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계한지 19년이 가까워오는 이 지휘자는 여전히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것같다. 음악적인 면이든 그렇지 않든...
객석 4월호에 카라얀 관련 특집기사가 나왔기에 주의깊게 읽어봤는데 독설가로 비쳐지기 원하는 분의 글이 눈에 들어왔다. 특유의 날카로움이 많이 줄어든 것 같아 아쉬웠지만 그래도 카라얀은 맥도널드같은 음악가라는 신념을 쉬파리떼와 들쥐를 쫒는 기세로 여전히 잘 풀어썼다.
이분의 방송 해설과 각종 글을 지난 20여년 동안 듣고 읽었는데 카라얀과 관련한 각종 풍문을 진실로 철썩같이 믿고 전파하는데 두손 두발 다 들었다. 또 태산에 오르는 데는 여러가지 방법이 있는데 그중 한가지만을 절대적인 것으로 보는 우물안 개구리 같은 시야에도 질려버렸다.
솔직히 카라얀에 대한 논란이 불거질 때마다 '왜 그에게만?'이라는 생각이 든다. 도덕적인 기준을 엄격하게 들이댈 때 흠결없는 사람은 거의 없다. 나치 혐의만 해도 푸르트뱅글러, 뵘, 크나퍼츠부쉬 등 당시 독일지휘자 중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질투심이 있던 푸르트뱅글러나 바람기가 다분했던 클렘페러나 토스카니니까지...음악적인 부분을 거세한 채 음악 외적인 부분에만 초점을 맞춘다면 그들이 남겼던 위대한 유산의 빛은 바래질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이들에 대해 음악 외적으로 메스를 들이대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음악적인 면으로만 봐도 그렇다. 미하엘 길렌이 얘기했듯이 카라얀은 푸르트뱅글러 악파의 바그너적인 장중한 음악해석에서 '어느정도' 벗어난 지휘자다. 그런데 그런 그의 음악세계를 푸르트뱅글러 악파의 기준에 맞춰 평가하는 게 옳은 일일까.
명곡이라는 태산준령에 오르기 위해서는 많은 방법이 있다. 위대한 거장들은 각자 자신만의 방법으로 그곳에 올라간다. 하지만 음악에 대해 많이 안다고 자부하는 일부 사람 중에는 그것을 무시한채 자신이 존경하는 음악가의 방식만 절대 선으로 간주한다.
원래도 카라얀이 남긴 음반을 좋아했지만 지난 몇달 동안 '카라얀 2008'이라는 상술에 넘어가 수많은 CD와 DVD를 구입해 집중감상했다. 동의할 수 없는 음반도 있었지만 카라얀이 평생을 걸쳐 추구했던 음악적인 미의식에 감동한 순간도 많았다. 심지어 카라얀의 답답한 영상물을 보면서도 저 사람이 갈구했던 건 오로지 음악 자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카라얀은 더는 '가십'을 만들어 낼 수 없다. 죽어서 땅속에 묻힌지 벌써 19년이나 됐다. 그런데 그의 음악에만 온전히 집중해서 생산적인 토론을 나눌 수 있는 지금도 여전히 나치나 맥도널드 지휘자 같은 지난 세기에 다 나왔던 얘기들이 반복된다.
카라얀은 위대한 20세기 지휘자 중 한 명이다. 음악의 황제라는 음반사의 선전문구나 각종 '카더라 통신'에 얽매인 의미없는 글이나 토론보다는 이 지휘자가 남긴 음악 유산에 대한 건설적이고 깊이 있는 논의가 이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
푸르트뱅글러 사후 카라얀이 첼리비다케를 제치고 BPO 상임지휘자에 오른 건 '영화같은 모짜르트와 살리에리 스토리'가 아니다. 두 지휘자 모두 BPO 단원들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았지만 문제는 첼리비다케의 고압적인 자세와 세대교체 계획이었다. 평론가를 자처하는 어떤 분은 카라얀이 BPO 상임지휘자에 취임한 뒤 '푸르트뱅글러의 사람들'이 줄줄이 떠났다고 주장하는데, 첼리비다케는 바로 그 '푸르트뱅글러의 사람들'을 퇴출시키고 싶다는 말을 공공연히 했다.
*
카라얀이 남긴 음반은 누구나 부담없이 즐길 수 있는 맥도널드같은 패스트푸드라고 하신 분이 있다. 그 분이 과연 카라얀이 지휘한 오네게르 교향곡 음반이나 말러 교향곡 6번 음반,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10번 음반을 한번이라도 제대로 들어봤는지 궁금하다. 아마도 그 분은 카라얀이 남긴 음반이 워낙 많아서 이 지휘자가 무슨 마상원과 그의 악단의 마상원인줄 아는 것 같다. 소름끼치는 저 음반을 맥도널드처럼 가볍게 즐기는 사람은 과연 누굴까.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카라얀의 음반(관현악)을 꼽아본다.
-CD-
1. 베토벤 교향곡 전집 (1960년대) *카라얀은 베토벤 교향곡으로 노래를 부를 줄 아는 몇 안되는 지휘자다.
2. 차이코프스키 교향곡 4,5,6번 (1960년대) *강력하고 아름다우며 비애감이 있다.
3. 브루크너 교향곡 전집 *완벽한 미는 종교적인 숭고함과 맞닿아 있다.
4. 신비인악파 음악 선곡집 *아바도와 시노폴리와는 분명 다르다. 하지만 이런 낭만적인 해석이 더 끌린다.
5. 오네게르 교향곡 2,3번 *통렬하다. 가슴이 찢어지는 느낌이 난다.
6. R. 슈트라우스 영웅의 일생(카라얀이 남긴 모든 녹음) *자서전적인 녹음이다.
7. 1987년 빈 신년음악회 *카라얀의 마법이 드러난 연주다.
8. 말러 교향곡 6번 *비극적이라기보다는 비애적이다.
9. 브루크너 교향곡 7번 (마지막 녹음) *카라얀 미학의 정점을 보여준다.
10.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10번(모든 녹음) *완벽한 교향곡 녹음이다.
11. 베토벤 교향곡 7번(팔렉사) *이렇게 뜨거운 베토벤 교향곡 7번 음반을 들은 적이 없다.
12. 오페라 간주곡집(DG) *보석같은 연주다.
13. 시벨리우스 교향곡 4~7번 *작곡가의 정제미를 완벽하게 구현했다.
14. 말러 교향곡 9번(실황음반) *완벽한 연주
-DVD-
1. 브루크너 교향곡 9번(SONY DVD)
2. 브루크너 교향곡 8,9번&테데움(DG)
3. 베토벤 교향곡 9번(EuroArts)
4. 베토벤 장엄미사(SONY DVD)
5. 브람스 교향곡 2번(SONY DVD)
6. 베토벤 교향곡 3번 (SONY DVD) *BPO 100주년 실황
7. R. 슈트라우스 알프스 교향곡(SONY DVD)
오늘은 카라얀이 태어난지 정확히 100년이 되는 날이다.
타계한지 19년이 가까워오는 이 지휘자는 여전히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것같다. 음악적인 면이든 그렇지 않든...
객석 4월호에 카라얀 관련 특집기사가 나왔기에 주의깊게 읽어봤는데 독설가로 비쳐지기 원하는 분의 글이 눈에 들어왔다. 특유의 날카로움이 많이 줄어든 것 같아 아쉬웠지만 그래도 카라얀은 맥도널드같은 음악가라는 신념을 쉬파리떼와 들쥐를 쫒는 기세로 여전히 잘 풀어썼다.
이분의 방송 해설과 각종 글을 지난 20여년 동안 듣고 읽었는데 카라얀과 관련한 각종 풍문을 진실로 철썩같이 믿고 전파하는데 두손 두발 다 들었다. 또 태산에 오르는 데는 여러가지 방법이 있는데 그중 한가지만을 절대적인 것으로 보는 우물안 개구리 같은 시야에도 질려버렸다.
솔직히 카라얀에 대한 논란이 불거질 때마다 '왜 그에게만?'이라는 생각이 든다. 도덕적인 기준을 엄격하게 들이댈 때 흠결없는 사람은 거의 없다. 나치 혐의만 해도 푸르트뱅글러, 뵘, 크나퍼츠부쉬 등 당시 독일지휘자 중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질투심이 있던 푸르트뱅글러나 바람기가 다분했던 클렘페러나 토스카니니까지...음악적인 부분을 거세한 채 음악 외적인 부분에만 초점을 맞춘다면 그들이 남겼던 위대한 유산의 빛은 바래질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이들에 대해 음악 외적으로 메스를 들이대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음악적인 면으로만 봐도 그렇다. 미하엘 길렌이 얘기했듯이 카라얀은 푸르트뱅글러 악파의 바그너적인 장중한 음악해석에서 '어느정도' 벗어난 지휘자다. 그런데 그런 그의 음악세계를 푸르트뱅글러 악파의 기준에 맞춰 평가하는 게 옳은 일일까.
명곡이라는 태산준령에 오르기 위해서는 많은 방법이 있다. 위대한 거장들은 각자 자신만의 방법으로 그곳에 올라간다. 하지만 음악에 대해 많이 안다고 자부하는 일부 사람 중에는 그것을 무시한채 자신이 존경하는 음악가의 방식만 절대 선으로 간주한다.
원래도 카라얀이 남긴 음반을 좋아했지만 지난 몇달 동안 '카라얀 2008'이라는 상술에 넘어가 수많은 CD와 DVD를 구입해 집중감상했다. 동의할 수 없는 음반도 있었지만 카라얀이 평생을 걸쳐 추구했던 음악적인 미의식에 감동한 순간도 많았다. 심지어 카라얀의 답답한 영상물을 보면서도 저 사람이 갈구했던 건 오로지 음악 자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카라얀은 더는 '가십'을 만들어 낼 수 없다. 죽어서 땅속에 묻힌지 벌써 19년이나 됐다. 그런데 그의 음악에만 온전히 집중해서 생산적인 토론을 나눌 수 있는 지금도 여전히 나치나 맥도널드 지휘자 같은 지난 세기에 다 나왔던 얘기들이 반복된다.
카라얀은 위대한 20세기 지휘자 중 한 명이다. 음악의 황제라는 음반사의 선전문구나 각종 '카더라 통신'에 얽매인 의미없는 글이나 토론보다는 이 지휘자가 남긴 음악 유산에 대한 건설적이고 깊이 있는 논의가 이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
푸르트뱅글러 사후 카라얀이 첼리비다케를 제치고 BPO 상임지휘자에 오른 건 '영화같은 모짜르트와 살리에리 스토리'가 아니다. 두 지휘자 모두 BPO 단원들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았지만 문제는 첼리비다케의 고압적인 자세와 세대교체 계획이었다. 평론가를 자처하는 어떤 분은 카라얀이 BPO 상임지휘자에 취임한 뒤 '푸르트뱅글러의 사람들'이 줄줄이 떠났다고 주장하는데, 첼리비다케는 바로 그 '푸르트뱅글러의 사람들'을 퇴출시키고 싶다는 말을 공공연히 했다.
*
카라얀이 남긴 음반은 누구나 부담없이 즐길 수 있는 맥도널드같은 패스트푸드라고 하신 분이 있다. 그 분이 과연 카라얀이 지휘한 오네게르 교향곡 음반이나 말러 교향곡 6번 음반,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10번 음반을 한번이라도 제대로 들어봤는지 궁금하다. 아마도 그 분은 카라얀이 남긴 음반이 워낙 많아서 이 지휘자가 무슨 마상원과 그의 악단의 마상원인줄 아는 것 같다. 소름끼치는 저 음반을 맥도널드처럼 가볍게 즐기는 사람은 과연 누굴까.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카라얀의 음반(관현악)을 꼽아본다.
-CD-
1. 베토벤 교향곡 전집 (1960년대) *카라얀은 베토벤 교향곡으로 노래를 부를 줄 아는 몇 안되는 지휘자다.
2. 차이코프스키 교향곡 4,5,6번 (1960년대) *강력하고 아름다우며 비애감이 있다.
3. 브루크너 교향곡 전집 *완벽한 미는 종교적인 숭고함과 맞닿아 있다.
4. 신비인악파 음악 선곡집 *아바도와 시노폴리와는 분명 다르다. 하지만 이런 낭만적인 해석이 더 끌린다.
5. 오네게르 교향곡 2,3번 *통렬하다. 가슴이 찢어지는 느낌이 난다.
6. R. 슈트라우스 영웅의 일생(카라얀이 남긴 모든 녹음) *자서전적인 녹음이다.
7. 1987년 빈 신년음악회 *카라얀의 마법이 드러난 연주다.
8. 말러 교향곡 6번 *비극적이라기보다는 비애적이다.
9. 브루크너 교향곡 7번 (마지막 녹음) *카라얀 미학의 정점을 보여준다.
10.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10번(모든 녹음) *완벽한 교향곡 녹음이다.
11. 베토벤 교향곡 7번(팔렉사) *이렇게 뜨거운 베토벤 교향곡 7번 음반을 들은 적이 없다.
12. 오페라 간주곡집(DG) *보석같은 연주다.
13. 시벨리우스 교향곡 4~7번 *작곡가의 정제미를 완벽하게 구현했다.
14. 말러 교향곡 9번(실황음반) *완벽한 연주
-DVD-
1. 브루크너 교향곡 9번(SONY DVD)
2. 브루크너 교향곡 8,9번&테데움(DG)
3. 베토벤 교향곡 9번(EuroArts)
4. 베토벤 장엄미사(SONY DVD)
5. 브람스 교향곡 2번(SONY DVD)
6. 베토벤 교향곡 3번 (SONY DVD) *BPO 100주년 실황
7. R. 슈트라우스 알프스 교향곡(SONY DV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