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틀을 모두 들어야 완성되는 프로그램" 로버트 레빈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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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일. 언제나 그렇듯, 로버트 레빈은 영국에서도 바빴다. 일주일이나 머물러 있다기에 인터뷰 시간을 쉽게 잡을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러나 그의 일정은 이미 세 번의 콘서트와 그 사이사이에 부록처럼 추가되어 있는 각종 마스터 클래스, 그리고 세미나로 촘촘히 채워져 있었다. 적당한 시간이 쉽게 추려지지 않아 그나마 가장 한가하다는 일요일 아침 “오늘 인터뷰 가능할까?”라고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그럼 한 시간 뒤에 통화하자”는 답신을 얻고, 인터뷰는 그렇게 즉흥적으로 성사되었다. 이미 정오가 다 되어 가는 시간이었음에도 피곤에 지친 레빈의 목소리는 마치 잠에서 덜 깬 듯 쩍쩍 갈라져 불협화음을 냈다. 그러나 마치 이쪽에서 던지는 질문을 에너지삼아 흡수하는 듯, 대화가 길어지는 만큼 비례하여 답도 길어지고 열정은 더욱 뜨거워졌다.

 

목소리가 매우 안 좋다. 어디 아픈 것 아닌가?

아니다. 어제 마스터클래스를 너무 오래 해서 그렇다. 마스터클래스를 하면 아무래도 말을 많이 하게 된다. 전달하고 싶은 게 많으니까.

 

지난 목요일 공연 중 하나도 렉처 콘서트였던 것으로 알고 있다.

형식은 그렇게 보였지만 정확히는 렉처 콘서트를 의도한 것은 아니었다. 로열 페스티벌 홀에서 같은 프로그램을 다른 방식으로 하루에 두 번 가졌다. 7시 반 공연은 전형적인 콘서트였고, 10시에는 ‘나이트 쉬프트 (Night shift)’라는 제목으로 보다 자유롭게 편안한 방식으로 진행했다. 콘서트홀이었지만 분위기가 재즈 클럽 같았다. 청중도 훨씬 어렸고 차림새도 자유분방했다. 프로그램 사이사이에 연주할 곡에 대해 캐주얼하게 소개하고 또 질문도 받았는데, 반응이 참 괜찮았다.

 

공식적인 콘서트홀이 재즈 클럽으로 바뀌다니 참신한 시도였을 것 같다.

그렇지도 않다. 몇 년 전 같은 장소에서 처음 이런 시도를 했었는데, 연주하는 내게도 흥미진진했고 청중들도 지루해하지 않았다. 어느덧 로열 페스티벌 홀의 고정 프로그램으로 정착된 듯싶다.


 

다음 주 화요일(10/4) 에는 계몽주의 시대 오케스트라와 함께 모차르트 협주곡 23번을 협연할 예정인 것으로 안다. 어제 날짜 가디언 지(기사보기)를 보니 이번에 새로 발굴된 모차르트 악보로 연주한다고 하던데?

‘새로 발굴된’이란 표현은 정확하지 않다. 1960년대 베를린에서 이 협주곡의 2악장 악보가 발견되었는데 누군가가 자필로 음표를 첨부해 놓은 것이었다. 그리고 1990년대 초 플라트란 모차르트 전문가가 이 장식음들이 모차르트의 피아노 학생이었던 바르바라 플로예르에 의해 쓰여졌다는 것을 밝혔다. 실제로 모차르트는 자신이 연주할 때는 필요하다면 즉흥적으로 연주했을 것이기 때문에 굳이 장식음들을 악보에 기록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내가 한 일은 2차 대전 동안 유실을 막기 위해 여기저기 뿔뿔이 흩어져 보관되어 있던 이 협주곡 23번 악보 원본을 차근차근 모아서 작품의 원형이 어떠했는지 분석한 것뿐이다. 훨씬 소박하고 간결해서 어떤 이들에게는 너무 밋밋하게 들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나 그렇게 같은 곡을 연주해도 매번 다른 실험을 시도하는 당신의 음악 여정이 진심으로 존경스럽다. 그런 연구는 사실 피아노 앞에 앉아서 연주를 하는 것만으로는 불가능하지 않은가?

(웃음)그렇다. 연주가는 정말 바쁜 직업이다. 그래서 내 목소리도 이 모양이 된 것이기도 하고.

 

서울 공연 프로그램에 대해 물어보고 싶은 것이 많다. 하루는 바흐 작품만으로 다른 하루는 모차르트와 베토벤 소나타로 프로그램을 구성했다. 지금까지 당신의 공연을 살펴봤을 때, 이 이틀간의 프로그램도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을 거라 예상된다. 어떤 의도로 레퍼토리들을 선택한 것인가?

그렇다. 좋아하는 작곡가 취향대로 둘 중 하루만 선택해서 공연을 보아도 무방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이틀을 모두 들어야 완성되는 프로그램이다. 이번 서울 공연의 화두는 ‘대조(contrast)’라고 할 수 있다. 작곡가 사이의, 같은 작곡가의 다른 작품 사이의 두드러지는 차이점을 염두에 두고 프로그램을 편성했다. 가령 바흐 공연의 경우 초기 작품인 영국 모음곡과 매우 늦게 작곡된 ‘푸가의 기법’이 시대적 대조를 이루는 한편, 이탈리아 협주곡과 영국 모음곡은 국가적으로 서로 다르게 선호했던 양식들이 대조를 이룬다. 모차르트-베토벤 소나타 프로그램도 마찬가지다. 두 작곡가 각각의 초기작과 말년작을 교차시켜서 배치했다. 두 사람 모두 초기작의 경우 콘서트용이라기보다 학생들의 기교 연습을 염두에 둔 교본의 성격이 조금 더 강했다. 보다 경쾌하고 대화를 나누는 듯한, 밝고 가벼운 작품들이다. 그러나 말기 작품들은 작곡가의 내면을 심도 있게 표현하는 철학적인 음악으로 진화했다.

 

두 공연을 모두 들어야 완성된다고 했는데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가?

당연한 얘기지만 모차르트와 베토벤은 바흐의 영향을 받았다. 그들이 바흐로부터 어떤 영향을 받았는지 알 수 있는 작품들을 선곡했다. 가령 ‘푸가의 기법’이 그러하다. 내가 선곡한 네 곡의 캐논은 골치 아프도록 복잡하게 꼬인 작품이다. 일반적으로 캐논은 한 가지 테마를 시간 차를 두고 반복하는 형태로 진행된다. 그러나 이번에 내가 연주할 캐논은 이례적으로 오른손이 아닌 왼손이 연주를 시작하는데, 그 다음에 따라붙는 오른손이 왼손과 같은 음을 연주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피치의 전혀 다르게 변종 된 테마를 연주한다. 그 다음에 왼손이 다시 노래를 시작하면 그 다음에 따라 붙는 오른손은 이번에는 이 테마를 거꾸로 반전시켜 연주한다. 심지어 속도는 두 배로 빨라졌다가 다시 두 배로 느려진다.

 

연주자 입장에서도 참 힘든 작품이지만 청중들도 어지간히 집중하지 못하면 이 복잡미묘한 변주를 다 따라잡을 수 없다. 그러나 설령 그 모든 변주를 다 이해하지 못한다 할 지라도 이 작품은 통으로 듣기에도 하나의 근사한 음악이다. 어느 쪽 방식으로 듣던지 모두 만족스러울 것이다. 중요한 점은, 이러한 캐논과 푸가의 기법이 모차르트는 물론 베토벤의 작품 세계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는 것이다. 두 번째 날 연주하는 그들의 소나타에서, 무엇보다 베토벤 소나타 28번에서 이것을 분명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베토벤이 모차르트에게서 받은 영향에 관해서도 고려하며 두 번째 프로그램을 짰는가?

그렇다. 형식도 그렇지만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16번에서 엿볼 수 있는 유머는 분명 모차르트의 영향이 크다. 반면 소나타 28번은 그러한 모차르트를 발판으로 베토벤의 음악이 얼마나 철학적으로 승화했는지 살펴볼 수 있다. 그 모든 거대하면서도 다양하고 서로 대조를 아루는 흐름이 바흐라는 하나의 물줄기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은 참으로 흥미로운 일이다.

 

모차르트 연주에서 예의 그렇듯, 이번에도 즉흥 연주를 기대해도 괜찮을까?

물론이다. 모차르트가 즉흥 연주로 채웠던 부분을 나도 똑같이 그렇게 나만의 즉흥연주로 채울 것이다.

 

바흐 프로그램은 연주회 시작과 끝에 영국 모음곡을 배치했다. 이것도 의도적인 것인가?

영국 모음곡은 연주자의 입장에서 할 말도 많고 보여줄 것도 많은 작품이다. 첫 곡으로 시작하는 2번은 활기차고 생기가 넘치는 작품이지만 마지막으로 연주할 6번 D단조의 경우, 실로 악마적인 피아노곡이라 할 수 있다. 처음에는 차분하고 얌전하게 시작하지만 그레고리안 찬트에서 딴 ‘진노의 날’ 테마가 삽입되어 있을 정도로 드라마틱하다. 바흐의 이런 양면적인 모습을 보여주기에 매우 적절한 작품이란 생각이 들어 선곡했다. 또 한 가지 이유는 D단조란 조성 때문이다. 나는 프로그램을 구성할 때 조성을 중시한다. 그것은 요리를 할 때 셰프가 어떤 소스의 요리로 식사를 마무리할 것인가 연구하는 것과 똑같다.


 


당연하다. 그것은 요리사가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의 재료를 골라 최고의 요리를 만드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산 세바스티안 해변에 가면 해산물을 가지고 최고의 요리를 만들어야 하고, 알프스 목장에 가면 그곳에서 생산되는 신선한 우유와 치즈를 쓸 생각을 해야 한다. 재료를 염두에 두지 않고 그저 어떤 특정한 요리를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을 가지고 있다가는 실패하기 십상이다. 스타인웨이와 포르테피아노는 그런 측면에서 재료라 할 수 있다. 그 악기들을 재료 삼아 최선의 음악을 만들어내는 것이 연주가가 할 일이다.

 

상당히 철학적이고 애매모호한 질문을 하게 되어 유감이지만 당신에게 꼭 물어보고 싶었다. 당신에게 음악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내게 음악이란 거울이다. 연주자는 그 음악을 연주하면서 청중들에게 자신들을 보는 거울을 제공한다고 생각한다. 거기 비추이는 건 자신의 모습일 수도 있지만 다른 사람의 모습도 포함된다. 나는 이렇게 불행한데 저 사람은 왜 그렇게 행복한지, 나는 이렇게 분노하는데 타인들은 왜 그렇게 담담한지 그 모든 인간이란 존재의 감정의 프로세스를 음악으로 이해할 수 있다. 언어로 되어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더 나아가 그러한 타인의 비밀스런 감정과 생각을 말없이 공유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준다. 그것은 서로를 이해시켜주고 세상을 이어주는 소통의 끈이다.

 

한국 관객들이 당신의 공연을 진심으로 기다리고 있다. 메시지를 남긴다면.

그들이 기다리는 만큼 나 또한 서울 공연을 몹시 기다리고 있다. 그처럼 열정적이고 소통에 적극적인 관객들은 세계 그 어느 나라에도 유래가 없다. 그들은 분석이나 감동의 차원을 넘어서 정말로 무대와 교류할 줄 아는 사람들이다. 어서 만나고 싶다.


 

 

 

 

 

당신은 자신의 음악활동을 묘사할 때면 늘 요리에 비유해 왔다. 가령 연주가가 지녀야 할 개성과 오리지널리티에 관해서는 서로 다른 요리에서 모두 똑같은 맛을 낸다면 그것은 좋은 요리사가 아니라고 말했다. 같은 비유가 서로 다른 악기의 경우에도 적용된다고 보는가? 즉 내 말은, 같은 모차르트를 연주하더라도 포르테피아노로 연주하는 것과 이번처럼 스타인웨이 피아노로 연주하는 것은 분명 접근 방법부터 다를 것 같다.
 
작성 '11/11/08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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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

미국에서 클래식 음악을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레빈의 음반이나 연주에 대해서 공부하지 않을 수 없겠지요. 예전 들었던 수업에서, 본인도 저명한 음악학자이자 피아노 연주자였던 교수님이 이 분의 모짜르트 피아노 협주곡 음반 틀어주면서 토론을 했었던 기억이 나네요. 직접 가서 보고, 강의도 듣고 싶은데 참 아쉽네요.^^;

11/11/16 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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