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인의 황금> 아쉽지만 충실했던 공연
http://to.goclassic.co.kr/concert/1265
<라인의 황금>에서 알베리히는 사랑을 포기한 댓가로 라인 강의 바닥에서 빛나던 황금을 탈취해서 절대 권력의 반지를 갖게 되지만 제 꾀에 제가 속아 이를 보탄에게 빼앗기고 만다. 신들의 우두머리 보탄은 로게의 계략 덕분에 알베리히로부터 반지를 갖게 되지만, 그 역시 아내와 처제에 대한 사랑보다는 절대 권력에 더욱 집착하다 결국 리젠하임의 거인족에게 반지를 내주고 만다. 보탄으로부터 반지를 넘겨 받은 파프너와 파졸트는 반지를 갖고 다투다 결국 형제끼리 죽고 죽이는 싸움을 한다.

버나드 쇼는 돈과 권력에의 집착이 결국 사랑을 포기하도록 했다며 <라인의 황금>을 통해 물질만능주의와 자본주의의 속성을 통렬히 비판했다. 바이로이트 100주년을 기념하는 파트리스 셰로/불레즈의 프러덕션은 이러한 현대물질문명에 대한 비판에 다름 아니었다.

물론 <반지>전체가 어느 정도 이러한 메시지와 관련이 있지만 내 개인적으로 <라인의 황금>만큼은 이런 비판적 내용을 수용한 연출을 보고 싶었기에, 기대감이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었다. <발퀴레>나 <신들의 황혼>같이 음악적 완성도가 보다 더 탁월한 작품에 비해 음악 자체가 갖는 매력이 다소 떨어지는 것도 작용했다.

공연을 다 보고 난 다음에는 그런 생각들이 다소간 바뀌게 된 것은 사실인데, 그렇다고 일관되게 하나같이 모두 좋기만 한 공연은 아니었다.

1장은 알베리히의 무대였다. 무대 내부 전체가 물 속이고 황금은 무대 가운데 첨탑 모양으로 돌을 쌓아 만들어진 높은 봉우리 꼭대기에서 빛났다. 황금빛깔의 조명이 굽이치며 무대 전체를 휘감아 물 속에 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켰고 라인강의 세 처녀와 알베리히의 몸동작도 이에 부응하며 출렁이는 듯한 인상이었다. 만화의 한 장면같은 아기자기한 무대와 리차드 폴 핑크의 익살스런 알베리히 연기 덕에 시간 가는 줄 몰랐다.

3장 초입에 로게와 보탄이 니벨하임으로 내려가는 장면은 대단했다. 진짜 무대가 통째로 위로 움직이며 순식간에 지하 세계로 내려가는데, 빠르고 경쾌한 리듬의 니벨룽 동기가 사라지면서 모루망치 소리만 요란하게 남는 순간 무대 안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기막힌 흥분과 요상한 기분은 공연을 본 사람들만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천하의 메트도 알베리히가 타른헬름 투구를 쓰고 용으로 변신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는지 무대 위의 숲 뒤로 연기를 뿜는 용머리만 살짝 보여주는 것으로 그쳤다. 로게의 계략과 알베리히가 잡히는 장면도 코믹하고 흥미진진했음은 물론이다.

2,4장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은 나머지 부분들에 비해 다소 설명적이고 내용도 복잡하며 등장 인물의 수도 다양하다. 자칫 에피소드의 무의미한 나열이 되기 쉽기 때문에 등장 인물의 목소리와 동작 연기에 상당부분 의지해야 하는 장면들이 많다. 그런 면에서 바렌보임/쿠퍼 반에서 무대 위를 종횡무진 누비며 카랑카랑한 금속성의 음성을 뽑아내던 그레이엄 클락의 로게를 항상 염두에 두고 있던 나로서는 필립 랑리지가 맡은 로게는 평범하게만 느껴졌다. 행동 반경이 좁고 가창에 주로 신경을 쓰는 듯한 그의 차분하고 안정적인 목소리는 로게의 개성을 부각시키기에는 부족해 보였다.

보탄 역의 제임스 모리스와 이름들이 생소한 돈너, 프로, 파프너, 파졸트 역의 가수들은 충실하긴 하지만 누구하나 깊은 인상을 심어줄 정도는 아니었고 그래서인지 4장에서 발할로의 입장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들은 평이하게 느껴졌다.

이 날 따라 현악기군의 음량이 상당히 작게 들려서 오케스트라가 힘을 많이 아끼는 듯한 느낌을 받았고 다음 날 <발퀴레>공연에서도 이런 성향의 연주를 들려줘서 좀 실망했는데, 가수에 대한 배려인지 매너리즘적 연주로 일관한 것인지 잘 판단은 안 되었지만 레바인의 지휘와 오케스트라 음향은 대체로 상식 수준이었다고 보면 될 것 같다. 뭐 그래도 메트 오케스트라의 앙상블 능력은 국내 오케스트라에 견줌을 당할 정도는 아니었고, 특히 오케스트라 피트 오른쪽에 위치한 금관군은 하강 음형의 당당한 계약의 동기나 리드미컬한 거인 동기와 같은 부분을 적확하고 노련하게 연주해 내 무대를 더욱 맛깔나게 만들었다.

여러 영상물을 보면서 느꼈던 것이지만 바그너 공연은 연출이 훌륭하거나, 가수가 아주 잘 하거나, 오케스트라가 빵빵하면 셋 중 나머지 두 가지가 별로여도 상당히 인상적일 수가 있는데, 이 날의 <라인의 황금> 공연은 메트의 명성에 비하면 셋 중 어느 하나도 끝까지 일관된 완성도를 보여주지는 못한 평범한 공연으로 생각된다. (영상물에서 4장의 무지개 다리 장면을 어떻게 만들었을까 참 궁금했는데, 직접 보고도 여전히 의문이 풀리지 않으니-진짜 무지개처럼 보였다!!-이건 아무래도 좀 더 생각해 봐야 할 듯 하다.)
작성 '04/05/11 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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