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퀴엠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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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퀴엠은 죽은 사람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한 미사로 진혼곡, 또는 만가라고도 한다.
 
초기 르네상스 작곡가인 벨기에 태생의 요하네스 오케겜(1425-1497)은 다성악 기법으로 레퀴엠을 작곡했는데, 그것은 샤를 7세와 루이 11세의 장례식을 위한 것이었다. 팔레스트리나와 동시대 인물인 스페인의 토마스 루이 데 빅토리아(1548-1611)는 마리아 여제를 위해 레퀴엠을 썼다. 바로크 시대 초기의 이탈리아 작곡가 프란체스코 카발리(1602-1676)는 자기 자신의 장례식을 위해 레퀴엠을 썼다고 추정된다.
 
후기 바로크 시대에 활동한 오스트리아의 요한 요제프 푹스(1660-1741)는 비엔나의 합스부르크 왕가의 궁정 작곡가로서 세곡의 레퀴엠을 작곡했는데, 그것들은 각각 황제와 황후, 그리고 왕자를 위한 것이었으며, 단성악과 다성악을 병치시킨 것이었다. 후기 바로크 시대의 프랑스 작곡가 쟝 질르(1668-1705)의 레퀴엠은 자신의 장례식 때 초연되었고, 당시의 폴란드 왕과 작곡가 라모, 그리고 루이 15세의 장례식 때에도 연주되었다. 스승인 앙드레 캉프라(1660-1744)는 자신의 장례식을 위해 그것을 몰래 숨기도 했다는데, 실제로 그의 장례식 때 연주되었다고 한다.
 
후기 바로크 시대에 활동한 보헤미아 출신 얀 디스마스 젤렌카(1679-1745)는 여러 곡의 레퀴엠을 작곡했다. 그중의 하나는 폴란드의 군주인 아우구스투스 2세의 장례식을 위한 것이었고, 또 하나는 요셉 1세 황제를 위한 것이었다. 아돌프 하세(1699-1783)는 18세기 독일 작곡가로 다장조와 내림 마장조 두 곡의 레퀴엠을 남겼으며, 전자는 폴란드-리투아니아 공국 선거후의 장례식을 위해 쓰인 것이다. 이탈리아의 루이지 케루비니(1760-1842)는 이탈리아 고전주의와 낭만주의 사이의 작곡가인데 두 곡의 레퀴엠을 작곡했고, 하나는 다단조로 프랑스의 루이 16세의 처형 기념으로 연주되고, 나머지 하나인 라단조는 자신의 장례식 때에 연주되도록 쓰였다. 후기 고전주의 이탈리아 작곡가 안토니오 살리에리(1750-1825)의 레퀴엠은 작곡된 후 이십여 년이 지난 뒤 그의 장례식에서 초연되었다. 살리에리는 영화 『아마데우스』에서처럼 병원에서 치매를 앓다가 죽었다.
 
하이든의 동생인 미하엘 하이든(1737-1806)의 다단조 레퀴엠은 지그문트 대주교를 위해 작곡되었는데, 나중에 모차르트 레퀴엠의 모델이 되었다. 모차르트(1756-1791)는 1791년 봄에 신원을 알 수 없는 사람으로부터 위촉을 받고 라단조 레퀴엠을 작곡했다. 하지만 그는 작곡 도중에 사망하여 그의 제자들이 그것을 완성하였다. 영화 『아마데우스』에서 그의 주검이 마차에 실려 공동묘지로 향할 때 이것이 흘러나왔다.
 
18세기에 활동한 이탈리아의 오페라작곡가 도메니코 치마로사(1749-1801)는 자기 후원자의 아내인 공작부인의 장례식을 위해 레퀴엠을 작곡했고, 모차르트와 거의 같은 시기에 살았던 요제프 레오폴트 아이블러(1765-1846)도 레퀴엠을 썼는데, 그것은 레오폴드 2세의 추도미사를 위한 곡이었다.  브람스(1833-1897)는 사랑하는 어머니의 죽음을 계기로 그의 독일 레퀴엠을 작곡했으며, 베를리오즈(1803-1869)는 1830년 프랑스 혁명의 희생자를 위해 레퀴엠을 작곡했다. 리스트(1811-1886)는 먼저 세상을 떠난 친구 쇼팽을 추모하기 위해 레퀴엠을 작곡했고, 베르디(1813-1901)는 죽은 로시니와 대시인 알레산드로 만초니를 추모하기 위해 레퀴엠을 썼다.
 
생상스의 친구 알베르 리보는 죽기 전에 생상스에게 십만 프랑을 주면서, 그 돈으로 작곡 활동을 하되 자신의 추모 1주기에 연주될 레퀴엠을 작곡해 달라는 조건을 달았다. 생상스(1835-1921)는 그 조건을 받아들였고 약속대로 친구의 추모 1주기 때에 레퀴엠을 연주하였다. 무신론자인 포레(1845-1924)는 레퀴엠 작곡 동기에 대해서 그냥 재미로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의 레퀴엠이 자신의 장례식 때 연주되었다. 도니제티(1797-1848)는 무려 네 곡의 레퀴엠을 썼지만, 그중 하나만이 남았고, 그 곡은 자신의 동료이자 라이벌이던 벨리니를 위한 것이었다. 푸치니(1858-1924)는 선배인 베르디를 추모하기 위해 레퀴엠을 썼다.
 
브루크너(1824-1896)의 레퀴엠은 프란츠 세일러라고 하는 사람을 위해 작곡되었으며, 그것은 그 사람이 그에게 피아노를 물려주었기 때문이었다. 독일의 작곡가 막스 레거(1873-1916)는 1914년과 1915년 전쟁으로 죽은 독일의 영웅들을 위해 레퀴엠을 작곡했는데, 독일의 시인 크리스티안 프리드리히 헤벨의 시에 곡을 붙였다고 하여 그 곡은 헤벨 레퀴엠이라고도 불린다. 브리튼(1913-1976)의 전쟁 레퀴엠은 2차대전 폭격으로 파괴된 코벤트리 성당의 축성식을 기념하기 위해 위촉받은 것이고, 펜데레츠키(1933-2020)의 레퀴엠은 1970년에 일어난 폴란드 폭동으로 죽은 자들을 기리기 위한 기념탑의 제막식을 위해 작곡된 것으로 『폴란드 레퀴엠』이라고도 불린다.
 
헝가리의 리케티(1923-2006)도 레퀴엠을 썼는데, 그것은 스웨덴 라디오 방송 콘서트 시리즈에 연주되도록 위촉된 것이다.  여기에는 4 성부로 구성된 5개의 합창단, 모두 합해 20 성부가 등장한다. 그리고 이 곡은 마이크로폴리포니 기법이 적용되어 많은 성부들이 거의 비슷한 음역대에 몰려 있기 때문에, 듣는 사람들에게 불협화음의 안개를 연상시킨다. 이 레퀴엠은 견디기 힘들다. 오래 듣다가는 그만 정신이상이 될 것 같다. 그래서 누군가는 귀를 틀어막을 것이다. 이렇게 레퀴엠 형식을 빌었다고는 하나 기독교가 약속하는 내세와 구원의 약속으로도 달랠 수 없는 공포가 가득한 이유는 리게티의 어두운 과거와 관련이 있다. 2차 세계대전 중에 어머니와 자신만을 빼고 다른 직계 가족들은 아우슈비츠 등에서 모두 죽었기 때문이다.
 
 
 
 
작성 '20/06/04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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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c***:

개인적으로 저는 쌍동이 형님이 계시는데 같은 대학을 다니면서 University Chorus에서 함께 Faure Requiem을 First Tenor로 참여한 경험이 있습니다. 연습하는 내내 참~ 이 음악은 하나님 스타일 이구나... 유한한 인간의 영혼을 받으시는 무한하신 분께 올리는 OST구나...

그리고 몇 해 전 무한하신 분은 이른 나이에 형님을 데려가셨고 ㅠ 장례식에는 Faure Requiem이 잔잔히 울려퍼졌습니다. 그리고 'Pie Jesu'는 형님이 좋아했던 Barbara Bonney 목소리로 올려드렸습니다.

20/06/04 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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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을 작성자가 직접 삭제하였습니다

20/06/04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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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c***:

당시 형님과 함께 했던 공연 실황을 합창단원에게 CD로 나눠줬는데 verdi님의 위로와 함께 다시 한 번 들어 봐야겠네요. 고맙습니다~

20/06/04 2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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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ve***:



버클리님, 포레의 레퀴엠은 고요히 타오르는 향불처럼 같아요. 통곡하지 않으며, 절규하지도 않고, 격렬하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죽음을 견딜만하게 해줍니다.

쌍동이 형님이 돌아가셨다니, 상실감이 정말 크셨겠습니다. 영혼의 절반을 여의신 기분이셨을 겁니다. 포레의 레퀴엠으로 보내드리는 예를 깆추어 주셨으니 그래도 작별의 아픔이 조금은 승화되었으리라 생각됩니다.

슬픔은 우리의 공감력을 확장시키고, 영혼의 눈을 뜨게 해줍니다. 슬픔을 모르는, 눈물이 뭣인지 모르는 사람은 영혼을 모릅니다. 성경에 비유하자면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버클리님, 쌍동이 형님께서는 하늘나라에서 편히 잠들고 계실 겁니다. 우리들은 헤어진 사람들을 다시 만날 때까지 우리에게 주어진 길을 걸어야겠지요.

오늘 버클리님의 메아리는 정말 저를 크게 흔들었습니다. ^^

20/06/04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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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전쟁의 참상을 직접 겪은 리게티 (어머니와 자신만 전쟁에서 살아 남고 다른 직계 가족들은 아우슈비츠 등에서 모두 죽었습니다) 에게 죽음은 공포스러웠는지도 모릅니다. 이는 리게티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일지도 모르고요.

20/06/05 0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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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ve***:


너구리 님의 말씀대로 아우슈비츠를 경험한 리게티에게 죽음의 공포는 그 어떤 것으로도 위로할 수 없는 것입니다. 기독교가 약속하는 내세와 구원, 부활의 약속조차 공포심을 달래수 없었을겁니다. 이런 아우슈비츠의 경험이 마이크로클러스터가 주는 불안하고 초조하며 으스스하고 질식할 것 같은 효과와 잘 맞물려 있습니다. 그래서 듣는 우리는 리게티의 경험을 간접 체험하게 됩니다.


오늘날 내세를 믿지않고 아직은 죽음을 받아들일 준비가 전혀 되어있지 않으며 죽음이 줄수도 있을 철학적 위안조차 사라진 오늘 날에 적절한 레퀴엠인 듯 합니다. 물론 사람들은 이 레퀴엠에 귀를 꼭 막겠지만요. 너구리님의 소중한 댓글 고맙습니다.^^

20/06/05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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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ve***:

제 글의 끝 부분을 이따가 바꿔야 겠습니다. ^^

20/06/05 0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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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ve***:

원래 두 개의 글, "레퀴엠의 역사"와 "리게티의 레퀴엠"이었는데, 하나로 합쳤었습니다. 그리고 리게티의 것은 코믹하게 썼었읍니다. 그 어떤 장례식에도 절대 초대받지 못할 거리고, 너무나 무서워서.

성격이 다른 두개의 글을 합치다보니, 키메라처럼 어색하고, 제목도 이상해 여러 번 바꿨는데, 너구리님의 댓글을 읽고 방금 과감하게 뒷부분을 싹 고쳤습니다.

그러고 보니 글이 전보다 잘 빠졌네요. 제목도 깔끔해지고요. 덜 횡설수설하네요. 너구리님, 고맙습니다. ^^

20/06/05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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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o***:

아. 그런데, 리게티는 헝가리 사람이예요.

20/06/05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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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ve***:

서두르다보니 실수했네요. 바로 고치겠습니다. ^^

20/06/05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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