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국립오페라단의 [라 트라비아타]
http://to.goclassic.co.kr/concert/2988



국립오페라단의 <라 트라비아타>


12월 12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연출. 아흐노 베르나르
지휘. 이병욱
비올레타. 이윤경
알프레도. 박지민
제르몽. 김동원

그란데오페라합창단 &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





토요일 마티네로 보았습니다. 4층은 오픈하지 않고 3층까지 오픈했는데 거진 좌석이 다 찼더라구요. 대중적인 작품이다 보니 가족단위로 오는 관객도 많고, 오페라극장의 크리스마스 장식도 설레던 연말분위기 공연이었습니다.

무난하게 서곡이 진행되면서 막이 올라갑니다. 아 근데, 연출이 서곡부터 정말 대단하더라구요. 파티의 모든 사람들이 스탑모션처럼 정지해있고 비올레타 혼자 방황을 합니다. 술을 마시는 모습, 수다를 떨며 화려한 모습으로 멈춰진 파티장 속에서 비올레타 혼자 헤메입니다. '갈 길을 잃은 여자'라는 원제를 적극적으로 해석한 대목이었습니다. 서곡이 끝나면서 파티가 진행되자 스톱모션이었던 파티장이 움직이기 시작하며 비올레타도 파티에 참여합니다. 오케스트라가 좀 더 북적북적한 파티 분위기를 내주었으면 하는데 관악기의 볼륨이 너무 작더군요.



긴 파티용 테이블이 대각선으로 놓여진 무대 연출 아래, 그란데오페라 합창단이 정말 괜찮은 연기를 보여주었습니다. 축배의 노래 처럼 중요한 대목에서는 모든 합창단과 조연이 스톱모션을 취하고 비올레타와 알프레도만 움직이는데, 이러한 연출이 주연들을 돋보이게 하는 동시에 알프레도와 비올레타 사이의 관계에 자연스럽게 빠져들게 됩니다. 듀엣이 끝나면 또 합창단들이 움직이기 시작하고 파티가 계속 되죠. 그런데 이런 스톱모션이 전혀 어설프지 않고 자연스럽고 드라마틱하여 효과적이었습니다. 합창단과 조역들이 많이 연습한 것 같습니다. 특히 이러한 파티와 사교생활이 비올레타에게 독이 된다는 연출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알프레도에게 동백꽃을 준 뒤, 파티사람들이 귀가하기 위해 비올레타에게 인사를 하는 장면에서 그들은 샴페인잔을 마치 권총처럼 비올레타를 향해 일제히 겨눕니다. 광란처럼 고조되는 합창 속에서 파티 사람들은 비올레타를 계속 저격하고 비올레타는 괴로워 합니다. '이런 화려한 생활은 당신에게 해로워요'라는 알프레도의 충고 그대로지요. 보통 이 장면은 아주 우아하고 화려하게 파티를 마치는데 이런 극적 은유를 가미한 시도가 아주 재밌었습니다.

2막은 꽃잎이 가득 뿌려진 정원에서 진행됩니다. 막이 올라가기 전에 '하하호호 까꺄꼬꾜'하는 소리가 들려서 웬 용감한 관객소음인가 했더니 알고보니 비올레타와 알프레도의 행복한 웃음소리였다는... 2막의 주인공은 역시 제르몽이죠, 지팡이 딱딱 짚으면서 나오는 꼰대포스가 정말 대단했습니다. 보통 제르몽을 부정을 가진 인자한 아버지, 혹은 사회적 편견에 가득 찬 사랑의 훼방꾼의 두 가지 측면에서 해석을 하는데 이번 연출은 후자의 성격이 강해보였습니다. 꼿꼿한 제르몽은 비올레타에게 손길 한 번 주지 않고 비올레타는 비탄에 빠진 채 괴로움에 허덕입니다. 이 둘의 음모에 알프레도는 속아 넘어가고 분노에 차오르죠. 'Di Provenza...'가 끝나고 격노한 알프레도가 앞으로 나서면서 제르몽의 긴박한 카발레타가 시작됩니다. 이 시점에 꽃잎으로 가득찬 무대는 막이 내려옵니다. 이미 그들의 행복은 끝났다는 은유겠죠?

2막 2장 플로라의 파티장면은 아주 훌륭했습니다. 키다리 광대부터 투우사, 집시 무희들까지 나오는 파티는 아주 문란하고 광적입니다. 어느 정도 설레고 행복한 기분이 남아잇던 1막의 파티보다 훨씬 막장인거죠. 샴페인병을 마치 페니스처럼 잡고 술을 따르고 사람들의 눈은 탐욕에 가득차 있습니다. 아이보리였던 비올레타의 드레스는 검은색 우단드레스로 바뀌었네요. 사랑이 좌절된 세상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듀폴 남작은 비올레타를 거의 싸구려 창녀처럼 대합니다. 바닥에 내던지고...돈으로 산 사랑을 강요하고. 어딘가 잘못 돌아가는 파티에 알프레도가 나타나고 알프레도는 드디어 비올레타에게 돈다발을 던집니다. 파티에 참석한 사람들은 아무런 동정도 인간애도 없죠, 그저 재미난 스캔들이 일어난 것에 대해 깔깔거리고 위선적인 위로를 던질 뿐입니다.

3막은 반듯했던 무대 벽면들이 구불구불해져 있습니다. 비올레타는 이미 죽음이 다가왔고... 쓸쓸한 저택에서 마지막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난 비올레타의 심정은 구구절절합니다. 평생의 유일하게 만난 순수한 사랑이 꺾이었다 이제 다시 모든 오해가 풀렸는데 자신의 목숨이 다한 운명은 얼마나 비참한가요. 훌륭한 연기가 이어지고 드디어 비올레타가 사랑하는 알프레도의 품속에서 숨이 멎을....엥? 알프레도를 만나 다시 기운이 난다고 외치던 비올레타가 파리의 축제 거리로 나가려고 발버둥을 치다 쓰러집니다. 무대 위의 모든 인물들은 그저 서서 비올레타의 죽음을 바라볼 뿐... 전 막에서 훌륭한 연출이었지만 이 마지막 엔딩장면은 전혀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얼룩진 삶 속에서 알프레도 덕분에 진정 순수한 사랑을 맛본 비올레타가 마지막 순간 사랑하는 이의 품이 아니라 거리의 축제로 뛰쳐나가려고 한다니요. 파리의 사교계는 결국 끊을 수 없는 마약이었다는 말일까요? 그렇다면 이 연출은 너무나 지독합니다. 같이 공연을 보았던 이들도 이 엔딩장면에 모두 의문을 제기하였습니다. 너무나 감동적이고 세련된 연출에 감동을 받다 마지막 장면에서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었습니다.



소프라노 이윤경은 울림이 아름다운 목소리로 비올레타를 잘 소화해냈습니다. 몸을 사리지 않는 연기도 훌륭했고 눕거나 쓰러져서 노래를 부르는 장면은 아주 헌신적이었습니다. 아시다시피 그런 자세에서는 소리 내기가 쉽지 않으니까요. 다만 음정이 자꾸 플랫되는 경향이 있었고 1막의 마지막 아리아에서 장식적인 고음은 다소 무리스러워 보여 생략해도 좋았을 것 같습니다. 2막 1장에서 제르몽에게 강요받는 장면은 특히 훌륭하였습니다. 아직 신예 성악가인만큼 조금 더 체력과 노하우가 붙는다면 훌륭한 비올레타가 될 것으로 기대됩니다.

테너 박지민은 대타로 <라 트라비아타>에 참여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이전에도 좋은 무대를 많이 보여줬기에 믿음직스러웠습니다. 패기넘치게 사랑을 고백하는 알프레도인가, 아니면 소심하고 우유부단한 알프레도인가... 박지민은 후자에 가까웠습니다. 볼륨이 아주 작고 섬세한 목소리로 알프레도를 부르더군요. 저렇게 유악하고 우유부단한 남자라면 비올레타의 거짓말에 쉽게 넘어가겠다 싶은 극적 설득력은 있었습니다. 다만 성악적인 쾌감에서는 다소 아쉬운 면이 있었죠. 그러나 1막에서 부족한 존재감과 달리 2막으로 넘어가면서 더 적극적인 알프레도를 보여주어 만족스러웠습니다. 음량은 작았지만 음정으로나 호흡에서 모두 준수하였습니다.

제르몽 역의 바리톤 김동원은 가장 카리스마 있는 주역이었습니다. 우렁차고 엄격한 노래로 제르몽의 캐릭터를 잘 살렸습니다. 마치 아침드라마의 얄미운 시어머니처럼 악역을 자처하여 극의 긴장감을 불어넣었지요. 아버지의 부정을 내세우지만 어딘가 위선적인 느낌도 잘 살렸구요. 2막의 중요한 아리아 'Di Provenza...'에서 브라보도 울렸습니다.

마에스트로 이병욱이 지휘하는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는 나쁘지 않았다고 생각됩니다. 크게 실수하거나 극의 흐름을 망친 부분은 없던 수수한 반주였습니다. 그러나 음량이 많이 작았다는 아쉬움이 남네요. 성악가들의 성량이 작은 편이어서 오케스트라의 음량을 조절할 필요는 있지만, 주역들의 아리아가 아닌 합창단이 나오는 부분에서는 합창에 완전히 묻혀서 잘 들리지 않았습니다. 들어갈 때 들어가고 나올 때 나오는 것이 오페라 반주의 묘미인데, 나올 때 안 나오더군요.
특히 각 막이 시작되고 끝나는 부분에서는 오케스트라가 화끈하게 끝맺음을 맺어줘야 넘어가는 맛이 있는데 그러한 굴곡이 없으니 좀 심심하더라구요. 오케스트라 편성도 좀 작았고 마티네 연주다 보니 점심을 굶으셨던 것이 아닌가...ㅎ


그란데오페라합창단은 별 다섯 개를 주고 싶습니다. 성악적인 완성도는 차지하더라도 연출에 자연스레 녹아드는 우수한 연기가 아주 인상적이엇습니다. 특히 1막의 스톱모션 장면은 자칫하면 완전 어설픈 연출이 될 뻔 했는데, 정말 영화의 특수효과처럼 잘 소화해내더라구요.물론 음량조절이나 딕션에서 좀 더 섬세한 완성도가 아쉬운 부분도 있었지만 전반적으로 아주 훌륭했습니다.


국립오페라단이 제작하다보니 기본적인 퀄리티는 보장되고 티켓가격도 저렴한 편이라 가족 관객들이 아주 많더라구요. 라 트라비아타 정도라면 초보자가 보기도 쉬울 뿐 아니라, 연말을 맞아 오페라를 보는 멋도 즐길 수 있으니 이런 관객층이 더 많이 올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국립오페라단이 올해 많은 부침도 겪고 새로운 시도도 많이 했던 것으로 아는데, <라 트라비아타>또한 많은 도전과 기대감이 엿보이는 공연이었습니다.
작성 '15/12/17 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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