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펌) 바비롤리, 말러 그리고 베를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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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바비롤리의 말러 음악과의 첫 조우는 1930년 4월, 4번 교향곡의 리허설에 참석했을 때였다. 지휘자는 말러의 친구인 오스카 프리드(Oskar Fried; 1871-1941)였다. 말러의 여느 교향곡들 중에서 첫 번째가 되는  프리드의 1924년 <부활> 교향곡 녹음은 그에게 말러의 음악에 대한 주목할 만한 해석이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바비롤리는 감동받지 못했으며, 친구에게 “내용은 부실하기 짝이 없고 오케스트라 사운드의 관점에서 베를리오즈와 바그너의 작품들이 훨씬 더 설득력을 지니고 있다” 고 썼다.


정확히 9개월 후, 바비롤리는 로얄 필하모닉 콘서트에서 엘레나 게르하르트(Elena Gerhardt; 1883-1961)를 위하여 <죽은 아이를 그리는 노래>를 지휘했을 때에 처음으로 말러의 음악과 직접적으로 조우하였다. 1930년대에 영국에서 말러의 음악이 연주되는 것은 아직 드물었다. 그것은 통례적으로 해밀톤 하티, 헨리 우드, 아드리안 볼트 같은 자국의 음악가들에 의해 이따금 거의 의무적이며 크게 진가를 인정받지 못하는 연주들과 더불어 모험을 하는 외국 음악가들 몫이었다. 말러가 거주하고 일했던 빈에서, 또한 빌렘 멩겔베르크가 강력한 옹호자였던 암스테르담 그리고 뉴욕 정도에서만 말러 음악의 열기가 어느 정도 지속되고 있었다. 게다가 나치가 정권을 장악하였을 때 유럽은 정체되어 있었고, 말러의 음악은 먼저 독일에서 그리고 이어서 2차 대전 중에  오스트리아와 다른 점령국에서 금지되었다.


1930년대 후반에 바비롤리는 5번 교향곡 중 <아다지에토>의 2차례 연주를 지휘했지만, 그것은 모두 그가 할레 오케스트라의 음악감독이 되고나서 2년 후였고, 그 다음에 그는 그 오케스트라의 1945/46시즌 동안 맨체스터에서 <대지의 노래>를 했다. 1952년 당시에 맨체스터 가디언의 음악 비평가이자 말러 음악의 옹호자인 네빌 카더스(Neville Cardus; 1889-1975)는 어느 논설에서 1930년에 할레 오케스트라와의 9번 교향곡에 대한 하티의 연주를 회고하였다. "그것은 존 바비롤리 경이 지휘하기 딱 좋은 작품이다. 왜 그는 근래 수년 간 올리지 않고 있는가?“.

사적인 대화에서 카더스는 바비롤리에게 말러의 교향곡들은 그를 위해 작곡되었으며, 할레 오케스트라는 말러의 작품에 맞는 사운드를 내는 영국 유일의 악단임을 말하며 자신의 주장을 펼쳤다. 나중에 바비롤리는 자신이 말러의 음악을 연구하고 매혹되었으며 처음으로 접한 것이 9번 교향곡이었던 것은 카더스의 영향 때문이었음을 고백했다. 그는 1943년 미국에서 영국으로 귀국한 이래 영국의 당대 음악 못지않게 공들여 연구하고 연주하였고, 이제 아직 비교적 알려지지 않은 위대한 음악에 관심을 가져야 함을 느꼈다.


여느 새로운 작품과 더불어 늘 그랬듯이, 그는 음악이 “자기의 것”이 될 때까지 오랜 시간 이상 악보를 연구했다. 그는 말러의 교향곡들은 분위기의 연속적인 변화와 모든 것을 대단원으로 결합시키기 위한 필요성 때문에 받아들이기 어려움을 깨달았다. 50여 시간의 리허설 후, 1954년 2월에 그는 브래드포드, 이어서 맨체스터 그리고 다른 곳에서 9번 교향곡의 첫 연주를 했다. 이듬해 그는 1번 교향곡으로 관심을 돌렸고, 여전히 그 작곡가에 무관심하고 때로는 냉담한 반응이 있었던 분위기 속에서 이내 그는 말러의 음악에 대한 영국의 유력한 옹호자가 되었다. 어려움에 굴하지 않고 바비롤리는 꾸준히 자신의 레퍼토리에 말러의 다른 작품들을 더했고, 드디어 그는 8번을 제외한 모든 교향곡들을 지휘하였다. 1966년 4월에 그는 맨체스터와 런던에서 네빌 카더스의 언론 집필 50년을 축하하기 위한 연주회를 지휘하였다. 프로그램에는 말러의 5번 교향곡이 포함되었다.


이때에는 아마도 베를린보다 맨체스터에서 말러 연주가 더 많았다. 1920년대와 1930년대 초에 빌헬름 푸르트뱅글러가 베를린 필하모닉을 지휘하여 1, 3, 4번 교향곡을 연주했지만, 2차 대전 후에 그는 말러의 모든 작품을 사실상 무시했다. 베를린 필의 수장으로서 그의 후계자인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은 비록 1960년 이후 <대지의 노래>의 몇몇 연주를 지휘했었지만, 그의 경력 꽤 늦게까지 역시 말러에 무관심했다.


바비롤리의 베를린 필하모닉과의 첫 인연은 1949년이었는데(앞서 2월에 베를린으로부터 객원 지휘자로 초청되어 있었지만 질병으로 인해 그 계약은 취소됨),  그해의 에든버러 페스티벌의 일부로서 3개의 콘서트에서 베를린 필을 지휘했을 때였다. 지휘자와 단원들 간의 친밀한 관계는 강렬하고 즉각적이었다. 8개월 후인 1950년 4월, 바비롤리는 베를린으로 여행하였고 로시니, 델리어스, 루셀 그리고 브람스의 4번 교향곡 등의 다양한 프로그램을 지휘하였다. 당시에 베를린 필은 나치 시대 동안 제한된 규정 이후 루마니아 출신 지휘자 세르지우 첼리비다케가 오케스트라의 레퍼토리를 확장하려 했던 방침 이래로 생소한 작품들을 올리는 데 익숙해져 있었다.


베를린 필하모닉은 바비롤리의 복귀를 원했지만, 질병 등 여러 가지 이유로 1961년 1월까지 성사되지 못했다. 그로 인해서 베를린 필은 한 차례 더, 더 전통적인 독일 지휘자에게 맡겨졌다. 첼리비다케는 1952년에 떠나 버렸고, 푸르트뱅글러는 1954년에 타계한 뒤였고 그래서 앙상블은 1955년 이래로 베를린 필의 감독인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에 의해 재구성되었다. 그들의 총괄 관리자는 볼프강 슈트레제만이었는데, 그는 뛰어난 관리자이며 탁월한 외교관일 뿐만 아니라 훌륭한 음악가이기도 하였다. 그는 바비롤리의 미국 시절에 뉴욕 필하모닉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수장(1937-43)으로서 미국에 있었고 그의 고집이 바비롤리의 복귀를 주도하였다. 바비롤리에게 초청장을 보낸 이는 카라얀이 아니라 바로 볼프강 슈트레제만이었다.


1961년 바비롤리의 첫 연주회에서 그는 시벨리우스 7번 교향곡,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3번(빌헬름 박하우스 피아노)  그리고 브람스 2번 교향곡을 지휘하였다. 바비롤리의 미숙한 독일어 구사에도 불구하고, 존과 오케스트라는 또 한 번의 즉각적인 이해를 이루었고, 몇몇 단원들은 슈트레제만에게 그 영국인 지휘자를 다시 초대할 것을 요청하였다. 이후 십여 년 간 바비롤리는 정규적으로 베를린 필을 방문하였고, 그는 오케스트라, 청중 그리고 비평가들에게 평판이 좋았다. 그의 따스하고 교감적인, 다감한 스타일의 지휘는 카라얀의 노련하지만 통제된, 음악 만들기와 동떨어진 접근과는 확실하게 강한 대비를 이루었다.


1963년 1월, 바비롤리는 베를린에서 자신의 첫 말러 교향곡인 9번을 지휘하였는데, 그것은 1954년 2월에 할레 오케스트라와의 지휘 이래 처음이었다. 말러의 음악은 베를린에서는 자주 연주되지 않았고 선호되지 않았다. 그러나 바비롤리는 그들을 설득했고 비평가들 중에 한 사람도 ‘푸르트뱅글러 이후로 우리는 이렇게 인간적인 따스함과 영혼이 결합된 훌륭한 예술혼을 듣지 못했다’ 고 썼다. 갈채는 20여 분 간 계속됐고, 오케스트라와 청중 모두에게 상당한 인상을 주었던 바비롤리의 연주는 대단한 성공이었다.


그렇게 해서 베를린 필하모닉은 그에게 그들과 그 작품을 녹음하여 줄 것을 요청하였다. 녹음은 1964년 1월, 베를린의 달렘 근교에 있는 예수 그리스도 교회에서 이루어졌다. 그것은 베를린 필로서는 말러 교향곡의  첫 녹음이었고, 1937년 비첨의 모차르트 오페라 <마술피리> HMV 녹음 이래 첫 영국인 지휘자의 첫 세션이었다.

“마지막 악장인 아다지오가 오전 세션으로 잡혔군요. 이런 종류의 음악을 오전에 연주하기를 바랄 수는 없습니다. 이 작업은 올바른 분위기인 저녁에 이루어져야 합니다.”

녹음 일정을 본 바비롤리는 프로듀서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래서 아다지오 악장은 저녁에 녹음이 이루어졌다.


바비롤리는 1957년 6월 이미 할레 오케스트라와 1번 교향곡을 녹음(PYE)하였고, 클렘페러 지휘반이 이미 컬럼비아 레이블로 발매되었기 때문에 EMI 내부에서는 취소된 제안인 2번 교향곡은 이제 베를린에서 녹음하여야 함이 논의되었다. 그 뒤로 7번 교향곡의 베를린 녹음이 1965년에 제안되었지만, 이것 역시 실현되지 못했다. 바비롤리는  1967년 8월의 6번과 1969년 7월의 5번으로 말러 교향곡의 공식 녹음을 2개 더 했지만, 모두 뉴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와의 것이었다. 카라얀은 1960년 EMI를 떠났고, 만약 바비롤리가 베를린 필과 더 많이 녹음했다면 카라얀의 복귀를 유혹하는 음반사에 의한 시도는 아마도 도움이 되지 않았을 것으로 느껴진다. 다행히도 바비롤리가 지휘한 말러의 모든 교향곡 실황 녹음은 존재하며, 이들에는 2번, 3번, 6번의 베를린 필과의 연주가 포함된다.


말러의 교향곡은 마침내 1965년 베를린 필하모닉과의 2번 연주가 예정되었고 그것은 6월 초에 바비롤리가 3차례 연주하였다. 그는 1966년 1월 13, 14일에 모차르트 34번 교향곡과 더불어 말러의 6번 교향곡을, 1969년 3월 8, 9일에 3번 교향곡을 지휘하였다. 1970-71 시즌에는 7번이 예정돼 있었다. 그러나 1970년 바비롤리가 타계함으로서 바비롤리에 대한 추모로서 다니엘 바렌보임이 1970년 7월에 브루크너의 7번 교향곡을 지휘하였다.

슈트레제만은 바비롤리를 ‘그의 시대에 탁월한 말러 지휘자’ 로 명명하며 프로그램에 ‘바비롤리 경은 늘 깊이가 있었으며, 포괄적인 인간미가 있는 그의 예술혼은 그를 만나러 온 이들과 더불어 모든 사람들에게 거의 모든 것을 압도하는 방법으로 어떻게든 전달되었다’ 고 썼다.
 

그는 베를린을 방문하여 다양한 작곡가들의 작품들을 지휘하였고, 이들 중 몇몇은 베를린 필 초연이었다. 그러나 그의 말러 음악에 대한 옹호는 커다란 영향을 끼쳤고, 그것으로 그는 베를린에서 주목받았다. 바비롤리 서거 2년 후인 1972년의 말러 5번 연주까지 카라얀이 말러 교향곡을 지휘하지 않았음은 의미심장한 것 같다.


작성 '09/06/25 2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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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

감동적인 글이었습니다^^ 지금은 바비롤리의 말러연주가 그 명성에 비해 조금 퇴색한 면이 있는 것 같지만(뛰어난 명지휘자가 많은 관계로) 말러하면 바비롤리를 빼놓을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이 글을 읽고 나니 바비롤리가 지휘한 말러 9번을 다시 듣고 싶어지네요^^

09/06/26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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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

뒤늦게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09/06/30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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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

바비롤리는 클렘페러와 함께 제가 가장 존경하는 지휘자입니다. 그의 여유있고 따스한 유려함은 오늘날 느낄 수 없는 편안함을 줍니다. 폰 윌리암스의 'Greensleeves' 할레와 한 연주는 최고 중의 최고입니다. 브람스도 좋고, 말러야 말할 것 없지요. 그의 말러를 한 반 정도 가지고 있는데, 기회가 닿는 대로 다 모으려 합니다.

09/07/18 0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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