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논고1-1
http://to.goclassic.co.kr/free/5532
음악논고1-1 : 음계의 자원에 관하여
                    -피타고라스 근원과 아리스토텔레스 근원에 관한 소고



   피타고라스가 음을 수학적 비례관계에 의해 파악했듯이, 반면 아리스토텔레스는 음을 물리학적 식견으로 이해 했다.
   피타고라스가 '음은 곧 수이다, 곧 비례관계에 의한 수이다' 라고 파악했듯이 아리스토텔레스는 반면, '음은 곧 운동이다' 라고 하여 음을 움직임이나 운동으로 파악함으로써 음에 대한 물리 물상학적 이해를 피력하고 있다.

   이같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음에 대한 물리물상현상적 이해는 우리의 음악에 대한 이해의 한 편을 충분히 넓혀줄 수 있는 타당한 식견인 바, 현금 및 역사상의 음악 작곡연주 양태와 그 경향을 파악하는데 하나의 큰 지침이 될 수 있다.
   이른바 비음계자원 전통의 음악의 이론적 근간으로서 언급되기에 충분하다는 얘기다.

   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음 개념은 물론, 음계자원 음악의 일부 요소와 그밖의 연주의 원리 및 지침 그밖의 음향적 지침들 등을 마땅히 포함하기도 하거니와, 그러나 이보다 근본적으로는, 비음계자원의 음악 작곡연주 행태에 관한 근간이라는 얘기다.

   비음계적 음자원은 피타고라스 근간에 속하지 않는다. 그래서 음에 대한 이 물상적 이해는 우리에게는 낯설다. 앞서 말했듯, 고함, 탄성, 외침, 소음, 손뼉, 자연음, 한숨, 울음, 웃음, 흐느낌, 때로는 천둥소리, 빗소리, 대포소리, 물, 폭포소리, 바람, 폭풍소리 그리고 어쩌면 조율되지 않은 타악기음향 등 이런 물리 물상적 소리자원들은 모두 음계자원에 속하지 않은 비음계자원 영역의 소리라할 수 있다. 

   이들은 음계자원의 주된 요소들인 선율, 화성 등의 고려를 하지 않는다. 이들은 비례관계에 의한 수학적 고려의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선율이나 화성이 되(려하)지 않는다.

  반면 철저하게 피타고라스 견해는, 즉 음계자원전통의 음악은, 언제나 선율 화성의 고려를 따를 뿐이다.  그리고 비례에 의한 수학적 견해를 갖듯이  또 항상 철저하게 그 음악은 수학적 비례관계에 의한 작업을 가질 뿐인 것이다.

  음계자원전통의 음악은 역사상, 과거도 그렇고 현재도 그렇듯이 또 미래도 그럴 것이지만 아마도, 언제나 피타고라스적, 그의 수학적 작업인 것이다. 즉 그 비례에 의한 조화 부조화의 문제였고 또 그럴 것이며, 또한  그 선율 화성 작법은 항상 조화관계에 의한 집합관계의 문제였던 것이다. (미래에도 그럴 것이고.)

  선율의 경우, 음 선택의 문제로서(선율의 정의는 일반적으로 음의 선택과 그 선택된 음의 배열 혹은 연속배치의 문제인 것이다.), 음의 연속의 문제였으며, 이는 즉(선택과 연속적 배치의 문제는 결국), 집합 및 순열, 조합 혹은 치환 등의 문제인 것이다. 

  화성이나 음정간 고려의 문제 역시 , 선택 및 그루핑 등의 문제로서, 집합이나, 순열 등 수학적 문제에 다름아닌 것이다. 단 그 의미관계는 결국 작곡가의 해석 문제, 혹은 역사적 고려에 의한 해석문제로 귀결할 것이지만, 어쨌건 음악에 대한 이러한 수학적, 기하학적 혹은 집합론적 고려와 사고는 피타고라스근간의 끊임없는 재해석의 문제이고, 이는 그 비례관계에 의한 조화 부조화, 즉 협화 불협화의 선택의 문제이며,  음계자원의 속성 상 피할 수 없는 숙명인 것이다.  (힌데미트는 그의 한 이론서에서 이 음정간 협화 불협화 긴장도의 문제를 증4도에 입각한 이론적 해석으로서 분석해놓고 있으며, 그에 입각한  화성진행의 긴장도의 예들을 보여주고 있다.)  이 피타고라스와의 피할 수 없는 숙명의 장인 것이다.

  여기서 회피하고자 한다면, 이 피타고라스 논리를 벗어나고자 한다면 우리는 아리스토텔레스의 견해로 눈을 돌려야 한다. 그러면 그 곳에 또한 무궁한 자원과 논리, 무궁한 철학과 물리학적 이해가 있을 것이다. 혹은 또 다른 수학적 이해와 그에 따른 음악행태가 있을 것이다.  음계자원의 논리를 털고 비음계자원의 세계로 발을 들여놓으면, 그 논리를 받아들이면 우리는 또 하나의, 아리스토텔레스근간의 그 근원의 음악세계를 접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우리가 음계자원의 음악세계를 접하고 있다면(그런데 우리는 거의 항상 그 음계자원의 음악작업을 하고 있다), 우리는 항상 피타고라스 근원과 맞닿아 있으며, 우리의 음악작업은 본질상 피타고라스 그와의 작업(그 수학자와의 작업)이며, 그 근간의 음악작업이며, 그와의 끊임없는 재해석의 결과를 내놓아야만 하는 작업인 것이다.  

  우리의 생활을 모두 음악으로 확대해 볼 수 있다면, 그때는 대다수의 물상의 소리들이 음악작품 혹은 음악소재가 될터이나, 현실은 음악작품을 예술작품을 일상과 분리하기에, 그렇기에 더욱 더 피타고라스의 그 수학적 작업을 우리는 오선지 선 상에서 역시 해내야 하는 것이다.

   피타고라스의 견해가 예술음악이 되고, 그 후 음악사 전개과정의 거의 전부가 되었다면 그래서 수많은 작곡가와 음악가가 그 근원과 근간위에서 명멸해 갔다면, 그 흔적과 금자탑들이 그 길에 쌓여왔다면, 또한 그래서 그 길이 우리가 계속해서 가야할 길이라 생각해 본다. 

  결국에는 이 두 근간, 근원은 서로 대척적으로 보아야할 것이 아니라 상호보완적으로 이해해야할 것이다. 음계자원의 전통 위에 필요 혹은 필연으로 누군가가, 비음계자원의 전통을 일부 아니면 때로는 거의 전부를, 필연이라면, 끄집어 들일 수 있는 것이다. 지나친 연습(예컨대 실험작)이나, 단순히 재료의 확대를 위한 작품이라면 신중해야 하리라.
  우리는 필연으로 작품을 쓰는 것이다. 창작은 실험이 아닌 연습이 아닌 필연인 것이다.
작성 '08/11/21 15:03
tj***수정 삭제 트랙백 보내기
링크 글 (Trackback) 받는 주소: 로그인 필요
0/1200byte
한 줄 덧글 달기
 
 0
 


공지 (공식 트위터 ), 모집, 홍보, 프로그램 등 많은 분들께 알릴 일은 고클의 플라자에서
번호 글쓴이 제목 날짜 조회추천
3672wj*** '08/12/1810728 
3671st*** '08/12/17107291
3670st*** '08/12/1710727 
3669tj*** '08/12/1610729 
3668sm*** '08/12/1310727 
3667goclassic '08/12/1210730 
3666as*** '08/12/1110729 
3665mo*** '08/12/0510730 
3664mi*** '08/12/0410730 
3663ch*** '08/12/0410738 
3662ja*** '08/12/0310730 
3661da*** '08/11/2910729 
3660mu*** '08/11/29107301
3659wb*** '08/11/27107325
3658qu*** '08/11/2610728 
3657he*** '08/11/2610731 
3656fe*** '08/11/2510729 
3655pa*** '08/11/2310728 
3654kw*** '08/11/23107282
3653qu*** '08/11/2210728 
3652tj*** '08/11/2210731 
3651tj*** '08/11/2110730 
3650tj*** '08/11/2010728 
3649tj*** '08/11/18107302
3648ns*** '08/11/1710729 
새 글 쓰기

처음  이전  151  152  153  154  155  156  157  158  159  160  다음  마지막  
총 게시물: 7974 (153/319)  뒤로  앞으로  목록보기
Copyright © 1999-2020 고클래식 All rights reserved.
For more information, please contact us by E-mai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