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시절을 찾아서 ㅡ오페라 『헨젤과 그레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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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헨젤과 그레텔』은 독일 그림 형제의 동화로 그것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헨젤과 그레텔은 가난한 나무꾼의 아이들인데, 가난을 두려워한 계모는 남편에게 아이들을 숲속에 버리라고 종용한다. 헨젤과 그레텔은 그녀의 계획을 듣고 집으로 가는 길을 표시하기 위해 하얀 조약돌을 모은다. 아버지는 그들을 숲속에 유기한다. 그런데 그들이 돌아오자, 계모는 남편에게 다시 아이들을 버릴 것을 종용한다. 다음 번에는 빵 조각으로 길을 표시하지만, 불행하게도 그들은 숲의 동물들이 빵 조각을 먹어버려 그만 길을 잃고 만다.

 

숲에서 길을 잃은 그들은 빵과 설탕으로 만들어진 집을 발견하고, 그 집을 먹기 시작한다. 이 집에 거주하는 노파는 그들을 안으로 초대하고, 그들을 위해 축제를 준비한다. 하지만 그녀는 사실 마녀이고, 그 집은 아이들을 꾀기 위해 지은 것인데, 아이들이 살이 찌면 마녀가 잡아 먹는 것이었다. 마녀는 헨젤을 우리에 가두었고 그레텔을 하녀로 삼는다. 마녀는 헨젤을 끓일 준비를 하는 동안, 그레텔에게 올라가서 오븐이 빵을 굽는 준비가 되었는지 확인하라고 한다. 하지만, 그레텔은 마녀가 그녀를 구울 생각임을 알고, 꾀를 내어 마녀의 등을 떠밀어 오븐으로 빠뜨린 다음, 오븐을 잠가버린다. 마녀의 집에서 보석을 가지고 그들은 집으로 나와 아버지와 재회하는데, 계모는 이미 죽은 이후였다. 그들은 오랫동안 행복하게 살았다.

 

독일 작곡가 엥겔베르트 훔페르딩크(1854-1921)가 작곡하고 1893년에 초연된, 3막 오페라 『헨젤과 그레텔』의 각본은 다음과 같은 점에서 원작 동화와 다르다. 헨젤과 그레텔의 어머니가 원작처럼 신경질적이긴 하지만 친어머니로 나오고, 아버지는 나무꾼이 아니라 빗자루 행상이다. 또 헨젤과 그레텔은 부모에게 유기되는 게 아니다. 이웃에게서 얻어온 우유를 엎질러 엄마에게 호되게 혼난 뒤, 들판으로 먹을 것을 구하러 나갔다가 자기들끼리 숲속을 거닐게 되면서 길을 잃도록 설정되어 있다. 그래서 동화에서처럼 조약돌과 빵조각으로 집으로 돌아오는 길을 표시하지 않는다. 또 여러 번 집을 떠나는 것이 아니고, 딱 한 번이다. 그리고 엄마와 아버지는 아이들이 길을 잃은 것으로 판단하고, 즉시 숲속에서 길을 잃은 아이들을 찾아 나선다. 동화에서처럼 마녀가 죽은 뒤, 헨젤과 그레텔은 그 안에 있던 금은보화를 가지고 집으로 돌아오지 않는다. 대신 그들은 마녀가 죽자, 마법으로 과자 인형으로 변했던 아이들을 데리고 마을로 돌아온다.

 

2.

 

이 오페라 음반은 고클래식 디스코그래피에만 47종이 올라와 있다. 이 숫자는 어린이들을 위한 음악으로 유명한 프로코피예프의 『피터와 늑대』가 40종, 그리고 생상스의 『동물 사육제』가 55종인 것을 고려해 보면, 생각보다 많은 숫자이다. 한마디로 인기가 많다는 것이다. 매년 크리스마스를 전후해 독일과 오스트리아 등 독일어권 국가들의 오페라 극장에서 상설 공연되고 있다. 특히 오스트리아 짤츠부르크에서는  마리오네트 오페라로도 공연된다. 이러한 인기의 비결은 우선 마녀와 같이 환상적인 요소가 아이들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또 과자로 만든 집을 뜯어먹는 주인공들을 통해 대리만족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도 주인공인 헨젤과 그레텔이 여기에서 수동적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그려졌기 때문일 수도 있다. 보통 동화에서는 주로 아이들이 수동적인 인물들로 나오기 일쑤이다. 『신데렐라』, 『빨강모자』, 『백설 공주』, 『라푼젤』, 『잠자는 숲속의 공주』 등에서 주인공이 모두 수동적이 아닌가. 그런데 헨젤과 그레텔은 그 누구의 도움 없이 자신들의 용기와 재치만으로 무시무시한 마녀를 무찌르고 많은 아이를 부모의 품으로 돌려보냈으니, 같은 어린이로서 어찌 그들이 자랑스럽지 않겠는가.

 

혹시라도 당신이 이 오페라가 어린이를 위한 것이니, 그 안의 음악이 다른 오페라 것보다 열등하리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큰 오산이다. 전체적으로 선율은 어린이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소박하다. 그러나 지극히 아름답고 서정적이며 불순물 하나 섞이지 않은 순금과도 같은 것이다. 그래서 당신이 만일 1막 1장에서 헨젤과 그레텔이 듀엣으로 부르는 노래를 듣는다면, 그리고 1막 3장 아버지가 집에 돌아오면서, 먹을 것을 잔뜩 가지고 돌아오면서 부르는, "우리 가난뱅이는 하루하루가 똑같지" 하고 시작하는 아리아를 듣는다면, 2막 2장에서 헨젤과 그레텔이 숲속에서 잠들기 전에 둘이서 노래하는 기도, “내가 누워 잠들 때 열네 천사가 지켜 주소서”라는 노래를 듣는다면, 당신은 지금의 아이들을 질투하고, 이것을 보지 못한 우리의 어린 시절을 원망하게 될 수도 있다.

 

3.

 

리뷰 대상 영상물은 영화 버전이다. 그래서 현장감은 결핍되어있다. 하지만 그 대신 잦은 카메라 초점의 이동과 클로즈업 등은 입체적인 조망이 가능하게 해준다. 또 빗자루가 날아가고 마녀의 집에서 과자 인형이 원래의 아이들로 돌아오는 환상적인 장면은 영화기법이 아니고서는 연출이 불가하다. 이런 영화만이 갖는 장점에 헨젤 역을 맡은 독일 출신 메조소프라노 파스파엔더, 그리고 그레텔 역을 맡은 슬로바키아 출신 소프라노 그루베로바의 천진난만한 연기는 사실성마저 보태어 몰입감을 극대화했다.

 

 

 

작성 '20/06/24 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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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제가 코로나 전에 마지막으로 보았던 오페라네요. 작년 12월에 제가 사는 도시에서 연주해서 참 재미있게 보았습니다. 특히, 2막 마지막의 꿈 판토마임 장면에서 라푼젤, 신데렐라 등 디즈니 캐릭터 들이 등장한 장면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또, 복잡한 음악인데도 겉으로는 단순하게 들리는 것도 인상적이었구요 - 초연을 지휘한 리하르트 슈트라우스가 왜 걸작이라고 말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코로나로 심난한 때에 즐거운 기억을 떠올릴 수 있는 글을 써 주셔서 고맙습니다.

20/06/24 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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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ve***:

이번 코로나로 두문불출하던 때, 로시니의 <신데렐라>를 보고 글을 써보던 중, 역시 유명한 동화 <헨젤과 그레텔>이 생각나고, 그래서 오페라를 보고 정리해보았답니다. 글로 써서 남겨놓지 않으면, 나중에 뭘 보았는지 도무지 기억이 안나거든요. 말이나 제대로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너구리님의 공감의 댓글, 저에게 큰 격려가 되었답니다.^^

20/06/24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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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

우리나라의 애기묘, 무덤도 쓰지 않고 그냥 묻는다는 풍습도 실제로는 형식적인 검시도 없이 매장을 허락하는, 법치국가에서 공식적으로 용인할 수 없는 유아살해의 암시가 아닐까 싶어요.
실제로 근대 이전의 유럽까지 유아살해는 법적인 처벌도 받지 않았다고 합니다. 우연히(!) 업고 있던 아이를 떨어뜨리거나, 가마솥에 심하게 데이거나, 우유통에 빠지는 등의 이유로 유아가 죽으면 유일한 조치가 교회에 가서 참회하게 만드는 것이 전부였다는군요.
아기를 죽이는 이유는 다 아는 거니까 그나마 양심이 유일한 보호자가 된 셈이죠.

근대에 들어 교회에 아이를 갖다버리면 고아원에 보내 기르는 시스템이 생기는데, 이건 사실상 아이들의 인권을 위해서가 아니라 아이를 직접 죽인 양심의 가책으로 피폐해지는 부모의 영혼을 위한 서비스였다고 보고 있습니다. 초기의 고아원의 치사율이 80%를 넘었고 사실상 부모 대신 국가가 나서 아이들을 죽여주는 셈이었던 것이죠. 산업혁명 이후 아이들의 노동력이 가치있게 되니까 가정에서는 아이를 죽이지 않는 게 유리하게 되었고, 고아원도 산업역군을 기르는 요람이 된 셈이구요.
어쩌면 우리가 생각하는 사랑과 책임이 넘치는 가정이라는 것도 공교육이 만들어낸, 부국강병을 위한 이데올로기인 것이죠.

20/06/25 0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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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

과거의 잔혹한 현실을 가감없이 동화에 담아낸 게 그림 형제 시대의 풍경이었다면, 인간의 너무 깊은 어둠까지 들여다볼 필요없어진 시대에 어느 정도 '위생처리'를 한 것이 오페라 각본인 셈입니다.
19세기 말쯤 되면 (내버림으로써 기대하는) 유아살해 같은 잔혹한 과거는 소재로 쓰기 꺼림직했을 테고, 어쩌다 길을 잃는 이야기로 바꿨을텐데 대본작가의 고충이 느껴집니다.

심리학에 영감을 받은 연출가들은 실제로 마녀=엄마라는 (젖을 뗄 무렵 엄마는 가슴으로 기어드는 아이를 떼어내기 위해 단호한 태도를 취하게 마련인데 그때의 충격이 잠재의식에 크게 남는다는군요) 설정을 그려보고 싶어 손이 간질간질할 듯 하기도 합니다.
뭐, 이쯤 되면 어린이를 위한 오페라라는 선은 넘어버리게 되는군요.

2012년 바이로이트 "파르지팔" 공연에서 전주곡 장면을 어린 파르지팔이 병든 어머니를 뿌리치고 도망가면서 일종의 트라우마를 가지게 되는 것을 보여주는데 할애하고, 1막 끝에 암포르타스의 침대에서 암포르타스가 어머니 헤르첼라이데로 바뀌어 성인이 된 파르지팔을 괴롭히는 연출을 했을 때 정말 전율을 느꼈거든요.
볼프람 폰 에센바흐의 서사시에서 실제 암포르타스와 헤르첼라이데는 남매지간이기도 하고, 병들어 죽어가는 외삼촌의 모습에서 죽은 어머니를 연상해 쇼크를 받는 식의 연출을 했을 때 비로소 바그너 대본의 결함이 깔끔하게 메워지는 걸 봤으니까요.

20/06/25 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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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ve***:

인권의 개념이 없는 옛날에는 끔찍한 풍습이 많았겠죠. 그것들이 동화와 신화의 모티프가 되거나 그속에 반영되었겠죠. 지니님의 정신분석적, 신화적 접근에 대한 댓글은 작품해석에 도움이 됩니다.^^

20/06/25 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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