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논고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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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논고1 : 음계의 자원에 관하여


 
  소리는, 그 소재는 다양하게 표현될 수 있는데, 그 중 한 편리로서, 혹은 도구로서, 혹은 전통이나  습관으로서 음계가  사용될 수 있다.

  음계는 추상의 소리가  선율 혹은 화성이라는 음의 구상물로 표현 되어질 때 하나의 척도, 매개물, 징검다리, 혹은 사다리 같은 역할을 한다. 

   매개물이라 함은, 예컨대 햇빛(파동)이 태양으로부터 지구로 도달하려면 우주공간이 아마도 에테르라는 매개물질로 가득차 있어야 한다는 물리학의 이론이 한때를 지배했던 것 같이, 이른바 이 에테르라는 물질처럼 스케일(음계)이 하나의 매개물이 되어 소리추상을 선율화성구상으로 전달해 줄 수 있는 유력하고 유용한 수단이나 척도가 됨을 말함이고, 비슷하게 징검다리라 함은 징검다리가 우리가 냇물을 건널 수 있는 유용하고 편리한 수단인 것처럼, 스케일은 음이 예술이 될 수 있는 하나의 유익한 수단이나 척도가 되는 것이다.
  사다리라 함은 멀리 떨어져 분리되어 있는 곳으로 우리를 옮겨줄 수 있는 도구가 되는 사다리 처럼, 구약성경의 야곱의 사닥다리처럼 하늘과 땅 사이를 연결해주는 매개체, 도구로서 천사가 그 사이를 오르 내릴 수 있는 것 처럼, 그와 같이 음악의 음계는 음의 추상의 세계와 그것이 구상화된 음악의 세계를 연결해 주는 매개체로서 도구로서, 특히 척도, 규준자로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있다고 볼 수 있다.
  
  이 음계는 여러 음악들이 획득한 체계로서 신의 선물인지, 진화의 결과인지, 인간이성의 승리의 결과인지, 혹은 오직 수학적 추론의 결과물인지, 아니면 고안된 발명품인지는 잘 알지 못하나, 어쨌건 특히 서양음악에 있어서 너무나 중요하고도 유용한 하나의 도구이고 수단이요 편리인 것이다.

  물론 음의 표현이 음계전통만을 갖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비음계자원의 전통이 예술 본연의 모습에 더 가까운지도 모르는 일이다. 예술 태동시에는 오히려 음계자원이전의 시대인 것이다. 아니면 분리이전의 시대일 수도 있고. 

   (음악의 기원과 관련하여 리듬(춤, 무용)관련설과 선율(언어)관련설 등이 있는데 리듬관련설이 훨씬 설득력이 있는 것은 리듬이 더욱 원천적이며, 리듬은 음악이전에도, 그것도 단독으로 존재할 수 있고 또 리듬만으로써 음악이 표현될 수 있기에 더욱 그러하다. 어찌보면 리듬이 음악예술 본연의 모습인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는 이른 바 음악의 3요소 중 리듬은 제하고 선율과 화성의 근간, 모태가 되는 음계에 관해서 고찰해 보고자 하는 것이다.
  미개인의 가수는 초인간적, 초자연적인 효과를 노려, 새소리를 묘사한다거나, 천둥소리를 묘사하는 등 근래의 가수와 같은 자연스레 노래하는 방법을 결코 채택하지 않는다. 목소리 음색에 변화를 주는 등 이러한 사실은 음악이 언어에서 생겨났다는 설을 반대하는 강력한 이유의 하나이다(음악의 기원, 쿠르트 작스).) 
   

 이같은 비음계자원의 전통은 예컨대 함성, 탄식, 절규, 한숨, 박수, 발구르기, 때리기, 웃음, 울음, 신음, 고함, 속삭임, 혹은 표정, 제스처, 행위, 퍼포먼스, .. 등 여러 비음계자원의 요소로서 곡 일부로서 혹은 곡 전체구조로서 채택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이런 비음계전통의 선상에는 자연의 구체음, 일상음의 녹음과 그 변형, 소음 등의 활용이 그리고 그와 아울러 궁국에는  전자음의 전자음악이 주요흐름으로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근래에는 이 전자음악의 영향으로 인하여 오히려 전통 기악과 성악의 현대음악이 그 음향과 음색 등을 모방하려는 경향을 보이는 것이다. 

  이런 전자음악의 비음계자원전통의 확대는 규준자 스케일 눈금 편리 도구를 잃어버렸다는 점에서는 애석하고 어쩌면 불편 답답할 일이나, 또다른 한편에서는 그럼으로써, 스케일을 버림으로써, 사다리와 도구를 버림으로써, 징검다리를 깨뜨림으로써 더욱더 자유롭고, 또 창작력의 발원지에 혹 더욱 더 가까울런지도 모를 일이다. 아니면 혹, 더욱더 미궁으로 빠져들어갈런지,  아니면 잃어버린 창작력의 발원지를 정말 되찾음일까? 
  어쨌건 이 전자음악의 비음계전통의 흐름은 무시할 수 없는 경향으로서 현대음악의 새로운 추구임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리고 그 추구의 기저에는, 그 비음계전통추구의 기저에는 다름아닌 예술, 음악의 본래의 모습과 그 행위의 심연이 깔려있는 것이다. 우리 예술행위의 본래모습이 무엇인가? 우리 창작의 발원지가 어디인가? 작곡행위의 뿌리가 무엇인가? 하는 물음에 대한 추구로서 말이다.
  비음계자원을 추구하고 있는 전통악기에의한 곡들의 예로서는, 헬무트 라헨만의 곡들을 들 수 있고, 또 헤스포스의 성악곡들을 예로서 들 수 있다. 이 들 곡은 어찌보면 난해하고 생경한 소리들 뿐인데, 그 곡들이 바로 이 비음계자원의 전통을 철저히 따르고 있기 때문에 그러하다.

  선율,화성의 근저로서 음계는 사실 거의 모든 음악의 모태다. 서양전통음악의 뿌리와 그 흐름들이 그러해서, 교회 8선법의 선법음계와, 장단음계, 메시앙과 바르톡 등의 인공, 합성음계와 그 화성들, 그리고 드비시나 스트라빈스키 등의 선법음계와 온음음계, 그 밖의 수학적 비율에 의한 여러 대칭 비대칭 스케일 및 비례에의한 수학적 음계들, 혹은 수비학에 의한 스크리아빈의 음계와 화성들 , 그 밖에 리스트 등의 집시음계나 재즈의 블루스 음계, 혹은 동양음악의 5음 음계 등  대다수의 모든 음악이 음계에 그 근원과 뿌리를 두고 있다. 
  서양예술음악의 조성의 확립과 그 파괴라는 그 큰 기둥의 흐름, 그리고 무조음악과 혹은 12음렬 음악과 전음렬음악과 그 이후의 음악흐름의 양상은 사실은 음계의 장 위에 쓰여진 전통과 아방가르드 간의 상호간 대화와 대결구도의 결과로서의 장인 것이다. 

  이 편리요 모태와 같은 음계전통, 그 음계자원을 왜 깨뜨렸을까? 하는 물음을 다시 한 번 던지지 아니할 수 없다. 어쩌면 이 음계자원을 깨뜨리는 것 처럼 보이는 현 음악계의 상황을 볼 때, 그렇다해도 결국은, 이 음계자원은 우리가 언제나 돌아가고 돌아와야 할 모태, 본향이 아닌가 싶다. 결국은!
  어찌 보면 인간이성과 과학과 합리의 크나 큰 성취물일 수 있고, 혹은 신의 선물, 아니면 자연의 선물, 아니면 필요에 의한 발명품일 수도 있는 이 규준자, 척도, 음계를 벗어나는 것은 , 버리는 것은, 그 예술은 그다지 현명한 것이 아닌 듯 싶다. 무한정한 자유는 되려 구속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고 , 전통의 척도를 버리고 자꾸 새 척도만 강요하는 현대의 흐름이 마냥 좋기만 하다고는 볼 수 없는 듯하다.
  기술의 횡포라고나 할까?  기술은, 한 번 받아 들여진 기술은 돌이키기가 힘드니 말이다. 본질은 아니면서도 본질인 양 주객이 전도되버린 듯한 양상이 못내 괴롭게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전자음의 전자음악의 소리는, 공부를 하지않아서 아직 잘 알지는 못하나, 나름의 척도와 원리는 있을 것이나, 추측컨대, 순수음의 합성을 통해 만들어진 소리이고, 음계자원의 전통을 따를 필요가 없는 소리재료이고, 그래서 선율, 화성개념의 음전개 내지는 음건축이 필요치 않을 것 같고, 아마 선율 화성개념의 전개가 있다면 다른 체계를 가질 것이고, 기술 기계에 의존한 조작과 작업일 것이며, .. 어쨌건 기술 기계에 의존한 작업이건, 다른 개념에 의하건 간에,.. 다 좋기는 한데, 
   다른 걸 깨뜨린다 하더라도 모태인, 규준자인 , 어찌보면 경기의 룰이고 약속인, 본향이고 모태인, 그  음계자원만큼은 깨뜨리지 않아야 한다는 느낌이 강하게 드는 것이다. 

   이 음계자원의 작곡시의 난제들을 벗어버림으로서 마치 갑옷을 벗어버림같은 홀가분함을 얻을까? 아니라고 본다. 다른 갑옷으로 들어감에 다름아니라고 본다. 나는 전자음악을 홀대함이 아니다. 그 분들의 진지한 작업에 경의를, 그리고 그 분들의 수고와 노력에 박수와 감사의 눈길을 보낸다. 작곡하는 사람으로서 의문을 던져보는 것이다.  기술문제와 그 예술기술간 경계선의 문제가 있고, 우리의 노고가 많은 결실을 얻기를 원하는 마음에서, 그리고 음악의 건설적인 미래를 위해서 하는 얘기일 뿐인 것이다.
  
   살폈듯이 말 그대로 음계자원은, 하나의 큰 편리다. 그러나 그 만큼 그 안에서 표현해내야 할 현대음악 창작시의 어려움은 어찌보면 참 크다 할 수 있다.
  (얘기했듯이 비음계자원에 의한 음악행위가 오히려 음악본원에 가까울 수 있는 바, 여러 비음계자원적 음악제스처와 그 창작행위와 그 작품을 경청하고 주의집중해야할 문제이나, 그러나 나의 경우, 전자음악의 경우 그 기술예술간의 문제가 도전으로 다가오는 바, 그 기술작업과, 그 행위결과물로서의 작품의 의미, 연주자의 해석의 문제 등이 그렇다. 기술은 본질이 아니므로 그 기술을 배우거나 아니면 안배우거나 하면 되는 문제인데, 작금에는 기술이 본질이 되었다 생각하기에 하는 말이다.)                      
    일단 음계자원의 전통내에서도, 아이디어의 원천을 오직 음계자원에 한정할 지, 아니면 혹 비음계자원의 요소를 끄집어들여야 할지를 결정해야할 것이다. ( 아니면 그 이전에, 전통 악기로서, (인성을 포함하여) 비음계자원의 구조를 따라 작곡할 수도 있는 것이다(라헨만이나 헤스포스 등과 같이).)  이 소리 자원의 확대의 경우는 그 구상과 배치 효과 등을 신중히 고려해야 할 것이나, 이는 극히 조심하지 않으면 너무 극명히 대조되는 이질적 요소들의 결합인지라, 많은 주의를 요할 것 같고, 요는 오직 음계자원의 전통 내에서만 곡을 창작하고자 할 시인데,  이 때는 정말로 난제에 달한 것이다. 
   이제야 말로 자신과 대결해야만 하는 국면에 도달한 것이다. 극히 어려운 작업이기에 하는 말이다. 자신의 소리를 가져야하며, 자신의 어법과 소리구조를 가져야하며, 자신을 표현해 내야 하는 것이다. 음계자원의 모태 속에서 말이다!   자신 속의 알맹이까지 다 쏟아내야 하는 바, 그 집중력이 쉽지가 않아서 하는 말이다.  소설가 고 이청준이 말한 것 처럼,  내 작품을 발표하는 것은 나의  젖은 속옷을 빨래줄에 널려 말리는 것 같이 부끄러운 일인 것이다.
 
   
  
작성 '08/11/20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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