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황하는 첼리비다케
http://to.goclassic.co.kr/artist/638
일전에 클라이버가 첼리비다케에 보내는 서한을 옮겨 소개해 드렸습니다.(http://to.goclassic.co.kr/artist/637) 사실 클라이버는 1989년 16호에서 첼리비다케를 다룬 기사를 보고 나서 저런 글을 쓰게 됐죠. 그런데 16호 기사를 쭉 읽어 보니 이 글이 한국에 미친 영향이 알게 모르게 크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특히 한국에서 떠도는 첼리비다케 독설 어록의 오리지널 소스가 분명 이 기사일 거라 확신합니다. 이렇게 역사적인 의미도 있고 무엇보다 글이 재밌게 쓰여 읽는 재미가 있고요. 그래서 클라이버 서한을 소개해 드린 김에 이 기사까지 함께 접할 수 있는 기회를 드리는 게 좋지 않을까 해서 한번 더 시간을 내 봤습니다.

원문이 비교적 장문이라 분량이 다소 많습니다. 그리고 글쓴이인 클라우스 움바흐 씨의 주관이 대단히 많이 반영된 기사란 점을 유의해 주십시오.

끝으로 번역에 관해 말씀 드립니다만 일본어 번역과 비교하면 서양 바깥말을 옮기는 작업, 진심으로 번거롭기 짝이 없습니다. 당장 일본어는 우리말과 문법구조가 비슷한 데다 원어의 의미에 대략 70에서 90%는 접근하는 표현들이 우리말엔 많습니다만 서양어는 전혀 사정이 다르죠. 게다가 이 글이 식자 계층을 대상으로 작성된 느슨한 잡지기고글이라서 생경한 어휘는 많이 나옴에도 문장구조는 독일어답지 않게 많이 성겁습니다. 이럴 때 옮긴이가 택할 최선책은 직역과 의역을 나란히 다는 겁니다만 시간을 너무 많이 잡아먹다 보니 부득이하게 직역을 포기했습니다. 무엇보다 우리말 독자가 읽기 쉽게 매끄러이 다듬고 싶었습니다. 번역에 이견 있는 분들은 댓글로 건의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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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spiegel.de/spiegel/print/d-13494880.html

엘에이에서 방황하는 네덜란드인(Der Fliegende Holländer in L. A.)
클라우스 움바흐(Klaus Umbach)
슈피겔 1989년 16호(1989년 4월 17일)


슈피겔 주필인 클라우스 움바흐가 세르쥬 첼리비다케에 대해 전해 드립니다.

무거운, 비틀대는 걸음걸이로 무대에 다가오는 모습, 의자등받이나 단원의 어깨에 기대는 모습, 심기불편한 표정으로 지휘대에 손을 대는 모습... 바로 그 리스트(Liszt)가 아니겠는가.

마치 나이든 성직자의 그것처럼 허옇게 턱까지 오는, 윤기 나게 가닥으로 묶인 머리칼이 뺨에 닿은 하얀 커튼인 양 아래로 드리운다. 그런데 그다지 기품이 많진 않던 리스트가 세상을 좋게만 바라봤던 거완 달리 첼리비다케는 대개 사람들을 불신을 갖고 뜯어본다. 비스듬히 앞에서 바라보면 예리하게 주름이 파인, 다부지게 아래로 처진 입가를 가진 첼리비다케의 얼굴엔 인생경험이 많은 까탈스런 어느 인디언 여인네의 매력이 있다. 

그렇게 무대에 서는 첼리비다케는 자신이 위압적인 유적처럼, 이국적인 문화재처럼 보이길 진정으로 바란다. Sergiu Celibidache, 일흔여섯살. 첼-리-비-다-케란 발음에 "첼리"란 애칭이 있는, 낭만주의의 정점에서 활동하던 악단장들 무리를 대표하는 마지막 거두.  

"브람스는 독일스럽게 유장하게 들려야 한다, 삑삑거리지 말고 쉿쉿거리지 말고". 그렇게 1979년부터 뮌헨 필의 음악총감독으로 재직 중인 루마니아 출신 첼리비다케가 까칠까칠한 저음으로 지시한다. 첼리비다케와 뮌헨 필은 4월 초순부터 투어 중이다. 미국과 캐나다에서 14차례 공연을 하는데 그들의 가장 중요한 해외공연이기에 성공적으로 마무리한다면 마에스트로 일행은 이른바 세계적 수준에 걸맞는 지위로 발돋움했음을 언론을 통해서 그리고 자기과시용으로 선언할 수 있게 된다.

하이클래스를 향한 서막은 원활히 열어 제꼈다. 11월 중순 첼리비다케와 뮌헨 필은 서독의 대형 오케스트라로서는 처음으로 이스라엘 공연에 나섰다. 겨우 2주 전에 모스크바에서 정상회담을 기념하는 연주회를 가졌고 수석지휘자인 첼리비다케는 고르바초프가 주최한 만찬회에서 서독수상 콜과 함께 식사할 수 있었다. 그러고 나서 서독 건국 40주년을 기념, 본으로 향했다. 서독건국 40주년과 수도 본을 기념하는 공연에서 베토벤 곡을 연주하였다. 이렇게 더 유명한 베를린의 오케스트라 맞수를 세 번이나 골탕 먹였고 더불어 첼리비다케는 그가 싫어하는 카라얀에게서 독보적인 존재로 자리매김했음을 대표할 만한 기회를 강탈해 갔다.

엘에이 뮤직 센터에서 첫 투어공연을 가진 다음날 첼리비다케는 어제 공연에 감사함을 표했다. "하지만 우리는 더 잘 연주할 수 있다"고 적절하게 질책성 발언을 했다. 브람스 교향곡 4번이 그가 보기에 너무 독일냄새가 안 났던 것이다. 

토라진 첼리비다케, 표정도 일그러졌다. "뾰로통한 모습을 보여 드려 송구스럽습니다"고 이제야 언짢은 모습을 보여 죄송하다고 전체 단원에게 사과를 한다. "제가 자제력이 너무 없어서 화를 감출 수가 없어요". 첼리비다케 지휘 하에 있는 100여명 가량인 음악가들이 미소를 짓는다. 아, 첼리, 그냥 잊읍시다.

그러고 나서 이어지는 다소 누그러진 설교. "우리가 세계정상에 오르고 싶다면 더 제대로 연주해야만 합니다". 벌써 그날 저녁, 브루크너 교향곡 4번으로 엄청난 공연을 해내며 뮌헨 필이 정상에 오를 수 있음을 선보였다.  

사실은 뻔뻔하게도 돈 내고 보기엔 들을 음악이 적었다. 보통 1시간 정도 연주하는 곡이니 저녁시간을 채울 수는 없게 된다.1) 그러나 첼리비다케는 기가 막히게 템포를 죽여 공연시간을 대폭 늘려 놨다. 곡 연주에 85분이 소요, 천상에서나 들어 볼 만하게 질질 늘어졌는데 그걸 브루크너의 그런 관혁악스런 거대한 오르간의 공세에 정말로 익숙해 있지 않은 캘리포니아 관객 앞에서 연주한 것이다. 기립박수가 나왔다.    

1) 공연 프로그램에 달랑 브루크너 교향곡 4번 하나만 있었음을 의미합니다.

그게 미국인들만 머리를 감싸는 게 아니다.2) 이 발음하기 힘든 이름을 가진 damned old guy3)가 혹시 완전 정신이 나간 건 아닌가? 엘에이 타임즈의 대안이 되는 언론4)에서 주장하듯 첼리비다케는 "성자이거나 우스꽝스런 성자"가 아닌가?

2) 미국에서 첼리비다케에 대해 논란이 이는 것처럼 독일에서도 첼리비다케는 문제아임을 뜻합니다.
3) 원문이 영어로 쓰였습니다.
4) 아마도 미국의 어느 언론사를 지칭한 듯 한데 검색 후에도 정확한 언론사명을 찾지 못했습니다.


그나저나 첼리비다케는 사실 오래전부터 전설적인 인물로 취급 받았다. 스스로를 모순된 기인으로 몰아가는 사람. 오케스라의 완벽함을 목표로 정진하나 보통 이 완벽함을 반영하곤 하는 음반이란 수단을 무시한다. 왜냐면 "거룩한 신비"인 음악을 팬케이크처럼 납작히 눌러 내길 원치 않기 때문이란다. 첼리비다케는 괴상한 음향페티쉬즘을 몰아붙이고 자신을 추종하는 이들에겐 복사 테이프에서나 들을 만한 구닥다리 사운드를 듣길 강요한다.5) 거진 모든 축하공연을 피하고 소수 레퍼토리에 만족하는데다 오페라를 끝없이 비난한다. 오페라는 음악이 아니라 기껏해야 음악이 포함되는 장르 중 하나란다.

5) 사실 이 문장은 지금도 그 의미가 확 와닿지 않습니다만 그래도 조심스레 제안을 해 봅니다. 음반출시를 꺼리는 첼리비다케의 지휘공연을 실황 외에 접할 수 있는 방법은 결국 라디오, 티비의 실황 혹은 녹화중계 정도였겠죠. 그런데 라디오 방송의 음질이야 아시다시피 지금까지도 개선되지 않았고 그렇다고 빠방한 음질로 무장한 HD급 영상을 쏘아 대는 시대도 아니였죠. 아마도 이런 점이 있어 "구닥다리 사운드"라 표현한 게 아닌가 추측해 봅니다.

첼리비다케는 오로지 리허설에만 과도하게 투자한다. 점점 횟수를 높여 철저히 리허설을 이끈다. 보통 수준의 몇 배를 부풀린 규칙을 강요하고 엄청난 변덕스럼으로 행동하기에 오케스트라들 대부분과 첼리비다케의 협업이 불가능해 진다. 몇 년전 이스라엘 필 수석지휘자 임명 건도 첼리비다케의 이와 같이 터무니없는 요구들로 인해 실패로 돌아갔다. (거의 아는 사람이 없긴 하지만) 그가 5년전 미국에 데뷔할 때 명성 넘치는 주류 악단이 아니라 이론과 실제 교육을 통해 자신이 원하는 수준으로 만들 수 있는 학생오케스트라를 선택하였다. 그리고 첼리비다케는 3주 기한으로 하루 2시간짜리 리허설을 일주일에 6번을 하려 했다. 

당시 연습을 회고하며 이렇게 말했다. "그 젊은이들이 미국 음악계의 이익을 대변하는 마피아의 손아귀에 들어가기 전에 이들에게 내가 조금 알고 있는 걸 전수하고 싶었다". 그런 솔직함이 있기에 첼리비다케는 항상 친구를 사귐에 어려움이 없었다.

카라얀-문화, 즉 이 멀티미디어에 물든 음악산업의 경주마와 두말할 것 없이 완연하게 극을 이루는 첼리비다케가 있다. 이 상쾌하게도 공공에 퍼붓는, 고약한 악취로 진동하는 분노 리스트.

카라얀? "끔찍해. 그 사람은 훌륭한 장사치거나 음악 들을 줄 모르는 인간이지". 한스 크나퍼츠부쉬: "끔찍한 인간, 완전 진짜 음악이 아니야". 아르투로 토스카니니: "완전무결한 음표공장". 테오도르 W. 아도르노: "세계역사상 최고 수다쟁이". 카를 뵘: "감자포대. 평생 한 구절도 음악다운 걸 지휘하지 못했지".

레너드 번스타인과 주빈 메타는 "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리카르도 무티는 "재능은 있지만 엄청난 멍청이". 그리고 무티의 동포 클라우디오 아바도? "완전히 재능 없는 인간. 오호라, 통재라. 3주 동안 밥 없이도 살 수 있다. 세 시간 동안 그 친구 공연장에 있으면 심근경색에 걸린다".

슐레스비히-홀슈타인 음악축제에서 젊은 음악인들을 가르칠 때나 마인츠 대학에서 자신의 18번인 "음악 현상학"에 관해 강의를 할 때조차 첼리비다케는 입을 다무는 법이 없다.

마인츠의 어느 남학생에겐 "너 언제 태어났냐? 왜 지금 오는 거야?". 어느 여학생에겐 "매번 그리 멍청한 질문만 하니?". 어느 젊은 음악가가 지각으로 공연에 참가를 못하자 "너 왜 이리 늦게 와? 류마티스 때문에?". 누군가가 트라이앵글을 거칠게 치자 "너 커다란 숟갈로 가격하는 거냐?".

당연히도 이 바닥엔 비난과 조롱을 즐기는 고약한 즐거움이 있다. 같은 업계인들끼린 겉으론 서로 찬양하기만 하는, 문화계 일꾼들이 개최하는 이 예의 바른 공연장에서 첼리비다케는 독니를 드러낸 독설가로 자리잡고 있다.

첼리비다케가 단지 무례한 행동을 해서 화를 가라앉히려고만 하거나 다소 동업자 정신을 망각한 채 시비나 걸려고만 하는 건 아니다. 첼리비다케는 진심으로 자신만은 찌꺼기 같은 범인의 해석능력 한참 위에서 부유하고 있음을 확신하고 있는데 왜냐하면 본인만이 엄청난 깨달음에 도달했기 때문이란다.

오늘날까지도 본인이 주장하는 바에 따르면 로만(Roman)6)의 그리스정교 선교담당 신부의 아들인 첼리비다케는 벌써 열두살에 극동의 복음을 접하였다고 한다. 저 유리알유희에 참여하기 위해 첼리비다케는 선불교에 빠져 들었고 얼마 동안은 정기적으로 인도의 사원에 머물기도 했으며 스스로를 새로운 신비주의자, 사이 바바(Sai Baba )의 제자 및 독일의 영적 지도자 마르틴 슈타인케(Martin Steinke)의 사도라 칭하곤 했다

6) 루마니아의 도시

"내가 내 음향체험과 이 체험에 기반을 둔 낯선 주체들에 감정이입함을 초월하게 되자 객관적인 타당성 단계, 즉 모든이들에 접근이 가능한 상태에 도달하였다". 달리 말하자면 음악가는 말이 필요 없단 것이다.

첼리비다케는 "모든 걸 합치기 위해" 지휘대에 선다. "나는 저기 있어야 한다. 그런데 아직 여기에 있다". 차라리 "난 여기 있다, 왜냐하면 여기에 없기 때문이다". 혹은 달리 표현하자면 "나는 처음이요 끝이다. 나는 어디에 있는고?". 좋은 질문이다. 아마도 천재와 사기꾼 사이에 놓인 초월적인 회색지대에, 혹은 사적 종교란 스티로폼을 밟고 붕 떠있거나, 혹은 양발을 토카타와 대위법이란 지지대에 올려 놓고 있거나.

첼리비다케는 전후 스릴러에서나 나오는 것처럼 출세하였다. 1945년 8월 23일 베를린에서 지휘자 레오 보르하르트(Leo Borchard)가 노상에서 어느 미국 점령군인이 쏜 총알에 맞아 사망하였다. 이렇게 베를린 필은 빌헬름 푸르트뱅글러가 공연금지조치를 받는 동안 수석지휘자로 활약하던 인물을 잃게 되었다.

대타의 대타로서 이제 막 서른세살이던, 수학, 철학 및 음악을 전공한, 거진 아무런 경력이 없는 첼리비다케가 정상에 서게 된다. 보르하르트가 사망한 지 엿새 뒤 본인 말에 따르면 "정치적으로 숫처녀"였던 첼리비다케는 점령지역 네 군데 모두에서 공연허가를 받고 처음으로 베를린 필의 지휘대에 서게 되었다(stand).

뭐라고, 서게 되었다고(stand)? 첼리비다케로서는 수석으로 임명됨은 춤(Tanz)을 추라 종용을 받은 거나 마찬가지였다. 노련하게 열정을 담아 지휘대에서 피루엣을 시연하고, 대기를 가르는 도약을 하고, 궁둥이를 흔들어 대고, 마치 구원자처럼 하늘을 향해 팔을 뻗어 대고, 한번은 오케스트라의 비행을 이끄는 조종간인 양 한번은 교향곡 무아지경으로 인도하는 길다란 향초인 양, 그리곤 군말 없이 자신에 복종하며 고역을 감당해야 하는 피골이 상접해 진 단원에 매번 매질이라도 하는 듯 지휘봉을 휘둔다. 하지만 베를린 숙녀들은 새카만 고수머리를 가진 이 매혹적인 열혈남아에 빠져 들기만 했다.7)

7) nicht genug kriegen von A는 A를 갈망하다란 뜻이니 결국 첼리비다케가 베를린 여성들에게 인기가 많았음을 의미하게 되는 거죠. 

모두 합쳐 414번 베를린 필을 지휘한 첼리비다케는 푸르트뱅글러의 컴백을 기정사실로 여기고 그가 복귀할 수 있게 배려하였다. 이 독일인 성배지킴이8)가 마침내 나찌 혐의를 벗고 자신의 직책에 복귀하자 저 발칸 출신 외국인 노동자는 군말 없이 2인자 자리로 돌아갔다. 푸르트뱅글러가 1954년 사망하자 첼리비다케는 자신이 수석 자리에 오르리라 기대하였다. 하지만 헛물만 키게 된다. 오케스트라 단원 다수는 첼리비다케가 요구하는 엄한 훈련과 그가 취하는 태도를 좋아하지 않았고 몇몇은 첼리비다케가 러시아 스파이라고 입을 가린 채 소곤거렸다. 푸르트뱅글러의 후임은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이 되었다.

8) Gralshüter를 직역했습니다. 이건 딱히 무슨 의도로 이 단어로 푸르트뱅글러를 대신했는지 감이 안 잡혀서요.


이제 첼리비다케는 고정자리가 없는 지휘자, 누구나 자신을 달갑게 여기지 않는단 사실에 충격을 받은 방황하는 네덜란드인이 되었다. 북중미에서는 괜찮게 성공을 거뒀고, 일정 기간 코펜하겐 왕립악단 및 스웨덴 방송교향악단과, 1972년부턴 슈트트가르트 방송교향악단과 협연하였다. 그렇지만 그의 경력에 남길 마지막 한방을 날릴 기회를 누구도 주지 않았다.

1979년에 당시엔 삼류 악단이었던 뮌헨 필과 공식적으로 계약을 맺지만 이것도 그다지 오래 가지는 못할 듯 보였다. 초장부터 첼리비다케 자신과 오케스트라 사이에 "하모니"가 전혀 생기지 않는다고, 아예 하모니가 재차 깨져 버렸다고 선언하였다. 이렇게 하모니가 없었음에도 뮌헨 시는 첼리비다케가 폭언을 퍼부은 지휘자 리카르도 샤이와 이미 맺은 계약들을 취소해야만 했다. 1981년 7월에는 어느 호른연주자를 놓고 분쟁이 생겼다. 뮌헨 시가 마에스트로를 "완전히 신뢰하고 있음을 공개적으로 선언"하고 나서야 골이 잔뜩 난 첼리비다케는 겨우 마음을 열게 되었다.

이런 신뢰관계도 1984년이 되면 종료된다. 법정에서 들볶인, 대타지휘자 임명 건9)에서 자기 주장을 접으라 강요 받은 마에스트로가 자기가 무시를 당했다며 이렇게 억측을 내놓았다. "아름다운 동업관계"가 "끝장났다"고. "그래, 저치들이 나를 생매장해 버렸어".

9) 1984년, 첼리비다케가 몸져눕게 됩니다. 이 기간에 뮌헨 필은 스위스, 미국 투어를 예정해 놨는데 이 중책을 대신 맡을 지휘자로 뮌헨 필 경영진은 로린 마젤을 점찍습니다. 뮌헨 필 경영진에 따르면 병석에 있는 첼리비다케가 흔쾌히 결정권한을 넘겨 줬다는 겁니다만 로린 마젤이 자신을 대신한단 소식을 듣고 첼리비다케가 노발대발하게 되며 분쟁거리로 발전합니다. 참고 기사: http://www.spiegel.de/spiegel/print/d-13510876.html

그렇게 치고받다 그렇게 화해하곤 하는 것이다. 마이스터가 불평을 늘어놓았고 뮌헨 시는 최후통첩을 들고 위협했다. 돌연 분위기가 훈훈해 지며 첼리비다케가 재차 상석에 앉게 되었다. 시청에다 공표하길 "이게 뻔뻔하게 들릴련지 모르나" 높으신분들은 "뮌헨에 첼리비다케 말곤 다른 대안이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으시다고.  

실제로 첼리비다케를 대신할 사람은 없다. 전 세계가 음악을 팔아 먹는 시대, 거의 모든 오케스트라가 다들 대동소이하게 광택을 내서 반질반질해 진 시대, 거의 모든 저명한 지휘자들이 바로 이런 모양새를 원하는 시대에 리허설에 광분하고, 음반에 보이콧을 놓고, 유리알유희를 즐기는 저 아득한 시대에서 온 고독한 사나이, 불쾌감을 주는 험준한 바위 같은 첼리비다케가 있다.   

당연히 음악은 있지만 이 음악은 첼리비다케가 애써 자근자근 망쳐 놓은 음악이다. 첼리비다케는 작곡 구조가 해체되고 음악의 흐름이 끊길 때까지 음을 애무한다.

헌데 미국인들에게 이번 달 말까지 몇번 더 들려줄 브루크너 교향곡 4번은 느려 진 것뿐만이 아니라 진짜로 초연한 느낌마저 준다. 아마도 예전 베를린에서 입은 충격을 극복했고 자신의 (본인 계산에) 6천에 달하는 제자들 그 누구도 첼리비다케 선생님이 원하는 수준으론 성장하지 못하리란 이 쓰라린 통찰을 받아 들였기 때문이리라. 참으로 "부정적인 결산"이다.

그럼에도 단지 첼리비다케가 마침내 스스로 평화를 구했기에 파편10)이 된 브루크너 음악을 마치 교향곡의 성체를 다루는 양 지휘할 수 있는 것이다.

10) 글쓴이는 본문 내내 첼리비다케가 작곡가의 의도를 무시한 채 원곡을 자기 마음 대로 "해체"하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작성 '13/01/05 1:13
ma***수정 삭제 트랙백 보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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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

정말 재밌게 읽었습니다.
이미 수십년 전에도 첼리 선생은 "옛날 사람" 취급을 받았군요.
거의 19세기 마인드의 지휘자였던가 봅니다.

13/01/05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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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a***:

정확하게 보셨습니다.움바흐 씨가 딱 그걸 노리고 표현을 한 흔적이 많죠.

13/01/05 1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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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

움바흐가 "그래도 카라얀은 유명하지 않느냐"라고 하자 첼리비다케가 "그건 코카콜라도 마찬가지 아닌가"라고 답한 일화는 유명하죠 ㅎㅎ 예전부터 움바흐가 쓴 첼리비다케 평전 "Celibidache- der andere Maestro"를 읽어보고 싶은데, 독일어의 장벽을 극복하지 못하는 한은 앞으로도 기약 없이 요원할 듯 합니다...ㅠㅠ
정성스러운 글 잘 보았습니다!

13/01/05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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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a***:

독일 쪽에 대략 세 권 정도가 보이네요, 첼리비다케 평전 비스무리한 책들이. 좀 의외긴 합니다, 저기서 영어로도 번역된 책이 없다는 사실이요. 한국에도 첼리비다케 팬들이 많은데 언젠가 우리말로 번역이 되면 참 좋겠네요. 저야 음악전공이 아니라서 감히 번역할 엄두를 못 냅니다만...

13/01/05 1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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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y***:

첼리비다케 선생님의 전집들을 구매하며 들어보았지만, 이 글을 읽고나니, 뭔가 기억에 남는 연주들이 남다르게 회됩니다.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덕분에, 유익한 음악시간이었습니다.

13/01/05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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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a***:

이렇게 첼리비다케 팬들이 많이 계시니 꼭 우리말로 번역한, 혹은 한국 저자가 직접 쓴 첼리비다케 평전이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13/01/05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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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

오랜만에 정말 재미있는 글 봤습니다.
'첼리-마에'도 재미있지만,
움바흐의 글빨, 대단하네요.
번역이 좋아서 글이 생생하게 와닿습니다...
mamusae님 감사!!

13/01/06 2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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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a***:

재밌게 읽으셨다니 옮긴이로서 이보다 더 기쁜 소식은 없겠죠. 사실 움바흐가 글쓰는 스타일이 독일 지식인 저널리즘 문체의 전형을 보여 주는지라 어느 정도 걱정스럽긴 했습니다.

13/01/07 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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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

반대자 역시 자신이 반대하는 그 사람의 예술, 주장, 관점이 무엇인지 이해는 하고 있었군요. 첼리의 음악을 싫어하는 사람에게는 이렇게 비칠 수 있겠다라고 충분히 공감했습니다^^ 정성껏 번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13/01/07 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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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a***:

20년 이상 묵은 글로 불필요한 논란을 일으킬 생각은 추호도 없었죠. 제가 이 글을 번역한 첫째 목적은 첼리는 저랬다 카더라의 오리지널 소스 소개하기였습니다. 이렇게 여유를 가지고 읽어 주신 분들이 많이 계셔서 다행입니다.

13/01/07 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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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

"거의 모든 오케스트라가 다들 대동소이하게 광택을 내서 반질반질해 진 시대" 이 표현..전형적인 언중유골이네요.

13/01/07 0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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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

일본에는 첼리의 독설(만은 아니겠지만^^)을 모은 어록집도 있더군요.
http://www.amazon.co.jp/%E7%A7%81%E3%81%8C%E7%8B%AC%E8%A3%81%E8%80%85-%E3%83%A2%E3%83%BC%E3%83%84%E3%82%A1%E3%83%AB%E3%83%88%E3%81%93%E3%81%9D-%E2%80%95%E3%83%81%E3%82%A7%E3%83%AA%E3%83%93%E3%83%80%E3%83%83%E3%82%B1%E9%9F%B3%E6%A5%BD%E8%AA%9E%E9%8C%B2-%E3%82%B7%E3%83%A5%E3%83%86%E3%83%95%E3%82%A1%E3%83%B3-%E3%83%94%E3%83%BC%E3%83%B3%E3%83%89%E3%83%AB/dp/4276203740
이거 외에도 첼리 전기 몇 종 있나봅니다. 머 우리보다 첼리를 더 좋아하니..

13/01/07 1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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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

늦게 접했지만, 정말 잘 읽었습니다. 첼리도 대단하지만 글쓴이도 참 놀랍습니다.

13/06/19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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