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년 메트로폴리탄 돈 지오반니 H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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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년 메트 무대에 첫 선을 보인 그랜디지 연출의 돈 지오반니 프로덕션은 올라오자마자 관객들과 평론가들에게 대차게 까였고 오늘날까지도 최근 메트의 워스트 프로덕션을 꼽아보자고 할 때 순위권에 들어갑니다. 돈 지오반니가 섹스와 자유라는 자극적인 소재 덕에 실험적인 연출가들에게 자주 재해석이 되는 판에 그랜디지는 30 년쯤 시대를 역행한 보수적이고 안일한 프로덕션을 내놨거든요. 그나마 도입부 지오반니의 강간미수에서 안나가 사실은 지오반니에게 성적으로 끌린다는 점을 살짝 섞긴 했는데 이것조차도 요즘 돈 지오반니 프로덕션들에서는 흔하디 흔한 연출이라 전혀 새롭지 않습니다. 현대적 연출 선호자들은 „2011년도에도 아직 이따위 연출이 나온다는 것 자체가 가장 전위적인 점이다ㅋㅋㅋㅋㅋ“라며 그랜디지 판을 깠고 전통적 연출 선호자들은 어차피 시대풍으로 갈 바에야 예전 프로덕션이 훨씬 옷도 무대도 때깔이 고왔거늘 왜 돈 들여서 칙칙한 쓰레기를 내놨냐고 깠습니다.ㅋㅋㅋㅋㅋ 영화관에서 HD 중계를 하자 이윽고 뉴욕에 살지 않는 사람들도 돈 지오반니를 일부러 이리 재미없이 뽑아내기도 힘들겠다고 욕을 하기 시작했습니다.ㅋㅋㅋㅋㅋ

 

그래서 이 프로덕션은 다음 프로덕션 제작될 때까지 조용히 리바이벌이나 되다 잊혀질 운명이었습니다만(아직까지 디비디/블루레이 출시도 안 됐습니다ㅋㅋㅋ) 그만 어른의 사정으로 인해 캐스트를 바꿔서 초연 후 5 년만인 이번 시즌 HD 상영작 리스트에 포함되고 말았습니다. 아마도 그 탓에 HD 상영 리스트에서 밀려난 걸로 추측되는 로시니의 빌헬름 텔 팬들이 그 거지같은 지오반니로 사골 끓일 생각 말고 빌헬름 텔이나 올려달라고 아우성을 쳤지만 소용 없었습니다. 사실 빌헬름 텔 지지자들 말이 일리가 있는 게 이미 5 년 전 상영을 했던 돈 지오반니와 달리 빌헬름 텔은 (네덜란드에서 이미 공연했던 프로덕션을 메트로 가져온 거라 비록 완전한 새 프로덕션은 아니었지만) 메트에는 이번 시즌에 첫 선을 보인 프로덕션이었던 데다 캐스트들이 제 몫을 잘 해서 평도 좋고 입소문이 잘 난 덕에 표도 꽤 잘 팔린 편이었습니다. 아마 빌헬름 텔이 상영됐어도 좋았을 거예요. 근데 전 돈 지오반니가 상영돼서 더 좋은 게 왜냐면 타이틀 롤이 킨리사이드라. 프로덕션 좀 구리면 어떻고 2011 년에 했던 거면 어떻습니까, 우리 오빠 나오는데(…). 2011 년에는 우리 오빠가 없었다고요….

 

그 어른의 사정이라는 게 이렇습니다. 킨리사이드는 2014 년 말 빈 국립 오페라에서 리골레토를 부르다 목소리가 안 나오는 바람에 2 막 마치고 gg 치는 사고를 겪었는데 거기에 악재가 겹쳐 잠수가 길어졌습니다. 기껏 망가진 성대 대충 복구되나 싶었더니 이번에는 갑상선에서 이상이 발견됐거든요. 여기에는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이 있는데 좋은 소식은 그 이상이 악성 종양, 즉 암은 아니었다는 거고 나쁜 소식은 그게 밝혀졌을 때는 킨리사이드는 이미 갑상선 반쪽을 떼어낸 다음이었다는 겁니다. 달리 표현하자면 암인 줄 알고 허겁지겁 목 가르고 수술했더니 오진이었다고….

 

킨리사이드가 다른 직업군이었음 그래도 암 아닌 게 어디냐, 다행이다 하고 끝낼 일인데 하필 가수라….목에 한 외과적 수술이 후유증이 없을 리가 없죠. 킨리사이드는 완전 절제가 아니라 반절제라 제가 보기에는 역시 갑상선 수술을 겪은 배재철이나 토비 스펜스에 비하면 후유증의 범위가 작습니다만 소리에 영향을 받긴 했습니다. 특히 고음 쪽이 그런데 이건 언제 기회되면 따로 얘기하기로 하고요, 하여간 그래서 킨리사이드는 2015 년2 월부터 1 년 가량 유럽과 미국 무대에는 전혀 못 섰고(9 월 갑상선 수술 직전 ROH 에 묻어 일본 가서 수술비 벌어온 게 답니다) 2016 년 들어와 복귀 시동 걸 때도 일부러 언론의 주목을 피해 조심스럽게 활동을 재개했습니다. 여러분 제가 돌아왔습니다 하고 요란하게 광고했다가 또 사고내면 그 땐 누가 킨리사이드를 써주겠냐고요….안 그래도 이 양반이 제 버릇 개 못 주고 복귀 시동 걸어 슬슬 움직이다가도 또 캔슬질을 해서 제 통수를 쳤습니다만 그 얘기도 다음 기회로 넘기고….

 

이런 전차로 킨리사이드는 한동안 말 그대로 ich bin der Welt abhanden gekommen (나는 세상에서 잊혀지고)의 상태였습니다. 그치만 언제까지나 윈도우 안전 모드 상태로만 살 수도 없는 게 대충 재활 과정 끝났다 싶으면 공식적으로 여러분 저 아직 안 죽었음ㅋ 하고 건재한 척을 한 번 해줘야 합니다. 그래야 소식 끊긴 오빠 돌아가신 줄 알고 3 년상 치르기도 전에 흩어진 빠들도 돌아오고 영상물 장사도 계속 하고 일감도 새로 얻죠. 

그래서 킨리사이드의 ‚공식적‘ 복귀 무대로 선택된 게 올해 가을 메트 돈 지오반니였습니다. 왜 ‚공식적‘이라고 따옴표가 붙냐면 실은 킨리사이드는 그 전 몇 달 동안 뮤지컬도 뛰고 가곡 리사이틀도 하고 오페라도 하면서 무대 재적응 재활 과정을 거쳤기 때문입니다. 다만 그 전에는 혹시 실패해도 소문 안 나게 일부러 언론 피해서 조용히 공연을 했는데 이제 재활은 대강 끝냈으니 건재 선언 하고 정상 영업 모드로 들어간단 겁니다. 

 

돈 지오반니 프로덕션을 놓고 킨리사이드와 메트의 이해관계가 맞아들어간 게, 그랜디지의 돈 지오반니 프로덕션은 2011 년 출시 당시 이미 사망 판정 받은 망작이라 킨리사이드가 새로 말아먹어도 메트 입장에서는 본전입니다. 만약 킨리사이드가 용케 살려주면 좋은 거고 킨리사이드도 실패하면 역시 이건 안 되는 물건이구나 하고 다시 묻으면 됩니다.ㅋㅋㅋㅋ킨리사이드 입장에서는 자신 있는 작품인 돈 지오반니로 자신이 영업 재개했음을 전세계 영화관에 중계할 수 있음 아주 좋지요. 리골레토 사고가 카메라 앞에서 스펙터클하게 벌어졌으니 부활 신고도 카메라 앞에서 해야 격이 맞지 않겠습니까.ㅋㅋㅋㅋ

 

허나 팬인 저의 이해 관계는 오빠나 극장과는 맞지 않았으니…2011 년에 영화관에서 이 프로덕션을 봤던 저는 킨리사이드가 올해 여기 나온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 두 가지를 걱정했습니다. 1. 과연 개성이 말살된 그랜디지 프로덕션에서 킨리사이드가 얼마나 독자적인 해석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인가. 2. 젠장 그 프로덕션 의상이랑 가발 우리 오빠한테 되게 안 어울릴텐데에에에에에!!!!!! 저는 얼빠인 고로 1 번보다는 2 번이 훨씬 심각한 문제였습니다. 우리 오빠는 긴 머리 죽어라 안 어울리는 데다 쿨톤이라 밝은 원색 의상은 쥐약인데….ㅠㅠㅠㅠㅠㅠ

 

그리고 한 가지 더 문제가 있었죠. 과연 환갑이 다 된 가수가 섹스어필이 요건인 지오반니 역을 소화하는 게 가능한가. 페터 슈라이어 옹은 일찌기 „환갑 된 타미노는 좀 그렇죠.“하고 양심선언을 하신 바 있습니다. 그치만 저희 오빠에게는 그만한 양심이 없었습니다….아무리 이 바닥이 쉰 살 먹고도 열여섯 살인 척 하는 바닥이라지만 그래도 영화관 중계인데…일반인들도 보러 올텐데…아니, 난생 처음 돈 지오반니 보러 온 일반인이 영화관 화면 가득 주름 자글자글한 킨리사이드가 지지리도 안 어울리는 가발 뒤집어쓰고 치명적인 척하는 거 보고는 으아악 오페라란 이런 건가보다하고 영영 도망가버리면 어떡하냐고요!!!! 나야 이미 반했으니까 참아주는 거고!!!!!!

 

메트에서 딴에는 킨빠들 먹이 준다고 풀었던 드레스 리허설 영상들부터 재난이었습니다.ㅋㅋㅋㅋ메트에서는 킨리사이드 나온 부분들 중에서는 샴페인의 노래랑 la ci darem la mano 를 풀어줬는데 샴페인의 노래는 킨리사이드가 젊어 쌩쌩할 적에도 별로 임팩트 없이 부르곤 했어서(유투브의 샴페인의 노래 클립들 중 킨리사이드의 98 년 베를린 필 송년 갈라 버전이 조회수 탑인 건 어디까지나 잘생겨서지 유독 빼어나게 잘 불러서가 아닙니다) 그다지 좋은 선곡이 아니었던 데다 드레스 리허설 날은 유난히 말아먹었습니다. 호흡 문제로 아예 가사를 날려버리는 수준이었죠. 근데 전 가발이랑 눈썹 분장 보고 시각적으로 경악하느라 오빠가 노래 말아잡순 것도 모르고 있다가 밑에 요새는 이렇게 부르는 놈도 메트에 서냐고 줄줄이 달린 악플들 보고 겨우 부르기도 못 불렀다는 걸 깨달았습니다.ㅋㅋㅋㅋ하도 악플들이 심해서 결국 메트에서 이 영상은 내려버렸다능.ㅋㅋㅋㅋㅋㅋㅋ우리 오빠 돈 지오반니 인생에 이만한 굴욕도 또 없을 듯.ㅋㅋㅋㅋㅋㅋ아, 메트에서 내려버릴 줄 알았음 저장할 걸.ㅋㅋㅋㅋㅋㅋ베르디 부르면서 까이는 킨리사이드는 익숙했는데 모차르트 부르면서도 까이는 킨리사이드는 신선했어요.ㅋㅋㅋㅋ원래 가수 약점은 사실은 팬들이 더 잘 알거든요?ㅋㅋㅋㅋ저랑 제 빠질 동지인 모님은 예전부터 샴페인의 노래에서 킨리사이드가 그저 빨리 부르는 데 집착하다 호흡이 달리곤 하는 걸 둘이서만 까왔는데 드디어 팬 아닌 사람들도 그 사실을 알아차렸다고 감개무량해했습니다. 모님 왈, 진짜로 말아먹으니까 불쌍해서 이젠 못 까겠다고.ㅋㅋㅋㅋㅋ

 

La ci darem la mano 는 샴페인의 노래보다는 나았습니다만 그게 여자를 유혹하는 장면이다 보니 시각적 단점이 더 크게 받아들여졌습니다. 여기에는 무슨 악플이 줄줄이 달렸냐면, 킨리사이드가 너무 늙어놔서 결혼식 날 새신부가 이 남자에게 홀라당 넘어간다는 게 도저히 납득 안 간다는 요지였습니다. 얼굴로 흥한 자 얼굴로 망하나니 사이먼 킨리사이드 이렇게 침몰하나요.ㅋㅋㅋㅋㅋㅋㅋ

 

저는 가발과 의상이 제가 우려했던 것보다 킨리사이드에게 더 안 어울린다는 사실에 경악 중이었습니다. 보통 나쁜 상황을 미리 예상하고 마음의 준비를 해두면 실제 닥쳤을 때 그보다는 낫잖아요. 근데 바닥 밑에는 더 바닥이 있었으니, 워우…. 제가 리골레토 사고 때도 오빠가 창피하진 않았던 빠순이인데 그 꼴로 치명적인 척 하는 킨리사이드는 좀 쪽팔렸습니다….아니, 좀이 아니고 사실은 많이….

 

그래도 제가 쪽팔린다고만 생각했지 탈덕할 생각은 안 한 건 재활 과정의 킨리사이드를 이미 제 생눈 생귀로 보고 들어서 오빠가 실제 공연에서 어느 정도 하시는지 확인해둔 덕이었습니다. 그래서 샴페인의 노래 말아먹는 드레스 리허설 영상 보고도 중계날은 저거보단 낫겠거니 했고 la ci darem la mano 에서의 쭈글쭈글한 킨리사이드 얼굴을 보면서도 죽어라 가발 욕만 하며 버텼습니다. 이건 제가 아이돌 팬들에게 배운 리빙 포인트인데 오빠가 못생겼을 땐 코디 욕을 하면 된다고….

 

그리고 그 와중에도 킨리사이드가 자기 노선 잡아서 연기 중인 건 보이더라고요. 진짜로 여자가 좋아서 막 체를리나에게 들이대는 게 아니라 주위 눈치를 보고 계산적으로 행동하며 체를리나를 먹잇감처럼 다루는 게요. 그게 예전에 킨리사이드의 다른 프로덕션 지오반니에서도 보이던 경향성이었던 터라 아 이 양반이 그랜디지 프로덕션에서도 자기 해석을 녹이려 시도 중이구나라는 감이 왔습니다.

 

킨리사이드의 지오반니는 90 년대 이래 쭉 진화해왔습니다. 아직 젊고 짬이 덜찼을 땐 일반적인 매력적인 쾌락주의자이자 유혹자 노선이었지만 미묘하게 가학성이 강해져가더니 2000 년대 후반 들어와서는 확연히 사이코패스 적으로 변했어요. 킨리사이드의 지오반니는 성욕 위에 권력욕이 있는 지오반니입니다. 강간도 결국은 성욕보다는 권력욕의 발현이다라는 식의 해석을 적용한 지오반니죠. 진짜로 여자의 육체 자체가 좋아 죽기보다는 여자에게 자기가 발휘하는 영향력이 좋은 거고 다른 남자 캐릭터들 상대로도 가학성이 도드라집니다. 역시 사이코패스 계열 지오반니로 큰 획을 그은 2010 년 글라인드본의 제랄드 핀리와 비교하자면요, 핀리의 지오반니가 벽돌로 기사장을 퍽퍽 내리찍어 살해하는 지오반니라면 킨리사이드의 지오반니는 일단 칼로 죽이긴 하는데 죽어가는 기사장한테 날 봐라 내가 널 죽였지롱하고 어그로를 끌어댑니다. 근데 관건은 메트의 보수적인 프로덕션이 과연 킨리사이드에게 얼마나 예술적 자유를 허락하느냐였습니다. 킨리사이드가 자기 개성을 넣으려고 시도해봤자 프로덕션 자체의 틀에 막혀버리면 자칫 니 맛도 내 맛도 아닌 지오반니가 나오는 거죠.

 

그래서 이런 저런 의문을 품고서 실제 중계를 보러 영화관에 갔는데요, 어라, 킨리사이드의 예술적 권한이 꽤 크데요? 메트에서 이거 어차피 망한 프로덕션이니까 니 맘대로 알아서 하라고, 하다가 개판 나도 새로운 예술적 시도였다고 우기면 된다고 그랬나?;;;;; 무대랑 의상 및 소품이야 2011 년도 버전에서 거의 그대로 가져왔고 등장 인물들 큰 동선도 정해져 있습니다만 등장 인물들끼리의 상호 연기는 꽤 변했더라고요?

 

다시 la ci darem la mano 를 예로 들어볼까요. 2011 년에 초연했던 크비첸과 에르트만은 이 장면을 표준적으로 연기했습니다. 늘 방금 만난 새 여자가 이상형인 지오반니는 체를리나에게 반해서 구애를 하고 본인 역시 경박한 끼가 있는 체를리나도 이 귀족 나리에게 매혹되어 유혹에 응합니다. 지오반니와 체를리나는 서로를 매력적이라고 여깁니다. 비록 둘 다 경박한 인간들이라 진짜 연애 감정을 느낀다기보다는 유희 중인 거지만 유혹하는 쪽도 유혹당하는 쪽도 즐기는 중이에요.

 

반면 2016 년의 킨리사이드와 말피 버전은 어떻냐면, 이건 유혹이라기보다는 뱀파이어의 사냥입니다. 체를리나는 귀족 나리의 접근에 설레하기는커녕 오히려 겁에 질립니다. 되게 정숙해 보임(…). 지오반니도 여자 꼬시는 게 즐겁기보다는 이 여자가 지금 넘어오려나 안 넘어오려나 하고 머리 굴리고 계산 하기에 바빠요. 체를리나는 두 손 모아 기도하는 시늉을 하고 중간에 지오반니는 체를리나의 목덜미 뒤에서 입을 쩍 벌리며 노골적으로 뱀파이어 흉내를 내요. 그러다 막판에 체를리나가 드디어 넘어오긴 하는데 그 전에 체를리나가 지오반니에게 설레하진 않고 내내 불안에 떨고 있었기 때문에 유혹에 응하는 장면도 진짜 지오반니에게 매력을 느껴서가 아니라 뱀파이어의 희생자가 최면에 걸려 갑자기 자아를 잃고 끌려오는 것처럼 보입니다. 여자란 지오반니에게 성적 대상이기보다는 차라리 정신적 먹잇감이고 이 사실은 뒤에 가서 2 막 후반 연회 장면에서 다시 노골적으로 드러납니다. 

 

저는 긴가민가하다가 la ci darem la mano 에서 체를리나 역의 말피까지 킨리사이드의 노선에 맞춰서 연기 중인 걸 보고 이번 공연 포인트는 킨리사이드의 지오반니 해석이구나 했습니다. 돈 지오반니에서 지오반니가 제일 중요한 인물이니 당연한 거 아니냐고 하기에는 2011년에는 안 그랬거든요. 2011 년에 지오반니를 맡았던 크비첸은 당시 이미 다른 곳에서 여러 차례 지오반니 공연 경험이 있었고 역시 연기력이 좋은 가수입니다만 메트에서 타이틀 롤을 맡는 건 처음이었습니다. 그 전엔 메트에서 조역들만 했죠. 처음으로 메트 타이틀 롤 맡는 아직 젊은 30 대 가수에게 뭔 예술적 권한이 있었겠습니까. 연출님이 까라시면 그냥 까는 거죠. 그리고 그 연출이 그냥 대본에만 충실한 보수적인 노선을 택한 탓에 크비첸의 연기력은 대본에 있는 걸 열심히 재현하는 데 낭비됐습니다. 그건 크비첸의 지오반니가 아니라 그냥 지오반니였어요.

 

반면 2016 년에는 이 공연이 뉴 프로덕션이 아니라 리바이벌인 덕에 극장도 상대적으로 마음이 가볍고 이미 2011 년에 들을 욕은 다 들어서 새삼 더 잃을 것도 없고ㅋㅋㅋㅋ킨리사이드 역시 짬이 오를만큼 오른 가수라(심지어 출연진 중 나이도 젤 많음 기사장보다 지오반니가 더 늙음) 자기가 좀 마음대로 해도 메트에서 자기 못 자른다는 걸 압니다.ㅋㅋㅋㅋ타이틀 롤 가수가 내키는대로 놀기에 좋은 환경이 됐죠. 심지어 장난도 칩니다. 지오반니가 묘지에서 석상을 저녁 식사에 초대하기 전, 레포렐로 상대로 노가리 깔 때 있잖습니까, 내가 니 여자 따먹을 뻔 했지롱 하고 레포렐로 놀려먹을 때요. 레포렐로가 그 때 빡쳐서 들고 있던 모자로 지오반니를 퍽퍽 치니까 지오반니가 „Batti, batti.“하면서 대본에도 없는 체를리나 흉내를 내는데 오랜만에 중계 카메라 앞에 서서 조증 모드 된 킨리사이드의 애드립이었죠.ㅋㅋㅋㅋㅋㅋ아놔, 이 양반이 징슈필이나 오페레타도 아닌데 대본을 지가 쓰네.ㅋㅋㅋㅋㅋㅋㅋ난생 처음 메트에서 타이틀 롤 맡는 젊은 가수라면 어디 얼어서 저런 짓 할 수 있겠습니까.ㅋㅋㅋㅋ

 

그 외에도 킨리사이드가 텍스트로 장난질치네 싶었던 부분들이 있었는데요, 지오반니가 „나는 모든 여자들을 공평하게 사랑하는데 속 좁은 여자들이 내 선한 천성을 몰라준다.“ 운운할때는 ‚선한 천성‘이라는 대목에서 자기 거시기를 가리킴으로써 지오반니가 지껄이는 게 사실은 개소리임을 반어적으로 드러냅니다. 관객들 중 알아들을 인간들만 알아들으란 건가. 

 

한편 킨리사이드는 나이 탓에 얼굴로는 더 이상 어리고 팽팽한 바리톤들과 지오반니로서 경쟁이 안 되다보니ㅋㅋㅋㅋ몸으로 꼼수를 씁니다. 제가 영화관에서 지오반니 첫 등장 때 지오반니랑 안나가 실갱이하는 걸 보다가 크비첸 때는 본 기억이 없는 지오반니의 맨살이 자꾸 눈앞에 어른거리길래 아 내가 속이 너무 시커매서 헛것까지 보는구나 하고 반성했거든요? 나중에 검색해서 짤 비교해보니 저희 오빠가 크비첸보다 셔츠 가슴팍 더 파고 나온 게 맞았습니다….제가 이거 확인하고는 만약 이게 여가수들 사이에서 벌어진 일이면 두고두고 가쉽거리가 됐을텐데(소프라노 둘이 같은 작품 같은 프로덕션 부르는 게 영상으로 나왔는데 뒤에 부른 가수가 자기 드레스만 가슴을 더 파내리고 나왔다고 생각해보십셔) 바리톤들 사이에서 벌어진 일이라 나말고 아무도 신경을 안 쓰는구만 했습니다. 심지어 킨리사이드가 메트 떠나고 지오반니로 투입된 압드라자코프도 킨선배 망측하다고 생각했는지 크비첸 때의 정숙한 셔츠로 돌아왔는데 역시 아무도 신경을….;;;

 

킨리사이드는 맨살만 적극적으로 보여주는 게 아니라 자기 운동 신경도 적극 활용합니다. 안나를 피해 발코니 난간에서 사다리로 휙 뛰고 2 막 연회 도입부에서는 엑스트라 여성을 한쪽 어깨에 짊어지고 노래를 하고 엘비라를 조롱할 때는 바닥에서 탁자 위로 펄쩍 뛰어오르면서 웬만한 젊은 가수들을 뛰어넘는 체력과 운동 신경을 과시해요. 젊은 시절의 자신과 비교해도 그렇고요. 킨리사이드가 젊어서 지오반니 부를 때는 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었습니다. 얼굴이 개연성이었거든요.ㅋㅋㅋ그치만 나이 먹어서도 지오반니 부르려면 노오오오오오력을 해야지 어쩌겠습니까. 어르신, 수고하십니다.ㅋㅋㅋㅋ

 

킨리사이드의 지오반니는 기본적으로 육체적인 지오반니긴 한데 권력욕이 성욕보다 위에 있다보니 리비도는 다른 지오반니들에 비해 낮은 편입니다. 킨리사이드의 지오반니가 여자를 더듬는 건 일종의 성‘폭력‘이고 그 여자를 도구로 쓰거나 속이려는 등의 꿍꿍이가 따로 있고 여자의 육체 자체에는 그리 크게 끌리지 않습니다. 당장 같은 프로덕션의 크비첸과도 비교가 돼요. 크비첸의 지오반니는 표준 노선이라 여자 자체도 좋고 여자 몸도 좋고 자기 매력 이용해 여자를 즐겁게 하는 것도 좋은 쾌락주의자고 그래서 즐겁게 여자 가슴을 더듬기도 하는데 킨리사이드의 지오반니는 성욕은 거들 뿐이에요. 아이러니컬한 것은 실제 가수들은 크비첸이 게이고 킨리사이드가 스트레이트라는 사실. 

 

킨리사이드는 중간 휴식 인터뷰 때 사람도 동물이라는 19 세기 자연주의의 싹이 이미 18 세기 작인 돈 지오반니에도 보인다는 발언을 했습니다. 구체적인 예를 들진 않았지만 아마 2 막 연회를 염두에 두지 않았을까 해요. 거기서 레포렐로는 인간의 차원을 넘어선 주인의 식욕에 기가 질립니다. 지오반니는 식욕도 엄청나고 성욕도 엄청난 인간입니다. 식욕과 성욕을 등치시키고 때로는 서로를 은유하게 만드는 모티브가 다 폰테의 텍스트에서도 발견되는 셈입니다.

 

여기서 킨리사이드는 여자를 식탁 위에 뉘여놓고 그녀의 가슴 위에 포도를 얹은 뒤 섹스하듯 엎드려 먹으면서 식욕과 성욕의 등치를 더욱 노골적으로 만듭니다. 이것은 또한 전세계 영화관에서 상영하느라 전연령 관람가 수위를 지켜야만 하는 오페라판의 디즈니 메트 연출에서 어떻게든 최대한 야해보려는 노력으로도 보입니다.ㅋㅋㅋㅋ유럽 오페라 극장들이면 아예 등장 인물들이 홀딱 벗기도 하고 진짜 무대 위에서 섹스하는 흉내도 내지만 미국 극장에서 그랬다가는 양키 선비님들이 유로트래쉬라고 호통을 치시기 때문에 해서는 안 됩니다.

 

인간이라는 동물은 수컷이 암컷보다 물리적으로 강합니다. 그리고 엘비라는 지오반니를 사랑하기 때문에 심리적으로도 약자일 수밖에 없어요. 뒤이어 엘비라가 등장하자 킨리사이드의 지오반니는 자신의 짐승같은 육체성을 이용해 말 그대로 엘비라를 짓밟습니다. 그녀의 몸뚱이를 식탁에 올리고 식탁 위로 뛰어오른 뒤 그녀의 엉덩이에 한쪽 발을 올리고 조롱해요. 입으로는 포도주와 여자를 찬미하는 가사를 부르면서요. 돈 지오반니라는 작품의 뒤틀림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연기였습니다. 돈 지오반니라는 작품은 오늘날의 시각으로는 당연히 성차별적이고 정치적으로 불공정한 텍스트고 모차르트 당대 기준으로 봐도 문제적 인물이 주인공인 작품입니다. 지오반니가 여자들에게 하는 짓이 모차르트 시절에도 이미 악행이 아니었다면 모차르트와 다 폰테 콤비가 굳이 지오반니의 최후 이후 마지막 중창을 덧붙여 권선징악의 교훈을 알릴 필요가 없었겠죠. 

 

지오반니가 외치는 "여자 만세! 포도주 만세! 이 둘이야말로 인류의 버팀목이자 영광일지니!"라는 가사는 그의 뒤틀린 여성관을 대변하고 있습니다. 지오반니가 말하는 인류에 여자는 안 들어갑니다. 여자는 사람이 아니고 포도주처럼 그의 욕구를 만족시켜주는 대상에 불과해요. 겉으로는 여성을 찬미하는 것 같지만 실은 여성을 철저히 대상화하는 가사죠. 킨리사이드는 이 가사를 부르며 엘비라를 짓밟고 섬으로써 여기 담긴 미소지니를 극대화합니다. 역시 지오반니는 오페라판 여혐의 아이콘.ㅋㅋㅋㅋㅋ

 

허나 이리 자신의 동물적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모든 규범을 무시하고 엘비라의 순정을 짓밟는 지오반니는 그 스스로도 행복하지 못합니다. 그의 에너지는 아무 것도 건설하지 못하는 파괴적인 에너지에 불과합니다. 레포렐로가 작성한 명단은 실은 그 자신에게도 별 의미 없어요. 승리자인 것처럼 엘비라를 조롱해대지만 막상 그녀가 사라지자 킨리사이드의 지오반니는 손에 든 포도주잔을 마시지 않고 그냥 쏟아버립니다. 그리고 기사장이 나타나자 기가 죽어 자기 가슴을 부여잡죠. 이 지오반니는 자신의 삶이 잘못되어있음을 스스로 예감하고 있었어요. 기사장은 그냥 확인사살을 하러 나타난 겁니다.

 

킨리사이드 표 지오반니의 특징인 동물성+가학성+파괴성+육체성이 한꺼번에 버무려져 극명히 드러난 게 2 막 연회 장면이어서 그 전까지는 킨리사이드가 몸개그 표정개그하는 거나 감상하면서 앞으로 남들이 킨리사이드 왜 좋아하냐고 물어보면 웃겨서 좋아한다고 대답해야겠다 마음 먹었던 저는 2 막 연회부터 두 손 모으고 경건해졌습니다. 오빠님, 고클에 제 아이디로 올라간 흐보로스토프스키 관련글들은 제가 로그인하고 나간 사이 저희집 고양이가 썼습니다. 제가 저희 동네 극장 스테이지 도어에서 미하엘 폴레 뒤를 졸졸 따라갔던 건 어디까지나 저도 집에 가야하는데 출입문이 그 방향이어서였지 속으로 무슨 말을 시켜볼까 이딴 생각 하며 따라간 거 아닙니다. 제랄드 핀리는 오빠님 친구분이셔서 보러 간 거고 말트먼은 어디까지나 오빠님 지오반니 보기 전에 예습 차원이었고 피사로니는 말트먼 부록으로 따라왔고 괴르네는 걍 공연장에 표가 남았길래, 햄슨은…저 그런 사람 모르고요…햄슨한테 물어보세요, 저 아냐고. 

 

여기까지가 킨리사이드의 연기 노선에 대한 감상이었고요, 노래는 그닥 할 말이 없습니다. 이제 곧 환갑에 목 부위 수술 두 번 거친 가수의 성대에 뭐 큰 기대가 있겠습니까(…). 젊었을 때 잘부르던 장면들은 여전히 괜찮고 젊어서도 시원찮던 장면들은 여전히 별로인데 나이 탓에 소리질은 전체적으로 떨어집니다. -.- 킨리사이드의 노래가 듣고 싶으시면 아바도 지휘로 97 년도에 낸 돈 지오반니 스튜디오 음반 있으니까 걍 그거 들으시면….청각적 해석은 소소한 디테일 빼면 그 때랑 크게 변한 건 없을 걸요? 킨리사이드는 예전에는 지오반니의 세레나데는 확실히 잘 불렀고 la ci darem la mano 도 제법 했고 레치타티보도 들을만했던 반면 하필 지오반니의 첫 등장 안나와의 실갱이와 마지막 퇴장 석상과의 대거리에서 수미쌍관으로 드라마틱한 맛이 딸리고 샴페인의 노래도 심심한 편이었는데 장면들간의 상대적인 점수 차는 유지되면서 전체적 점수가 깎인 것 같은….;;;;저희집 고양이 말이 귀로 듣기에는 요새는 말트먼이 나은 거 같다는데 설마 축생이 뭘 알고 하는 소리겠습니까. 공정을 기하려면 말트먼도 갑상선 한 쪽 떼자(…).

 

순전히 저희 오빠 보러 영화관 갔습니다만 그래도 예의상 다른 출연진들을 언급은 해야겠죠. 대체적으로 관객들에게 좋은 인상을 남긴 가수는 오타비오 역의 애플비였습니다. 원래 오타비오 역을 맡기로 했던 비야손이 아파서 캔슬하는 바람에 대타로 들어온 테너인데 이 친구가 아직 신인급이라 인지도도 팬덤이랄 것도 없어서 저는 아이고 비야손 없으니 이제 표는 누가 파냐고 슬퍼했고 실제로 표가 공연 내내 남았습니다만ㅋㅋ 공연 내적으로는 애플비는 잘해줬어요. 사실 순수하게 모차르트 테너로서의 능력치만 따지자면 애플비가 비야손보다 나을 수도 있을 겁니다. 비야손이 전형적인 모차르트 테너는 아니잖아요? 저야 il mio tesoro 를 패기있게 불러주는 오타비오를 선호해서 예전에 비야손 오타비오도 잘 들었습니다만 이름값 떼면 애플비를 오타비오 역으로 선호하는 사람이 더 많을지도요.

 

애플비는 노래를 서정적으로 곱게 뽑는 타입이었는데 지휘를 맡은 루이지도 거기 맞춰 dalla sua pace 를 느릿한 호흡으로 진행하더군요. 이 장면 지휘자의 선택에 대해서는 후기들이 호불호가 갈리지만 제가 듣기에는 시너지가 괜찮았습니다. 애플비가 연기는 딱딱한 편이었지만 젊고 얼굴도 말끔한 가수가 노래를 제대로 잘 부르니까 애플비 위로 „제가 여기서 연기까지 잘해야 합니까.“라는 말풍선이 보이는 것 같길래 그래, 너는 뒤에서 잘 쉬고 있다가 2 막에서 il mio tesoro 만 또 잘해주렴이라는 마음이 됐습니다. 그리고il mio tesoro 때는 이런 젠장 우리 오빠 보러 왔다가 쟤한테 갈아타는 애들 있음 어쩌지하고 슬슬 걱정이 들었습니다.ㅋㅋㅋ안 그래도 오타비오가 음악적 MOM 라니 그 돈 지오반니 공연은 망했네요라는 욕을 이번 메트 돈 지오반니가 먹고 있었다고요.ㅋㅋㅋ

 

애플비에 비해서는 조금 악평들도 있었지만 역시 전반적으로는 좋은 소리를 많이 들은 건 돈나 안나 역의 소프라노였습니다(러시아 출신인 것 같은데 이름을 어떻게 읽어야하는지 모르겠네요). 고음불가 기가 있긴 한데 기본적으로 목소리로 연기할 줄을 알아서 밥값은 하는 가수였습니다. 안나 역은 2011 년의 마리나 레베카도 괜찮았었죠.

 

저는 제 빠질한다고 검색하다가 덤으로 다른 가수들에 대한 평들도 읽게 됐는데 재밌는 게 공연 감상은 주관적이라더니 리뷰어들마다 여성 출연진들에 대한 소감이 각각이더군요. 안나는 좋았는데 엘비라가 별로였다는 사람, 엘비라는 좋았는데 안나가 꽝이었다는 사람, 여가수들은 다 잘했다는 사람, 다들 평범했다는 사람 등등 별별 경우의 수가 다 있었는데 심지어 이 제각각의 평을 날린 사람들이 죄다 오페라 들을만큼은 들었다는 덕후 내지는 전문 리뷰어들이었어요. 제 경우는 안나는 호, 엘비라는 쏘쏘, 체를리나는 불호였지만 저와 소감이 정확히 일치하는 사람은 하나도 못 봤습니다.ㅋㅋ 체를리나 역 가수는 체를리나 치고는 음색이 무거운 메조였던 데다 가창 스타일 자체도 제가 듣기에는 뻣뻣했어요. 체를리나는 좀 살랑살랑 불러주는 맛이 있어야 하거늘 이번 체를리나는 batti batti bel mazetto 부를 때 눈 감고 들으면 자기가 마제토 칠 것 같았다고요.;; 엘비라는 청각적으로는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별 인상이 없고 연기가 연극적으로 과장된 편이라 다른 배역들이랑 조화가 안 되는 감이 있었지만 예뻤어요. 만약에 혹시 이번 공연이 정식 영상물로도 출시된다면 오타비오랑 엘비라에게 감사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덧붙이자면 2011 년도에는 엘비라 역의 프리톨리가 소리 폼이 그다지 안 좋았었어서 무난한 올해 엘비라가 나았던 것 같습니다.

 

레포렐로는 기본은 했지만 2011 년 버전의 루카 피사로니가 워낙 뛰어난 레포렐로라 피사로니를 뛰어넘진 못했습니다. 2011년에는 피사로니가 종합적으로 MOM 이었죠. 제가 2011 년도에 피사로니를 보면서 쟤는 이 답없는 프로덕션에서도 살아남으니 세상 어느 프로덕션에 떨어져도 잘 살겠구나 했는데 그 후 피사로니가 레포렐로로 출연한 다른 지오반니 프로덕션들을 찾아보니 진짜 그렇더군요.ㅋㅋ

 

마제토는…마제토 역의 베이스 매튜 로즈가 저희 오빠와 친해보여서 웬만하면 좋게 써주고 싶지만 제가 마제토 역 자체에 별 관심이 없어서 할 말이 없고요(…) 2011 년에 기사장 역의 코찬을 보면서 기사장이 불필요하게 잘생겼다고 생각했었는데(코찬은 주로 작은 배역으로 기용되다보니 곧잘 이런 인상을 불러일으킵니다. 일 트로바토레에서도 설정셔틀이 쓸데없이 잘생겼다든가….) 올해는 초반 칼싸움 이후 막판에 가만히 서서 무표정으로 노래하는 것밖에 할 일 없는 기사장 역에 연광철의 연기력이 낭비되는 성 싶었어요. 저한테 연광철은 기사장보다는 레포렐로로 기억에 남아있는 가수라.

 

지휘는 2011 년과 마찬가지로 파비오 루이지가 맡았지만 서곡 템포부터 그 때랑은 다르게 잡더군요. 제가 이번 공연 라디오 중계를 듣고 속도가 좀 느려서 적응이 안 된다고 구시렁대다가 2011 년에 제가 썼던 일기를 뒤져보니까 그 땐 또 박자가 빨라서 적응 안 된다고 구시렁댔더라고요? 난 그냥 루이지가 싫은 건가 하고 자성하다가 혹시나 해서 더 찾아보니까 진짜 루이지의 템포 자체가 바뀐 게 맞았어요.ㅋㅋㅋ그치만 저는 보통 오페라 들을 때 가수들이 노래 시작하면 유난히 좋거나 유난히 나쁘지 않는 한 반주에는 귀를 꺼두므로 dalla sua pace 때 가수와 반주의 시너지가 괜찮았다는 걸 빼면 오케에 대한 나머지 기억은 없습니다.

 

다시 킨리사이드 얘기로 돌아오자면 킨리사이드는 실은 본공연보다 휴식 시간의 인터뷰로 더 이야깃거리를 만들었습니다. 사회를 맡은 디도나토가 킨리사이드를 붙들고 오랜만에 메트에서 본다면서 화제를 킨리사이드의 그간 건강 문제 쪽으로 돌리려고 하자 킨리사이드가 그걸 블러킹할 겸 + 오랜만에 카메라빨 받고 조증 모드라 디도나토가 아직 묻지도 않은 지오반니 역에 대한 자기 생각을 줄줄줄 독백 모드로 쏟아냅니다. 카메라가 킨리사이드를 비추느라 디도나토는 뒤통수만 보였지만 디도나토가 ‚이 인간 왜 이래.;;;;;이거 생방인데 어떻게 수습하지.;;;;;‘하고 땀을 삐질삐질 흘리는 게 눈에 선했습니다.ㅋㅋㅋㅋㅋ

 

그리고 이게 미 대선 전에 했던 공연이라 미국인들이 어느 쪽 진영이든 되게 예민해져 있을 때였는데 킨리사이드가 화제가 옆으로 새면서 뉴욕 폭발 사고와 다문화를 잘못 건드리는 바람에 미국 관객들에게 쟤 트럼프 지지하는 거냐는 의심을 사서 까였고요, 막판에는 자기가 졸업한 캠브리지 동물학과가 올해 150 주년이라고 축하 인사 전하면서 자기 캠브리지 나왔다고 흘리기까지 시전했습니다. 메트 HD 출연하는 다른 가수들은 소박하게 고향의 가족과 친구들에게 인사하는데 킨리사이드는 뜬금없이 나 캠브리지 나왔다 시전하니 얼마나 재수없어 보이겠냐고요.ㅋㅋㅋㅋ완전 총체적 난국이었던 인터뷰였는데 가장 슬픈 건 킨리사이드가 여전히 그 되게 안 어울리는 가발을 뒤집어쓴 상태라 저조차 쉴드칠 의욕이 들지 않는다는 사실이었습니다(눈물).

 

제가 올해까지만 고클하다 탈퇴할 거였음 마지막으로 크게 한 탕 하는 셈치고 세기의 지오반니 나왔다고, 이거 안 본 사람이랑은 오페라 얘기 못 한다고 둘카마라 모드로 약을 팔았을텐데요, 이거말고도 팔아야할 옥장판이 아직 몇 장 더 있어서 차마 그렇게는 못하겠네요. 제겐 꿈이 있습니다. 언젠가 베르디 바리톤으로서의 킨리사이드도 팔아보는….그 날을 기약하느라 오늘은 적당히 하겠습니다. 2016 년 메트 돈 지오반니 상영물은 한국 상륙하면 보러 가실 분은 보러 가시고 마실 분은 마세요(심드렁). 

작성 '16/12/10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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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h***:

자세하고 재미있는 촌평들 감사합니다. 킨리사이드의 최근 공연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오겠네요. 돈 지오반 자체가 좋은 의미로 문제작이죠. 해석적으로나 음악적으로나...

16/12/10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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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

읽는 내내 유쾌했습니다. heilt님 자주 뵙고 싶어요. 잘 읽었습니다.

16/12/11 0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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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

킨/리/사이드 빈에서 맥베스 공연 중인데 오셨나요? ^^

16/12/12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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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

오페라 - 어렵지만 heilt님, lemontree, cosmosagan 님들 덕에 즐감하게 됩니다.
감사합니다.

16/12/12 1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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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

댓글 쓰려고 백만년만에 고클 로긴합니다. 후기가 너무 너무 재밌어요. 예술이에요. ~~~

16/12/16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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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s***:

즐겁게 읽었습니다. 글을 너무 너무 재미있게 쓰시네요. 앞으로도 좋은 글 많이 올려 주시기를~

16/12/21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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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

읽는 내내 깔깔대면서 정말 유쾌하게 봤습니다. 그러면서도 마냥 유머만 있는게 아니라 굉장히 많은양의 정보도 같이 얻어갈수 있는... 글자 그대로 촌철살인이네요. 고양이 언급 부분들에서 웃다가 숨 넘어 가는줄 ㅋㅋ 님 같은분이 고정적으로 오페라 리뷰를 쓴다면 오페라가 크게 대중화 되지 않을까 싶어요ㅋㅋ

16/12/23 0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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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

2시간 전 메박 코엑스에서 영상보고와서, heilt님 글이 있을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에 고클 접속했더니 있네요 ㅎㅎ 매우 반갑습니다.
환갑 넘으신 어무이 모시고 가면서, "엄마 오늘 돈 조반니 바리톤이 잘생겼어. 얼굴빨로 먹는 가수야" 이러고 갔다가(......) 역시 킨서방도 세월을 이길 수 없다(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는 법이죠)는 깨달음과 함께, 3시간 반짜리 영상물을 보려면 전날 잠을 충분히 자야한다는 깨달음을 얻었습니다.(혹시 킨서방님 젊을 때 영상물 있으면 하나 권해주세요. 비디오 위주로.. 오디오는 그냥 딴 거 들을 것들도 있습니다 ㅎ)
여자 가수들에 대한 평은 heilt님에 완전 동의합니다. (안나는 호, 엘비라는 쏘쏘, 체를리나는 불호) 그런데 옥타비오가 호평 일색이었다니 좀 의외네요. 노래 이쁘게하네.. 정도의 느낌은 있었지만, 너무 뻣뻣;;하고 안나랑 같이 노래할 때 지나치게 발린다고 생각했거든요.

17/01/07 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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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메가박스에서 본지 좀 됐는데 님의 글을 읽으니 새롭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

17/03/17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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