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단상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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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단상212: gerard grisey

 

 

  아주 어려서부터 그리세이는, 9살때 음악에 관한 첫 에세이를 쓰며, 음악 작곡과 학업에서 거대한 흥미와 재능을 보여주었다. 1965-1967년 동안 그리고 다시 1968-1972년 동안 올리비에 메시앙과 함께 공부했던 파리국립음악원에 들어가기 전, 동시에 또한 1968년 Henri Dutilleux와 Ecole Normale de Musique에서 공부했으며, 1963-1965년 동안 독일 트로싱엔 음악원에서 공부했다. 그는 메시앙 지도 하에 음악원에서 피아노반주, 화성법, 대위법, 푸가, 작곡에서 상을 수상했다. 또한 그는 1969년 J.-E. Marie와 전자음악을, 1972년 다름슈타트 하계과정에서 슈톡하우젠, 크세나키스, 리게티와 작곡을, 1974년 Faculte des Science에서  Emile Leipp와 음향학을 공부했다. 1969년 여름에는 Siena에 있는 Accademia Chigiana에서 다른 연구들이 수행됐다.

  그리세이는 로마대상을 수상하여 1972- 1974년 동안 로마의 Villa Medici에 머물 수 있었다. 거기서 그는 Tristan Murail과 친구가 됐는데, 그는 뮤레위와 함께 1973년에 그룹 L'Itineraire를 Roger Tessier, Michael Levinas와 함께, 후에 Hugues Dufort가 참여하여, 결성했다. 1974- 75년 동안 Emile Leipp와 Paris VI University에서 음향학을 공부했고, 1980년에 IRCAM에서 David Wessel과 Marc Battier에 의해 조직된 컴퓨터음악과정에 연수생이 됐다. 같은 해 동안 그리세이는 베를린으로 DAAD 프로그램의 연구생(a guest)으로서 갔다. 그는 연이어 버클리, 캘리포니아 대학교로 떠나서, 거기서 1982- 1985년 동안, 혹은 1986년까지 이론과 작곡의 교수로 임명됐다. 유럽으로 되돌아온 후, 그는 1987년 부터 죽을 때까지 파리음악원에서 관현악법과 작곡의 교수 역할을 맡았는데, 그동안 역시 프랑스와 해외에서(darmstadt, freiburg, milan, reggio emilia, oslo, helsinki, malmo, goeteborg, los angeles, stanford, london, moskow, madrid, etc.) 수많은 세미나들을 개최했다. 그리세이는 1998년 11월 11일 파리에서 52세의 나이로 동맥류파열로 인해 죽었다.
  그리세이의 음악은 스펙트랄 음악 장르에 속하는 것으로 종종 고려되는데, 동료작곡가 Tristan Murail과 함께 창립하는 것으로 명성을 얻게되며, 그렇지만 나중에 그는 인터뷰와 저술에서 그 꼬리표와 의절했다. Tom Service에 따르면, "그의 업적은 종종 새로운 음악의 물신적 꼬리표들의 또다른 하나인, "spectralism" -그리세이가 그의 생애의 끝까지 거절했던 한 범주."- 로 감축 되곤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세이는 그의 경력의 상당수를 화성적 배음들과 소음 간의 음색의 스펙트럼(배음렬)을 탐색하는데 소비했다. 게다가 그는 천천히 펼쳐지는 과정들에 매료됐고, 음악적 시간을 많은 그의 작품들의 하나의 주요 요소로 만들었다.
   
  그는 52세에 갑자기 죽었다. 그의 음악적 성취는 신음악의 물신적 꼬리표들 중 또 다른 하나인 스펙트랄리즘 -그리세이가 생애 끝까지 거부했던 범주.- 으로 요약된다. 스펙트럴리즘의 원리들은 설명하기 쉽다, 그리고 모든 좋은 음악적 클리셰들처럼 용어 안에는 진리의 낟알보다 더 많은 게 있다. 필수적 아이디어는, 모든 음악적 음들의 부분인 배음들인 배음렬(harmonic series)을 탐색함에 의해 음악의 매개변수들을 구조화하는 새로운 방식의 창조다. 만약 당신이 특정 악기에서 연주된 단일 음의 배음렬의 복잡성을 분석한다면 -토롬본의 낮은 E음을 말하면- 당신은 음악적 가능성의 가득찬 세계를 발견할 것이다. (그 E는, 그리세이가 그의 웅대한 6부 연작 les espaces acoustiques의 세 번째 작인 그의 앙상블 작품 partiels를 위한 출발점으로 취했던 정확히 그 음이다.) 이런 방식으로 소리들을 원자화함에 의해 그는 partiels같은 음악과 시간규모의 대형 곡들을 구조화할 수 있었는데, 이것들은 한 개의 개별 음(individual sound)을 청취하는, 소리 현상의 최소인 단일 음(single
note)을 가능한 가장 큰 규모로 깨뜨리는, 하나의 치열한 과정에 기초하고 있다. 배음렬의 화성적 함축들은 또한 그리세이가 그의 미세음적으로 풍부화된(micro-tonally enriched) 음악적 세계 내에서 하나의 위계층(hierarchy)을 창조하도록 허용했는데, 그것은 그의 음악에 하나의 기념비적인 역동성을 줬다.
  당신이 스펙트럴이란 꼬리표를 사용하건 말건, 그리세이의 음악은 재료로서, 물리적 요소로서, 살아있는 현상으로서 소리에 대한 것이다. 그가 말한 것처럼, "우리는 음악가들이고, 우리의 모델은 문학이 아닌 소리(sound)고, 수학이 아닌 소리며, 극, 시각예술, 양자물리학, 지질학, 천문학 혹은 침술이 아닌 소리이다." (그는 "은유metaphor가 아닌 소리"라 말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의 음악은 어떤 추상적인 소리 과학 레슨이 아니라, 어떻게 소리가 우리의 귀들에 영향을 미치는지, 우리가 어떻게 듣는지, 그것이 어떻게 우리의 뇌와 몸을 진동하게 만드는지, 그리고 그것이 우리가 무엇을 느낄 수 있도록 만드는지에 대한 것이기에.)
 그리세이의 음악은 항상 소리와 공간의, 느림과 속도의, 가장 웅장한 시간과 가장 순식간의 시간의, 교차하는 문지방이다. 그의 음악을 듣는 것은 당신의 귀를 영원히 변화시킬 소리 재료 안에서 모험을 갖는 것이다.
 
  소수의 작곡가들만이 하나의 전양식(whole style)을 개시되게 했다고 주장할 수 있었다. 드비시가 하나고; 베베른이 또 하나고; 제라르 그리세이가 세 번째 하나다. (;물론 스티브 라이히도 또다른 하나다. 내 생각엔.) 그리세이는 1970년대 파리에서 출현하여 새로운 발판에서 음후의(post-tonal) 작곡에 화성을 다시 끼워넣었던 스펙트랄 음악(다른 사람들에 의해 고안된 이름)의 개시인이었다.  컴퓨터 음 합성과 심리음향학에서의 발전들 위에 그려짐에 의해서, 배음렬(harmonic spectrum) -소리의 내적, '현미경적microscopic' 구조- 을 거시적macroscopic 앙상블 화성들을 위한 모델로 사용함에 의해 그러했다.
  그리세이는 그의 두 작품, 오케스트라와 증폭된 앙상블을 위한 Derives(1973-74)와 무성한 화성과 느리게 움직이는 과정의 그 혼합이 뒤따르는 다른 작품들의 본보기에 두는, 앙상블을 위한 Periodes(1974)에서 그 양식을 예고했다. 심지어 당신이 그리세이의 음악을 들은 적이 없다해도, 만약 당신이 George Benjamin, Julian Anderson, 혹은 Kaija Sariaho의 곡을 들은 적이 있다면, 당신은 그리세이의 아이디어에 기초한 음악을 들은 것이다.
  Grisey는 독일서부와 스위스국경 근처, 시골 Belfort에서 노동자 계층 부모의 독자로 자랐다. 10대에 아코디언 비르투오소(세계 최고 아코디언 연주자 중 하나로 기록된)인 그는 또한 학교에서 탁월했고, 그의 마리아 수도 회원 교육이 그를 20대 초반까지 독실한 가톨릭 신앙으로 이끌었다. 트로싱엔에 있는 Hohner Academy에서 학업 후, 그는 파리 음악원에 들어가, 거기서 모든 주요 상들을 수상했고, 뒤이어 이태리 villa medici에서의 기간까지 음향학에서의 더많은 학업이 이어진다. 폭넓게 교양화돼 -
그는 몇 언어를 말했고, 고대 이집트 문화에 대해서 만큼 15세기 예술에 대해서도 유식했다.- 그의 초기 신앙으로부터 신비적인 것으로의 경향을 유지했고, 그는 종종 그의 음악을 죽음의 상징들 안에서 코치했다. 이것은 연작 노래(song cycle) Quatre chants pout franchir le seuil ('Four Songs for Crossing the Threshold')에서 절정에 달했고, 런던 신포니에타에 의해 코미션되고 초연됐는데; 1999년 런던에서 세계 초연되고, 그리세이의 친구 George Benjamin에 의해 지휘됐는데, 그리세이는 슬프게도 없었다: 이 죽음에 초점이 맟춰진 곡을 끝낸 후 곧바로, 그는 동맥류로 갑자기 죽었다.
  그의 10대 때 그리세이는 그야말로 하느님이 주신 소명의식으로서 작곡가가 되는 것을 고려했다. 이 종교적 요소 외에는, 우리가 그의 학생 문서 항목들을 읽을 때, 얼마나 선견지명으로 그가 계속 창조하게 될 음악 양식을 알았는지 놀랍다. 1966년에 쓰기를, 22살의 그리세이는 그의 미래 음악이 '지적인 것과 감정적인 것 간의 합성을 만들게' 될 것이라고; '쓸모 없는 시끄러움과 특별히 건조함'을 피할 것이라고; '무엇보다도 '자연스럽게 남을 거라고remain natural'; 라벨Ravel의 정확성과 밝음을 목표로 할 거라고; 그리고 그 지성주의가 누가 봐도 알 수 있도록 되지 않게 지적이게 될 것이라고 진술했다. 이 마지막 특질이 열쇠다: 그것들이 소리의 내부 속성(inner nature)에 기초를 둠 뿐만 아니라, 그리세이의 성숙한 작품들 -Plerrot 앙상블과 비올라를 위한 대가의
Vortex Temporum(1996)처럼- 의 핵심적인 특질들 중 하나는 청자가 그것들을 그들이 어떻게 작곡됐는지를 알아야 함 없이 즐길 수 있다는 그것이다. 음악의 과정들은 직접적으로 인지할 수 있다; 드비시를 패러프레이즈하는 것으로, 귀가 유일한 법이니까.
  젊은 그리세이에게 -1960년대에 메시앙의 작곡학생으로서 철저히 불레즈와 슈톡하우젠의 음렬 방법들에 철저히 빠졌던- 전후 아방가르드는, 그 광휘의 순간에도 불구하고, 지도와 영역을 혼란시켰다: 즉, 청자가 실질적으로 무엇을 들었는지로서 상징적 계산들의 증식을 혼란시켰다. 결과는 하나의 무조적 회색성(greyness)의 음악이었다. (벨라 바르톡의 회색성의 문제도 있다. 조성적 회색성, black or white의 문제로 그의 음악은 조성적 칼라가 없어지고 온통 회색성만 느껴지는 둔탁성의 문제가 있을 수 있다. 쇤베르크의 경우는 불레즈가 지적한 것처럼 통제되지 않은 불협화 연속채(continuum))의 문제로 통제된 화성 감각을 느낄 수 없고 불협화 음고 연속체가 언제나 대위법 적으로 얽혀 끊임 없이 흐르므로 수직적으로 통제된 화성쳬계를 갖지 못한다. 그리고 불레즈는 이를 계산적으로 해결하여 수직적으로 철저히 통제된 화성체계의 방법론으로 작곡을 한다.) 그러자 그리세이는 자신에게 어떻게 이 음후(post-tonal) 재료 속으로 활력을 재도입할 수 있을까를 물었다. 그리세이는 그의 해법을 -그리고 스펙트랄 음악의 기초를- 꽤 우연히 찾았다. 1972년 다름슈타트 하계강좌에서, 그리세이는 슈톡하우젠의 한 세미나에 참여했다, 거기서 독일 대가가 그의 신작 Mantra에 관해 개종시키려 했고, 그리세이는 슈톡하우젠의 계산들의 복잡성이 단지 가느다랗게 들려진 결과에 반응한다는 친근한 불평으로 반응했다. 그러나 슈톡하우젠은 또한 배음렬에 기초한 1시간 길이의 작품, 6 인성을 위한 Stimmung에 관한 세미나를 주었다; 그리고 이 세미나가, 콜레기움 보칼레 쾰른에 의한 Stimmung의 연주와 더불어, 그리세이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매우 그러하므로, 그의 친구들 Claud Vivier와 Walter Boudreau와 함께, 그는 배음 음악 (overtne music)의 한 즉흥 연주를 위한 다름슈타트 전차를 거의 시작했다.). 파리로 돌아오자마자 (그리고 La Monte Young 'Dream House' drone 설치에 또한 참여한 후), 그리세이는 그의 새로운 스타일의 첫 작품, D'eau et de pierre를 완성한다.
  그리세이의 실내악 작품 Partiels(1975)의 개시부는 이 '스펙트랄' 미학의 전형이다. 일련의 반복 위에, 트롬본 한대가 긴 낮은 E음을 연주한다, 이 E음으로부터 하나의 부풀은 앙상블 화음이 출현한다, 이것의 음고 내용과 템포 시작은 그 트롬본의 낮은 E음의 작은 스케일의 주파수 내용과 transient envelope(일시적인 봉투?)를 흉내낸다: 그 결과는 현란한 울림(dazzling sonority)인데, 이건 매 연속되는 반복으로 새로운 배음렬의 부분음들(partials) -수많은 모방자들이 착수하는 작곡 아이디어- 을 더한다. 그러나 많은 그 모방자들은 어디에서, 그리세이가 소유했던 극적 감각이 종종 결핍된, 더욱 복잡한 스펙트랄 화음들을, 작곡하는 학구적인 사업에서, 따라잡았을까. 그리세이의 음악에서 이 극적 스펙타클의 감각은 Les Espaces acoustiques(1974-85)에서 그 가장 전체적 실현을 갖는데, 이 곡은 하나의 6 작품들의 연작(그중 Partiels는 세번째)인데 비올라 솔로인 Prologue로 시작하며, 점차적으로 성장하여, 진행 도중에 갖은 이상한 울림들을 겪는 Transitoires에서 꽉찬 심포니 오케스트라에 이른다. 
  1980년대에, 그리세이의 아이디어가 프랑스 밖으로 퍼질때 -부분적으로 1980년과 1982년 다름슈타트 하계강좌에서의 그의 가르침 때문에- 그는 그의 스타일을 계속 발전시켰다. 거기에서 Periodes같은 초기 작들이 느린움직임 과정들에 기초했고, Talea(1986)같은 후기 작들은 다른 템포성들의 동시성(a simultaneity of different temporalities)을 도입한다: 그리세이의 이미지에서 고래들, 인간들, 곤충들의 다양한 시간. 이 후기 스타일의 하이라이트는 Vortex Temporum인데, 거기엔 라벨의 Daphne et Choe 출처의 아르페지오의 한 토막이, 교대로 뻗고 응축하며, 명목상의 시간의 소용돌이를 통한 하나의 전율하는 3 악장 여행을 생성한다.
그리세이의 말년의 또 다른 긴 기간 프로젝트는 솔로 보이스를 위한 음악을 쓰는 거였다. 비록 1980년대에 D. H. 로렌스의 소설 The Man Who Died 에 기초한, 파리국립오페라를 위한 오페라 한 개를 계획했을지라도, 그리세이가 솔로 보이스를 그의 스타일로 병합하기에 충분할 정도로 확신을 느꼈을 때는 오직 1990년대에서 였다. 소프라노, 메조, 오케스트라를 위한 L'lcone paradoxale(1992-94)는 이것의 첫 결실이었고, 에사-페카 살로넨과 LA필하모닉에 의해 초연됐고, 반면 다른 문명들로부터의 죽음에 관한 가사들의 모음인 Quatre chants pour franchir le seuil은 그리세이의 마지막 작품(베케트의 모음은 결코 완성되지 못했다.)이 돼야했다. Quatre chants의 호화로운 'Berceuse(자장가, 뵐쇠즈') -'마침내 그것의 악몽으로부터 벗어난 휴머니티의 여명을 위한 음악'- 를 경청하는 것은 우리에게 그리세이가 계속해서 써갔을지도 모를 오페라 유형에 대한 감질나는 일별을 준다.
  비록 그가 차례로 프랑스의 색채효과를 잘내는 전통에서의 최후의 작곡가로서, 혹은 불레즈의 상속인으로서 던져저도 아마도 그리세이에 관하여 가장 유명한 것은 그의 예술의 인간성humanness과 그의 소명의식의 진지함이다. 그는 말했다, '예술가를 위하여', '예술은 생산물들의 단지 한 조각 이 아니라 -그들은 아방가르드일 것이고- 차라리 존재하는 하나의 방식 그리고 하나의 질문에 던져지는 것이다.' (관련기사 참조)
작성 '19/12/13 1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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