 나는 지금 좀 싱겁고 맛이 제대로 나지 않은 음식을 먹고 있다.

그러므로 아뉴스 데이가 끝난 순간에 시시포스의 돌이 툭 떨어지는 소리를 듣는다.

그렇게 지독히 노력했던 지난 1년이 허무하다.

그런데 나는 왜 순수한 민간 합창단에 불과한 부산의 뮤클 합창단에게 이토록 뻔뻔스럽게 많은 것을 요구한단 말이냐.

이제10년이 지났고 11년째다.

100층이 넘는 초고층 건물은 계단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계단이라는 축적이 있어 건물은 존재한다.

뮤클합창단은 10년동안 계단을 쌓아 돌을 굴렸고 또 10년동안 시시포스처럼 산의 정상에 이르기전 돌을 떨어뜨렀지만

시시포스만큼 허무하지 않은건 산의 가장 아랫층에서 다시 시작해야하는 악질의 운명은 아니라는 것이다.

해마다의 연주가 성공이었든 실패든 그것은 오롯이 경험이 되고 경험은 축적된다.

가을이 넘치는 이 부산 문화회관 잎마당에 낙엽이구른다.

문득 이토록 아름다운 세상을 두고 언젠가는 내가 죽을텐데...

그 땐 얼마나 슬플까?

그 아름다운 세상속엔 뮤클 합창단 또한 포함한다.
작성 '15/11/01 1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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