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http://to.goclassic.co.kr/artist/323

오늘은 카라얀이 태어난지 정확히 100년이 되는 날이다. 

타계한지 19년이 가까워오는 이 지휘자는 여전히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것같다.  음악적인 면이든 그렇지 않든...

객석 4월호에 카라얀 관련 특집기사가 나왔기에 주의깊게 읽어봤는데 독설가로 비쳐지기 원하는 분의 글이 눈에 들어왔다. 특유의 날카로움이 많이 줄어든 것 같아 아쉬웠지만 그래도 카라얀은 맥도널드같은 음악가라는 신념을 쉬파리떼와 들쥐를 쫒는 기세로 여전히 잘 풀어썼다.

이분의 방송 해설과 각종 글을 지난 20여년 동안 듣고 읽었는데 카라얀과 관련한 각종 풍문을 진실로 철썩같이 믿고 전파하는데 두손 두발 다 들었다.  또 태산에 오르는 데는 여러가지 방법이 있는데 그중 한가지만을 절대적인 것으로 보는 우물안 개구리 같은 시야에도 질려버렸다.
 
솔직히 카라얀에 대한 논란이 불거질 때마다 '왜 그에게만?'이라는 생각이 든다. 도덕적인 기준을 엄격하게 들이댈 때 흠결없는 사람은 거의 없다. 나치 혐의만 해도 푸르트뱅글러, 뵘, 크나퍼츠부쉬 등 당시 독일지휘자 중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질투심이 있던 푸르트뱅글러나 바람기가 다분했던 클렘페러나 토스카니니까지...음악적인 부분을 거세한 채 음악 외적인 부분에만 초점을 맞춘다면 그들이 남겼던 위대한 유산의 빛은 바래질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이들에 대해 음악 외적으로 메스를 들이대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음악적인 면으로만 봐도 그렇다. 미하엘 길렌이 얘기했듯이 카라얀은 푸르트뱅글러 악파의 바그너적인 장중한 음악해석에서 '어느정도' 벗어난 지휘자다. 그런데 그런 그의 음악세계를 푸르트뱅글러 악파의 기준에 맞춰 평가하는 게 옳은 일일까. 

명곡이라는 태산준령에 오르기 위해서는 많은 방법이 있다. 위대한 거장들은 각자 자신만의 방법으로 그곳에 올라간다. 하지만 음악에 대해 많이 안다고 자부하는 일부 사람 중에는 그것을 무시한채 자신이 존경하는 음악가의 방식만 절대 선으로 간주한다. 

원래도 카라얀이 남긴 음반을 좋아했지만 지난 몇달 동안 '카라얀 2008'이라는 상술에 넘어가 수많은 CD와 DVD를 구입해 집중감상했다. 동의할 수 없는 음반도 있었지만 카라얀이 평생을 걸쳐 추구했던 음악적인 미의식에 감동한 순간도 많았다. 심지어 카라얀의 답답한 영상물을 보면서도 저 사람이 갈구했던 건 오로지 음악 자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카라얀은 더는 '가십'을 만들어 낼 수 없다. 죽어서 땅속에 묻힌지 벌써 19년이나 됐다. 그런데 그의 음악에만 온전히 집중해서 생산적인 토론을 나눌 수 있는 지금도 여전히 나치나 맥도널드 지휘자 같은 지난 세기에 다 나왔던 얘기들이 반복된다. 

카라얀은 위대한 20세기 지휘자 중 한 명이다. 음악의 황제라는 음반사의 선전문구나 각종 '카더라 통신'에 얽매인  의미없는 글이나 토론보다는 이 지휘자가 남긴 음악 유산에 대한 건설적이고 깊이 있는 논의가 이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
푸르트뱅글러 사후 카라얀이 첼리비다케를 제치고 BPO 상임지휘자에 오른 건 '영화같은 모짜르트와 살리에리 스토리'가 아니다.  두 지휘자 모두 BPO 단원들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았지만 문제는 첼리비다케의 고압적인 자세와 세대교체 계획이었다. 평론가를 자처하는 어떤 분은 카라얀이 BPO 상임지휘자에 취임한 뒤 '푸르트뱅글러의 사람들'이 줄줄이 떠났다고 주장하는데, 첼리비다케는 바로 그 '푸르트뱅글러의 사람들'을 퇴출시키고 싶다는 말을 공공연히 했다.    

*
카라얀이 남긴 음반은 누구나 부담없이 즐길 수 있는 맥도널드같은 패스트푸드라고 하신 분이 있다.  그 분이 과연 카라얀이 지휘한 오네게르 교향곡 음반이나 말러 교향곡 6번 음반,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10번 음반을 한번이라도 제대로 들어봤는지 궁금하다. 아마도 그 분은  카라얀이 남긴 음반이 워낙 많아서 이 지휘자가 무슨 마상원과 그의 악단의 마상원인줄 아는 것 같다.  소름끼치는 저 음반을 맥도널드처럼 가볍게 즐기는 사람은 과연 누굴까.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카라얀의 음반(관현악)을 꼽아본다. 

-CD-
1. 베토벤 교향곡 전집 (1960년대) *카라얀은 베토벤 교향곡으로 노래를 부를 줄 아는 몇 안되는 지휘자다.
2. 차이코프스키 교향곡 4,5,6번 (1960년대) *강력하고 아름다우며 비애감이 있다.
3. 브루크너 교향곡 전집 *완벽한 미는 종교적인 숭고함과 맞닿아 있다. 
4. 신비인악파 음악 선곡집 *아바도와 시노폴리와는 분명 다르다. 하지만 이런 낭만적인 해석이 더 끌린다.
5. 오네게르 교향곡 2,3번 *통렬하다. 가슴이 찢어지는 느낌이 난다.
6. R. 슈트라우스 영웅의 일생(카라얀이 남긴 모든 녹음) *자서전적인 녹음이다.
7. 1987년 빈 신년음악회 *카라얀의 마법이 드러난 연주다.
8. 말러 교향곡 6번 *비극적이라기보다는 비애적이다.
9. 브루크너 교향곡 7번 (마지막 녹음) *카라얀 미학의 정점을 보여준다.
10.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10번(모든 녹음) *완벽한 교향곡 녹음이다.
11. 베토벤 교향곡 7번(팔렉사) *이렇게 뜨거운 베토벤 교향곡 7번 음반을 들은 적이 없다.
 12. 오페라 간주곡집(DG) *보석같은 연주다.
13. 시벨리우스 교향곡 4~7번 *작곡가의 정제미를 완벽하게 구현했다.
14.  말러 교향곡 9번(실황음반) *완벽한 연주

-DVD-
1. 브루크너 교향곡 9번(SONY DVD)
2. 브루크너 교향곡 8,9번&테데움(DG)
3. 베토벤 교향곡 9번(EuroArts) 
4. 베토벤 장엄미사(SONY DVD)
5. 브람스 교향곡 2번(SONY DVD)
6. 베토벤 교향곡 3번 (SONY DVD) *BPO 100주년 실황
7. R. 슈트라우스 알프스 교향곡(SONY DVD)

작성 '08/04/05 1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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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g***: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우리 라얀이형님을 마구 까는 넘들 누구냐?? 내가 상대해주마~~

08/04/05 1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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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p***:

아직 오네게르의 것은 들어보지 않았지만 말러6번이나 쇼스타코비치의 10번은 정말 무시무시한 연주죠
저에게 근래에 카라얀의 위대함이 더욱 더 절실히 느껴집니다(이제 더는 카라얀을 부정 못하겠어요^^) 특히 그의 말러9번을 듣고 나서 카라얀에게 두손 두발 다 들었습니다^^

08/04/05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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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

한동안 카라얀(60년대)과 아르농쿠르, 클라이버의 베토벤을 비교해 들으며 지낸적이 있습니다. 주관적인 평입니다만, 솔직히 카랴얀의 연주에서 때때로 '내가 움켜쥔 것은 결코 놓지 않겠다'며 이를 드러내는 괴물의 면모를 보았던 것도 사실입니다. 클라이버나 아르농쿠르와 비교하며 들어보면 특히 그런 단점이 두드러지더군요. 하지만 그 '괴물의 거죽' 아래 이따금씩 너무나 아름다운 청년의 모습이 비치는 겁니다. 그 청년을 본 순간 -문자 그대로- 가슴이 두근거리며 사랑하는 마음이 솟구치는 것을 막을 수 없었습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08/04/05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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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

그정도의 절대권력에 가까운 지위와 부..그것을 가지려면 사실 많은부분 그사람스스로 자신의 강력한 욕망을 드러내는일이 불가피했겠고..그와 관련하여 이에 환멸을 느낀사람들의 경험담은 많이있을것입니다..

예술가들중에도 여러타입이 있더군요..과거의 거장들 다수는 사실 권력형에 속하긴할겁니다..그러니까 카라얀만을 지목하는건 그에게 부당하다..란 말도 할수있을겁니다..하지만,나치에 적극협력..이 부분에 누구든 강력한 비난을 퍼부어도 카라얀은 감수할수밖에 없는일이라 생각합니다.(푸르트뱅클러등도 마찬가지..)그의 그부분이 잊혀지고 찬사만 남는것도 좀..

카라얀을 향한 비난들이 다 찌질평론가들이나 그의 음악을 이해하지못한 음악성결여된자들의 것만은 아닐겁니다.
전 그의 나치협력전력을 간단히나마 살펴본후..그부분과 관련하여..또 이후 연결되는 그의 입신양명에 관한 고착등을 비난하는게 무리한일만은 아니라고 생각하게되었습니다.

물론 그의 음악들에 관해선 좋아하는것, 싫어하는것 다 있습니다.그의 R슈트라우스나 브람스등..그의 연주가 어떤단서를 주어 이후 그의 스타일로 그를 능가하는 명연이 나온부분도 그의 공로를 고마워하기까지하니까요..
그러나 예술가인동시에 인간인 입장으로서의 비난은 피할수없는부분이 있는것같습니다.

08/04/06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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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

카라얀이 푸르크뱅글러 스트라우스처럼 나치협력자로 비난받아야 함은 당연한 일이고 그에 대해 죄값을 모두 어느 정도 치렀다고 봅니다. 단 카라얀은 2차대전의 잿더미에서 일어나는 사람들의 혼을 모아 전 세계인에 음악을 통한 교류의 선두에 서는 비전을 가지고 실천한 위인입니다. 상업적인 측면은 그가 그만큼 음악을 남기고 보급하려는 노력의 일부로 볼 수도 있습니다. 자기 재산을 많은 부분 장애자의 음악교육을 위해 사용했다고 합니다. 푸르트뱅글러식의 독재적 지휘법을 넘어 단원의 창조성을 불러일으키려던 진보와 실험의 지휘자이기도 했고, 종신지휘자의 지위가 있어도 단원들의 호응이 없을 때 환송식도 미련도 없이 떠났다고 합니다.
죽기전날까지 음악을 만들려고 노력하는 자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다고 말했고 이를 실천했습니다. 카라얀이 깊이가 없어서 싫다는 말을 많이 하지만 그가 상대적으로는 민주적이고 밝은 음악적 성품과 신앙을 가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의 시벨리우스 브루크너 스트라우스 브라암스에서 하나님과 자연을 숨쉬는 이런 특징들이 잘 나타나는 게 아닐지요

08/04/06 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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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

그의 전기영화를 티비로 보니까 억지로 쥐어짜는 깊이로 감동을 주려는 관행보다는 새들이 함께 날아오르는 자연스런 음악의 아름다움을 언급하는 부분이 있더군요. 지금 그의 시벨리우스 4번을 들으면서 공감이 가는 부분입니다.

08/04/06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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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

나치같은 반인륜적집단과 적극협력한 죄과는 갚아지는종류의 것이 아닙니다...이걸 알기때문에 독일인들이 그렇게 전쟁후에 애쓰며 사는거겠죠.

음악의 아름다움만 깨닫고 참혹한 역사를 느끼지못할수는 없는것 아니겠습니까.
카라얀의 음악은 음악대로 칭송받고..또 그의 행태는 행태대로 비난받는게 정상입니다.

08/04/07 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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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

좋은해석들을 하시지만, 그의 수많은녹음들은 그 많은양으로 인해 상당수의 졸작도 낳았고, 레코딩이라는 미디어에 빠른계산을 보인 그의 야심에의집착의 산물이다..라는 해석또한 공존합니다.(사실은 더 많을것입니다.)

출세를 위해 나치따위에 최대한 협력하고서 2차대전의 잿더미에서 일어나는 사람들의 혼을 모아 전 세계인에 음악을 통한 교류의 선두에 서는 비전을 가지고 실천했다는 표현을 쓸수있는것인지는 솔직히 의문입니다.

병주고 약줬다는 의미인지요.

나치에 관련된 이들의 죄과..뭐..경중은 있을것같습니다. 그야말로 독일땅내에서 어쩔수없었던사람도있었을것입니다.

하지만 카라얀은 그야말로 적극협조라는 딱지를 땔래야 땔수가 없겠더군요. 이게 정말 쉽게생각할수없는이유는 당시에 독일내에서도 히틀러에 반대하다가 처형되는 일반시민이나 그런초인적인 경지를 보인 지식인등이 많이있었기때문입니다.

'2차대전의 잿더미에서일어나는 사람들의 혼에 보탬이되는'찬사는 이런사람들에게 돌아가야합니다.
EMI나 데카가 오랜만에 카라얀붐과함께 상업적열기를 일으키는것..사실 그의 음악이 정말 훌륭했기때문에 이 모든현실을 부인할수없습니다...그건 인정할수밖에요..하지만 그것이상의 생각은 못하겠더군요.

뭐..그의 아다지오는 사실 아름다웠죠.

08/04/07 0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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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

엊그제 카라얀의 백번째 생일에는, 그가 지휘한 코지판투테(54년)를 들었습니다. 정말이지 고상하고 순수한 연주더군요. 60년대 베토벤 교향곡의 강한 비트에 브라스를 매길 때 같은 의기양양한 야심가의 느낌은 찾아 볼 수가 없었습니다.

물론 이 순수한 느낌을 아리안 순혈주의와 관련시킬 수도 있겠지만, 굳이 그러고 싶지는 않네요. 그저 그는 이토록 아름다운 연주를 들려 줄 만한 기품있는 심미안과 실행력은 갖추었으되, 역사의 격변이라는 시금석 앞에 자신을 증명할만큼, 혹은 자신의 과오를 냉정하게 인정할 수 있을 만큼 도덕적으로 강건한 인물은 아니었다는 정도로 생각하고 싶습니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분들 참 많죠.

08/04/07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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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

카라얀의 나치 적극 협력행위에 대한 비판은 당연합니다. 하지만 나중에 그의 상업주의나 독재적인 행동까지 그와 연관시켜서 미운털을 무조건 박아놓는 일은 반대하고 싶네요.

위에서도 언급된 베를린 필 상임자리를 놓고 첼리비다케와 벌어진 일화나 뵘과 카라얀의 관계에 대한 얘기처럼 사실과는 다르게 알려진 내용들이 많다는 것은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카라얀이 싫다고 무조건 다 부정적으로 보거나 사실마저 왜곡하면 결국 반론에 직면하게 되고 자칫하면 그의 나치 행적마저도 왜곡 아니냐는 주장까지 나올 수도 있으니까요.

'나치 협력'이라는 일반적인 사실 인지를 넘어서 좀 더 자세한 내용을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무조건 100주년을 기념하기 보다는 그의 행적에 대한 객관적인 칼럼이나 전기 등이 나왔으면 하는 바램이 그런 이유로 생기더군요.

역시 나치에 적극적으로 협력했는데도 '독일 문화의 수호'를 위해 어쩔 수 없이 남았다면서 거의 성인에 가까운 숭배를 받은 푸르트벵글러에 대한 최근까지의 일반적인 시선을 고려한다면 음악가들의 나치동조에 대해서 더 많은 것을 알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카라얀만 까니까 다른 음악가들도 까자는 의도는 절대 아닙니다. 다만 정확하게 알고 싶은 것 뿐입니다. ^^

08/04/07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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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카라얀의 '알프스교향곡'이 '맥도널드'수준이라면.. 빅 맥 하나에 5만원 받아도 모자랄 것 같군요.. ㅡ.ㅡ;;

08/04/07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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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푸르트뱅글러와 뵘 심지어 크나퍼츠부슈도 나치에 협력했는데 왜 카라얀만 걸고 넘어지느냐는 말이 아닙니다. 저는 카라얀의 나치 협력에 관한 비판과 토론을 그의 음악에 대한 논의와 분리해서 진행해야 한다고 봅니다. 이미 동시대 다른 지휘자들에 대해서는 대부분 그렇게 하고 있지 않습니까...
카라얀이 남긴 음악 유산에 대한 평가는 평론가나 애호가의 음악적 관점에 따라 다양하게 논의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태까지 그의 음악 유산을 객관적이고 냉정하게 다룬 글을 한국어로 쓰인 책에서 본 적이 거의 없습니다. 제가 위에 카라얀 음악 유산에 대한 참신한 토론을 하자고 글을 쓴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이번 달 객석에 실린 이모 평론가의 글은 별다른 고민없이 그동안 자신이 쓴 글을 짜깁기한 잡문이었습니다. 카라얀을 '맥도널드 지휘자'로 평가한 게 틀렸다는 말이 아닙니다. 그런 평가를 내리려면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를 음악적으로 풀어써야 하는데 이모 평론가는 늘 그렇듯이 현학적인 문체로 피상적인 글만 남겼습니다.
그라마폰이나 클래시컬 리뷰에서 다룬 카라얀 특집기사 수준은 바라지도 않습니다. 제발 짜깁기 글로 아는 체나 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고클래식에 글을 남기는 회원 중에서 소위 평론가를 자처하는 사람보다 훨씬 나은 분이 많기에 카라얀 음악 세계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를 듣고자 위 글을 쓴 것입니다.

08/04/07 2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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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s***:

음악을 통해 나치정권에 기여한 '은혜'로 따지면 카라얀은 감히 ㅍ모씨에 비교할 수 없을 텐데... 혼날려면 다 혼나야지 누구는 혼나고 누구는 어떻게든 포장미화되고,, 카씨 팬중에 나치행위 미화하는 사람 없다. 물론 빼도박도 못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하지만 푸씨는 본인은 물론 '일부' 그의 팬들은 입에 거품물고 미화한다. 카라얀이 전쟁끝나고 한것들도 나치굴레씌우면서 ㅍ씨가 진짜 나치당원들앞에서 히틀러만세 선동곡처럼 연주한 것은 자유를 향한 절규라고 하며 절대 명연이란다..쩝..

08/04/08 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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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

revelge님과 csh3619님의 글에 동의합니다. 카라얀은 괴링과 고향의 인연때문인지 가까왔지만 히틀러가 푸르트뱅글러를 더 선호해서 베를린에서 밀렸다고 합니다. 괴링이 히틀러보다는 덜 악한 것처럼 카라얀이 푸르트뱅글러보다는 덜 나쁘다는 논리처럼 들리지만 그보다는 나찌협력의 전력을 완전 부인할 수 있는 순교자들은 독일인 중에 0.1%도 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보통 독일서민들의 집에는 아직도 나찌군복입은 사진을 거실에 걸어 놓고 있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카라얀의 음악적 기여와 장점을 있는 그대로 인정할 수 있는 때가 되지 않았을까 합니다. 전쟁의 정당성과 배경에 대한 논의와 별도로 스트라우스의 단순한 가곡들을 그 자체로 단순히 너무 아름답다고 인정하는 것이 반유대주의일까요?

08/04/08 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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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

독일인 대부분이 나찌에 적극협력했지만 전후에 반성하고 화해의 노력을 다한 것도 인정해야 하지 않습니까? 일본하고는 수준이 다르다고 봅니다. 한강의 기적을 이루는 데에도 진짜 도운 건 독일인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독일인들이 아리안주의를 전후에 건설적으로 전환하기 위해 노력한 점도 인정하고 음악을 통해 평화의 메시지를 전한 것도 인정해야겠지요. 아직도 인종주의적인 측면이 많이 남아있지만요.

08/04/08 0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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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

예.그렇습니다.같은이유로 충분히 ㅍ씨에게도 역시 개자식이었군.그럽니다.결국 그의 행적에도 배반감을 느꼈죠.

하지만 ㅍ씨는 꽤 뚜렷한 몇가지의 행적을 남겼던것도 하나 짚어야겠습니다. 그는 카를얀체를을 돕기위해 애썼고, 그의 아들의 수용소에서의 죽음을 애도했었습니다. 유대인동료들을 안타까워했었죠.이점과 관련해선R슈트라우스나 베베른도 참작의 여지가 있겠군요.그들역시 유대인 음악가들을 숨겨주곤했죠.(유대인들 언급한다고 유대주의적으로 보는분없겠죠. 현재의 유대인들이 된통당하고 국가해체되었으면 좋겠다고까지 생각하는 인간입니다.)

한편으로 히틀러와 괴링이 푸르트를 더 높이샀던것도 사실입니다.그를 소유하고싶어했고..분명 푸르트는 이에 부응함으로서 관련기록을 읽던 극동변방의 한 하찮은 후세사람인 제게 개자식소리를 듣고야말았습니다.
그리고 뭔가 포인트가 이상해지는 말이있는데.당대의 항히틀러영웅은 과연 독일인의 0.01%도 안될것입니다.그러니 눈에띄는 카라얀같은 유명인이나 편히대하고, 그들을 카라얀보다 인간적으로 윗선으로 생각하는일이 부질없습니까?..0.1%도 안되니 더더욱 카라얀같은 인기인의 거품보다 그들을 발굴해야하는거잖아요?

08/04/08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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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

평화의 메시지씩이나 되는 의미를 부여하려면 오히려 이들 잊혀진 영웅들의 노력을 다시 찾고 그들에게 그런 자격을 부여해야할일이라 생각됩니다.

카라얀의 행적에선 위의 푸르트, 또 R슈트라우스, 베베른등에게 발견된 행적은 보이지않습니다..정말 그는 철저히 출세지향적이었더군요.아마도 그리스계였던 그의 가문의 경향을 따라 괄목할성과를 거두는것은 그에게 중요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푸르트에 비해 약간 폄하의 시선을 보이는 괴링에 대해 적극적인 노력을 했죠.

게다가 독일인들이 다들 후회하고 뉘우치는데 카라얀같은자의 나치협력전과는 씻어지지않는 치명적오류인거고요.그는 공식적으로 친나치전력에 사죄한적도없습니다.카라얀 뵘,푸르트등 다 마찬가지입니다.

이들에게 '개자식.음악하난 잘하네?..'이런시선을 보내는건 안될일인겁니까? 그러면 안되나요.? 카라얀팬 누구시든지 그러면 안될이유를 설득해주시면 적절한 생각을 다시 해보도록하겠습니다. 그의 음악을 인정하고 또 감동하기까지하지만, 그와 동시에 그는 출세지향적나치적극부역자였다..라는것도 결코잊지않습니다.그에게 이 이상의 의미부여가 오히려 이상합니다.
'

08/04/08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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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

저보다 상황을 더 잘 아시는 것 같아 정말 궁금해서 father님에게 질문합니다. 그들의 친나찌전력이 무엇인가요? 출세지향을 위해 불가피하게 나찌에 박수를 보내는 정도 아닌가요? 그러면 고상한 일은 아니라도 그렇게 적극가담자가 아니면 투옥되지 않은 것으로 보아 인륜범죄는 없던 것 아닐까요? 일반인보다 문화지도자로서 더 큰 책임을 느껴야 하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가 뛰어난 능력이 없으면 단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출세지향때문에 젊은 나이에 경쟁상대가 되었을 리는 없어보입니다. 푸르트, 또 R슈트라우스, 베베른 등이 친 유대 행적이 있었던 이유는 잘은 몰라도 그들이 친척중에 유대인 혈통이 있어서 아닌가요? 카라얀에 감동하는 건 거품이고 그러면 항히틀러영웅을 발굴하는 일에 방해가 된다는 주장은 과도하게 들립니다. 카라얀의 예술도 좋고 레지스탕스도 좋았다 정도로 말할 수 있을 듯합니다. 카라얀이 레지스탕스를 도왔다면 더 좋았겠지만 음악에 대한 열정때문에 어려웠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에게 60 몇년인가 베를린의 종신 지휘권을 준 것도 그의 정치적 기회주의때문이라는 식의 주장을 하실 듯해서 ... 그건 아니겠지요. 그의 실력과 열정이 전후 독일 국민의 가장 모범적인 평화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간판으로 사용되었다는 것이 그렇게 불편한 문제일까요? 저는 독일국민의 평화의 제스처와 문화적 유럽의 재건에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08/04/08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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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

카라얀의 음반으로 그를 평한다는건 장님이 코끼리 다리 만지는것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음반의 빙산의 일각이지요
(간접경험..)

08/09/04 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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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r***:

카라얀의 음악은 음악으로만 평가해야된다고 생각합니다.
모두들 복받은거 아닙니까? 그분께서 이렇게 방대한 음원 및 영상물을
남기지 않으셨다면 도대체 이 보석같은 작품들을 후세인들은 듣지도 보지도 못하고 그냥 가야 된단 말입니까?
많은 부를 축적하였다 해도 그 일부분만이라도 음악발전에 토양이 되었다면 그 뿐인것 같습니다. 오직 감사드릴 따름이죠.
그 뿐입니까? 그분께서 키워주신 에프키니 키씬, 안네 소피무터, 조수미 등은요?

08/12/13 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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