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BC 뉴스 부고 기사
http://to.goclassic.co.kr/artist/264

로스트로포비치는 출중한 음악적 재능 뿐 아니라 인권을 진작하는 데에 앞장 선 것으로도 존경 받는 음악인입니다. 부고 소식을 접하고 그의 드보르작 첼로 협주곡을 들으며 웹 검색을 하다 BBC 뉴스 웹(http://news.bbc.co.uk)에 있는 부고 기사(http://news.bbc.co.uk/2/hi/europe/2911181.stm)를 읽고 한국어로 옮겨봤습니다. 어차피 음악도 세상사(事), "조국"도 세상의 것이거늘, 편안한 세상 가셨으니 음악도 잊고 조국도 잊고 그저 편히 쉬시길 바랍니다.

 

 

 

Obtuary: Mstislav Rostropovich

 

 

러시아 어에서 "영광"을 뜻하는 지소사(指小辭, diminutive)로 쓰이는 슬라바(Slava)란 별칭으로 클래식 음악계에 널리 알려져있는 로스트로포비치는 위대한 음악가인 동시에 인권의 옹호에 압장 선 용기 있는 투사였다.

 

그는 프로코피에프와 쇼스타코비치 같은 작곡가들이 소비에트 권력 기관의 눈 밖에 나게 됐을 때에도 그들을 향한 신의를 져버리지 않았다. 또한 그는 소설가인 알렉산드르 솔제니친과 단교(斷交)하는 것을 거부함으로써 1974년에 소비에트 연방을 떠나 서방 세계로 망명하게 됐다.

 

므스티슬라프 로스트로포비치는 파블로 카잘스 이후 가장 위대한 첼리스트로 여겨져왔다. 그는 카스피 해(海) 연안의 바쿠(Baku)에서 천부적인 음악적 재능을 갖고 태어났다. 어머니는 피아니스트였으며 아버지는 첼로와 피아노를 연주하는 작곡가였다.

 

어린 므스티슬라프의 재능은 이미 다섯 살 때에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의 훌륭한 재능을 꽃피워주기 위해 모스크바로 이주한 일가족은 방 한 칸 잡지 못해 전전긍긍하는 처지로 전락했다. 가족은 주위의 도움을 받아 가까스로 생존하게 됐으며 로스트로포비치의 음악 교육 역시 순조롭게 진행될 수 있었다.

 

아버지를 따라 오케스트라 리허설에 참가하여 조기 지휘 학습을 하기 전에 이미 작곡을 할 정도로 그는 재능이 풍부했다.

 

그러나 로스트로비치는 자신의 꿈만 좇아 책임을 회피하는 학생이 아니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그는 곧 선생이 되어 가정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다.

 

이미 인정 받는 피아니스트이자 첼리스트였던 로스트로포비치는 그와 그의 바이올리니스트 누이가 모스크바 음악원에 자리를 잡아 공부하게 될 때까지 그의 아버지가 해왔던 오케스트라와 교육 관련 일을 떠맡아 했다.

 

음악원에서 그는 35호 학급(Class Number 35)에 합류하게 되었고 쇼스타코비치로부터 작곡 수업을 받았다. 이후 둘은 평생의 지기가 되었으며 쇼스타코비치는 두 곡의 첼로 협주곡을 로스트로포비치에게 헌정했다.

 

1956년부터 로스트로포비치는 영국을 자주 방문하여 벤자민 브리튼과 친교를 쌓고 올드버러 음악 축제(Aldeburgh Festival)의 단골 음악가가 되었다.

 

반체제 인사의 지지자

 

올드버러 음악 축제에 처음으로 참여했을 때에 그는 기왕에 명성을 쌓아가고 있던 소프라노이자 아내인 갈리나 비쉬네프스카야(Galina Vishnevskaya)를 대동했고 자신이 직접 그의 반주자로 공연했다. 그러나 하이라이트는 역시 브리튼이 그를 위해 특별히 작고한 첼로 소나타를 작곡가의 반주와 함께 연주한 것이었다.

 

일반의 광범위한 존경은 단지 그의 천재적인 재능에만 기인한 것이 아니었다. 소비에트 권력 기관의 위협에 굴하지 않았다는 점을 또 언급해야 한다.

 

로스트로포비치가 노벨상 수상 작가인 알렉산더 솔제니친에게 자신의 모스크바 바깥의 시골 주택을 거처로 제공함으로써 작가를 향한 자신의 지지를 보여주었을 때에 당국은 그의 저항 행위를 더이상 좌시할 수 없었다.

 

그와 그의 아내는 해외 공연이 금지됐으며 마침내 조국을 떠나 파리에 거주하던 1978년에는 소비에트 시민권이 박탈 당하는 충격을 경험해야 했다. 문화적 압제 정치는 두 명의 추가 희생자를 만든 것이다.

 

서방 세계는-로스트로포비치의 망명이 정치적 이해관계의 고려에 있어서도 환영할 만 한 일이었겠지만-그를 극진히 맞아들였다. 로스트로포비치는 미국 워싱턴에 있는 국립 교향악단(National Symphony Orchestra)의 상임 지휘자가 되었다.

 

따뜻한 우정

 

그는 또한 런던 필하모닉과 공연하기도 했다. 매 번 올드버러에 도착할 때마다 그는 곧장 벤자민 브리튼의 묘소로 달려가 비석을 껴안았다. 그는 친구들을 만날 때마다 주저 없이 그들을 껴안곤 했고 이것의 그의 변함없는 인사 방법이었다.

 

작곡가들은 그를 위해 수많은 작품을 썼으며 로스트로포비치는 역사 상의 굵직굵직한 사건들로부터 영감을 받아 연주하고 또 행동했다. 무너진 베를린 장벽의 돌무더기 앞에서 바흐를 연주했고 1991년 모스크바에서의 쿠데타 시도를 막기 위해 보리스 옐친을 도우러 달려가기도 했다.

 

영국 음악계의 발전을 위한 그의 노력은 1987년에 명예 기사 작위를 받는 것으로 보답됐다.

 

지휘자이자 연주자로서의 로스트로포비치는 대담했고 또 개성이 강했다.

 

차이코프스키 음악의 연주는 그의 넘치는 활력에 잘 들어맞았다. 또한 특유의 정서적인 설득력으로 널리 칭송 받는 드보르작 연주 녹음을 남겼다. 므스티슬라프 로스트로포비치에게 있어 첼로란 인간성의 확대를 위한 도구였다.

작성 '07/04/27 2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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