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펌) 카를로 마리아 줄리니와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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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를로 마리아 줄리니와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카를로 마리아 줄리니(1914-2005)와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간의 유대 관계는 매우 각별했다. 큰 키에 기품 있는 이 지휘자는 25년 동안 베를린을 방문하였고 그 오케스트라를 91차례 지휘하였다. 그는 1967년 10월 10일에 케루비니의 <레퀴엠>과 베르디의 <4편의 성가>로 구성된 프로그램으로 데뷔하였다. 필하모닉과 그의 마지막 콘서트 또한 종교 작품으로 이루어졌다. 1992년 9월 14일 우리는 줄리니의 18번 중에 하나인 베르디의 <레퀴엠>으로 베를린에서 마지막으로 그를 체험하였다.


바로크를 거쳐 고전과 낭만주의로부터 20세기까지 이어지는 줄리니의 레퍼토리는 실로 다양하였다. 그 오케스트라와의 레퍼토리는 67 작품이나 되었는데, 그중에 몇몇 작품은 수 년 간격으로 여러 차례 연주하였다.  바흐의 <B단조 미사>, 케루비니와 모차르트의 <레퀴엠>, 베토벤의 <C단조 미사>와 <장엄 미사>, 슈베르트의 <E플랫장조 미사>, 로시니의 <스타바트 마테르>, 브람스의 <독일 레퀴엠>, 베르디의 <4편의 성가>와 <레퀴엠>(3회)에서 가브리엘 포레의 <레퀴엠>에 이르기까지, 종교 음악이 주요 포인트였다.


그의 교향곡 레퍼토리에는 모차르트(39, 40, 41), 하이든(94, 99), 베토벤(6, 7, 9), 슈베르트(4, 6, 7, 8), 슈만(3번만), 브람스(2, 3, 4), 드보르작(7, 8), 프랑크(D단조)의 작품이 포함된다. 브루크너와 말러 교향곡들에 대한 줄리니의 해석은 깊은 인상을 주었다. 그는 브루크너의 드물게 연주되는 2번과 대중적인 7, 8, 9번 그리고 말러의 첫 번째와 마지막 교향곡을 지휘하였다. 드뷔시의 <바다>, 라벨의 <어미거위>와 왼손을 위한 피아노 협주곡 등, 줄리니는 또한 프랑스 음악도 잘 맞았다. 그는 스트라빈스키의 <불새>, 무소륵스키의 <전람회의 그림>과 <호반시치나 전주곡>을 지휘하였다.


20세기 음악으로는 이탈리아 작곡가인 조반니 살비우치(1907-1937)의 1934년 작 <서주, 파사칼리아와 피날레> 그리고 고프레도 페트라시의 <관현악을 위한 협주곡> 중에 하나는 물론이고 안톤 베베른의 <관현악을 위한 6개의 작품>과 고트프리트 아이넴의 <후손에게An die Nachgeborenen>로 대표되었다. UN의 30주년을 위해 위촉된 이 칸타타는 줄리아 하마리, 디트리히 피셔-디스카우, 템플 유니버시티 합창단과 빈 심포니 오케스트라에 의해서 1975년 10월 24일 뉴욕에서 초연되었다.


비록 줄리니는 친절한 반주자였지만, 그는 베를린에서 비교적 소수의 협주곡을 지휘하였다.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 17번 G장조 K 453(마우리치오 폴리니)과 23번 A장조 K 488(머레이 페라이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솔로이스트들과의 관악기를 위한 협주 교향곡 K 287a,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4번(폴리니)과 5번 <황제>(알렉시스 바이젠베르크), 드물게 연주되는 슈만의 바이올린 협주곡(기돈 크레머), 살바토레 아카르도와의 멘델스존 바이올린 협주곡 E단조, 아라우와의 브람스 피아노 협주곡 2번, 정경화와의 차이콥스키 바이올린 협주곡, 오트마 보르뷔츠키와의 드보르작 첼로 협주곡 그리고 미첼 블록과의 라벨 왼손을 위한 피아노 협주곡 등, 그러면서도 그의 레퍼토리는 인상적이었다.


1967년 페스티발에서 독창자들과 성 헤드비히 성당 합창단과 함께 케루비니의 레퀴엠과 베르디의 <4편의 성가>를 지휘한 줄리니의 베를린 데뷔 후, 일간지 '디 벨트Die Welt'는 "그는 예외적일 정도로 기품과 감성, 생명력을 겸비한 음악가이다. 그는 <4편의 성가>에 대한 토스카니니 식 해석인 박력 그리고 그에 따른 권위가 부족하지만, 베르디의 포르티시모 분출이라는 폭발력으로 진가를 충분히 발휘한다. 그러나 더 강력한 효과는 조용한 패시지에서 이루어지는데, 여기서 줄리니는 감정적인 기색 없이, 모든 신비와 감정인 베르디의 피아니시모라는 이상하리만큼 부유하는 고요에 생명을 불어 넣는다." 라고 썼다. '아벤트Abend' 의 비평가는 "줄리니의 매력적인, 그러나 굳건하고 고무적인 리더십은 그가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의 훌륭한 접촉을 즉각적으로 취하였음을 보여 준다" 고 말했다.


카를로 마리아 줄리니는 1914년 남부 이탈리아의 바를레타에서 태어났다. 그는 처음에 볼차노 음악원에서 바이올린을, 이어서 로마 산타 체칠리아 아카데미에서 알프레도 카셀라와 베르나르디노 몰리나리에게 비올라와 작곡을 사사했다. 그는 1946년 로마 RAI 방송에서 지휘로 데뷔하였고 1950년 밀라노 RAI 교향악단을 맡았다. 1951년에 그는 베르가모 페스티발에서 <라 트라비아타>로 처음으로 오페라 극장에서 지휘했다. 이어서 베니스의 페니체 극장에서의 베르디 초기 오페라인 <아틸라> 공연 후, 줄리니는 국제 경력의 출발점인 밀라노의 라 스칼라, 그리고 액상 프로방스 페스티발, 에든버러, 슈투트가르트와 계약했다. 1960년 그는 이스라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광범위한 연주 여행에 착수했으며,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에서 데뷔하였다. 1960년대부터 계속 그는 사실상 미국의 메이저 오케스트라들과 코벤트가든도 지휘하였다.


비록 줄리니는 빈번히 스튜디오 내에서 작업했지만, 그는 항상 녹음에 대한 몇 가지 단서를 지녔다. 1979년 독일의 잡지 '포노 포룸Fono Forum' 과의 인터뷰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의 경험에 비추어서 내가 할 수 있도록 익숙해졌다고 생각할 때 작품을 녹음하기를 시도합니다. 그것은 서두를 필요가 없습니다." 그는 또한 콘서트홀이나 오페라 하우스에서 연주하기를 바랐음을 피력하였다. 비록 녹음이 완벽이라는 장점을 가졌지만, 그것은 이 장점이 약점이 되는 것을 경계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만약 당신이 완벽을 겨냥한다면 당신은 연주에 생명을 주지 않는 위험에 처한다. 완벽의 추구는 연주장의 청중과의 즉각적인 교감인 자발성이 사라진다. 물론, 청중의 분위기가 부족한 녹음에 우리는 생기와 긴장감에 특별한 관심을 주어야 한다."


그 인터뷰에서 줄리니는 지휘자의 역할에 대해 논의했다. 그는 지휘자는 다른 연주자들과 함께 음악을 만드는 음악가이며, 스타가 아니고 악기가 없는 연주자라고 말하였다. 백여 명의 연주자들을 통솔하였던 경험에서 오케스트라를 대할 때, 지휘자는 오만하거나 과대망상이 되는 위험에 처하게 되는 것은 아닌지 하는 물음에 그는 "세상과 인류를 비옥하게 해 준 천재들인 모차르트, 베토벤, 바흐를 내가 다룬다는 깨달음과, 나는 그저 이 천재들에게 애정과 헌신으로 봉사하는 사람이라는 인식이 이 문제를 무의미하게 만든다. 덧붙여 나는 나 자신을 결코 대 지휘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연주자이다. 나는 젊었을 때 종종 오케스트라 내에서 연주하였고 사중주단에서 비올라도 연주했다. 나는 튀려고 하지 않았고, 연주자들 중에 한 사람임을 늘 생각하고 있었다." 라고 붙임성 있게 응수하였다.


줄리니는 자신의 베를린 필과 10년간의 작업을 놀라움이라고 표현하였다. "우리는 베를린 필하모닉이 세계 음악계에서 탁월한 위치에 있음을 알고 있다. 그 악단은 커다란 개성을 지니고 있다. 나에게는 이러한 음악가들과 음악을 연주하는 특권이 있다." 무대에서도 그는 많은 악단을 지휘하지 않았다. "나는 함께 할 오케스트라를 잘 알고 우리는 서로를 안다... 나는 이리저리 다니지 않는다. 음악적인 것만이 아니라 인간적인 것 또한 연주자들과의 접촉이다. 그것은 서로를 잘 아는 데 대단히 중요한 것이다."


음악을 만듦에 있어서 그를 매혹시켰던 것이 무엇인가 하는 질문에 줄리니의 대답은 그의 <크레도> 로 귀결되었다. "음악은 커다란 기적이자 커다란 신비이다. 단 하나의 음표라도 그 자체는 하나의 신비이며 기적이다. 음표는 매우 갑작스럽게 나타나서는 나오자마자 바로 사라져 버린다. 지휘를 하거나 연주를 하거나 음악과 함께 하는 모든 것은 황홀한 것이다."


1992년 9월 13, 14일의 줄리니의 마지막 연주회 프로그램은 소프라노 샤론 스위트, 콘트랄토 플로렌스 퀴바, 테너 빈슨 콜, 베이스 사이몬 에스테스와 에른스트-센프 합창단 등, 수 년 간 그와 작업해 왔던 이들과의 베르디의 <레퀴엠>으로 구성되었다. 그 작품은 이전에 동일한 배역으로 녹음이 이루어졌다. 만프레드 마이어는 '노이어 차이트Neue Zeit' 에 "베르디의 <레퀴엠>은 '심판의 날'이라는 예감 속에서 겸손한 기도부터 공포에 대한 번민까지,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드라마였다. 지휘봉의 귀족인 줄리니는 모든 오페라적인 요소들을 억압하면서 침착하게 표현의 극치를 지휘하였다. 거의 일련의 악기군과 같이, 독창자와 합창단이 관현악과 일체가 된 듯한 그 안에는 오랜 시간이 있었다. 아리오소 부분마저도 번득이는 성악은 한계가 없었다." 라고 썼다.


‘베를린 모겐포스트Berliner Morgenpost'는 그 기사에 "슬픔과 드라마가 완전하게 화합한 레퀴엠" 이라는 제목을 달았다. 기사의 발췌 내용: "줄리니가 베르디의 스코어를 지휘할 때, 아무도 더 이상 그 작품자체 못지않은 낡은 논거 - 그럼에도 이것이 죽은 자를 위한 신성한 전례 미사인지 혹은 베르디가 오페라 레퍼토리에 너무 관대하게 소품을 집어넣은 것인지 - 를 상기하지 않는다. 줄리니의 해석은 언제나 이것이 그것을 표현할 수 있던 유일한 방법이었고, 이 최근의 연주는 다시 한 번 충분한 확증을 제공하였다는 인상을 전했다."

작성 '09/12/02 2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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