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곡만 듣고나면 살맛이 난다(15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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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곡만 듣고 나면 살맛이 난다(157-1)

비올리스트 리처드 용재 오닐의 대표곡 모음집-<My Way>

 

 

경주 보문단지 내에 자리하고 있는 아트선재미술관이 우양미술관으로 그 이름을 바꾸고 새로운 출발을 알리는 첫 전시회로 기획한 <한국 근. 현대 미술 거장 전-아름다운 열정 박수근. 이중섭 전 (2013.6.13.-9.8)을 보기 위해 나는 아내와 함께 일요일(6/16)을 택하여 집을 나섰다.

 

1991년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부인 정희자씨가 소장품을 기반으로 문을 연 아트선재미술관을 지난해 부산의 중견 수산기업인 우양산업개발()가 경주힐튼호텔과 함께 매입하여, 미술관만 우양미술관으로 이름을 바꿔 이번에 첫 전시회를 열게 된 것이다

 

부산에서 경주까지는 승용차를 이용하면 넉넉잡아 1시간 30분 정도면 충분한 거리인데, 나는 여행도중 감상을 위해 왕복 소요시간을 계산해서 출발하기 전 리처드 용재 오닐의 대표곡들로 꽉 채워져 있는 2장짜리 CD- <My Way>, 정수년의 해금 연주반 <Beautiful Things In Life>, 그리고 황병기 제 4 가야금작품집 이렇게 4장의 CD를 준비하여 차에 실었다.

 

이제는 음악 없이 여행을 떠난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가 없을 정도로 내 여행에 있어 음악은 꼭 챙겨가야만 하는 필수품목 중 하나가 되어버렸다.

 

경주로 향해 달리는 고속도로 위에서 아내와 함께 듣는 정수년의 해금소리가 어찌 그렇게도 귀에 착착 감겨오던지.....

몇 년 전, 지리산 천황봉을 오르기 전 날 밤, 하룻밤을 묵으면서 법계사 절 골방에서 밤늦도록 듣고 또 들었던 정수년의 해금연주를 오늘 나는 박수근과 이중섭을 만나려 가는 고속도로 위에서 다시 들으며 황홀해 하고 있는 것이다.

 

이날 전시된 그림은 박수근 작품이 18, 이중섭 작품이 14, 모두 32점이었는데 , 관람객이 제일 많이 몰려든 작품은 아무래도 국내 경매사상 최고가인 452천만에 낙찰된 박수근의 1950년대 작품< 빨래터>가 아니였을까 한다.

 

전시된 박수근의 다른 그림으로는, 노상의 여인 3, 귀로 3, 노상 2, 여인 2, 그밖에 노상의 사람들, 고양이, 그림 그리는 소녀들, 줄넘기하는 소녀들, 인물, 판자촌, 고목과 아이들, 이렇게 모두 18점이었는데, 전시된 그림들은 모두가 하나같이 박수근이 살았던 시대에는 주변에서 흔히 볼 수가 있었던 그런 풍경이며 소재들이었다.

 

박수근의 그림을 18점이나 감상하고 나서도 나는 박수근의 그림이 무엇이 어떻게 좋은 것인지, 전혀 감을 잡을 수가 없어서, 그림에 한발자국 더 다가 서보고 싶은 마음에 미술관 직원에게 메모용지와 볼펜을 빌린 다음, 그림 사이사이에 걸어둔 짧막한 해설문들을 손수 베껴 쓰기 시작하였다.

 

<나는 인간의 선함과 진실함을 그려야 한다는 예술의 대단히 평범한 견해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내가 그리는 인간상은 단순하고 다채롭지 않다. 나는 그들의 가정에 있는 평범한 할아버지나 할머니 그리고 물론 어린 아이들의 이미지를 가장 즐겨 그린다.>

 

<박수근은 우리나라에서 근대미술이 시작된 이래, 서민들의 삶에 진지한 관심을 가지고 그린 첫 번째 화가라고 할 수 있다. 그의 그림에서 여인들은 늘 무언가 일을 하고 있고, 아이들도 등에 동생을 업고 놀고 있다. 한국인들이 겪은 가장 어려운 시기에 살았던 그의 그림에서는 각박한 현실의 느낌이 드러나면서도 그것을 감내하는 인내, 단순하면서도 정직한 삶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선하고 과묵하면서도 성실한 사람으로 알려진 박수근은 이들에게 애정을 느끼고 아마 자신을 이들과 동일시 했는지도 모른다. 바로 이러한 그의 그림 때문에 박수근은 한국인들이 가장 아끼는 화가로 남아있는 것이다.-김영나>

 

<작품의 주된 소재는 한결같이 그가 자란 시골의 집, 나무, 노인, 아기 업은 여인들이다. 이러한 소재는 그 당시 우리나라 어디를 가나 눈에 띄는 것들이다. 다만 그가 이러한 대상들에서 아무도 느끼지 못하는 아름다움의 요소를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사랑이었다. 이러한 주위의 하잘 것 없는 대상에 대한 남다른 애정과 애착이 있었기에 거기서 남들이 볼 수 없는 아름다움을 볼 수 있었고,이를 표현하는데 성공함으로써 오늘날 보는 이에게 그가 발견한 바를 올바르게 전달할 수 있게 된 것이다.-이대원>

 

<박수근은 늘 말하기를 나는 우리나라의 옛 석물 즉 석탑 석불 같은데서 말 할 수 없는 아름다움의 원천을 느끼며 조형화에 도입코자 애쓰고 있다고 말해왔다.

그리하여 그는 드디어 오래된 이끼 낀 듯한 화강암의 질감을 연상케 하는 미티에르를 창안하는데 성공함으로써 그 누구도 따를 수 없는 대상의 평면화를 성공적으로 이룩하게 된 것이다.-이대원>

 

<박수근의 이미지는 우리나라 민중의 삶의 모습을 더 없이 잘 형상화 하고 있다.

, 그의 삶이란 온갖 학대와 고난을 겪으면서도 역사의 표면에 두드러지게 나타나거나 사라짐 없이 살아온 확실한 삶과 다름없다. 그러한 삶의 실체를 우리는 박수근의 그림에서 그 마티에르와 선의 조형에서 누구나 쉽사리 그리고 분명하게 읽을 수 있다.-김윤수>

 

<아버지의 화구 상자 속에는 몽당연필이 있었습니다. 그 연필들은 내가 쓰다가 버린 것 들 이었어요. 그것을 주워서 뒤에 깍지를 껴서 대추씨 만해질 때까지 아껴 쓰셨어요. 지금도 아버지의 스케치가 남아있는데 그것이 모두 내가 쓰다버린 연필로 그리신 것입니다. 화가용 4H 연필이 아니라 내가 공부할 때 흔히 쓰던 연필이었어요-장녀 박인숙>

 

메모지를 받칠 만 한 것이 없어, 얇은 안내 팜플렛을 두 겹으로 접어 그 위에 메모지를 놓고 볼펜으로 꾹꾹 눌러가며 그림 사이사이에 걸려있는 설명문들을 힘들여 베껴 쓰고 나니, 비로소 박수근의 그림들이 새롭게 보이기 시작하였다.

그냥 건성으로 읽는 둥 마는 둥 지나가 버리기 마련인 그림사이의 설명문들을 힘들게 직접 베껴 적어보니, 그 행위자체가 그림 속으로 한걸음 더 깊숙이 다가서는 어떤 통로 구실을 해 주는 것이었다.

 

박수근(1914-1965) 참으로 어려운 시대를 살았던 화가 중 한 사람이다.

1914년 강원도 양구군에서 삼대독자로 태어났지만, 7세 되던 해 아버지가 광산에 손을 댔다가 큰 손해를 입는 바람에 양구 공립보통학교만 졸업하고 독학으로 그림공부를 하여, 193218살 나이에 조선미술전람회(鮮展)에 농가풍경을 그린 <봄이오다>라는 그림이 입선되어 화가의 길을 걷게 된다.

 

그러나 1033년부터 35년까지 3년 연속 선전에 낙선하는가 하면 , 1936년부터 1943년까지 내리 8년 연속 선전에 입선하는 등 부침의 세월을 보내게 된다.

 

그러나 요즈음 말로 그림하나에 가족의 목숨 줄 까지 모두 건 전업화가의 길은 가시밭길 바로 그것이었을 것이다.

세상을 떠나기 2년 전, 수술비가 없어 미루기만 해 왔던 왼쪽 눈의 백내장이 악화되어 수술을 하였으나 시신경이 끊어져 결국에는 왼쪽 눈을 잃게 되었고, 그로부터 세상을 떠나기까지는 오른쪽 눈으로만 그림을 그려오다가 51세라는 아까운 나이에 간경화증과 응혈증이 크게 악화되어 세상을 떠나게 된다.

8PX에서 외국인을 상대로 초상화까지 그려 팔면서 목숨 줄을 이어갈 수 밖에 없었던 그 힘든 세월 속에서도 삶에 대한 의지와 작품에 대한 뜨거운 열정하나로 자신이 처해있던 어려웠던 시대상황을 예술작품으로 승화시켜 놓았던 우리의 화가 박수근.

 

박수근의 그림들은 대부분 어둡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옛 석물 즉 석탑. 석불같은 화강암의 질감을 연상케 하는 울퉁불퉁한 부정형의 마티에르(matiere) 위에 그림을 그림으로서, 힘든 민중들의 삶의 모습들을 더 없이 잘 형상화시켜 놓고 있는 것이다.

 

이경자의 소설 빨래터를 보면(57페이지) 박수근의 그림에 대한 장남 박성남의 이야기가 나온다.

< 성남은 아버지의 그림이 전체적으로 뿌연게 싫었다. 사람 얼굴에서 눈과 코와 입이 제대로 보이지 않거나 아주 없는 것이 부끄러웠다. 실력과 재주가 없어서 눈과 코와 입을 그리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아버지가 그린 사과는 먹을 수 없어 보이는 사과이고, 참새는 참새 같지 않은 참새였다. 만약 아버지가 두렵지 않다면-지금까지 딱 한번이긴 했지만-아버지의 붓대로 종아리를 맞지 않아도 된다면 이렇게 말 할 것 같았다.

아버지의 그림은 다 엉터리에요. 가난하게만 그려요. 이런 우중충한 그림을 그리니까 우리가 더 가난하게 살잖아요. 어머니 좀 그만 고생시키세요!>

 

박수근은 가족은 일본에 두고, 서울에 있는 외국계 상사에서 근무를 하고 있던 미국인 존 릭스가 가족을 만나기 위해 일본에 갈 때마다 필요한 유화물감과 캔버스를 구해달라고 부탁하고, 그것을 받은 댓가로 자기의 그림을 다섯 점이나 주었다는데, 그중에는 우리나라 그림으로는 단군 이래 최고의 경매가격이 매겨진 <빨래터>도 포함되어 있었다고 한다.

 

그림을 팔아 생계를 이어가야 하는 전업화가의 입장에서, 유화물감이나 캔버스를 구입해 준 댓가로 자신의 목숨 같은 그림을 무려 다섯 점이나 주었다고 하니, 이 보다 안타까운 일이 어디 또 있을 것인가.

 

박수근의 실물 그림들을 감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앞으로 언제 또 있을까 싶기도 하여, 나는 그림 하나 하나를  몇 번씩이나 되짚어 가며 감상을 한 다음, 이중섭(1916-1956)의 그림을 보기 위해 자리를 옮겼는데, 이중섭의 그림을 감상할 때에도 그림 사이사이에 붙여둔 설명문들을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모두 베껴 써가며 감상하였다.

 

이중섭의 그림들을 직접 만나보는 것은 오늘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해 나는 서울미술관 개관전(2012.8.29.-11.21) “둥섭, 르네상스로 가세!”에서

작성 '13/07/28 2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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