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단상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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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단상89 :  에피소드3  -바꿔먹기와 우연한 소득, 뜻밖의 만남


   밋밋한 전공수업과 합창공연을 바꿔치기했던 대학시절 일탈 경험은, 그후 한동안은 없었다. 그러나 음악대학 강의실을 드나들었고 많은 과목을 청강했으며, 심지어는 작곡과 강의을 기웃거리게 됐다. 기라성같은 교수님들의 강의를 뒷자리서 숨죽여 청강했고, 특히 작곡과의 수업은 여러면에서 가슴결을 떨리게 만드는 수업이었다. 물론 내전공과는 다른 그쪽 전공생들의 수업이나 분위기는 성질이 다른 것이었다. 한 수업에서는 (아마도 화성법이 아니었나 추측됨)  샤콘느 과제곡을 학생들 각기 작곡하여 바이올린 전공생들이 들어와서 연주해 주는것을 듣고 토론지적이 있었는데 감흥은 늘 새로울 뿐이었다.
   어쨌든 그 비슷한 일탈은 군복무시절 한차례 있었고,  이어 많은 세월이 흐른후, 유학시절 또 한번 있었다. 늦은 나이에 떠난 유학은 비교적 순조롭게 시작됐고 그럭저럭 작곡에 몰두할 수 있었으며, 그러나 사실 또한 이번에만은 미련없이 작곡에만 한번 원없이 몰두해야한다고 다짐했음에도- 왜냐면 작곡에 몰두하기란 그리 쉬운일이 아니어서 어지간해서는 쉽게 도달할수 있는 성질의 대상이 아니기 때문일뿐더러 환경도 작곡하기에 늘 그리 만만치 않기에- 그럼에도 작곡보다는 언제나 피아노 연습에만 또한 시간을 몰아 투자했으며 작곡은 그후에나 할 마음이 생겨나곤 했기에, 이래저래 작곡에 몰두하기란 심리적으로도 쉬운일이 아니었다. 작곡을 할만한 마음이 우러나야 하는데, 그것도 쉽지않고 거기에다 향수병도 있었고 또 쉽게 지치기도 하는등 마음을 잡기란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래서 집중해야하는 피로도높은 작곡보다는 들리는 음향으로 마음을 때려줄 수 있는 악기 연습에만 매달렸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런와중에 작곡에도 진척이 있어 나름대로 좋은 진전을 보였으며, 여러 토론수업에도 나름 활기를 느낄 수 있었다. 그러던 중, 여름이 다가오는 한철에 오후에 한 공연이 계획됐었고, 그 공연은 전자음악 발표회였으며, 그래서 작곡과 학생들은 그 준비로 바쁜모양이었다. 그리고 나같은 사람은 그 프로그램을 돕기까지는 않아도, 최소한 마땅히 참석해야만하는 그런 연주였다.
   나도 당연히 참석할 생각이었다. 전자음향은 개인적으로는 기계음 인위적 조작음처럼 들려, 부자연스럽고 거슬리는 음향으로 들렸기에, 항상 거부감을 갖고 있기는 했으나 작곡전공생으로서는 외면할 수 없는 대상이기에 참석은 해야하리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마침 똑같은 바로 그시간에 인근 교회에서 미국의 한 대학아마추어 학생합창단의 유럽순회합창공연이 열리기로 돼 있었던 것이다. 아! 나는 눈이 트였고, 갈증을 달래줄 오아시스를 만난 것처럼 시원스레 느꼈다.
   미련없이 합창공연쪽으로 달려갔다. 아마도 음악대학 연주홀 근처를 머뭇거리다 시간이 다가오자 미련없이 발길을 돌려 몰래 떠나버렸을 것이다. 그리고는 혼자 앉아 자유와 감동을 만끽하며 그 공연을 즐길수 있었다. 준비로 분주할 학생들의 모습을 한켠으로 몰아내버리고 나만의 여유에 웃으며 말이다. 
   그 연주는 그런대로 들을만 했고, 특히 예측했듯이 바흐음악들을 주로 연주했던 것 같다. 나는 나름 고리타분한 걸 연주하는구나 하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당시 나는 바흐음악과는 상당히 멀어져버렸기 때문이다. 음의 과장이 너무 많고 경직된 음향들은 일면 괴롭고 부담이 되기까지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도 나는 나만의 자유가 좋았고, 아마도 유학생활에서 비롯된 정체불명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난 듯한 자유를 강하게 느끼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그 미국대학의 아마추어 합창단은 그 대학교 음악대학 작곡과의 현존재직교수가 작곡한 곡을 마침내 연주하게 됐다. 나는 당장에 흥미가 당겼고, 그 곡은 시작부터 놀랍게도 단숨에 나의 모든 신경을 휘잡아 몰입하게 만들었고 곧이어 끝없는 신비경 속으로 나를 끌어들고 갔다.
   그곡은 오르간반주가 붙었는데, 그 반주는 신비스런 문양마냥 끝없이 이어진 패턴의 연속이었다. 진행의 느낌이라기보다는 정체된 패턴의 연속으로 속으로 빨려들게 만드는, 얽히고 얽혀진 짜임새신비문양의 느낌의 곡이었다. 역시 패턴은 신비를 부른다. 정교하게 감춰진 패턴구조는 신비구조일 따름이다. 그 작곡가는 Morten Laudrisen(1943- ) 이었고, 그 곡은 O magnum mysterium 이었다. 지휘자는 Dennis Port였다.
    나는 바꿔먹기를 시도한 것이었고, 그것은 우연한 만남이었고, 아, 일대의 몇 안되는 첫 조우였으며 첫사랑에 다름아닌 만남이었던 것이다. 그 곡의 감동때문에 나는 바꿔먹기한 보람을 느꼈으며, 이 쉬 사라지지않는 감동을 지닌 곡과의 만남은 비교적 최근의 경이로운 경험이었다.
   귀국후 그 곡을 더 듣기를 바랬고 마침내 몇번더 들을 기회를 갖게됐다. 그런데 유럽의 한 교회 연주에서 들었던 그곡과는 달리 여기서 들었던 곡들은 무반주였다. 그리고 실연이 아니었고 또 내 음향환경이 열악하여 그 감흥만은 못했으나, 나는 Morten Laudrien이라는 작곡가와 그의 곡 O Magnum Mysterium을 잊지 못한다.
   아, 좋은 곡이란 자꾸 들어서 친하게되는 그런 곡도 있지만 진정 잊혀지지 않는 만남은 첫만남에 사로잡는 그런 곡이다. 아, 첫만남이란 얼마나 신비인가!  그것도 오랜세월만의 늦은 만남속의 첫감흥이라니!  오랜세월만의 첫 만남도 쉽지 않은 주제려니와, 그것도 단번의 만남에 황홀경과 감동이라니! 첫사랑같은 만남이라니 말이다.
    메시앙의 세상의종말을 위한 사중주같은 첫만남의 황홀경과 신비, 클라우스 후버나 이건용, 강석희의 솔로몬과 술람미의 한구절 혹은 달하 와의 첫만남의 바람결같은 신기한 기억들과 아울러, 생각해볼수록 신비스러울 따름인 그의 곡은 나를 황홀경으로 이끈다. 신비로 이끈다.  아, 첫만남의 감흥이여!  황홀경의 기억이여!  첫사랑의 조우여!

  
작성 '10/07/14 2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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