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곡만 듣고나면 살맛이 난다 (15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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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7-1) 에서 이어지는 글 입니다.

<
이중섭의 은지화상감이라는 고려의 독창적인 기법과 아주 흡사하다.은박지에 조각하듯이 깊게 푹 눌러 그린 다음, 새겨진 듯한 드로잉에 물감을 채워 넣는다

그리고 닦아내면 은은한 달빛과 깊은 고요가 만들어진다. 이중섭의 은지화는 옛 도자기의 상감기법과 조각기법 그리고 회화와 드로잉이 복합적으로 들어간 새로운 개념의 창조적 예술이다. 그래서 은박지에 그린 이중섭의 그림을 유화, 수채화처럼 은지화라는 독립된 명칭으로 부르고 있는 것이다.-김영진>

 

<표현소재에서 너무나 한정되는 소, 어린이, 가족, 부부의 연작들은 그가 개인적으로 또는 민족적 현실에서 안 그릴 수 없었던, 절박한 심의의 표출이었다. 그는 그의 모든 그림 속에서 절절한 인간애, 민족애, 혈육애, 향토애와 아울러 평화로운 인간사회와 행복한 삶을 기도하는 마음에 쏟아 넣고 있는 것이다.

6.25의 상황과 비극을 겪은 많은 화가가 있지만, 이중섭처럼 가장 고귀한 것을 그렇게도 강조한 그림으로 일관된 작가는 별로 없다.-이구열>

 

오늘 내걸린 이중섭의 그림들은 아이들 5, 어린이와 새와 물고기, 닭과 게, 노란태양과 가족, 정릉풍경, 무제, 사나이와 아이들, 새와 애들, 두 아이와 비둘기, 사랑, 이렇게 모두 14점이었는데, 그중에서도 내 눈을 확 잡아 끈 것은 아내의 오른쪽 발을 들고 서 있는 사랑이라는 이름의 엽서그림이었다. 빨간 페디큐어를 바른 아내의 오른쪽발 하나를 들고 서서 빤히 내려다 있는 엽서그림은 눈물이 날 만큼 정겨워 보였다.

 

설명문에는 이 그림에 대해서 이렇게 써 놓았다.

<이 엽서 그림은 이중섭이 그의 부인이 된 야마모토마사코(山本方子)와 연애하던 시절에 글 대신 그림으로 하여 보냈던 일종의 연애편지 같은 것이다.

이중섭의 엽서그림은 1940년부터 43년까지 계속 보내졌고, 그의 부인은 그들만의 사연이 담긴 이 엽서그림을 앨범속에 고이 간직해 두었다가 19794월 미도파백화점 전시장에서 열린 <이중섭 작품전-미공개 200>때 처음으로 세상에 선 보였다. 이제 이중섭은 더 이상 그의 남편이 아니라 어려웠던 시절을 불행하고 또 행복하게 살다 간 예술가의 한 상징이라는 공인으로서 생각됐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박수근(1914-1965)과 이중섭(1916-1956)은 모두 일제시대를 거치고, 해방과 6.25사변이라는 힘든 세월을 살면서도 오직 그림 하나하나에 온 생을 다 걸었던 타고난 민족의 화가들이었다.

 

전시회장을 돌아보면서 나는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림 사이사이에 붙여놓은 설명문들을 직접 베껴 쓰는데도 적지 않은 시간이 소요되었지만, 분신 같고 살점 같은 저 그림들 때문에 박수근은 51, 이중섭은 40세의 나이에 그들의 소중한 생명을 모두 소진시켜 버린 것만 같아, 그림 하나 하나 앞에서 머무르는 시간이 길어지기만 하였던 것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아내와 함께 리처드 용재 오닐(1978- )의 대표곡들이

빼곡하게 실려있는 2장짜리 CD <My Way>를 들었다.

 

2장의 CD에는 슈베르트의 아르페지오네 소나타 D.821 전곡과, 소품, 한 악장씩만 떼어낸 연주곡들이 모두 24곡이나 실려 있는데 , 용재 오닐은 자신이 겪은 삶의 역경들을 음악 한곡 한곡에 모두 녹여 담은 그런 연주를 들려주고 있다.

실려 있는 곡 들 중에는 포레의 꿈 꾼 후에, 슈베르트의 세레나데, 오펜바흐의 자크린의 눈물, 브루흐의 콜 니드라이 OP.47, 이흥렬의 섬집아기 까지 누구나 좋아할 곡들로 그득하다.

 

용재 오닐의 어머니는 7세정도의 정신연령을 가진 지적장애인으로 한국전쟁 당시

고아가 된 후, 아일랜드계 미국인 오닐 부부에게 입양되었는데, 의사는 용재 오닐의 어머니를 특수시설로 보내라고 했지만, 오닐부부는 장애가 있어도 본인들이 손수 기르겠다고 우겼다고 한다.

 

그 뒤 어머니는 후천적 장애를 가진 아버지를 만나 용재 오닐을 갖게 되었는데, 조부모가 모든 사항을 고려해서 어머니와 아버지를 떼어놓은 바람에 용재오닐을 아버지 없이 자랐다고 한다.

 

용재 오닐은 동양사람 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미국 워싱턴 주 세큄이라는 시골마을에서 자라면서 장애인 엄마, 입양아, 사생아, 이방인, 경제적으로 넉넉지 않은 집안 형편 등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현실 속에서 많은 고통을 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70을 넘긴 할머니는 용재 오닐에게 음악을 가르치기 위해 매주 왕복 6시간이 넘는 먼 거리 레슨 장소까지 10여 년 동안을 손수 운전까지 하면서 용재오닐의 교육에 열성을 쏟음으로써 용재 오닐의 오늘을 있게 만들었다고 한다.

 

나는 어머니로 부터는 밝고 열정적인 것을, 할아버지로 부터는 예술적인 감각을, 할머니로 부터는 열심히 일하고 어떠한 현실 앞에서도 결코 불평을 해서는 안된다는 교육을 받았습니다.

장애가 있는 어머니와, 키워주신 할머니와 할아버지, 이 세분의 사랑이 바로 오늘의 자신을 있게 만든 결정체였다고 용재 오닐은 힘주어 말하고 있다.

 

비올리스트로서는 줄리아드 음악대학 최초로 아티스트 다플로마 전액장학금 수혜자, 미국 클래식 최고의 영예인 2006년 에이버리 피셔 커리어 그랜드상 수상자,

뉴욕 최고의 실내악단 링컨센타 체임버뮤직소사이어티 단원, 세종 솔로이스츠 수석 비올리스트, UCSA 최연소 음대교수 등 용재 오닐의 이력은 화려하다.

 

슬픈 가족사를 겪어야 했지만, 어머니의 사랑과, 조부모님의 헌신적인 교육과 사랑을 통해 그 모든 아픔들을 의연하게 이겨내고 오뚜기처럼 우뚝 서서 이제는 타인의 아픔을 어루만져 주는 일에 헌신적인 노력을 쏟고 있는 용재 오닐.

 

그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아티스트는 자기 자신을 내어주어야 합니다. 예술을 통하여 인간사에서 비춰지는 존재, , 고통, 죽음 등 이 모든 것들을 주고 나누어야 합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순간 순간들은 전부 다 선물입니다.”

 

아내와 함께 용재 오닐의 음악을 들으며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너무나 행복하였다.

오늘 하루, 박수근과 이중섭의 그림에다 용재 오닐이 연주하는 음악까지 실컷

감상할 수 있었으니, 이 보다 행복한 시간이 어디 또 있을 것인가

작성 '13/07/28 2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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