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곡만 듣고나면 살맛이 난다(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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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곡만 듣고 나면 살맛이 난다(122)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제5번 op.24


며칠 전 나는 ,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한곳이며, 1992년 유네스코가  세계문화 유산으로 지정한 이후로 일명, 신들의 도시로 불리 우기도 하는  캄보디아의 앙코르 왓으로 3박 4일 일정으로 관광여행을 떠나는 S를 배웅해 주기위해 이른 새벽 김해 공항을 다녀왔는데,  공항을 다녀오던 그날은 하루 종일 묘한 기분에 쌓여 지냈다.


원래의 계획대로 한다면 그날, 김해 공항을 통해 출국을  해야 될  사람은 바로 나였는데, 출국을 약 보름정도 앞둔 시점에서 내가 다니고 있는 회사에 갑자기 무슨 일이 생기는 바람에 4일 동안이나 자리를 비울수가 없게 되어,  부득이 나와는 클래식 동호인이며 평소  호형호제(呼兄呼弟)하며 지내는  S에게 내 여행 티켓을 선물함으로서  S가 나대신 여행을 떠나게  된 것이다.


개인 사정 때문에 여행을 취소하게 되면, 여행사에 미리 송금한  팔십 여 만원의 여행경비는 한 푼도 되돌려 받을 수 없을 뿐 아니라,  여행취소에  따른 소정의  벌금(?)까지 물어야 된다는 이야기를 여행사 직원으로부터 전해 듣는 즉시 나는, 나대신 여행을 다녀왔으면 좋을 대타(代打)를 생각하게 되었고, 제일 먼저 떠오른 사람이 S였다.


그러나 S도 모 회사의 중역으로 근무하고 있는 처지이기에, 나는 조심스럽게 내 사정 이야기를  먼저 꺼낸 다음.  이번 앙코르 왓  여행 티켓을 내 조그만 성의로

생각하고 만약 사정만 허락된다면 선물로 받아 주었으면  좋겠다는  뜻을 전달했더니, 내 전화를 받고 난 뒤 약 30여분 후에 S로부터 승낙 전화가 걸려왔던 것이다.    


S와 나는  클래식음악  관계로 서로 만난  사이로 s가 나보다 3살 아래이지만, 만날 때 마다  언제나 내가 한 수 배워야 될 정도로 s는 나보다 모든 면에서 앞서 가는 그런 친구이다.


몇 개월 전,  s는 내가 사용할 탄노이 GRF 메모리 스피커를 사 주기위해 나와 함께 부산에서 대전까지 1톤 고물트럭을 빌려 타고 대전으로 가던 중, 거창휴게소 부근에서 차가 고장 나는 바람에, 차를 거창 읍내까지 견인을 해서 고친 연후, 운행을 재개하는 수모까지 다 당해가면서 부산에서 대전까지 왕복 600km를 혼자 운전하며, 죽을 고생을 다하였는데도 불구하고, 내가 미안해 할까봐 자기가 원해서 하는 일인데, 뭐가 고생이며, 피곤하겠느냐며 오히려 나를 위로까지 해주었던 것이다.   


그런데 어렵게 구해온 탄노이 GRF 메모리 스피커를, 내가 사용하고 있던 네임 앰프에 연결을 시켜 보았더니 기대치 이상의 소리가 나지 않자, S는 자기집 탄노이 스피커에  물려서 쓰고 있던 QUAD 44프리앰프와 QUAD 606 파워앰프를 떼어 와서는 거의 거저나 다름없는 헐값으로 나에게  양도를  해 줌으로써 내 탄노이 스피커 소리를 거의 환상적인 수준까지 높여 주었던  것이다.


 탄노이 GRF 메모리 스피커에다 S가 나에게 양도해준 QUAD 프리앰프와 파워앰프는 얼마나 궁합이 잘 맞는지, 사람을 뽕 가게 만들어 놓을 정도로 소리  하나는 정말 끝내 줄 정도로 환상적이다.


이른 새벽 나는 s를 배웅해 주고, 바로 그길로 출근을 하였지만, 팔 십 여 만원짜리 해외여행 티켓 하나를  s에게 건네주었는데도 아깝다는 생각이 들기는커녕, 오히려 s와 같은 둘도 없는 친구가 내 주변에 있었다는 사실 자체가 오히려  더 나를 뿌듯하게  만들어 놓았던 것이다.


s가 출국하던 날 밤, 나는 나대신 해외여행을 떠난 s를 생각하며, 모처럼 느긋한 마음으로 베토벤의 바이올린 소나타 5번 p.24 (일명-봄)을 들으면서  열락의 세계로  깊이 빠져들고 말았다.


나는 이 곡을 들을 때 마다,  귓병으로 자신이 점점 망가져 가고 있는 현실속에도 끝까지 꿈과 희망을  음악으로나마 일으켜 세워보려고 몸부림쳤을  31살 베토벤의 굽힐 줄 모르는 불굴의 인간 정신을 떠 올리며 나 자신 목이 메이는 것이다.


이 곡을 작곡하던 해인  1801년 베토벤은 친구 아벤다에게 이런 편지를 보내고 있다.


<--자네의 베토벤은 몹시 불행하네. 나의 가장 귀중한 부분,  청각이 많이 약해 졌네. 우리가 함께 지내던 그때부터 벌써 나는 그 징조를 느끼고 있었지만, 그것을 숨기고 있었네.

------

<아아, 내 귀가 온전히 들리기만 한다면, 나는 얼마나 행복할까. 그러면 당장에라도

자네에게 뛰어가겠네. 그러나 나는 모든 것을 떠나 외로이 살아갈 수 밖에 없을 것

같네. 나의 가장 아름다운 청춘은, 나의 재주와 역량이 명하는 그 모든 것을  이루지 못한 채 보람없이 흘러가고 말 것 같네.

------

< 내 병에 관하여 자네에게 말한 것은 누구에게도 비밀로 지켜주기 바라네.>


또 같은 해, 의사 베겔러에게는 이런 편지를 보내고 있다.


----

<불행하게도 건강 불량이라는 시기심 많은 악마가 나를 찾아와서는 내 앞길을 가로

막고 있네.  3년 이래 내 청각은 점점 약해져만 갔네. >

----

<사실 나는 비참한 생활을 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세. 거의 2년째 나는 일체

사교를 피하고 있네. ‘ 나는 귀머거리요’라고 사람들에게 말할 수가 없기 때문일세

내가 다른 직업을 가졌더라면, 그나마 어떻게 될 수도 있으련만, 나의 직업으로서는

너무 무서운 처지네. 나의 적들이 무어라 하겠는가. 그것도 적지 않은 수의 적들이.>

----

<플루타르코스가 나를 체념으로 인도해 주었네. 될 수만 있다면 나는 운명과 싸워

보고 싶네. 그러나 나는 신이 창조한 가장 비참한 인간이라고 느껴지는 때가 한 두번이 아니네.

내 병에 관해서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아주기 바라네.>

------
      

 베토벤은 의사 베겔러에게 또 다른 한통의 편지를 보내고 있다.

----

< 2년 전부터 내가 얼마나 외롭고 슬픈 생활을 하여 왔는지 자네는 믿지 못할 것이네. 나의 병이 어디서나 내 앞에 유령처럼 버티고 서 있어서 나는 사람들을 피하고 있었네. 아마 나는 사람을 싫어하는 인간인 것처럼 보였을 것이네. 그런데 내가

어디 조금이나 사람을 싫어하는 사람이던가. >

----

<나에게는 내 예술을 연마하여 그것을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것 보다 더 큰

기쁨이 없네.>

----

<오오, 이 병을 떨쳐 버릴 수만 있다면 전 세계를 껴안을 수 있으련만.>

----

< 결단코 그놈의 병에 눌러서는 안 돼. 나는 운명의 목덜미를 잡아 쥐고야 말테야.

나를 아주 굴복시키지는 못하겠지. 아아, 인생을 천배로 살수 있다면 얼마나 아름

다울까. 평온한 생활, 아니야, 확실히 나는 평온한 생활을 하게 마련된 사람은

아니야.>

----- 


베토벤은 바이올린 소나타 5번을 그의 생애 중에서도 가장 견디기 어려운 시기에

작곡 하였다.

그런데  그가  작곡한 바이올린 소나타 10곡 중   거의 대부분 곡들이 밝음 보다는 어두운 작품들인데 , 유독 그의 생애 중에서도  가장 견디기 어려운 시기에 작곡했다는  바이올린 소나타 5번만은 어떻게 그렇게 맑고도 신선할 수가 있으며, 희망과 행복이 철철 넘치도록 흥겹고 아름다운 곡으로 만들어 놓을 수가 있었는지, 도무지 상상조차 되질 않는다.


바이올린 소나타 5번에다 (봄)이란 부제를 단 사람은 베토벤 자신이 아니고 후세

의 누군가가 달았다고 전해지지만,  이곡을 들어보면 누구라도 생동하는 봄의 정취에 흠씬 취할 수 있을 정도로 듣는 이로 하여금 ,  끝없는 환희와 열락의 세계로 끌고 들어가는 것이다.


나는 베토벤의 생애 자체를  활활 타 오르는 거대한 용광로로 비유해 보고 싶은 사람이다.

어떠한 불행이나, 고난,  슬픔도 베토벤을 감히 넘어뜨릴 수가 없었을 뿐 아니라,

견딜 수 없는 불행이나 시련들이  베토벤이라는 용광로에 수없이 던져 졌지만, 그는 그러한 시련이나  불행들을  잘 녹이고 정제해서  그  누구도 흉내 낼 수없는 아름답고도 영롱한 음의 보석으로 바꾸어서, 사람 사는 세상 속으로 계속  내 보내 주고 있었으니 어찌 베토벤의 생애자체를 하나의 거대한 용광로라 부르지 않을 수 있을 것인가.

 


(옳고 떳떳하게 행동하는 사람은 오직 그러한 사실만으로도 능히 모든 불행을

견뎌 나갈 수 있다는 것을 나는 입증해 보이고 싶다.>


1819년 베토벤이 비인 시청에 보냈다는 위 서한문의 한 구절처럼 그는 인류의 행복을 위해 그의  전 생애를  축복처럼 쏟아 부은  진정한 영웅 중 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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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음반: 바이올리니스트 다비드 오히스트라흐(David Oistrakh) 와 피아니스트

          레프 오보린(Lev Oborin) 이 1962년에  녹음한 음반.

       특히 피아니스트 레프 오보린은 1927년 바르샤바에서 열린 제 1회 쇼팽

       콩쿠르에 우승한 참으로 걸출한 피아니스트 중 한 사람으로 이 곡 협연에서

       는 그의 기량이 유감없이 발휘되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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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족: 앙코르 왓 여행을 다녀온 S는 그 뒤 우리 부부를 어느 횟집으로 초대해서 거창하게(?)  저녁까지 사 주었으며, 앙코르 왓에서 찍어 온  사진 중에서 괜찮게 찍었다는 사진  2매를  크게 확대까지 해서 액자에 넣어 선물로 주기까지 하였다.

그리고 또  앙코르 왓  부근 상점에서 샀다는 넥타이 하나를  선물로 주었는데,

 넥타이에는 쌀알만한 크기의 코끼리 그림이 얼마나 많이도 그려져 있는지  넥타이 앞 뒷 면에 수놓아진 코끼리의 숫자는  대강 어림잡아 셈해 보아도 수 백 마리는 될 듯함.

 

넥타이에 수놓아 져 있는 코끼리를 순번을 정해  놓고 매일 한 마리씩 타 본다

해도  모두 다 한 번씩만  타 보려 해도 1-2년은 족히 걸려야 될 듯함.


나는 앙코르 왓을 다녀온 S 덕분에 , 어느 날 갑자기 복에도 없던  수백 마리의 코끼리를  거느린, 코끼리 부자가 되고 말았네.


 

작성 '07/02/07 2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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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

늘 그렇지만 정 선생님의 따뜻한 글 너무 감사합니다.. ^^

07/02/08 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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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

저한테 전화하시는 분들이 항상 들을 수 있는 곡입니다.^^ 개인적으로도 무척 좋아하는 곡입니다. 매번 좋은글 잘읽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07/02/09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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