래틀과 베를린 필을 변호할 필요가 있는가?
http://to.goclassic.co.kr/artist/439

  예술적 실력에 있어 현 시점 세계 최고의 오케스트라와 지휘자, 오페라 극장이 무엇이냐라는 질문에는 각양각색의 답이 나올 것이다. 그러나 상업적으로 가장 크게 성공한 곳은 어디냐는 질문에는 대답이 뻔하다. 베를린 필과 래틀, 그리고 메트폴리탄 오페라이다. 이들이 관여한 음반과 영상 미디어, 웹서비스가 어쨌든 가장 다양하게 시중에 나와있고 수익성도 나쁘지 않은 편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베를린 필과 메트, 이 두 곳은 상업적으로 가장 크게 성공했을 뿐만 아니라 동시에 재정적으로 가장 튼실한 클래식 음악 단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베를린 필은 매머드급 콘서트홀인 로얄 앨버트 홀을 매진시키는 티켓 파워를 가지고 있고, 도이체 방크라는 최대의 후원사를 거느리고 있다. 베를린 필의 전임 인텐단트였던 로젠버그는 "무엇이든 할 수 있는 행복'을 누리며 업무를 해나갔다고 말했다. 오케스트라의 존망을 걱정하는 시대, 예를 들어 적자때문에 대규모 구조조정이 불가피한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나 통폐합 문제 때문에 음악감독 교체가 단행된 DSO Berlin, 본거지를 마이애미로 옮길지도 모른다는 루머에 휩싸였던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 등등 기존의 메이저 오케스트라들이 먼 미래가 아닌 당장 오늘 하루가 걱정인 시대에 베를린 필은 축복받은 오케스트라이다. 

  그런데 난데없이 베를린 필의 몰락이라는 주제가 튀어나왔다. 래틀이라는 영국 철부지가 독일 음악의 성지인 베를린 필을 몰락시켰다라는 매우 고전적인 비판이 그것인데, 사실 이런 비판은 카라얀 시대부터 면면이 이어져내려온 비판이다. 그러니 이를 다시 반박하는 것도 무척이나 지겨운 일이니 이에 대해서는 알프레드 브렌델의 일갈로 대신하자.

'래틀에 대한 비판은 음이 맞질 않아.'

 

  나는 사이먼 래틀과, 그에게 낙담하여 래틀을 공격하는 무리들에 대한 본지의 기사를 읽었다.(Rattle's Berlin Philharmonic failing to thrill-전율을 주지 못하는 래틀의 베를린 필, 5월 25일자 가디언) 몇몇 평론가들이 말하는 것과는 달리, 현재의 베를린 필은 최상의 모양새를 갖추고 있다. 물론 그것은 카라얀이나 아바도의 충실한 복사판이 아니다. 베를린 필은 낭만주의 교향악의 풍요로움을 온전히 간직하고 있으면서, 동시에 18세기의 음악은 물론이고 현대 음악까지 나름의 참신한 방법으로 다룰 수 있게 되었다. 모짜르트를 좋아하는 방식은 사람마다 다 제각각일텐데, 어떻게 카라얀과 동일한 사운드를 만들어내는 것을 원하는 지휘자가 있을 수 있겠는가?

 

   올해 초, 나는 사이먼과 7차례 콘서트를 함께 가지는 즐거움을 누렸다. 내가 단언할 수 있는 것은 베를린 필의 세 번에 걸친 찬란한 말러 교향곡 4번 연주를 능가하는 연주를 이전엔 결코 들어본 적이 없었다는 것이다. 오케스트라의 각 섹션이 모두 놀랄만한 수준의 음색과 세련미, 그리고 집중력을 보여주었다. 같은 평가를 사이먼 래틀이 지휘한 슈베르트 교향곡 9번과 브람스의 교향곡 2번에도 동일하게 적용할 수 있다. 올해 잘츠부르크 부활절 축제에서 연주한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4번에서 우리가 나누었던 파트너쉽은 모든 독주자들이 상상속에서나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바로 그런 것이었다. 매일 각각 다른 프로그램을 다룬 올 해 1월 베를린 필의 뉴욕 방문 동안의 네 번의 콘서트는 막대한 성공을 거두었으며, 동시에 사이먼에게는 개인적인 승리이기도 했다. 그 곳에서 또한 잘츠부르크에서 나는 대중의 열광과, 음악 감독에 대한 오케스트라의 완전한 헌신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나는 예전 독일에서 카라얀을 깔보는 유행이 있었던 시기를 기억한다. 마찬가지로, 아바도가 쇠락하는 오케스트라를 다시 젊어지게 만들지 못했다고 주장하며, 그를 쫓아내려 했던 언론인들이 있었다. 그러나 사실 아바도는 많은 수의 훌륭한 젊은 연주자들을 영입했으며, 사이먼 시대에도 이런 노력은 계속되고 있다. 아바도의 오랜 공백 이후, 그가 베를린을 방문할 때면 그는 '반신(半神)'으로 떠받들여지고 있다. 래틀에게 그가 전임자들만큼 해내는 데에 실패했는지 질문했던 저널리스트는, 자신의 무례함과 판단력 부족으로 입에 오르내리는 것보다는 부끄러운 줄 알고 숨는 편이 나을 것이다.

 

 - Alfred Brendel

The Guardian, May 31.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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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이것으로 충분하지 않다. 어쨌든 래틀과 베를린 필의 음반은 그 발매 가짓수가 예전보다 줄었고 그 평들도 오락가락이다. 특히나 우리나라에서 래틀과 베를린 필은 위대한 전임자들보다 신용을 얻지 못하고 있다. 그 점에 비추어볼 때, 래틀과 베를린 필은 동반 몰락했다라고 말해도 되는 것이 아닐까?

  뭐 그럴 수도 있다. 예전의 좋았던 시절을 생각하며 요즘을 하찮게 여기는게 문제될 것은 없다. 그렇다면 다시 생각해보자. 요새 베를린 필 말고 꾸준히 음반이나 영상물이 나오는 단체가 도대체 몇이나 될까? 몇해전 평론가들이 뽑은 세계최고의 오케스트라라던 RCO는 RCO Live라는 자체 레이블 발매로 돌아선지 몇 해가 지났다. 우리 시대 최고의 콘서트 지휘자 중 하나인 마리스 얀손스라는 마에스트로의 상품성이 메이저 레이블 음반으로는 시장에서 통하지 않는다는 간단한 사실이 이들이 자체 레이블로 후퇴할 수밖에 없었던 배경이지만, 이를 지적하는 이들은 몇 되지 않는다. 
 
  사실 재정적으로 건실한 오케스트라에겐 음반발매라는 것이 필요없다. 메이저 레이블들이 음반을 녹음하던 시절에 음반에서 발생한 수익은 오케스트라 운영비로 돌아간 것이 아니라 그 단원들 개개인에게 배분되었던 것이다. 즉 메이저 레이블이 음반을 녹음하던 그 시절에는 객석도 왠만큼 들어차서 수익이 발생했고 보조금, 후원금 등이 많았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시대가 변해서 보조금도 기대할 수 없고 경제한파의 여파로 후원금도 뚝 끊겨버려 오케스트라들은 운영비 충당을 위해 음반발매를 더 많이 해야될 필요가 생긴 것이지만, 음반산업이 죽어버려 이마저도 힘들어진 것이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자체 레이블이다. 음반제작사에게 돌아갈 몫을 줄여 이를 유통사에게 주고 나머지는 오케스트라 운영비로 사용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는 것이 자체 레이블의 설립취지이다. DG와 결별했던 가디너와 그 휘하 단체들이 결국 자체 레이블로 일정 정도나마 수익을 거두지 못했다면 금방 무너져버릴 위기에 처했었다는 사실은 작금의 사정을 웅변적으로 보여준다.  

 자체 레이블로 음반을 낼 필요가 없는 오케스트라, 여전히 메이저 레이블에서 정기적으로 음반을 발매할 수 있는 오케스트라는 현재로서는 베를린 필과 비엔나 필 정도만이 남았다. 재정이 튼실해서 음반 발매로 운영비를 충당할 필요도 없고, 몰락한 현재의 클래식 음반시장에서도 구매력을 가진 음반을 낼 수 있는 오케스트라는 베를린 필이나 비엔나 필 이외에 또 어디가 있을까? 베를린 필의 오랜 라이벌인 비엔나 필마저도 신년음악회와 쇤부른 야외음악회 신보, 불레즈, 브렌델의 기념 음반 등을 제외하면 음반으로는 맥을 못추는 시대인데 말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음반이 나오지 않는 시대에 어떤 비교 대상이 있어서 베를린 필과 래틀을 비판할 수 있는 것일까? 예술적으로 베를린 필이 몰락했다거나 래틀이 깊이가 없다거나 하는 비판은 그럴 수도 있겠다라고 하겠으나 음반을 꾸준히 내고, 연주홀을 가득 채우는 그들의 티켓 파워를 무시한 '상업적으로 실패' 운운하며 이들을 비판하는 것은 현실을 아예 모르거나 아니면 이도저도 보기 싫으니 눈을 감고 있는 것으로 밖에는 해석할 길이 없다.

 

작성 '10/10/27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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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

현지 사정을 잘 몰라서 그러니 질문 세개만 드립니다.
1. 베를린 필 공연의 티켓파워가 베를린 필 파워인가요, 아니면 래틀 파워인가요?
2. 고클 회원님들이 말은 베를린 필의 몰락이라고 했지만, 사실 사이먼 래틀이 맘에 안든다는 얘기 아닐까요? BPO 는 꼭 바렌보임을 제치고 래틀을 선택해야만 했을까요? 바렌보임이 베를린 필을 지휘할 때와 래틀이 지휘할 때 누가 더 티켓파워가 있나요?
3. 로열 알버트 홀이 매진되는게 래틀 덕택인가요, 아니면 베를린 필 덕택인가요?

10/10/27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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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i***:

1. 수량화할 수는 없겠으나 지난 몇 시즌 동안 래틀이 지휘하는 공연과 객원지휘자의 연주회 표 팔리는 경향을 관찰할 결과 래틀의 티켓파워가 맞습니다. 래틀의 연주회들은 대부분 매진이었으나 저명한 객원지휘자들의 공연들은 마지막 날까지 표가 남아있는 경우가 있었으니까요.
2.바렌보임은 현재 최고의 티켓파워를 가진 지휘자 중 하나입니다만, 영상물말고 바렌보임 지휘의 음반 발매가 최근에 있었나요? 그의 최신 실황 브루크너 교향곡 4번을 자주제작으로 내는 지경인데요.
3. 확실히 래틀덕이죠. 버밍험 시절에도 래틀은 언제나 매진이었습니다. 2010 프롬스 시즌 예약판매 당일 매진된 콘서트는 딱 세개인데 프롬스 개막 공연, 도밍고의 보카네그라, 그리고 래틀, 베를린 필 콘서트였습니다.

10/10/27 1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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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i***:

답변 감사합니다. 래틀이 인기가 있기는 있나봅니다.

10/10/27 2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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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b***:

독일현지에서 지켜본결과 래틀공연은 항상 100%매진이고 당일날 가서 기다려서 사는 티켓도 창구오픈2시간전부터 성황입니다.물론 바렌보임도 비슷합니다만 래틀만큼은 확실히 못하죠.적어도 베를린 시민들의 래틀사랑만큼은 절대적인듯 합니다.

10/10/27 2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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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이 관리자에 의해 삭제됐습니다

10/10/27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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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

간만에 글을 보게 되내요. 블로그를 닫으신지 제법 되시던데 예전부터 즐겨가던 곳이 문을 닫은 듯 하여 안타까워 했었는데 여기에서 글을 보게 되니 반갑내요~

10/10/27 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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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

먼저 글쓴이에 동의하면서, 래틀의 베토벤 교향곡은 맘에 들진 않지만 브람스는 나름 신선했습니다. 최고까지는 아니더라도 레퍼런스로 고려할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현장에서 관객과의 호흡에서 현재 래틀을 따라갈만할 지휘자가 몇이나 될까요? 과거의 첼리비다케가 지적하듯 음악이 고대시대 바쿠스 제전에서 비롯되었다고 본다면 콘서트에서 관객과의 호흡과 열광, 즉 공연분위기가 제일 중요한데 현재 래틀만큼 이 광휘에 휩싸이게 할수 있는 지휘자가 몇이나 될까요?

10/10/27 2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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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

래틀이 비판을 받는 이유는 그가 지휘자로서 설 수 있는 최고의 위치에 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베를린 필의 음악감독은 당대의 거장들 뿐 아니라 위대했던 전임자들과도 끊임없이 비교될 수 밖에 없는 자리죠 개인적으로 음악적인 역량에 있어 래틀은 최고의 현역 거장 다섯안에 끼지 못한다고 봅니다 다만 다른 거장들에 비해 비교적 젊기 때문에 앞으로 더 성장할 가능성은 충분히 있는것 같습니다

10/10/28 0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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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

정말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

10/11/01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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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o***:

사이먼 래틀이 베를린필을 지휘한다고 해서 베를린필의 실력이 내려가진 않습니다. 다만 크나큰 발전을 하지 못할뿐이고, 최근의 클래식 시장 동향으로 봐서 거대한 콘서트홀이 매진하고 끝없는 영상물, 음반이 쏟아져나오는것, 이것이 바로 발전입니다. 다른 오케스트라는 그렇게 하지 못하거든요, 다만 이것이 래틀 덕분은 아닌것 같습니다
저는 래틀을 옹호하는 쪽이지만 베를린필의 현재의 영광은 래틀때문은 아닌듯 싶습니다

11/01/17 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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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

래틀 덕분에 베필의 독일 고전음악 신보가 뜸한 건
참 불만입니다. 래틀 스스로도 번뜩임은 있지만
탄탄하게 구조를 만들어가는 스타일은 아니구요.

11/02/17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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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k***:

오랫만에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11/02/23 0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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