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곡만 듣고 나면 살 맛이 난다(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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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곡만 듣고 나면 살맛이 난다(160)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1번-32번 전곡

 

현재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의 방과 거실의 벽지와, 바닥 장판을 교체한지도 10여년이 되어 빛이 바래고 손때가 묻은 곳이 많아, 다시 새롭게 교체를 하고 싶은데도 대형 책장 3개와, 4천 여 장에 이르는 클래식 음악 CD, 7백 여 장이나 되는 오페라와 음악 DVD를 이리저리 옮겨야 하는 과정이 너무 복잡하고 힘이 들 것만 같아, 엄두조차 못 내고 차일피일 미루어만 오다가 큰아들 녀석의 결혼식을 3개월 정도 앞두고 분위기 쇄신도 할 겸 눈 딱 감고 과감하게 실행에 옮겨 버리고 말았다.

 

키울 때는 그렇게도 많아 보이던 자식 4명(아들 한명과 딸 셋)도 모두 성장을 해서 집을 떠나가 버리고, 지금은 영감과 할멈 달랑 두식구만 남았는데, 대형 책장 3개가 무슨 필요가 있겠나 싶어 우선 대형 책장 3개중 2개를 폐기처분 하여 동 주민 센타로 실어 보내 버리고, 거기에 꽂혀있던 6백 여 권의 책은 아파트 앞 빈터에다 펼쳐 진열을 해 놓았더니 어디에서 소문을 듣고 왔던지 아파트 주민 수십 명이 한꺼번에 몰려와 이리저리 입맛대로 골라 가져가는 바람에, 6백 여 권의 책이 불가 20여 분 만에 모두 새 주인을 찾아 뿔뿔이 흩어지는 진풍경을 연출하기도 하였다.

 

나는 도배를 하기 전에, 먼저 도배전문 업체를 집으로 불러 우리집 여건을 보고 어떤 식으로 도배를 하면 좋겠느냐고 물어 보았더니, CD 와 책 등, 잔 손길이 가는 물건이 많은 집이기 때문에 날을 잡아서 거실부터 먼저 도배를 하고, 거실이 어느 정도 정리가 되고나면 4-5일 뒤에 나머지 도배를 하고 싶은 방 (총 3개중 2개)에 대해서 작업을 하면 좋겠다는 의견이었다.

 

나는 도배전문가의 의견을 받아들여 1주일 간격으로 2일에 걸쳐 우리집 아파트의 도배업무를 모두 마무리 지었다.

도배를 하는 날에도 나는 출근을 하였기 때문에 아내만 나 대신 도배업체 직원 2명과 함께 먼지를 뒤집어 쓴 채 고생을 많이 하였다.

 

도배업무가 모두 끝나고 나서, 나는 4 천여 장에 이르는 CD를 다시 재 분류해서 제 자리에 정리해 놓기 위하여 퇴근 후 연 3일 동안 공을 들였는데, 작곡가별로 분류하느라고 펼쳐 놓았던 CD의 무더기들은 생각만 해도 끔찍하고 아찔해질 따름이다.

 

힘들게 음반 정리를 모두 끝내고 나서, 나는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곡 감상에 나섰다

오랜 세월동안 음악을 들어오면서도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32곡을 차례대로 들어보기는 처음이었다.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32곡은 베토벤 생애 전반에 걸쳐 작곡된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교향곡, 현악4중주곡과 함께 그의 창작을 뒷받침해주는 3개의 큰 기둥중 하나를 이루고 있는데, 그는 피아노 소나타 32곡을 20대에 9곡( 1번-9번). 30대에 14곡(10번-23번), 40대에 6곡(24번-29번), 50대에 3곡(30번-32번)을 작곡하였다.

 

나는 빌헬름 박하우스(Backhaus,Wilhelm 1884.3.16.-1969.7.7.) 가 연주한 DECCA판 CD 8장을 하루에 한 장씩 듣기 시작하여 8일 만에 전곡 감상을 모두 끝낼 수가 있었다.

나는 피아노 소나타 32곡을 8일 동안 감상하는데도 전혀 지루함을 느끼지 못하였는데, 그 이유는 곡과 곡 사이 사이에 보석처럼 들어있는 낯 익은 곡들 이른바, 8번 (비창), 14번(월광). 15번(전원), 17번(템페스트). 21번(발트슈타인), 23번(열정), 25번(뻐꾸기), 26번(고별), 29번(하머 클라이버) 이런 곡들이 윤활유 역할을 톡톡히 해 주었기 때문이었다.

 

지나온 내 4-50대를 회고해 보니, 클래식 음악에 흥미를 느끼기 시작한 40대에서 부터 20여 년 동안을 오직 클래식 음악에 묻혀서 세상이 어떻게 흘러가는 줄도 모른 채 살아온 세월이었던 것만 같다.

클래식 음악에 관한 ‘클“자가 붙은 책이라면 구입할 수 있는 한 모두 구입을 해서 읽어야 만 직성이 풀렸고, 남들이 좋다고 하는 음반과 DVD는 빚을 내서라도 모두 구해서 듣고 또 보아야만 안심 할 수가 있었으니,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지나온 20 여 년 세월동안 나와 클래식 음악과의 열애는 너무나도 뜨겁고 또 깊은 관계의 연속이었던 것만 같다.
 

 

베토벤 피아노소나타 32곡 전곡 감상을 끝낸 후 나는 폴 베를렌(1844-1896)의 시

<예지>를 떠 올렸다.

 

하늘은 지붕위로

저렇듯 푸르고 조용한데

지붕위에 잎사귀를

일렁이는 종려나무.

 

하늘 가운데 보이는 종

부드럽게 우는데,

나무위에 슬피 우짖는 새 한 마리.

 

아하, 삶은 저기 저렇게

단순하고 평온하게 있는 것을

시가지에서 들려오는

저 평화로운 웅성거림.

 

-뭘 했니? 여기 이렇게 있는 너는

울고만 있는 너는

말해봐, 뭘 했니? 여기 이렇게 있는 너는

네 젊음을 가지고 뭘 했니?

 

 

시의 마지막 구절, 말해봐 뭘 했니? 네 젊음을 가지고 뭘 했니?

마치 절대자가 던지는 듯한 비수 같이 날카로운 질문 앞에 나는 내 생애 전반을 통렬하게 한번 되돌아보는 시간을 갖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작성 '13/12/05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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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

잘은 모르겠지만, 저도 언젠가 나이를 더 많이 먹었을때 선생님처럼 음악을 벗하여 살고 싶습니다..

13/12/05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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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음악을 듣는다는 것은
음(音)을 듣는 것에 국한되지 않고
즐김(樂)에 머무르지 않고
음악이라는 언어를 통해 인생을 바라보는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13/12/05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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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을 작성자가 직접 삭제하였습니다

13/12/06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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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

선생님의 클래식에 대한 열정이 너무 좋아보여 연재하시는 글 재밌게 잘 보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13/12/06 2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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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일상에 매몰되어 별 생각없이 살아가는 중에 선생님의 글은 자기 성찰의 등짝을 때리는 죽비가 됩니다. 감명깊게 잘 읽고 있습니다 언젠가 때가 되면 "이 곡만 듣고 나면 살맛이 난다" 2권이 나올것으로 기대합니다.

13/12/07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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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인용하신 시는 Verlaine 시는 포레 가곡 Prison의 가사군요. 원래 시 제목이 Prison이 아니고 예지였네요. 덕분에 좋은 글 읽고 좋은 시까지 배워갑니다.

13/12/08 2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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