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펌) 유진 오먼디가 회상하는 라흐마니노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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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진 오먼디가 회상하는 라흐마니노프


이하는 1973년 5월, 라흐마니노프 탄생 100주년에 즈음한 라디오 인터뷰로부터 발췌한 것임.


라흐마니노프는 거대한 체격을 가진 사람이었다. 처음으로 만나서 말을 걸었을 때, 나는 그가 무섭게 느껴졌다. 그런 정도로 박력이 있었다. 그가 나를 응시하면, 그는 내가 그즈음 알고 있던 대부분의 누구보다도 등이 높았기에, 겉보기보다 훨씬 다정한 사람이구나 하고 알아차리기까지는 상당히 시간이 걸렸던 것이다. 실제로 그는 오해받기 쉬운 사람이었다. 여러 가지 일에 부딪치고 나서야 비로소 그는 다른 사람보다 진정한 친구라는 생각이 들 수 있는 부류의 사람인 것이다.


그를 처음으로 만났을 때, 나는 아직 신참 지휘자로 미니애폴리스에서 일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내가 처음으로 협연하는 솔리스트 중의 한사람이 라흐마니노프, 전설에 둘러싸인 바로 그 라흐마니노프였던 것이다. 그가 연주했던 것은 비교적 새로운 자작곡인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광시곡>으로, 나는 당시 이 작품을 본 적도 들은 적도 없었다. 미니애폴리스에 있던 나는 그에게 편지를 써서, 나와 만나서 템포라든가 해석 등에 대해서 상담을 받았으면 한다고 했다. 그는 관대하게도 승낙해 주어서, 내가 뉴욕의 웨스트 엔드 애버뉴에 있는 그의 아파트에 도착하자 이렇게 말했다. “그런데, 주제는 알고 있겠지?” 나는 “예, 라흐마니노프 선생님. 주제는 몇 번이고 연주한 적이 있습니다. 제가 바이올린을 공부했기 때문에요. 그래도, 이 곡은 그 주제를 변주한 것이 아니겠지요?” 했더니 그가 말했다. “이 주제는 단순해서, 누구라도 알고 있는, 쉬운 것이지. 미니애폴리스에서 그것을 연주해 보자.” 회견은 그것으로 끝이 났다.


나는 죽도록 걱정되어서, 미니애폴리스로 돌아와서 이 곡을 필사적으로 공부했다. 자세한 부분이 하나하나 설명되어 있었다. 마치 브람스의 교향곡을 복습하고 있는 것인가 하는 듯이. 그 중에서도 어느 변주는 - 16변주였는지, 17변주였는지는 생각나지 않지만 - 그가 혼자서 연주하도록 되어 있었다. 그것은 빠른 변주가 아니었기 때문에, 나는 오케스트라에게 변주곡 중에 2곡은 지휘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들이 들어오는 4마디 앞에 지휘를 시작하기 때문에 주의하라고 말했다. 우리들은 이 곡을 연습하여 리허설을 하였고, 그렇게 해서 라흐마니노프가 미니애폴리스에 왔을 때의 리허설에서, 한 번도 멈추지 않고 전체를 쭉 연주했다.


그가 왜 그렇게 했는지, 왜 아무것도 고치지 않았는지, 나로서는 알 수 없었지만, 어떤 의미에서 나는 기쁘게 생각했다. 그가 조금이라도 마음에 들어 했던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오늘 밤 또 만나자”라고 말하고 그는 갔다. 리허설 현장에서 떠나려고 하는데 스테이지 매니저가 나에게 “오먼디 선생님, 그는 당신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라고 말한다. “어떻게 해서 알았습니까?” 라고 물으니, “그가 저에게 이제까지 한 번도 멈추지 않고 이 곡을 연주한 적은 없었다고 말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적지 않게나마 저는 오늘 리허설에 대해서 어느 정도인가 좋은 비평을 받은 셈이군요.” 내가 말했다. 하여간 2시간의 리허설 동안 그는 나에게 한마디도 말을 걸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게 해서 본 연주에 들어갔다. 연주 중 어느 변주에 이르렀을 때, 내가 생각하기에 그는 거의 뜻밖에 자신이 연주할 곳을 잊어버리고 그 주변을 이리저리 다른 조로 연주하기 시작했다. 만약 그가 같은 조에 머물고 있었다면, 나는 아마 겨우겨우 그를 따라서 갈 수는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는 거의 완전히 다른 조로 연주하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이 순간 내가 절대음감을 갖고 있지 않다면 좋을 것을 하고 바랐다. 오랜 시간이, 몇 마디의 시간이 지났지만, 나는 아직 들어가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두려움에 일그러진 얼굴로 그를 보았지만, 그는 연주를 계속하면서 나를 보고 말했다. “계속하게” 라고. 그래서 나는 내가 오케스트라에 약속한 4마디를 잊었다. 그러나 나는 간신히 올바른 부분에 들어갈 수 있어서, 우리들은 연주를 계속했다. 전체로는 원조로 나가서, 물론 끝까지는 잘 갔다. 다만 나 자신은 그때 내가 라디오 방송 일을 떠난 것은 큰 실수였음을 확신하고 있었다. 그곳에서는 상당한 호평을 받고 있었기 때문에 그곳에 머무를 만 했던 것이다, 심포니 오케스트라 같은 것은 나의 영역이 아니다 라고.


그가 연주를 마쳤을 때 나는 숨이 끊어질 지경이었다. 나는 땀을 흠뻑 흘려서, 페이지를 넘길 때의 땀 때문에 스코어 전 페이지가 젖어 있었음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그가 무엇을 하려는지 나는 알 수 없었다. 그는 일어나서, 스트라빈스키가 말한 대로 6피트 반이나 되는 큰 몸으로 이쪽으로 다가와서, 나의 손을 잡고 말했다. “미안했네... 나중에 설명하지” 나는 이 말을 평생 잊지 않을 것이다. 물론 실수가 나 때문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은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라도 그 일은 알고 있었음이 틀림없다고 지금은 생각한다. 그렇지만 그즈음의 나는 아직 미경험이었기 때문에 그에게는 그것을 모르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으로 걱정하고 있었다. 그 후 그는 나를 자신의 대기실로 데리고 갔다. 박수를 받고 있을 때 언제나 그는 나를 데리고 가는데, 6피트 반의 그와 나란히 선 5피트 반의 나는 마치 어린애처럼 보였던 것이다. 그는 친절하게도 나를 방에 불러들이고 이렇게 말했다. “문을 닫아 주게, 자 설명하자”


그 내용은 이러했다. “자네도 알고 있는 대로, 나는 지금 막 런던에서 이쪽으로 왔어.” 그가 막 도착한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런던에서 나는 친구인 벤노 모이세이비치가 이 곡을 연주하는 것을 들었지. 나는 들을 생각이 없었지만, 그가 억지로 권유해서 가지 않을 수가 없었지. 어느 변주까지 나아갔을 때, 그는 자기가 연주하고 있는 부분을 놓쳤어. 그래서 오늘밤, 그 변주에 다가가면서 나는 어떻게든 잊어버리지 않도록 신에게 빌었지. 그랬는데 그 순간 정말로 잊어버리고 말았던 것이네.”


라흐마니노프는 무대에 나올 때, 그리고 무대에서 들어갈 때, 대단히 느린 걸음걸이로 유명했다. 그는 사람들이 기대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하고 있는 것이라고 알려진 것이다. 그러나 무대에서 나가는 문에 다다르기가 무섭게 그는 소년처럼 달려 나가서 당시에 8살이었던, 그가 가장 사랑하는 손녀가 있는 곳으로 가서 손녀에게 키스하고는 또 자신의 딸과 아내의 손에 키스했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고 그는 무대로 되돌아가서, 무대로 통하는 문까지 오면 다시 천천히, 천천히 걸었다. 이것은 그의 트레이드마크가 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 자신은 이것을 모르고 있었다. 알고 하였다는 것이 아닌 것이다. 그는 그런 식으로 진지한, 멋진 사람이었다. 그 자신은 자기의 그런 습관을 주시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를 사랑하고 그를 잘 알고 그의 행동을 늘 보고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고 있는 사람들은 물론 그 습관을 주시했던 것이다.


그는 다른 사람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말하는 것은 결코 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때때로 함께 일한 지휘자 이사람저사람에 대해서, 어떤 사람에게는 그다지 공감할 수 없다고 말하는 일은 있었지만, 그것은 그 지휘자가 라흐마니노프의 독주를 그다지 훌륭하게 반주할 수 없었다고 말하는 것이리라. 그는 어느 쪽인가 하면 분방하게 연주하는 사람으로, 그 연주는 아름답고 멋졌지만, 그저 지휘자는 항상 그에게 주목하고 있어야 했다. 그것은 어느 독주자의 경우에도 필요한 것이긴 하지만.


그가 1번 교향곡을 완성하였을 때, 스승이었던 림스키-코르사코프에게 호되게 혹평당하여 정신적인 위기를 맞았던 것은 잘 알려져 있지만, 그가 파기한 것으로 되어 있던 그 교향곡의 수기보 일부가 남아 있었다. 어디에 어떻게 해서 남아 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라흐마니노프의 사후 그 악보가 내가 있는 곳으로 보내져 왔다. 나는 라흐마니노프의 딸인 볼콘스키 공작부인으로부터 이 작품에 손을 대도 좋다는 허락을 받았다. 왜냐 하면 그는 2번 이후의 교향곡의 오케스트레이션에는 만족하고 있었지만, 1번 교향곡의 오케스트레이션을 스스로 결코 고치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말했다. “만약 당신이 아버지의 정신이 되어서 손을 대 주신다면, 필시 훌륭한 교향곡이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우리들은 이것을 연주하고 녹음했다. 오늘날에도 종종 연주되고는 있지만, 2번이나 3번만큼 빈번하지는 않다. 그것으로도 이 작품이 드러나기 시작했다는 것은 틀림없는 일이고, 나는 그것에 기쁨과 감사를 느끼고 있다.


4곡인 피아노 협주곡에 대해서는 어쩌면 2번과 3번은 이제부터라도 오랜 시간 스탠더드 레퍼토리로서 남을 것이다. 그러나 당시 그와 이야기를 하고, 또 1번과 4번(짧은 쪽의 2곡)을 그와 처음으로 녹음한 지휘자로서 말하자면, 라흐마니노프는 이 2곡을 2, 3번보다 잘 되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는 변덕스러운 인물이었지만, 무대 위에서 그것을 보이는 일은 없었다. 그가 특히 울적해져 있던 것은 우리들과 녹음을 하여야 했던 때라고 생각한다. 그는 경고 부저 소리를 싫어하였고, 또 시작 신호인 적색 램프도 싫어했다. 그것을 싫어한 나머지, 그는 어느 날 이런 사건을 일으켰다. 나는 그것이 어느 협주곡이었는지는 잊어버렸지만, 이 우발적인 사건은 잊을 수가 없다. 우리들이 도입부를 연주하기 시작하고 있고, 그가 첫 화음을 연주하려던 때의 일로, 그는 그 커다란 손으로 멋진 도약을 하는데 갑자기 피아노를 쾅 하고 두드리고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연주할 수 없어! 보라고, 나는 이렇게 빳빳해져 있어. 빨간불이 나를 위협하고 있어.” 그래서 우리들은 적색 램프를 피아노에 가려진 바이올린의 뒤 언저리로 숨기도록 했다. 부저는 어쩔 수 없었다. 부저 대신 적색 램프를 길게 켜서 경고를 표시하고, 적색 램프를 짧게 켜는 것이 시작 신호가 되었다. 이것으로 간신히, 준비가 됐다는 뜻으로 나는 그에게 돌아서서 조용히 물었다. “시작해도 좋겠습니까?” 그는 “OK" 라고 말했다. 그렇게 해서 나는 지휘를 시작했다. 도입부부터 그의 연주는 훌륭했다. 그는 역사에 남을 명 피아니스트의 한 사람이었다.


1939년에 우리들은 라흐마니노프의 미국 데뷔 30주년을 축하하여 그의 작품 연속 연주회를 필라델피아와 뉴욕에서 열었다. 물론 라흐마니노프가 협주곡의 협연자였지만, 3번 교향곡의 지휘까지도 했다는 것이다. 처음에 그는 지휘하는 아이디어에 달갑지 않은 듯했지만, 승낙할 마음의 준비는 되어 있었던 것 같다. 결국 그는 동의해 주었고 그래서 멋지게 지휘했다. 그는 위대한 지휘자이기도 했다.


그는 딱 한차례, 나의 요청에 응하여 자작곡 외의 곡을 우리들과 연주한 적이 있다. “베토벤의 협주곡은 연주하지 않습니까?” 하고 나는 그에게 물었다. 그는 “나는 4번(1번이었다는 설도 있음)밖에 연주하지 않아. 게다가 카덴차는 치지 않고.” 라고 말했다. 그래서 “우리와 같이 연주해 주실 수 있습니까?” 하고 물으니, “그런 방법으로 좋다면 하지.” 라고 그는 말했다. 연주는 훌륭했다. 그리고 그 협주곡에는 카덴차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는 왠지 그의 연주에 불만을 느끼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훌륭한 연주였다.


라흐마니노프는 1940년에 <교향적 무곡>을 작곡하여 우리들의 오케스트라와 나에게 헌정했다. 그는 나에게, 롱아일랜드의 사우스햄턴에 오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그곳에는 그의 여름 별장이 있다는 것이다. 나는 그곳을 방문했다. 새벽 5시에 일어나야 했던 것을 기억하고 있다. 그즈음 나는 글래드윈에 살고 있어서, 뉴욕 행 7시 열차를 타고 사우스햄턴 행 열차로 갈아타야 했다. 아침밥은 새벽 5시에 먹었다. 목적지에 도착한 것은 거의 1시가 다 되어서였고, 당연히 나는 아무 것도 먹지 못했지만, 곧 점심시간이 되겠구나 생각하고 있었다. 그의 서재에 데려다 달라고 하고 갔더니 그는 피아노를 마주하고 새로 쓴 작품의 악보를 펼쳐놓고 있었다. 러시아 인 하녀가 “오먼디 선생님이 오셨습니다.” 라고 알리니, “이쪽으로, 오먼디 군. 앉게.” 라고 말한다.


나는 무척 배가 고팠지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내가 앉으니 그가 말했다. “이 보잉을 봐 주게. 이것으로 좋을까? 나는 피아니스트여서, 보잉에는 정통하지 않아서.” “예, 보여 주십시오 라흐마니노프 선생님.” 라고 말하고 보잉을 확인하고 “훌륭합니다. 눌랐습니다. 하지만, 오케스트라에 있는 주자 모두에게는 이렇게는 안 될지도 모릅니다. 전원이 이런 운궁법과 운지법에 따를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보통의 주자에게는 좀 어려울 것 같습니다. 여기는 이렇게 바꿔 보면 어떨까요?” 라고 말했다. “나는... 이것으로 좋다고 생각하는데” 라고 그가 말했다. 나는 찬성 뿐 아니라 “훌륭한 작품입니다, 라흐마니노프 선생님, 참으로 보통 이상으로 좋을 정도입니다. 선생님이 쓰신 것입니까?” 라고 물으니, 그는 선뜻 “아니, 프리츠야.” 라고 말했다. 잘 알다시피 프리츠는 프리츠 크라이슬러이다.


라흐마니노프는 다른 어느 오케스트라보다도 더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를 사랑했다. 내가 이곳에 오기 이전부터, 그와 스토코프스키는 친한 친구여서, 실제로 곧잘 함께 연주했다. 두 사람이 음악에 대해서 거의 같은 감수성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나도 이곳을 물려받았을 때, 그 방법을 계승하였다. 그래서 그는 이 오케스트라에 대해서 우정과 경애의 마음을, 죽을 때까지 계속 가져 주었다. 그 전통은 지금도 이곳에 살아 있다고 생각한다.

작성 '09/06/30 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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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

오먼디가 지휘하는 라흐마니노프의 교향곡2번을 참 좋아합니다.
평소에 매우 진심어린 연주라고 생각했었는데 그게 다 이유가 있었군요^^

09/06/30 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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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

정말 인간적이다.ㅜㅜ

11/07/08 0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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