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장 사이의 박수: 비창교향곡 3악장의 경우
http://to.goclassic.co.kr/symphony/19457

 

내가 경험한 비창교향곡 연주에서 실마리를 풀어 본다. 2008년 3월 12일 예술의 전당에서 있은 블라디미르 유로프스키가 지휘하는 런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공연에서였다.

 

언제나와 같이 공연 직전에 휴대폰 끄고, 악장과 악장 사이에 박수를 삼가해 달라는 안내 방송이 있었다. 1부에서는 프로코피예프 피아노 협주곡 2번을 백건우가 교향악단과 협주했다. 중간 휴식 후 주 곡목 차이코프스키 교향곡 6번 '비창'이 연주되었다. 1, 2악장에서 런던필의 음색은 세련미가 넘쳤고, 유로프스키는 섬세했다. 3악장, 지휘자는 기가 넘쳤고 카리스마가 있었다. 악장 전체는 고조된 힘이 넘쳤고 폭발적인 코다(종결부)로  악장이 마감됬다. 그런데 보통 나오는 한두 번의 박수가 아니라 거의 전곡이 끝난 수준의 박수가 터져나온다. 옆에 있는 G선생도 박수를 하길래 속으로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지휘자는 당혹한 표정을 짓더니, 박수를 제지하듯 지휘봉을 들고 그대로 4악장으로 넘어갔다. 덕분에 4악장 도입부는 박수 소리에 묻혀 들리지 않았다. 피아니시모로 끝나는 마지막, 곡은 종결되지만 잔향과 여운을 느끼기 위한 침묵이 필요하다. 그러나 곡이 끝나는 순간 기다렸다는 듯이 나오는 '안다 박수'. 지휘자는 손을 내리지도 않았는데. 유로프스키는 자포자기하는 것 같은 제스처로 손을 내려버렸다. 다섯, 여섯 번의 커튼 콜이 있었지만 앙코르 곡은 나오지 않았다. 

 

'비창'을 수 없이 듣고, 곡의 구조에 대해 잘 알고 있는 G선생에게 왜 박수를 했느냐고 물었다. 휘몰아치는 3악장의 클라이막스에 고양되었고, 벅찬 감동에 자기도 모르게 그랬다고 했다. 사실 나도 하고 싶었지만 참았다고 말했다. '비창' 3악장 후의 박수는 세계적인 현상이라고 한다. 여기에는 작곡자가 박수를 유도한 측면도 있다고 생각한다. 박수를 예상하고 썼다는 말이다. 차이코프스키는 침울한 분위기로 곡을 끝내기 위해 느린 악장을 마지막에 갖다 놓았다. 그래서 보통 피날레가 되어 왔던 악장이 3악장으로 올라간 것이다.

이 교향곡의 경우, 드라마틱하고 긴 1악장으로 시작하여 좀 가벼운 2악장을 지나 극도로 격앙된 어조로 연주되는 3악장의 코다에 이르면 감상자는 종지감을 느끼고 박수를 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느린 4악장은 안티 클라이맥스가 된다.  그래서 청중의 의표를 찌르고 드라마틱한 효과가 만들어졌다. 차이코프스키가 지휘한 1893년의 초연에서도 3악장 후 열광적인 박수가 나왔다고 한다. 박수가 나오는 게 자연스럽기 때문에 막아도 하는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해 본다. 개인적으로는 3악장이 끝난 다음 지휘자의 용인 아래 마음껏 박수를 한 다음에 4악장이 끝났을 때는 '안다 박수'를 하지 말고 여운이 사라질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흔히 ABM(applause between movements)이라고 불리는 '악장 사이의 박수'는 '연주자의 집중을 약화시키고, 작품의 흐름을 방해한다'라는 이유에서 하지 않는 것이 불문율로 되어 있다. 그러나 과도한 ABM의 금지는 청중을 수동적으로 만들고  연주회장을 종교적 제의를 행하는 장소처럼 딱딱하게 만든 원인이 되기도 한다. ABM에 대한 불문율은 상대적이라고 생각한다. 무조건 금지할 것이 아니라 연주 상황, 음악회의 성격, 악장의 템포나 종결 부분의 다이내믹에 따라 ABM은 부분적으로 허용되어도 좋다고 본다. 단 그 박수는 연주에 대한 감동에 의하여 자발적으로 나오는 것이어야 하겠다. ABM은 연주에 대한 방해가 아니라 방금 끝난 악장에 대한 평가를 담은 자연스러운 반응이기도 한 것이다. 정말 삼가야 할 것은 약하게 끝나는 피날레에서 남들 보다 음악을 더 잘 안다는 과시로 성급하게 하는 속물들의 '안다 박수'이다. 

 

음악회와 관련하여 언론 보도에서 눈여겨 본 기사 하나.- 2012년 3월 14일 밤. 프랑스 파리의 클래식 공연장인 살 플레엘 콘서트홀은 1900석의 전 좌석이 꽉 찼다. 정명훈이 지휘하는 북한의 은하수 교향악단과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합동연주를 들으러 온 사람들이다. 2부 무대에서 브람스의 <교향곡 1번>이 합동으로 연주되었는데, 이례적으로 악장이 끝날 때마다 뜨거운 박수가 터졌다. 폐쇄적인 사회의 이상한(?) 나라에서 온 관현악단이 서양 고전음악을 제대로 연주하는 것을 본 놀라움의 표시였을까. 하여튼 그날 파리의 청중들은 자기들의 느낌을 그렇게 자발적으로 나타낸 것이다. 

 

 
 

 

 
작성 '19/09/21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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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

박수 경험은 없지만, 확실히 차이코프스키의 교향곡 6벙는 3악장으로 끝냈으면 안됐을까? 하는 생각이 들긴 하더군요.

19/09/21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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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r***:

아무리 좋게 생각하려 해도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
말러 교향곡9번 4악장도 그렇고 차이코프스키 비창교향곡 4악장도 그렇고, 고용한 정적 속에서 시작되어야 그 분위기가 살아납니다.
3악장 끝나고 박수가 터져나오면 어떻게 해도 4악장의 묘미를 제대로 느낄 수가 없습니다.

19/09/21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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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k***:

우리가 듣는 작곡가들의 시대에는 악장 간에 박수가 나오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고, 되려 박수가 나오지 않으면 관중의 마음에 들지 않은가 싶어 작곡가가 전전긍긍했다고 하죠,

이 악장 간 침묵이라는 예의는 1900년대에 들어서야 생기기 시작했고, 이는 토스카니니, 스토코프스키 등의 음악가들이 주도한 경향이었습니다.

당시의 음악가들 중에는 이런 경향에 반대한 음악가들도 있는데요. 피에르 몽퇴는 1959년 인터뷰에서 "저는 모든 나라의 관객들에게 큰 불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협주곡이나 교향곡의 악장간의 박수에 대한 인위적인 자제입니다. 어디서부터 이런 습관이 시작됐는지는 모르지만 확실히 작곡가의 의도와는 맞지 않습니다."라고 말했고,

에리히 라인스도르프는 "우리는 매너리즘이라고 부를 수 있을만한 시대에 뒤떨어진 매너에 둘러싸여 있다. 그것들은 가장 우선시되어야 할 자연스러운 즐거움에 해가 된다. 그 중 하나는 악장간 박수에 얼굴을 찌푸리는 것이다. 무슨 말도 안되는 짓인지. 한때 유사 역사학자들이 즐겼던 그 개념은 손뼉이라는 일상적인 경박함에 음악이 방해받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위대한 작곡가들은 박수가 어디서 터져나오든 간에 기뻐했다."라고 썼으며 루빈스타인은 1966년 인터뷰에서 "좋아하는 것에 박수를 치는 것이 미개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야 말로 야만적이다."라고 말한 바가 있습니다.

19/09/21 1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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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s***:

토스카니니도 비창 3악장에서는 박수가 나오더군요

19/09/22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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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

비창의 행진곡 3악장은 전체 악상의 연결이라는 면에서 너무 뜬금없기도 하고
생뚱맞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차이콥스키가 좋아하는 서정적 왈츠 스타일로
하지 않고 왜 3악장에 슬라브 행진곡을 집어넣었는지 모르겠어요. 울다가 웃다가,
음울하게 축 쳐져 있다 슬라브의 기상을 발휘해서 힘차게 정진하다가... 다소
코믹하기까지 합니다.

뭐 개인적으로는 그냥 박수를 쳐도 무방하다 생각합니다. 그렇게 분위기 한번
띄워준다면 4악장에서 다시 쫙 가라않는 것도 공연장을 찾은 버라이어티의
묘미가 있을 테니까요.

19/09/21 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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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3악장의 에피소드는 참 많더군요. 3악장에 박수치고 4악장에 박수를 치지 않음으로 이곡의 특징을 살리는것도 괜찮은 방법이라 생각합니다만. 이곡은 아예 박수를 치지않는 전통을 만드는것도 괜찮을듯 싶습니다.

19/09/21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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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

3악장에서 박수 나올 확율 99%입니다. 지휘자가 언릉 손 올려서 박수 막고 빨리 4악장 들어가야....맥이 끊어지지 않고....

19/09/22 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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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m***:

비창교향곡 공연을 3번 본것 같은데 항상 3악장에서 우뢰와 같은 박수가...ㅋㅋ
4악장에서는 다 끝나지도 않았는데 안다박수...ㅠㅠ
이건 이제 받아들여야할 숙명같은 사실인것 같아요.

19/09/22 0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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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a***:

"안다 박수" ㅎㅎㅎ
사실 이게 중간 박수보다 더 짜증나고 챙피하더군요.
안다 박수주의자는 "부라보"추임새도 늘 곁들이는것 같고.

19/09/22 0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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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

전 3악장을 피날레의 최종적인 절망으로 향하기 전의 폭주 상태로 봅니다. 이상심리학적인 관점에서는 둘을 묶어 조울증으로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싶네요.

19/09/22 1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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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o***:

아, 듣던 중 흥미롭고 설득력 있는 견해이십니다.

19/09/22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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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

박수로 흐름을 끊기지 않기위해서 3악장 끝나고 잠깐의 쉼없이 바로 4악장 연주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19/09/22 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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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

3악장 박수는 저는 오히려 치는게 음악적으로 맞다는 생각도 하는데...3악장에서 폭발적으로 터뜨리고 박수까지 쳤을 때야 4악장의 비극성이 더 강조되지 않나 하는 생각입니다.

19/09/22 2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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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m***:

사실 비창교향곡 4악장에 지휘자가 지휘봉을 내리지 않았는데 박수치는건 "안다박수"가 아니라 진짜 무식한 박수지요. 비창교향곡을 안다면 지휘자가 어떻게 했을때 박수를 쳐야하는지 알아야하지 않을까요?

19/09/23 0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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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g***:

대중음악 콘서트는 가수가 관객의 호응을 유도하기도 하지만 클래식 공연은 관객이 수고한 음악가에게 힘을 주는 것은 박수나 호응 밖에 없는데 음악애호가들의 진정어린 애찬이 깃든 좋은 연주는 같은 관객입장에서도 뿌듯하고 그것으로 음악이 완성된 느낌도 받았습니다. 유럽의 공연 중에 레퀴엠 DVD를 보면 연주가 끝난 뒤에도 충분한 휴지기를 두고 열렬한 박수가 나오는 것을 볼때 선진의 공연문화라는 것은 이런 것이구나 느낍니다.

19/09/25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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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

유튜브에서 비창 연주 영상들 쭉 보면 의외로 3악장 끝나고 박수 나오는 연주, 안 나오는 연주 반반이더군요. 특히 정명훈 서울시향 연주에서 3악장 끝나고 박수 안 나와서 놀랐음. 사전에 안내방송을 철저히 한건지..ㅎㅎ

19/09/26 0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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