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모서 재연된 티보 바르가의 전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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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리 동부 해안에 자리한 페르모에서 열린 바이올린 콩쿨은 페르모의 스트라디라고 불리우는

바이올린 제작자 안드레아 포스타치니를 기념하는 콩쿨이다.

 

규모는 작지만 유럽 각 국에서 공부하는 학생이 워낙 많이 몰려 경쟁이 치열하다.

 

연령별로 카테고리를 달리하는 이 콩쿨에서 강구일은 17~21세의 카테고리 C에 속했다.

 

카테고리 D 1차 예선이 있고 그 다음날 카테고리 C의 예선이었다.

 

1차 곡으로는 바하의 아다지오와 푸가, 파가니니 카프리스 2곡 중 한 곡, 모찰트 콘첼토이다.

 

카테고리 D에서는 아다지오와 푸가, 카프리스, 그리고 모찰트 1악장을 순서대로 연주했다.

 

오후가 되면서 카테고리 C는 모찰트를 전 악장을 한다는 소문이 돌면서 반주자와 맞추느라

수선 들이었다.

 

우리는 당황했다. 규정에는 전 악장이라고 되어 있지만 신청 당시 모찰트 콘첼토는 1악장만

한다고 전화와 이 메일로 연락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저녁을 먹고는 대책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장난삼아 한 두번이야 해 보았겠지만 준비도 안 한 곡으로 어떻게 콩쿨을 한단 말인가.

 

여러가지 의견이 나왔다.

 

콩쿨 주최측의 잘못이니 항의하자.

 

심사위원에게 사실대로 말하고 1악장만 하자고 하자.

 

아뭇소리 말고 그저 눈치를 좀 보자. 등등등등

 

한참을 논의한 끝에 결정했다.

 

주최측에 항의를 한다고 해서 소용이 있는것도 아니다.

 

또 심사위원에게 이야기 해 보아야 예외로 해 주지도 않을 것이고 공연히 주최측의 입장만

난처해 질 것이다.

 

그러니 지금부터 준비하자.

 

하다가 못 외우면 악보를 보고라도 하자.

 

구일이는 악보를 펼쳐놓고 읽기 시작했다.

 

활과 운지를 만들고 또 읽고. 한 두번 소리를 내어보고는 잠 자리에 들었다.

 

다음날 아침 일찍부터 시작된 콩쿨장에서 구일이는 평소와 달리 긴장되는지 다소 날카로와 졌다.

 

전날과 달리 파가니니 카프리스를 먼저 연주하고 바하는 아다지오를 생략하고 푸가, 그리고

모찰트 콘첼토는 1악장을 중간까지 연주하고 카덴짜. 그리고는 심사위원의 요구에 따라

2악장이나 3악장, 혹은 모두를 심사위원이 중지 할 때까지 연주하는 것이었다.

 

콩쿨측 반주자인 알렉산드라와 한 번 맞추어 본 구일이의 순서는 오전 마지막께였다.

 

파가니니 카프리스 24번의 주제 부분이 시작되면서 심사위원들은 서로 얼굴을 한번씩 쳐다보더니

펜을 놓았다.

 

곡에 빠지기 시작한 구일이는 파가니니를 평소에 음정이 불안하던 부분까지 깔끔하게 연주하고

늘 연주장의 분위기를 사로잡던 것과 마찬가지로 모두를 얼어붙게 했다.

 

약간 거친듯한 바하의 푸가가 끝나고 모찰트.

 

파가니니에서 바하로, 다시 모찰트로 변신을 거듭한 1악장을 카덴짜를 듣지 않은채로 끝내고

심사위원장이 어떤걸 들을까요? 하는 물음에 다른 심사위원들이 모두 3악장이요.하는것이었다.

 

차라리 2악장이면 좀 나을텐데 하는 생각과 함께 이젠 모두 글렀구나하는 마음이 들었다.

 

악보를 보고해도 될까요?하는 구일이의 질문에 그러세요라고 심사위원장이 답했다.

 

마치 믿는 구석이라도 있다는 듯 여유있게 구석에 세워진 보면대를 가져다 악보를 펼쳐 놓고는

반주자에게 시작 사인을 보냈다.

 

눈 앞에 놓기는 했지만 보지 않는 악보를 위안이라도 삼은 듯 3악장의 모찰트는 한참을 준비한

아이들의 연주보다 더 깨끗했다.

 

멈출만한 부분이 지나도 계속 듣고 있는 심사위원이 점점 더 원망스러워졌다.

 

너무 꼭 쥐어서 손이 저리다는 느낌이 들 때쯤 땡큐!하는 심사위원장의 목소리는 천상에서

들리는 천사의 노래 같았다.

 

연주가 모두 끝나고 돌아서서 나가는 구일이는 만족스러워했고 반주자 알렉산드라는 보지도

않을 악보를 펼쳐놓고 한게 아쉽다면서 초견 연주라는게 믿기지 않는다고 연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저녁 무렵, 발표가 시작되었다.

 

우리는 초조했다.

 

지난 2월 처음으로 나가 본 국제 콩쿨인 크로아티아에서도 구일이의 연주가 끝나자 사람들은

한참을 박수를 보내고 모두 잘한다고 했다.

만나는 이 마다 악수를 청했지만 결과는 1차에 실패하였다. 발세시아에서도 그랬고.

 

세번째 도전인 이번에도 그렇게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

 

차라리 다른 사람들에게서 잘한다 소리나 듣지 않으면 마음이 좀 편하려나.

 

그런데다가 다른 아이들의 수준이 보통을 훨씬 넘어서고 악보를 펼쳐 놓은것이 점수면에서

치명적일 수 있기 때문이었다.

 

연주 순서는 이름이 S로 시작하는 사람부터였고 발표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차마 그 자리에 가지 못하고 문이 열려있는 옆방 의자에 안사람과 함께 앉아 있었다.

 

마침 막내가 방학 중이어서 식구들 모두 휴가 삼아 왔고, 떨어지더라도 별로 아쉬워하지

않기로 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발표하는 순간은 또 달랐다.

 

S로 시작하는 이름을 세명 부르고 또 다른 이름이 하나가 지나갔다.

 

그리고는 카아앙그 #$%^&*! 알아 들을 수 없는 이름 뒤에는 린 어쩌구 대만 아이였다.

 

! 쟤는 구일이 뒤인데?

 

부른거 아니예요?

 

글쎄!

 

맞아요. 불렀어요!

 

그래?

 

우리 부부가 되지도 않은 대화를 하는 사이 유나가 뛰어 들어왔다.

 

오빠, 됐어요. 와하하하하

 

것봐요. 불러대잖아요.

 

‘………! 고맙습니다!

 

발표가 끝나고 구일이가 싱글 거리면서 들어왔다.

 

아부지, 저 됐어여. 히히히

 

'저도 선생님처럼 하룻 저녁에 곡을 준비해서 연주해 보고 싶었어여. 히히히'

 

1차에서 실패한다고 자신감을 잃어만 가는 아이에게 단비가 내리는 모습이었다.

 

우리는 나중에 들었다.

 

구일이가 2,3악장이 준비가 되지 않은걸 심사위원들이 들어서 알고 있었단다.

 

그래서 초견으로 얼마나 하는지,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한 번 보자고 했단다.

 

크으으으~~~~

 

티보 바르가 선생님이 베르그의 콘첼토를 일주일만에 준비해서 초연했다는 전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만역시 그 스승에 그 제자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이 모습을 보시면서 아마도 무덤 속에서 허허 하고 웃으실 것이다.

 

어쩌면 전날 밤 어린 제자의 꿈에 젊어진 모습으로 보인 티보 바르가 선생님의 덕인지도 모른다.

작성 '05/05/31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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