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누 리파티 [ 탄생 100주년 기념 에디션 ] 박스
http://to.goclassic.co.kr/diary/2125

원래 윗글의 덧글로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몇 단어 적었으나

너무 거두절미하고 썼더니 그 '삘'이 제대로 전달 안됐나 보네요.

그래서 글을 좀 썼는데 덧글의 댓글로는 너무 분량이 많아

걍 원래글의 댓글로 붙입니다.

쓰고 보니 완전 신파조입니다...

 

============

 

많이들 아시는 스토리라 길게 얘기하기도 그렇지만,

리파티는 백혈병 등 이런저런 질병으로 33세로 세상을 떠났죠. 그가 병색이 완연했던 1950년 9월 16일, 브장송 페스티벌 연주 실황 녹음은 젊은 거장의 안타까운 병사와 함께 전설로 전해집니다.

 

이미 고열과 질병으로 주위 모두가 만류했던, 그리고 다량의 주사 효력이 아니면 강행이 힘들었을 그 연주회였습니다. 오전 리허설 후 혼절했을 정도였다니까요. 하지만 청중들이 왔다는 얘길 듣고는 그들에 대한 약속을 지켜야한다며 정말로 힘겨운 발걸음을 떼었다고 합니다.

 

연주회 순서는 바흐 파르티타 1번과 모차르트 소타나 8번, 슈베르트의 즉흥곡 두 곡, 그리고 쇼팽(호핀)의 왈츠였습니다. 특유의 코드 훑기로 연주회를 시작하여 바흐, 모차르트, 슈베르트까지는 그런대로 잘 끌고 왔습니다.

 

한데 쇼팽 왈츠에 와서는 다소 비틀비틀하더니 결국 음반에는 예정했던 14곡 중 13곡만 담겼습니다. 왈츠 14곡을 리파티가 나름대로 배열한 순서에 맞게 5번, 6번, 9번에서부터 시작하여 거의 다 연주했으나 탈진한 나머지 마지막 순서로 두었던 왈츠 2번을 완료 못했기 때문입니다. 끝에서 두 번째인 1번을 연주한 후 2번에 다달아서는 힘겹게 가쁜 숨을 몰아쉬며 건반만 응시하다가 무대에서 내려왔다 하네요. 그러다가 잠시 후 이 창백한 남자는 홀연히 무대로 다시 돌아와 마지막 기운을 모으고 병으로 퉁퉁 불은 손가락(그날 사진을 보면 오른손이 왼손보다 훨씬 큰 것 같습니다)을 들어 마음으로부터 꺼낸 곡은 왈츠 2번이 아닌 바로 Bach의 칸타타 147에 나오는 ‘Jesu bleibet meine Freude(Myra Hess 편곡)’였습니다.

 

어찌보면 주사 약효로 지탱했던 연주회였으나 이제는 그 약효도 다 떨어진 후 정말 고통스러운 자신, 하지만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돌아와 드린 마지막 묵도라고나 할까요, 아니면 육신은 이미 사경에 빠졌으나 리파티의 영혼이 그의 손을 들게 해 읊조린 백조의 노래라 할까요...

 

이 곡은 리파티의 1935년 첫 공식 무대에서 가장 먼저 연주했던 곡이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연주회 3일전에 세상을 떠난 스승 폴 뒤카 추모의 의미로 정식 프로그램 연주에 앞서 먼저 연주했다 하는데 그로부터 15년 후 이번엔 그 곡이 자신의 레퀴엠이 될 줄은 누가 알았겠습니까. 리파티는 그 후 세 달도 못 채우고 베토벤의 현악사중주를 들으며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암튼 나중에 이 실황은 음반화 되었는데 리파티의 죽음을 아쉬워하는 마음이랄까요? 완료하지 못한 2번 왈츠는 5개월전 녹음한 스튜디오 녹음에서 가져와 14곡을 채운 음반까지는 알고 있는데 Bach까지 달려있는 음반은 저로서는 위 CD에서 처음 봤습니다. 물론 이것도 그날의 실황이 아닌 예전에 녹음해 놓은 것에서 찾은 것일 겁니다. 모두 리파티에 대한 추모와 안타까운 마음에서 행해진 가필이요 덧칠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렇다면 그날 리파티가 생애 최후의 연주회장에서 마지막으로 건반을 눌렀던 Bach는 과연 어찌됐을까요? 너무나도 허무한 얘기지만 리파티가 왈츠 1번 연주를 마친 후 힘들어하자 더 이상 연주가 힘들겠다고 판단하여 정말 야속하게도 그 시점에서 녹음 작업을 중단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정작 Bach 연주 때는 귀와 정신이 그쪽으로 완전히 기울어 녹음 버튼을 미처 못 눌렀다고도 하네요(인간적으로 이해는 되지만 참...) 만약 그 녹음이 오늘날까지 남아 67년 동안 지속 재생되어 왔다면 그날의 스토리와 함께 수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주고 그들을 감화시켰을 것이며, 악인들까지 교화시켜 인류 평화는 이미 구현되지 않았을까하는 황당한 상상까지 해봅니다.

 

유사한 일은 리파티보다 33년 먼저 태어난 빌헬름 박하우스에게도 일어난 바 있습니다. 1969년 6월 28일에 카린티아 음악 축제에서 베토벤 소나타를 연주하던 고령의 박하우스는 심장 발작으로 인해 연주를 멈추고는 느슨한 목소리로 ‘죄송한데 좀 쉬어야겠네요...(Ich bitte um eine kleine Pause)’라고 청중을 향해 양해를 구합니다. 그리고는 다시 돌아와 예고된 프로그램이 아닌 슈만과 슈베르트를 두어곡 연주하고는 의식을 잃고 병원으로 후송된 후 일주일 후 숨졌다 합니다. 하지만 EMI와는 다르게 이 상황들은 Decca 음반사를 통해 고스라니 채집되어 노대가의 나즈막한 목소리를 들으며 그를 하늘로 보내는 마지막 길에 동행하는 경험을 가능케 하고 있다는 전설은 지금까지도 오스트리아 오시아흐 호숫가에 이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작성 '17/07/08 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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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p***:

바흐의 그 곡이 비운의 피아니스트 디누 리파티에게는 그런 깊은 사연이 있는 곡이었군요. 잘 읽었습니다.

17/07/08 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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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

제가 갖고 있는 The greatest pianists 시리즈 음반에 ‘Jesu bleibet meine Freude(Myra Hess 편곡)’ 연주가 있는데, 50년 7월 녹음이네요. 일본 도시바와 낙소스에서 발매된 리파티의 마지막 공연실황 녹음엔 이 곡이 수록되어 있지 않고요. 다른 몇몇 음반에 이 곡이 수록되어 있는데, 녹음 연도를 확인해보진 못했지만 아마도 브장송 공연 실황은 아닌 것 같습니다.

17/07/13 0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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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

비록 마지막 공연 당시의 연주는 아니지만, 리파티의 이 연주를 들으면 마지막 공연의 일화가 떠올라 마음이 아픕니다.

17/07/13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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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

this chorale is a leitmotif of his career, which had been the first work he played at his first recital.
Sep. 24. 1947. Studio
말씀대로 다른 녹음을 발췌하였고, 그의 리사이틀 경력중 첫번째 곡이었다는 내용이 부클릿에 나와있군요
극적인 일화를 알려주셔서 배워갑니다. 감사합니다.

17/11/15 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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