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티니와 말러
http://to.goclassic.co.kr/symphony/12941

이 글은 최근 일본과 유럽에서 출시된 가리 베르티니/쾰른 방송 교향악단의 말러 교향곡 전집(EMI)에 포함된 부클릿의 내용입니다.


도쿄에서 활동 중인 쿄 미츠토시라는 음악평론가가 쓴 에세이(일본반에는 아마 일본어로 수록돼 있을 것으로 추정)를 영, 독, 불어로 번역해 수록해 놓았는데, 분량이 상당합니다^^(영문 기준 pp. 11 ~ 17).

내용이 무지 궁금해서 번역해 보았는데 혼자 읽고 삭제하기엔 너무 아깝네요.^^;; 베르티니의 말러를 이해하시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올립니다. 내용 중에는 오역이나 부자연스러운 표현이 있을 수 있으니 양해 바랍니다.

 

 

 

 


베르티니와 말러

 

 

1960년대의 말러 연주 부흥 이래로 반세기가 지나갔다. 이 시기 동안 많은 다른 지휘자들이 말러의 작품에 대한 자신의 독특한 해석을 우리들에게 들려주었다. 참으로, 어떤 이는 말러 연주의 역사는 독자적인 연주 형태의 역사와 다름없다고 말할 것이다. 브루노 발터, 빌렘 멩겔베르크 그리고 오토 클렘페러처럼 개인적으로 작곡가와 친했던 위대한 지휘자들조차도 자신의 개성적인 예술적 신조와 관심사의 도구로서 필수적으로 말러의 작품을 이용했다.


말러 연주의 양극단에는 음악의 감정적인 내용을 중시하는 멩겔베르크와, 건조하고 인위적인 음악해석 방법이 존재하는 클렘페러가 있다.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은 말러를 풍윤하고 화려한 스타일로 연주한 반면 게오르그 숄티경은 압도적인 힘 자체로 청중들을 제압하는 말러의 이미지를 창조하였다.


레너드 번스타인은 커다란 감정의 기복으로 말러를 지휘했고, 미카엘 길렌은 회색 시멘트 벽돌을 쌓는 듯이 음색을 나열하였다. 다른 지휘자들이 노래와 춤의 요소를 분명히 하는 꾸밈없는 연주를 선호해 왔던 반면, 클라우스 텐슈테트 지휘 하의 말러는 가망 없이 어두워진다. 예민함과 유연성, 열정과 침착함, 염세주의와 낙천주의, 전진과 정체 등이 말러의 음악에 담겨 있다. 이처럼 광범위한 해석의 척도를 부여한 작곡자는 확실히 소수이다.


말러 연주세대 혹은 최소한 말러의 음악이 점차로 대중화되기 시작한 세대는 또한 사운드 레코딩 보급의 세대였다. 우리는 지금 쇼팽과 리스트가 자신의 피아노 소나타를 어떻게 연주했는지, 혹은 바그너가 베토벤의 9번 교향곡을 어떻게 지휘했는지 들을 수 없다. 그러나 말러의 경우는 실질적으로 끊어지지 않은 계보를 작곡 시기 이래에서 오늘날까지 그의 작품이 어떻게 발전돼 왔는지 거슬러 갈 수 있다.


이 배경과 대조하여, 가리 베르티니(Gary Bertini)의 연주와 그 화려한 아름다움은 말러 해석의 한 정점으로 보일 것이 틀림없다. 베르티니는 거의 고전적으로 묘사되었다고 해도 좋을 훌륭한 균형을 유지한다. 금관악기군은 포효해도 괜찮지만, 그 포효는 항상 신중하게 통제 되어서 지독하게 난폭할 이유가 없다. 음향은 변함없이 밝고 명확하다. 시각적 예술과 유사한 기초 위에, 베르티니의 말러는 표현주의에 대한 지루한 절망이 없다고 누군가는 말할 것이다. 캔버스가 어두운 색으로 채워지고 주위는 화려한 색이 뿌려지거나 붓놀림이 격렬할 이유가 없다. 예술에는 ‘추악한 아름다움’ 이 있어도 좋지만 베르티니는 특히 아름다움을 소중히 하는 지휘자다.

 

어떠한 활동 분야에서든 최고 예술가의 기교적 능력은 가장 자연스러운 방법으로 완벽하게 균형잡힌 요소에 대한 다양한 통제력에 있다. 때때로 그것은 거의 너무 완벽해 보일지도 모른다. 다른 지휘자의 연주와의 비교에서, 베르티니의 말러는 처음에는 어딘가 수줍어하는 듯이 보이는지도 모른다. 베르티니처럼 같은 시기 무렵에 먼저 나왔던 레너드 번스타인과 엘리아후 인발 같은 지휘자는 이들 교향악의 캔버스의 완벽한 자극을 극대화하였다. 대조적으로, 베르티니의 연주는 세련된 음향에 집중한다. 그들은 제멋대로의 루바토와 박자의 강조에 대한 그들의 도피에서 대체로 엄격하게 보이는 듯하다.


다르게 나가면, 베르티니의 해석은 새로운 시대로 안내했던 작곡가로서 말러를 대중적인 이미지로 쓰지 않는다고 누군가는 말할 것이다. 말러는 유럽의 문명화에 대한 큰 전진 시기인 1860년부터 1911년까지 살았다. 이 때는 오늘날 우리가 사는 세상이 점차로 좁아지고 있던 시기였다. 크게 진보한 여행, 백화점의 개점과 정신세계를 넘는 물질세계의 주도 못지않은 중산층의 자생력 증가 같은 것들은 바로 당시의 경향의 일부였다.


예술가들은 이 세계의 동료시민들이었기에 그들은 필연적으로 그 영향을 받았고, 이 새로운 세계의 모습은 어느 곳이든 말러의 음악이 분명하다. 그러나 베르티니의 연주에서 그는 전통과 관습에 대항하였던 혁신적인 시대의 공기를 호흡한 작곡가로서의 말러의 이러한 이미지를 탐닉하려는 시도를 하지 않는다.


시각적인 유추를 계속하면, 베르티니의 말러 연주들은 훌륭한 액자 안에 담긴 아름다운 그림이다. 그들은 현실세계와 그 추악함에서 동떨어진 세계 안에 존재한다. 이 ‘그림들’은 슬퍼하고 흐느끼고 죽어가고 춤추고 즐기는 사람들로 가득한데, 그것은 틀림없는 진실이다. 그러나 이런 경험들은 대부분 언제나 조건부로 묘사되었고 우리는 결코 마치 누군가가 우리들 바로 옆에서 소리치고 있다고 느끼지 않는다. 베르티니는 감정과잉은 탈선하는 아름다움이라는 이상을 허락하지 않음을 보장한다. 이런 뜻에서 내가 이들 연주에 ‘고전적’ 이라는 단어를 쓰는 것이다.


우리는 종종 자서전적인 소설의 ‘사실성’에 매력을 느낀다. 그러나 베르티니가 우리들에게  들려주는 말러는 자서전적이 아니다. 그 연주에는 나름의 열정이 있지만, 완전무결함으로 개인의 감정을 다루고 그것들로 청중을 강제하려는 시도가 없다.


이와 같이 말러 연주들은 결코 평범하지 않다. 말러 지휘자들은 일반적으로 말러의 다른 작곡가들의 사이에 차이를 두드러지게 한다. 이러한 접근은 말러에 대한 신성시와 신화화에 기여했고 말러 지휘자 학파의 출현을 위한 발판이 되기도 하였다.


베르티니는 그의 방법론을 말러뿐만 아니라 라벨과 스트라빈스키의 음악에도 적용하였다. 더욱이 그의 차이코프스키와 베를리오즈의 환상 교향곡의 해석은 그의 말러 연주보다 더 인기를 끌었다. 고전주의 레퍼토리에서도 그는 특이한 방향으로 갔다. 그러나 베르티니가 말러의 대체로 지루한 음악을 지휘하게 되었을 때, 그가 이런 경향은 어느 것이든 억제했음은 흥미롭다.


가령, 말러의 작품들 중에서 가장 대중적인 작품의 하나가 되었던 2번 ‘부활’ 교향곡의 1악장을 들으라. 베르티니는 게오르그 숄티경과 주제페 시노폴리에 의해서 만들어진 강력하고 호전적인 인상을 겨누지 않는다. 대신 그는 첼로와 더블베이스의 지그재그 동작, 마음을 진정시키는 바이올린의 칸타빌레 선율과 관의 밸런스에 주목한다. 그는 예기치 않은 무관심, 심미안적인 울림, 종교음악의 그것과 유사한 차분한 분위기를 음악에 전달하며 호소한다.


나는 전에는 ‘지중해적인 말러’ 로서 베르티니의 말러를 추천하곤 하였다. 모든 악장의 음향이 마치 밝고 맑은 하늘 아래에 있는 듯, 왠지 찬란하게 빛나는 듯하다. 구름을 포함하여, 그곳의 모든 것이, 수수하고 명확한 윤곽이 있는 듯하다.


젊음의 에너지와 염원의 혼합인 1번 교향곡의 1악장을 예로 들어 보자. 여기서 인발은 화음의 고정을 결코 용납하지 않고, 격렬한 음악을 전개하지만 베르티니는 음악을 매끄럽고 정치한 흐름으로 물들인다. 3번 교향곡도 마찬가지다. 이 작품의 특징은 대담해서, 어떤 이는 당시의 교향곡 형식과 언어의 관습적인 경계를 멀리 넘어가 버린 괴상한 음악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것에는 말러의 더 그로테스크한 음악을 얼마간 담고 있지만, 이 자유롭고 실험적인 음악의 기묘함은 베르티니의 지휘봉 아래서 희석되었다. 2악장은 화려한 텍스처로 가득한 색색의 화원과도 같다.

 

7번 교향곡은 그 개성과 매력을 구성하는 교향악적 규약의 한계에서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지만 베르티니의 손 안에서는 그 독약은 무독성으로 표현된다.


말러의 교향곡이 널리 대중화가 된 오늘날조차도, 7번 교향곡은 비교적 드물게 연주된다. 그것은 모든 교향곡 대부분이 복합된 색조를 띈 것이다. 그것은 모방적인가? 풍자적인가? 전향적인가? 베르티니의 해석에서 그 작품은 차분한 채색에 의해 하나가 된다. 텐슈테트와 인발에 의한 큰 대비의 해석과의 비교에서, 그것은 어느 정도 희석되었거나 많은 호기심으로 완전히 끌어들이는데 실패하는 연주로 보인다. 그러나 이것은 문제가 아니다. 2번째와 4번째 ‘야곡’ 악장은 말러의 더 난해한 음악을 포함하지만, 베르티니는 그것을 부드러운 터치로 사랑스럽게 해석한다.


첫 번째 야곡의 비할 데 없는 명료함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붙잡으려는 어떠한 시도에도 음악은 마치 희미한 공기 속으로 증발할 듯이 어렴풋한, 떠있는 특징을 갖고 있다. 두 번째 야곡은 고요하고 부드러운 표면의 느낌이지만, 마음을 열기를 내켜하지 않는 아름다운 여인의 분위기를 갖고 있다. 이런 과묵함에도 불구하고, 진정한 의미는 마치 어떤 이가 불순한 가면극을 보고 있는 듯 태연한 몸짓을 통해 전달된다.


이들 레코딩의 중요한 매력들은 그 절묘하고 계산적인 음색의 특징과 동시에 이들 작품에 대해 지휘자가 분명하게 지니는 확고한 감각이다. 대범한 프레이징, 깊게 느껴지는 감정과 함께 우리는 서정적인 악구를 빈번히 듣는다. 현악기군은 한계까지 소리친다. 그러나 이 감상은 다른 악기들의 희생으로는 나타나지 않는다. 프레이징은 억제된 채, 지속되는 리듬에 의해서 지지된다. 매우 드물게, 베르티니는 지극히 느린 템포를 적용하면서 혹은 갑작스러운 격앙된 흥분으로 화음 혹은 패시지에 깊은 감정을 주입한다. 그러나 몇몇 예외를 떼어 놓으면 베르티니의 말러는 음악 속에서 불타는 불꽃의 억제에 의하여 특징지어진다. 단지 아름다움이라는 개념 하에 적용될 수 없는 깊이를 동시에 가지면서도 그의 말러는 놀랄 만큼 아름다운 것이 그 이유이다.


이 전집은 베르티니가 쾰른의 상임 지휘자가 된 이듬해인 1984년에서 1991년 사이에 이루어졌다. 처음의 일련의 스튜디오 작업 후에, 실황녹음으로 전환하기로 결정되었다. 이것은 베르티니가 도쿄의 선토리 홀에서 쾰른방송 교향악단과 말러의 교향곡 전곡을 연주한 1990년대 초였다. 베르티니는 홀의 음향 조건이 마음에 들었고, 즉각 실황녹음의 가능성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다.


2번(1991년 녹음), 3번(1985), 4번(1987), 5번(1990), 6번(1984), 7번(1990), 10번(1991) 교향곡들은 독일에서 이루어졌고, 한편으로 1번, 8번과, 대지의 노래와 더불어 9번은 1991년 일본에서 녹음되었다. 스튜디오 녹음 날짜가 늦어질수록 커지는 연주의 여유와 집중력은 오케스트라에 의해 나타났다. 이것은 1984년에 녹음된 6번 교향곡과 1990년의 7번 교향곡과의 비교에 의해 쉽게 평가될 수 있다. 6번의 연주는 신중함 쪽으로 돌아선다. 7번 교향곡 2악장에서 명백하게 음악이 정밀한 해석과 실제적 즐거움의 호흡에 대한 허용이 모두 가능한 정도에 도달하는 것은 하룻밤에 이루어질 리가 없었다.


이 말러 사이클은 베르티니의 대표적인 녹음 유산이 되었다. 그것은 그가 이전에는 미숙했다거나 그 이후로 무기력하고 노쇠해졌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그는 그런 큰 규모로 작품을 연주하고 녹음함으로서 그만한 정도의 오케스트라와 함께 그처럼 강렬한 인상을 끌어내는 기회를 두 번 다시 갖지 못했다. 베르티니는 엄격하리만큼 매우 신중한 지휘자였고 그에 대한 루머가 많았지만, 그것은 쾰른방송 교향악단보다 더 유명한 관현악단을 지휘하는 혜택을 빋지 못하는 불운이었다. 쾰른방송 교향악단은 많은 지휘자들을 지휘대로 맞이하였지만, 틀림없이 이처럼 일련의 고수준의 연주를 올리지 못했다.


베르티니의 재능에 대한 새로운 출구를 찾기 위해서, 그는 계속해서 프랑크푸르트 오페라의 지휘자를 맡았고 쾰른 방송 교향악단은 완전히 다른 유형의 지휘자를 선택하였다. 지휘자와 오케스트라 파트는  결코 행복하다고 할 수 없는 분위기에서 함께 하는 것이 종종 일어나지만, 베르티니와 쾰른은 우호적인 시기에 그들의 관계를 해체했던 것으로 보였다.


8번, 9번과 대지의 노래가 실황으로 녹음되었다는 것은 대단한 행운이다. 8번과 대지의 노래는 도쿄 사이클에 계획된 마지막 2개의 작품이었고, 그것은 베르티니와 쾰른 간의 관계로서의 정점의 표본이다. 천인 교향곡을 위한 독창자와 합창단의 화려한 진용은 주최자들로 하여금 재정적인 문제로까지 중단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고, 선토리 홀은 이러한 대단한 규모의 연주자들을 수용하기에는 너무 작다. 음압의 진부한 시범으로는 음향의 정도가 좋은 결과로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이 연주를 (선토리)홀에서 들었을 때 나를 놀라게 했던 것은 그것이 시공간으로 거의 실체적이었던 것이다. 베르티니의 기술적 능력은 감동을 주기에 충분했지만, 그는 아름답게 대응된 음향의 단순한 배열보다도 더 넓게 만들었다. 단지 1부의 끝을 듣는 것이라도, 범상치 않은 부피로 대담하고 강력한 절정을 창조하기 위해 얽히고설키며 정력적으로 상승하는 많은 떠오르는 선율들을 들을 수 있다.


그러나 더 큰 놀라움은 2부의 Pater Ecstaticus의 '영원한 황홀의 불이여, 작열하는 사랑의 결속이여...' 선율을 반주하는 관현악의 풍부한 표현과 계속되는 폭발이라는 광활함에 의해서 주어진다. 동일한 지휘자와 함께 말러를 여러 차례 작업하면서, 오케스트라는 이제 작곡자의 음악적 언어를 음향으로 충분히 정확하고 자신 있게 표현할 수 있게 되었다. Mater Gloriosa가 나오는 지점에서의 끔찍하게 부드러운 바이올린과 하프를 들어 보라. 그녀의 부름 '오라, 더 높은 세상으로 날아서...',에 고무된 Doctor Marianus는 '위쪽을 보라!'라고 답하고, 게다가 오케스트라는 썰물로부터 들어오는 바다와 같은 불가항력으로 긴 절정에 들어간다. 즐거움의 정점이 다가오고 합창은 신비로운 운율로 ‘모든 덧없는 것은 그저 표상일 뿐' 이라는 진실의 메시지를 발산시킨다.


선토리 홀에 앉는 사람 누구든지 좋게 평하게 만들던 그곳의 장엄한 분위기를 나는 오늘도 회상한다. 곧 이어서 나는 잘 알려진 도쿄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교향곡을 들었지만, 연주의 규범상 중대한 차이로 인하여 분노를 느꼈다. 비록 일본의 일류 관현악단 중의 하나를 들었지만, 그들의 모든 것을 주었던 베르티니와 그 연주자들의 앞선 연주와 비교하면 그 경험은 그저 애들 장난에 불과한 것 같았다.


대지의 노래는 이 점에서 8번 교향곡과 완전히 동일했다. 나는 그 작품이 이처럼 높은 규범으로 일본에서 연주된 적이 있었는지 의심하였다. 베르티니의 해석에서 탁월한 점은 흔히 듣는 절망과 자기부정의 입장에서 그 주장의 의미였다. 이것은 개시곡인 ‘현세의 고뇌에 대한 권주가’에서 바로 명백하다. 이렇게 연주하면, 노래는 퇴폐적인 축제의 색으로 덮인다. 두 번째 악장도 같이 적용한다. 우울함은 사라지고, 바이올린과 첼로는 교대로 아라베스크 양식으로 성악 선율을 장식하는 깊고 서정적인 음향을 창조하여, 어렴풋한 이국적 취향이 도처에 나타난다. 세 번째와 네 번째 노래들은 품위 있고 쾌활하지만, 다섯 번째 악장에서는 음악은 나아가서 점차로 어두워지는 음색의 희미한 그늘이 드리워진다.


색조는 프랑스 혹은 스페인 양식으로 화려하게 남지만, 으스스한 냉기는 끝곡에 이르러서 스며든다. 목관이 지저귀듯 노래하는 한편, 저음 현이 어두운 그림자를 투영한다. 바이올린의 낭랑한 음색이 어두운 밤에 깜박이는 생명의 불꽃처럼 번득인다.


플루트는 시인이 혼자 장황하게 이야기하듯 주위를 배회하며 춤춘다. 침묵은 밤처럼 깊지만, 예기치 않은 부드러운 음향이 떠오른다(‘친구여, 나 그대 곁에서 오늘 저녁의 아름다움을 음미하길 바라네’). 음악은 친구에게, 사람들에게, 세상에게의 집착을 표현한다. 긴 장송 행진곡이 사이에 낀다. 목소리는 더 어두워지고 가수는 세상에 홀로 서 있다. 그러나 25분 후, ‘사랑스러운 대지 어디에나 봄이면 꽃이 피고 다시 푸르러진다’ 직후, 음악은 점차로 느려지고, 그래서 전체의 분위기는 텍스처를 관통하는 화려하고 투명한 음향으로 조각난다. 코다는 마치 우리가 눈을 감으면 세상이 보이지 않게 되듯이 감싸는 침묵으로 묘사한다.


대지의 노래는 말러가 만년에 자신의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절망에 대한 표현으로 보는 것이 통례였다. 비록 이것이 반드시 틀린 해석은 아니지만, 베르티니의 지휘봉 하에서 그 작품은 겨울에서 봄이 되듯 서정적으로 도취된 분위기의 예기치 않은 낙천주의와 구원의 특징으로 끝나는 것이 명백해진다. 자연 전체에서 한 사람의 이별과 죽음은 그저 작은 일에 불과하다. 우리가 일부를 이루는 자연의 영원함으로 사람의 생각을 돌리면, 우리의 인생은 바로 그것과 같음을 단언할 수 있게 된다. 왜 살며 왜 고생하는지 같은 질문은 자연이라는 구조 내에서 결말짓는다. 이런 점에서 대지의 노래는 말러가 작곡했던 가장 행복한 음악이라고까지 말할 수 있다.

 

9번 교향곡 연주 또한 뛰어나다. 베르티니는 이런 복합의 작품에 뛰어났고, 많은 나라에서 오케스트라와 연주하였다. 쾰른 방송 교향악단과의 연주는 특히 그 세련됨과 안정성에서 탁월하다. 관현악은 세부적인 면에서 완벽한 정밀도를 유지하는 한편 전체가 물결치고 부풀어 오른다. 1악장은 화려한 비단으로 채색되는데, 그것은 때때로 고군분투에 역점을 두고 연주되지만 이제는 이처럼 무르익은 아름다운 음악은 드물고, 브루노 발터와 빈 필하모닉에 의한 1938년 녹음 이래로 거의 들은 적이 없다.

 

2악장과 3악장에서 베르티니는 밑바탕을 말러 당시에 존재했던 시시하며 저속한 거친 박자로 움켜쥐지 않는다. 긴 피날레는 거의 30분 가까이 지속하는 서정주의의 연속적인 흐름으로, 베르티니의 전형이다. 현악기군의 풍부한 화음은 모든 것을 감싸 안는다. 그곳에는 오싹하는 감정적 조망의 기색이 없다. 어느 편인가 하면 감미로움과 사랑으로 가득하다. 악기들은 미련이 있는 듯한 음색에 둘러싸여서 사라지는 코다까지 섬세한 바구니를 짜듯이 뒤얽힌다.

 

베르티니는 강한 유대인의 특징을 지녔고 유대인 작곡가와, 특히 말러의 작품의 연주에는 늘 긍정적인 접근을 취하였다. 내가 마지막으로 들었던 그의 말러는 2004년 겨울 DSO 베를린에 의해 주어졌던 4번 교향곡 연주였다. 그는 습관대로 무대에 달려 나왔고, 열정적으로 지휘하였으며, (연주가) 끝나자 생기 있게 포디움을 떠났다. 그러나 당시 그의 4번에 대한 견해는 깊은 황혼녘의 분위기에 싸인 듯했다. 이 때의 연주는 대단히 훌륭했지만, 템포의 차이는 이미 더 느려졌다. 밝은 천국의 경치인 입장에서 우리는 공허하고 쓸쓸한 어두움과 마주쳤다. 더블베이스의 마지막 지속음은 정확히 대지의 노래와 9번 교향곡의 심연처럼 조용히 사라졌다.

 

극도로 차분한 성격의 음악가가 아니었어도, 그들의 만년에는 묵상적인 자세가 나타나는 특징이 있다. 2005년이 다 가기 전에 베르티니의 사망 소식이 나왔다. 그것은 관현악곡의 가장 아름다운 세계로 우리를 인도할 수 있었던 몇 안 되는 지휘자 중 한 사람이 사라짐을 뜻한다. 그의 유일무이한 말러 연주는 그의 예술에 대한 최고의 촉매로서 우리들의 마음속에 남아 있다.

작성 '06/05/10 2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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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u***:

아, 나 공부해야하는데 또 방해하시는구나! 이럴수가 T-T (히힛, 감사합니다~~ ^^)

06/05/11 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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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u***:

일본어랑 한자로 잔뜩 찬 페이지의 내용을 이제야 알수 있게 되었네요~

06/05/11 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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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o***:

남이 안하는것을 한다는겻, 남과 같이 나눈다는것
고클에서의 구훈님, 박수와 감사를 보냅니다.
"받는것보다 주는것이 복이 있도다." 추천 꾹~~^0^

06/05/11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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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

덕분에유익한 정보를 얻었지만 번역하시는 분은 힘드셧겠네요.얼마전LSO..정명훈지휘로말러5번.금관의 우렁찬 포효가 전률을 느끼게 했던 생각이 납니다.

06/05/16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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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

잘 읽었습니다.// 영국 지휘자들 처럼 매스미디어의 지원을 받았다면 하는 아쉬움이 역시 남는군요.

06/05/22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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