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모더니즘 음악의 백미, 앨프리드 시닛케의 교향곡 1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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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우리가 포스트모더니즘 음악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 반드시 알고 있어야 할 작곡가는 “포스트모더니즘 음악의 총아”로 불리는 알프레드 시닛케이고, 꼭 들어야만 하는 작품은 "포스트모더니즘 음악의 백미"라 불리는 그의 교향곡 1번이다.  

 

2

 

이 교향곡을 이해하기 위해 우리가 무엇보다도 먼저 유념해야 할 것은 이 교향곡이 기존의 교향곡과는 달리 다양한 작품들을 인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것들을 자세히 열거하자면, 베토벤 교향곡 5번, 그리그의 모음곡 『페르 귄트』에 나오는 「오제의 죽음」, 쇼팽 소나타 2번, 요한 슈트라우스의 왈츠 『빈 숲속의 이야기』, 차이콥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 하이든의 교향곡 『고별』, 그레고리 성가, 중세의 부속가 『분노의 날』 등의 일부, 그리고 재즈 즉흥곡이다. 그리고 이런 인용으로부터 여러 가지 포스트모더니즘 음악의 특징이 나온다. 

 

인용된 작품은 멀리 그레고리 성가에서 고전주의, 낭만주의, 국민악파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시기의 다양한 스타일의 작품들에 걸쳐있다. 이것은 포스트모더니즘 전략의 하나인 폴리스타일리즘의 좋은 예인데, 그것은 여러 가지 스타일이나 기교를 절충하는 것으로 회화로 말하자면 콜라주 같은 것이다. 이것은 음렬주의 작곡을 하던 그가 극심한 스타일의 고갈을 느끼다가 착안한 새로운 스타일이다. 

 

그런데 작품들이 비꼬듯이 빈정거리듯이 인용되어 있다. 가장 심한 예는 베토벤의 교향곡 5번의 4악장 클라이맥스 주제이다. 이것은 무질서한 듯 맥없는 듯 흘러가는 연주 가운데 느닷없이 위풍당당하게 나타난다. 하지만 갑자기 느려지고 흐느적거리더니 사라진다. 그래서 이것을 듣는 당신은 폭소를 터뜨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당신 잘못이 아니다. 이것의 목적은 패러디이니까. 패러디란 기존의 전통적 작품을 모방하되, 풍자하고 조롱함으로써 그 가치를 전복하는 기법이다. 

 

여태까지 우리는 베토벤이나 쇼팽의 곡을 감상하기 위해서는 정장 차림으로 연주회장이나 극장에 가야 했다. 반면 재즈 밴드의 연주를 듣기 이해서는 넥타이를 풀고 편한 차림으로 선술집에 가야 했다. 하지만 이 작품 안에서 고전음악과 재즈 즉흥곡이 함께 공존하고 있다. 2악장 도중에 색소폰과 피아노, 기타를 비롯한 재즈 악단은 지휘자의 지휘를 받지 않고서 무려 5분 동안이나 폭스트롯과 팝송의 선율 등 대중음악의 즉흥연주를 담당한다. 이것은 포스트모더니즘 음악의 특징의 하나인 고급문화와 대중문화를 구분하는 이분법적 사고의 거부로, 음악에 있어 인습적인 차별을 걷어내고자 하는 시닛케의 의도가 반영되어 있다. 

 

3

 

이 교향곡이 갖고 있는 또 하나의 중요한 포스트모더니즘 전략은 이 곡의 형식과 관련이 있다. 축제 분위기를 내는 화려한 종소리를 배경 삼아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하나씩 둘씩 무대로 들어와 워밍업 한다. 곧 지휘자가 들어와 그들의 워밍업을 중단시키고 청중들에게 인사한다. 박수 소리가 잦아지자 지휘자가 지휘봉을 힘차게 휘두르니 음악이 흘러나온다. 당신은 이제 막 1악장이 시작되었다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아니다. 1악장은 벌써 시작되었으니 말이다. 종소리를 배경 삼아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무대로 들어오는 순간부터 1악장이었다. 그들의 워밍업도, 지휘자의 인사도, 청중의 박수 소리도 1악장의 일부였다. 지휘자의 동작에 따라 흘러나오는 음악도 1악장의 일부임은 말할 나위도 없다. 

 

2악장과 3악장도 역시 독특하다. 2악장 끝 무렵에 금관 악기 단원들이 우르르 무대를 빠져나간다. 그리고는 3악장이 한참 진행된 후에 무대로 다시 돌아온다. 그들이 담배 한 개비를 피우며 잡담을 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다. 그런데 이렇게 금관 악기들이 우르르 나가는 것도 2악장의 일부이고, 다시 들어오는 것도 3악장의 일부이다.

 

마지막 악장에서 하이든의 교향곡 『고별』에서처럼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하나둘씩 무대를 떠난다. 그리고 지휘자도 떠나고, 끝에 가서는 바이올린 단원 둘이서 하이든의 교향곡 『고별』 끝부분을 인용하고는 무대를 떠난다. 무대가 텅 빈다. 그래서 당신은 교향곡이 끝났다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아니다. 퇴장했던 연주자들이 처음처럼 축제 분위기의 종소리를 배경으로 다시 무대로 들어와 뒤풀이 연주한다. 그리고 지휘자가 들어와 그 소리를 중단시키고 청중들에게 감사의 절을 한다. 청중이 아낌없는 박수를 보낸다. 여기까지가 마지막 악장이다. 

 

이렇게 이 교향곡은 우리가 통상적인 알고 있는 교향곡의 형식을 하고 있지 않다. 교향곡 속에 청중들의 반응도 있고, 지휘자의 인사도 있고, 오케스트라 단원들의 워밍업과 뒤풀이 연주, 단원들의 이탈도 있다. 여태 음악사를 통틀어 이런 형식의 교향곡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이렇게 규정된 형식과 틀을 거부하는, 탈개념은 포스트모더니즘의 중요한 전략의 하나이다. 하지만 여기서 슈니트케가 그저 탈개념만을 추구한 것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그가 이 교향곡을 즐거운 음악회로 바꿔놓았으니 말이다. 

 

4

 

겐나디 로체스트벤스키의 연주 음반은 이 교향곡이 갖고 있는 폴리스타일리즘, 패러디, 대중음악과 고급음악이라는 이분법 거부라는 특징들을 해학적이고 익살스럽게 잘 전해준다. 하지만 음반은 어쩔 수 없는 단점이 있다. 왜냐하면 우리가 이것만으로는 금관악기 단원들이 연주 도중 나갔다가 들어오는 모습, 그리고 마지막 악장에서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하나씩 무대를 떠나는 모습, 즉 교향곡이라는 장르를 즐거운 음악회로 확장하는 과정은 을 경험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것들은 직접 두 눈으로 보아야 한다. 따라서 이 작품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 가장 좋은 방법은 직접 연주회에 참석하여 두 귀로는 듣고, 두 눈으로는 보고, 힘찬 박수갈채를 보내면서 이 교향곡 연주의 일부인 청중이 되는 것이다. 

 

그다음으로는 좋은 방법은 영상을 통한 감상이다. 비록 앞의 방법보다는 수동적인 입장이지만, 그래도 우리가 음반을 듣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다. 하지만 이 교향곡의 DVD 영상물이 아직은 없다. 이 작품이 갖고있는 포스트모더니즘적 의의가 제대로 평가되지 못한 탓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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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참고할 만한 유튜브 영상이 하나 있어 올립니다. 아제르바이잔 국립교향악단의 연주인데, 하이든의 교향곡 『고별』과 시닛케의 교향곡 1번이 연달아 연주되고 있어 교향곡이라는 장르의 탈개념화, 혹은 개념해체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

 

 

 

작성 '20/10/19 1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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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l***:

저는 슈니트케라 읽는 줄로 알았는데 시닛케로 읽는 것인가 봅니다^^ 교향곡 1번은 아직 들어보지 못했는데 적어주신 설명을 보니 꽤 심오(?) 하네요. 포스트 모더니즘 시대에 형상이나 박제가 아닌 생성이나 운동, 수동적인 관객이 아닌 관객도 연주에 참여(?)하는 퍼포먼스적인 의미가 있는 듯 합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베르디님의 글을 읽으면 소개해주시는 곡들을 꼭 찾아듣고 싶어집니다!

20/10/20 0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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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ve***:


클림트님, 저도 얼마 전 까지만해도 슈니트케라고 불렀는데 시닛케로 통일된 것 같습니다. 고클 디스코그래피에도 그렇게 나오는데 고클 인명이 표준어 인명입니다.

시닛케 교향곡 1번, 들어보면 뭔지 모릅니다. 동영상을 봐야 알지요.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해 잘 알고 계시는 클림트님께서 아주 명쾌하게 언급하신 것처럼 정지된 형상이나 박제가 아닌 생성과 운동, 참여가 포스트모더니즘의 특징입니다. 이런 것이 동영상 속에서 확인됩니다.

클림트님께서는 제가 다루는 음반, 지휘자, 작곡가, 작품에 대해서가 아니라, 저의 글 자체를 보고 추천을 해주셨습니다. 제가 가장 받고 싶은 형태의 추천입니다.

부족한 글 읽어 주시고 메아리 주셔서 오늘 고클 베르디, 외롭지 않습니다. ^^

20/10/20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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