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단상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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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단상88 : 몇 만남들


   몇 만남을 기억해 보면, 늘상 만나기는 해도 비로소 의미로 다가와지는 그런 만남으로써, 메시앙과 드비시는 좀 특이한 경우였다.
   어려서부터 음악을 들어왔던 것도 아니고, 또 어떤 경우들처럼 딜레땅뜨나 음악광들과는 전혀 다른, 그저 평범한 아마추어 감상자로서 출발했고, 또 음악을 절대적 우선으로 두지도 않고 오히려 적당한 거리를 두고서  단지 음악을 생활의 활력소나 삶의 동반자나 친구 그정도면 충분하다는 나름의 주관을 가졌고, 지금도 변함없이, 때로는 아니 어쩌면 항상, 음악이란 별 것 아닌 생활의 일부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한 사람으로써, 또한 음악은 아무 것도 아닐 수 있고, 음악보다는 실생활, 삶을 더 중요시하고, 차라리 언제든 음악을 던져 버릴수도 있음을 생각할만하며, 또 음악보다 중요한 것이 참 많다고 변함없이 생각하는 한 사람으로써, 잠시 몇 기억을 되새겨보려 함이다.
   대학시절 내내 틈만 나면 그저 감상실에 자주 틀어박혀있고는 했는데, 그당시 들려오는 곡중에서 듣기싫은 곡들이 있었다. 대표적으로는 드비시였고 그다음은 라흐마니노프 등이었다. 라흐마니노프는 정말 느끼하고 질퍽해서 듣기싫어 죽을 지경이었고, (아무튼 늘려제끼는 루바토의 낭만성은 그 느끼함이 질릴정도로 싫었고,) 드비시로 말하자면 그 분위기가 참 싫은 것이어서 할수만 있으면 피하고 싶은 존재들이었다. 왜 싫은지는 나도잘 모르겠으나 어쨌건 그랬다. 싫은 것으로 말하자면 플룻소리도 참 듣기 싫었다. 반면 오보소리는 참 좋아했는데 말이다. 대금소리도 듣기싫은 것은 왜였는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흐느끼는 듯한 소리여서 였을까.
   드비시가 싫은 것은 건축적이고 일면 지적, 논리적, 확정적인 바흐 베토벤 등에 비해 그의 음악이 너무 대비돼서 그렇지 않은가 생각해 보는데, 어쨌건 그의 음악은 두고두고 분위기에만 치중하는 맥빠지는 곡으로써 싫을 뿐이었다.
   사실 드비시의 곡은 예를들어 3음을 생략해 버림으로써 화음의 성질을 죽여버려서 몽롱하게 만들며, 온음계를 사용함으로써 이끔음을 없애게 돼서 종지감을 없애버리고 병진행화음들을 남발함으로써 더욱 몽롱하게 만들고 비확정적인 음진행을 조합함으로써 전통 음진행을 파괴시키는 방향의 음악어법을 채택하고 있음을 우리는 알 수가 있다.
   그래서 아마도 익숙한 길들여진 내 귀로서는 듣기에 거북스러울 수밖에 없었는지도 모르나, 혹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싫어서 싫은 것일 수도 있다는 얘기다. 싫다는데는 어찌할 수가 없는 것이다. 취향이 그러니 말이다. 성격이 제각각이듯 말이다. 모든 방에는 그 방만의 분위기가 있다는 말처럼 말이다.
   싫어도 들리는 것을 어쩔 수 없어서 그래도 들리는대로 모든음악을 줄기차게 들어댔고, 그 와중에 드비시며 라흐마니노프며 등 듣기 싫은 곡들을 줄기차게 들어야했다. 결국 한참이 흐른후 라흐마니노프와는 무척 친해지게 됐고 (그의 곡을 줄기차게 들어대서가 아니라 내 삶이 여러 기복을 겪으며 감정의 변이점들을 줄기차게 여럿 갖게 됨으로 그렇게 된게 아닌가 생각해 본다.), 반면 드비시는 별로 친하지 않은 듯하다. 지금이야 물론 거의 별로 음악을 듣지 않지만 말이다.
    한편 음악대학진학 후, 듣기에 감동스럽다 여겨지는 연주소리가 들려와서, 그곡이 어떤 곡인지 알지않고서는 베길수 없는 상황까지돼서 나는 홀로 연습하고 있는 음대생에게 급기야 찾아가서 묻게됐다. 아름답기만했던 그곡은 드비시의 곡이었고, 다름아닌 어린이차치 중 기쁨의 섬이었다. 그후 종종 찾아듣거나 가끔 연습도 해보는 곡으로써 드비시의 그곡은 나와의 좋은 만남이었다.
   그런데 마냥들어도 썩 내키지 않는 곡들이 있는반면, 한번에 감동을 몰아서 채워주는 그런 놀라운 첫 만남들도 있다. 바로 메시앙의 경우인데, 이곡 역시 음악대학 진학후 아마 연주수업 관련 연주를 듣고서였을 것이다. 
   사실 메시앙은 작곡과학생들에게는 자주 언급되는 중요 작곡가중 하나다. 메시앙, 바르톡, 스트라빈스키 등은 베베른 쇤베르크 베르크 등과 아울러 필수적으로 언급되는 단골메뉴중 하나다. 기억나는 것만해도 투랑갈릴라 심포니는 여러 용도로 분석되고, 그의 음악어법은 바르톡만큼은 못하지만 바르톡 경우처럼 잘 언급되며, 또 바르톡만큼은 못하지만 그의 곡들이 자주 분석되기도 한다. 그의 작품 음가와 강도의 모드에 관하여는 전음렬주의 음악에 끼친 영향으로 인해 언급되고, 그밖에 그의 음악어법 및 기법으로써 합성음계, 수, 리듬체계 등이 주요사항이다. (근래에는 그의 곡 새의 카탈로그의 장황한 곡을 웬일인지 몇번 듣기도 했다.)
    그런데 내가 처음 듣고서 감탄을 발하며 몰입무아경에 들만큼 전율했던 울림의 연주가 바로 아마도 음대생들이 연주했던 세상의 종말을 위한 4중주곡이었다. 황홀할만큼 신비경에 빠지게했던 좋은 울림이었기에 전율했다. 그냥 아무런 배경없이 들었을 뿐이었다. 
    설명을 펼쳐보면, 1941년 독일군 포로수용소에서 작곡됐으며 몇 개의 선법과 특수한 리듬으로 구성되며, 이는 자신이 구성한 합성음계, 즉 온음과 반음이 대칭적으로 조합된 음계, 또한 이국적 선법, 중세선법등을 부분 포함하고 있다. 또한 특수리듬이 가미돼 전통에서 벗어났다. 이는 인도음악 등의 연구를 통한 것으로, 첨가된 불규칙한 리듬특성을 지니게 된다. 아울러 이 리듬은 확대 축소 역행 이동 등의 기교를 통해 더욱 이국성을 갖게 만든다.
    어느 구절을 보니 호불호가 갈리는 몇 작곡가 중 하나로 바그너와 메시앙이 있다 하는데, 여하튼 메시앙의 경우는 넘어야할 큰 언덕 중 하나로, 특히 음렬음악기법과 화합하지 않은 그의 음악추구정신은 신선하게 받아들여지며, 새나 보석연구 등 자연탐구정신은 본받음직하며, 인도와 그리스 리듬을 연구했고, 그레고리안성가를 연구했으며, 새(소리)의 연구는 결정판이다. 음색에 지대한 관심을 보여 투랑갈릴라 심포니에 반영되고, 리듬의 연구는 심도 깊게 진행됐다. 그의 화성은 흔히 전통화성법이론서의 마지막 부분에 현대음악의 화성으로서 언급 연구되며, 그 논리성과 수에 기초한 화음 조합들은 라모테의 화성학에서 언급되고 있다. 
작성 '10/07/12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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