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케르초, 베토벤의 웃음
http://to.goclassic.co.kr/symphony/19599

 

 

 

스케르초는 ‘해학 혹은 희롱’을 뜻하는 곡으로, 템포가 빠른 3박자, 격렬한 리듬, 그리고 기분의 급격한 변화 등이 그 특징이다. 중간에 트리오를 포함한 (겹)세도막형식을 도입하는 것이 보통이다. 이러한 스케르초는 하이든이 미뉴에트 대신 처음으로 쓰기 시작했으며, 베토벤도 이를 자주 썼다. 나중에 낭만파에 이르러 극적이고 해학적인 성격을 띤 기교적인 피아노곡을 간혹 스케르초라고도 하는데, 빠른 3/4박자의 세도막형식으로 되어있으며, 쇼팽과 브람스에서 그 예를 찾아볼 수 있다. 이상이 스케르초에 대한 사전적 지식이다.

 

나는 유쾌하고, 해학적인 스케르초를 작곡가의 웃음이라고 생각한다. 항상 신중하고, 진지하며, 허점을 보이지 않으려는 작곡가가 오랜만에 웃는 웃음. 하지만 내가 이런 생각은 음악을 듣기 시작한 처음부터 가진 것은 아니었다. 또 음악을 깊이 듣기 위해 이런저런 이론 서적을 뒤적거리고 음악 용어를 이해하기 시작했을 때도 아니었다. 그것은 아주 우연히 도스토옙스키의 웃음에 대한 말을 알고 난 뒤부터이었는데, 그것은 다음과 같다.

 

사람의 웃는 모습을 보면 그 사람의 본성을 알 수 있다. 누군가를 파악하기 전 그 사람의 웃는 모습이 마음에 든다면 그 사람은 선량한 사람이라고 자신 있게 단언해도 되는 것이다.


웃음에 대한 그의 말을 뒷받침해주는 다른 사람들의 말들도 접하게 되자 내 생각은 하나의 신념은 굳어지고 말았는데, 부연하자면 괴테는 말하길 “사람의 성격이 가장 잘 나타나는 때는 마주 대하여 말하고, 듣고, 웃을 때다”라고 했으며, 에머슨 역시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웃는 모습에 주의해야 한다. 웃을 때는 그 사람의 결점이 그대로 드러나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이렇게 하여 웃음이 그 사람의 본성을 알게 한다면, 스케르초야말로 그 작곡가의 참모습을 드러내 줄 것이라는 이상한 나의 결론으로 하여 나는 곧장 스케르초에 대한 남다른 관심을 두게 되었다. 그중에서도 특히 베토벤의 스케르초가 내게 가장 큰 관심이었는데, 그것은 초상화 속에서 잔뜩 미간을 찌푸리고 입술을 굳게 다문 인상 때문이었고, 초상화 못지않게 침울하고 고집스러운 그의 데스마스크 때문이기도 했다. 이렇게 한 번도 그가 웃고 있는 것을 본 적이 없는지라 그가 웃는 모습을 보고 싶은 나머지 나는 베토벤의 스케르초야말로 그의 본성을 드러내 주는 웃음이라고 섣부른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그러고 나는 그의 스케르초를 더듬어가는 작업을 시작하였다.

 

그런데 뜻밖에도 그의 스케르초는 한두 개가 아니었다. 놀랄 만큼 많은 수의 스케르초가 널려있었다. 구체적으로 그가 쓴 교향곡 속에서 스케르초 악장의 예를 들어보면, 교향곡 2번 3악장 알레그로 라장조 3/4박자, 교향곡 3번 3악장 알레그로 비바체 내림 마장조 3/4박자, 교향곡 5번 3악장 알레그로 다단조 3/4박자 등이었다. 더불어 교향곡 8번 3악장은 알레그레토 스케르찬도였으며, 교향곡 6번 3악장의 「농민들의 즐거운 모임」이라는 부제를 달은 알레그로의 3/4박자, 또 베토벤 교향곡 7번 3악장 프레스토 3/4박자 등도 스케르초 혹은 스케르찬도라는 구체적 지시어가 없지만 역시 스케르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역시 베토벤 교향곡 9번 2악장 몰토 비바체 라단조 3/4박자도 스케르초임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나의 스케르초의 탐색은 그의 교향곡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었다. 그의 현악 4중주, 피아노 소나타, 피아노 3중주, 첼로 소나타, 바이올린 소나타 등 곳곳에서 스케르초가 발견되었는데 몇 개만 예를 더 들자면 그의 첼로 소나타 3번 2악장, 피아노 소나타 29번 『함머 클라이버』 2악장, 현악 4중주 12번 3악장, 피아노 3중주 7번 『대공』 2악장, 바이올린 소나타 5번 『봄』의 3악장도 스케르초였다. 현악 4중주 7번 『라주모프스키 1번』 제2악장은 스케르찬도이었다.

 

한마디로 나는 베토벤의 많은 작품이 2악장, 혹은 드물게 3악장에서 스케르초, 스케르찬도 혹은 스케르초소가 적혀있거나 그와 비슷한 성격의 악장을 가지고 있음을 발견하였다. 하지만 내가 그동안 그것을 거의 의식하지 못했던 이유는 그 악장들이 간결하고 짧으며 대개 경과구, 혹은 긴장 완화의 분위기 전환용으로 쓰였기 때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결국, 도스토옙스키의 웃음에 대한 말에서 시작된 나의 스케르초 탐구는 베토벤 작품 속에서 스케르초의 발견으로 이어졌으며, 결국 나는 베토벤이 그동안에 사람들이 알고 있었던 것처럼 잔뜩 인상만 쓰고, 고집스러우며, 말 붙이기조차 힘든 사람만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오히려 그가 아주 따스하고, 진솔하며, 호방하고, 따스한 사람이라는 결론에 도달하였다.

 

베토벤이 남긴 수많은 스케르초 중에서 가장 뛰어난 것은 교향곡 9번 2악장의 스케르초이다. 알레그로 마 논 트로포( 빠르지만 지나치지 않게), 그리고 마 논 트로포(약간 장엄하게)로 시작하는 1악장, 마치 창조의 순간처럼 의미심장하고, 암시적이고, 사색적인 1악장이 마치 영감이 스치기를 기다리며 잔뜩 긴장하고, 불만에 찬, 누구나 다 알고 있는 베토벤의 표정 같다면, 몰토 비바체(아주 빠르고 생기있게)로 전개되는 스케르초의 2악장은 진취적이고, 쾌활하고, 따뜻한, 우리가 한 번도 본 적이 없고, 알아차리지도 못한 황금 햇살과도 같은 그의 미소이다.

 

 

 

 

 

작성 '20/09/21 11:20
ve***수정 삭제 트랙백 보내기
링크 글 (Trackback) 받는 주소: 로그인 필요
kp***:

명곡 해설서에나 나옴직한 이야기들이네요.
늘 진지하고 심각하며 부정적이고 불만과 분노에 차 있는 듯한 곡상 속에 뜨겁고 이타적인 인간미를 감추고 있는 게 베토벤의 본령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가 고독과 절망을 이겨낼 수 있었던 게 스케르초로 표현되는 낙천적인 여유와 유머 감각 때문이 아니었을까 짐작해 봅니다.

20/09/21 18:31
덧글에 댓글 달기    
    ve***:


제 딴에는 아주 만족스러운 리뷰였는데, 반응이 신통하지 않아 풀이 죽어있답니다. 하지만 kp6531님의 댓글을 보니, 제가 의도했던 바가 제대로 전달되었다는 생각이 들어 큰 위로가 됩니다. 부족한 저의 글에 늘 관심을 갖고, 격려해주셔서 고밉습니다.^^

20/09/21 18:48
덧글에 댓글 달기    
si***:

베토벤의 해학과 스케르초 하면 떠오르는 것이 저는 8번 교향곡의 스케르잔도이지만 9번 2악장은 사실 그랜드하죠. 언급하기에도,,,,,,

인간정신의 모든 위대함의 근원에는 낙관주의(Positiveness)가 있고 그것은 낙천적인 기질로 나타나며 때로 유머로 표출되기로 하는 것 같습니다.

9번 1악장에서 힘겹게 일떠선 거인을 4악장까지 쭉 지탱해주는 추진력이 해학적이면서 그것을 초월한 2악장에서 그 뇌관을 장착하지 않나 싶습니다.

9번 2악장이 작곡된 이후에 한참 지나서 작곡된 현악4중주 16번 비바체 악장도 그러한 맥락에 있다고 보여 집니다 낙천적인 불사의 의지죠

20/09/21 20:34
덧글에 댓글 달기    
    ve***:


만일 베토벤 교향곡에 스케르초가 없으면, 교향곡 끝까지 듣기 힘들지요. 1악장과 4악장의 진지하고 장엄하고 심각한 분위기를 3악장의 아다지오 몰토 칸타빌레로는 도저히 균형을 맞출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이 작품을 한자리에서 들을 수 있는 것은 2악장 스케르초의 쾌활하고 환한 웃음이 작품의 분위기를  균형  맞춰주기 때문일겁니다.

늘 진지하고 심각한 사람하고 못살죠. 가끔은 농담하고 웃어야죠. 음악도  똑같죠.

베토벤의 스케르초가 따뜻하고 쾌활한 것은 그의 인간에 대한  신뢰,  즉 낙천주의와 관계가 있다는 지크프리트님의 말씀은 참으로 온당합니다. 보잘 것 없는 저의 글에 유익한 댓글 보태주셔서 고맙습니다. ^^

20/09/21 21:07
덧글에 댓글 달기    
0/1200byte
한 줄 덧글 달기
 
 4
 


장르별로 곡 및 음반에 대한 의견 교환 (음반 추천 요청 외의 질문은 [질문과 대답] 게시판으로)
번호 글쓴이 제목 날짜 조회추천
8738sa*** '20/09/2888284
8737ve*** '20/09/2887424
8736fa*** '20/09/2687484
8735an*** '20/09/2687734
8734oi*** '20/09/2487871
8733sa*** '20/09/2387943
8732le*** '20/09/2387274
8731zo*** '20/09/2187918
8730ve*** '20/09/2187314
8729fa*** '20/09/1987884
8728ve*** '20/09/1887425
8727fa*** '20/09/1887033
8726ba*** '20/09/1787022
8725le*** '20/09/1787012
8724hh*** '20/09/1587415
8723le*** '20/09/1587144
8722fa*** '20/09/1387204
8721ka*** '20/09/1387706
8720ka*** '20/09/09878910
8719zo*** '20/09/0887375
8718fa*** '20/09/0687184
8717er*** '20/09/0187907
8716hh*** '20/08/3087362
8715ka*** '20/08/29877110
8714er*** '20/08/1587344
새 글 쓰기

1  2  3  4  5  6  7  8  9  10  다음  마지막  
총 게시물: 14971 (2/599)  뒤로  앞으로  목록보기
Copyright © 1999-2020 고클래식 All rights reserved.
For more information, please contact us by E-mai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