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호세 신드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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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호세 신드롬

초대권을 선물 받아 잠실 올림픽 주경기장에서 열린 오페라 카르멘을 보았다.

화려한 캐스트에 오케스트라도 수준급으로 연주하여 연주 수준은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공연된 오페라 중에는 88년 라스칼라 오페라 내한공연을 제외하고는 가장 높은 수준이라고 생각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보이지도 않고 울림이 많은 장소에서 스피커를 통하여 오페라를 감상한다는 컨셉 자체가 진정한 감동을 느끼기는 힘든 상황인 듯 싶었다. 오페라 전용극장에서 같은 캐스트로 공연을 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카르멘역을 맡은 가수는 성량은 믿을 수 없을 만큼 풍부하고 연기력도 좋았는데 가끔 빠른 템포의 곡에서는 민첩성이 결여되어 오케스트라보다 뒤처지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주연급 가수 외의 조연급 가수들의 수준도 상당히 높았고 스페인에서 불러온 무용단의 실력도 매우 높았다. 특히 호세 쿠라의 꽃노래는 압도적인 절정이였다.

엄청난 규모의 합창단이 무대를 꽉 채웠는데 가끔은 너무나 많은 사람이 무대에 올라가 있어 촛점이 흐트러지는 경우도 있었다. 특히 2막 주점의 장면에서 3명이 있다가 갑자기 수백명이 갑자기 몰려드니까 장면은 심각한 장면인데도 객석에서 웃음이 나올 정도로 어색했다. 무대가 넓다 보니 음악이 끝나기 전에 입장하거나 퇴장하려면 전력질주를 해야하는 경우가 발생하여 민망함의 극치를 보여주었다.

이 작품은 초연되었을 때 시대를 초월하는 명작임에도 불구하고 큰 호응을 받지 못하여 작곡가 비제에게 절망을 안겨준 작품이기도 하다. 원래는 연극처럼 대화하고 가끔 음악을 연주하는 음악극의 형식이었는데 나중에 비제가 모든 대사를 레치타티보로 개작하여 완전한 오페라로 만들었다.

사실 스페인의 이야기를 불어로 부르고 이태리 사람이 연출하고 한국에서 공연되는 자체가 어떻게 보면 우습게 보일 수 있는 특이한 상황이기도 하다. 한국의 이야기를 중국어로 부르고 일본사람이 연출하여 미국사람이 연주한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흔히 공주병, 왕자병을 신데렐라 신드롬이라고 한다. 자신은 고귀한 존재인데 마치 신데렐라와 같이 불우한 상황에 처하여 현실은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증상이다. 돈 호세는 이와는 다르지만 나름대로 문제가 있는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다.

줄거리는 이렇다. 돈 호세는 오페라 카르멘의 남자 주인공으로 스페인의 하사관이다. 돈 호세에게는 고향에서 알던 청순한 미카엘라라는 처녀가 있었다. 어느날 그는 바람기가 많고 행실은 좋지 않지만 아름답고 매력있는 카르멘을 만난다. 카르멘이 던진 장미꽃에 넋이 나가 꽃을 품에 간직하고 있던 돈 호세는 급기야 카르멘의 유혹에 넘어가 탈영을 감행한다.

카르멘은 사랑은 자유라고 주장한다. 사랑은 구속이 아니라 원할 때는 언제든지 떠나는 자유로운 것이라고 노래한다. 결국 카르멘은 자신이 유혹한 일개 사병인 돈 호세를 버리고 화려하고 부유한 투우사 에스카미요를 따르게 된다.

돈 호세는 한 여자마저 버리고 탈영까지 하면서 카르멘을 따랐는데 왜 지금와서 배신하느냐며 다시 돌아올 것을 요구하지만 카르멘은 이를 조롱하며 거부한다. 격분한 돈 호세는 카르멘을 살해하고 오페라는 막을 내린다.

제3자의 입장에서 보는 관객은 돈 호세가 바람기 많은 카르멘 보다는 순박한 미카엘라를 선택했어야 한다고 혀를 끌끌 차겠지만 실제로 그런 상황에 처했을 때 과연 올바른 선택을 하기 쉬울까하는 의구심이 든다.

인간은 자신에게 이로운 것 보다는 해로운 것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는 듯 싶다. 도박, 마약, 흡연, 과음, 사치, 부적절한 이성관계, 해로운 것인줄 몰라서 하는 사람은 없다. 자신에게 해가 되는 줄 알면서도 하는 것이다. 자신에게 해가 되는 것을 선택하는 성향 이 것을 '돈 호세 신드롬'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진화론적인 관점에서 보면 왜 자신에게 해를 끼치는 성향이 자연발생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자신에게 해가 되는 성향이 있는 개체는 아무래도 생존기간이 짧아질 것이고 대를 거듭할 수록 적자생존의 원칙에 의해 이런 성향이 도태가 되는 것이 이치인 것 같은데.

분수에 맞지 않는 소비성향, 화려한 것을 선호하는 성향, 과도한 목표의 설정, 이 모든 것이 '돈 호세 신드롬'의 증상이 아닐까 생각된다. 화려하고 재미있는 것은 돈이 깨진다. 소박하고 지긋지긋한 것이 돈이 되는 것이다. 사람을 선택할 때도 마찬가지다. 화려하고 재주 많은 사람 보다는 약간 부족해 보여도 나에게 믿음을 주는 사람이 더 나은 사람인 것이다.

싫지만 눈높이에 맞는 선택, 이 것이 올바른 선택이 아닌가 싶다. 19세기의 비극을 보면서 이게 남 얘기가 아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러니한 것은 이러한 교훈을 주는 오페라가 분수에 맞지 않는 소비를 조장하는 돈 호세 신드롬에 편승한 대박을 겨냥한 행사로 제공되었다는 것이다.

두서 없는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작성 '04/05/21 1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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