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라이버란 기인의 죽음을 애도하며
http://to.goclassic.co.kr/artist/640
이것도 어쩌다 보니 시리즈가 됐군요. 역시 시리즈하면 3부작이겠죠? 마무리도 모양새 좋게 클라이버로 갑니다. 글쓴이는 역시 클라우스 움바흐 씨로 2004년 클라이버 타계를 맞아 클라이버의 생애를 움바흐다운 현란하되 현학적인 어투로 풀어 내고 있습니다. 즐거운 감상되길 바랍니다.

=====

http://www.spiegel.de/spiegel/print/d-31617165.html

은총 입은 은둔자(Der begnadete Eremit)

클라우스 움바흐(Klaus Umbach)
슈피겔 2004년 31호(2004년 7월 26일)

극장단들과 기획자들이 엄청난 조건으로 그를 유혹하였다. 그러나 일흔네 살에 작고한 스타 지휘자 카를로스 클라이버는 두문불출하며 자신을 독보적인 기인으로 치장했다. 음악사에 있어 유일무이한 사람.

모짜르트 오페라와 말러의 교향곡은 단 한 편도 지휘작으로 남기지 않았다. 바흐나 브루크너, 슈만, 스트라빈스키, 쇤베르크도 단 한 소절도 남기지 않았다. 베토벤 9번 교향곡과 브람스 1번 교향곡도, 거대한 니벨룽의 반지도 아이네 클라이네 나흐트무직마저도 지휘한 적이 없었다.

레퍼토리 없는 마에스트로요 거부하는 대가였던 클라이버는 음악계의 쳇바퀴 같은 일상 내에, 그리고 CD산업의 슈퍼마켓 안에 걸터있는 존재라기보단 차라리 환영에 가까웠다. 문화계에서 활동하던 40여년 동안 제작한 레코딩도 열두 장을 넘지 못 하나1) 죄다 보석 같은 녹음들만 남긴 것이다. 이렇듯 클라이버는 누구도 범접하지 못 하는 우상이다. 돈 카를로스, 광기어린 인간.

1) DG녹음전집의 씨디 갯수가 딱 12장이죠. 아마도 이 DG 녹음반들을 셈한 거 같습니다. 

거진 반백년 동안 지휘자 카를로스 클라이버는 클래식 음악계를 조롱하고 고문하고 실망시켰지만 손쉽게도 천부적인 책략을 발휘, 음악계를 누구나 찬미해 마지않는 천상의 열반으로 몰아넣었다. 청중은 기쁜 마음으로 인내하며 그를 기다렸으며, 클라이버, 이 은총 입은 은둔자가 뮌헨 동쪽에 있는 자신의 은둔지에서 한 번 더 출현하여 세계 어디건 아무 지휘대 위에라도 서서 자신을 드러내 주기만을 항시 염원하였다.  

끝났다, 다 지나간 일이 됐다. 그렇게 제멋대로 살아오더니 떠날 때마저도 그리 규칙에 얽매임이 없었다. 항시 그를 따스한 시선으로 예의 주시하던 문화계에 아무런 기척도 남기지 않은 채 벌써 카를로스 클라이버는 7월 13일, 자신의 어머니와 아내의 고향인 슬로베니아의 시골동네인 코니쉬카(Konjšica)에서 일흔넷을 일기로 숨을 거두었고 그곳에 묻히고 말았다. 비평가 요아힘 카이저(Joachim Kaiser)2)는 남독일신문(Süddeutsche Zeitung)에다 "그에 관한 기억에 축복있으리"라 전하며 그의 죽음을 애도했다. 신문 문예란들은 그에 관한 애도기사들로 넘쳐났다.
 
2) 독일의 저명한 음학역사 전문가, 남독일신문 주필.

그렇게 현대 지휘계의 가장 괴이했던 역사가 진정으로 역사가 되어 버렸으며, 갖은 스캔들과 분쟁, 소음 이 모든 것들이 하늘을 뚫는 양 요란차게 빛이 나던 생애도 끝을 맸었다.

원인으로서 클라이버(Die Causa Kleiber)는 행위들을, 그것도 대단스런 행위들을 이끌어 냈다.3)

3) 아리스토텔레스의 Causa 개념을 빌어 뒤에서 서술하게 될 지휘자 Kleiber의 창조성과 개성을 돋보이게 하는 표현법.

맵시 있게 우아했던 이 악단장은 거진 악령이라도 들린 듯 기세를 올리며 베토벤의 코리올란 서곡에 탐닉하곤 했다. 그의 레퍼토리인 달짝지근한 빈 음악들 중 달콤하고 씁쓸한 사탕과도 같은 "박쥐"의 몇 소절을 연주하며 스스로를 끝 간 데까지 몰아세웠고 오케스트라를 채찍질하여 정신착란 상태로 인도하였다. 지금 나는 헐뜯는 것도 아니고 허튼소리를 하는 것도 아니다. 

1982년 드레스덴에서 스테레오 녹음을 하며 클라이버가 바그너의 "트리스탄"의 반음계적 환각을 달구어 끌어올린 관능적인 광기를 바그너 동호인들은 지금까지도 맛깔스런 환각제인 양 향유하고 있다. "이 친구 도대체 뭐하는 인간인가?"라며 당시 뮌헨저녁신문(Münchner Abendzeitung)은 기쁨에 찬 보도를 했다.

베버의 "마탄의 사수"를 완전무결한 속도로 몰아붙여 그로부터 온갖 고리타분함을 날려 버렸다. 자주 신파쇼로 빠지곤 하는 베르디의 "트라비아타"는 그의 손을 거쳐 빛나는 죽음으로 이끌렸다. 심지어 달콤하기 짝이 없는 "장미의 기사"마저 그의 손을 거쳐 중독성 강하게 쫙 빠진 퇴폐정신을 풍기게 되었다.

저명한 음악공연장치고 클라이버에 정기적으로 손을 벌리지 않은 곳이 없었는데 이는 클라이버가 영락한 업계를 부흥시켜 대폭 매상을 올려 주리라 기대했기에 그랬던 것이다. 얼마나 대단한 조건들을 내걸었던가. 호사스런 출연료, 클라이버 입맛에 맞는 프로그램 구성권, 원하는 만큼 리허설 횟수 보장. 34번도 괜찮단다, 일전에 "보첵"에서 그랬던 것처럼.   

그러나 마에스트로는 보통 이렇게 말씀하셨다. 사양합니다. 요즘엔 "더이상 페터 일행의 달나라 여행표를 얻기 힘들다"4)고 클라이버가 불평을 늘어 놓았다.

4) 바세비츠(Bassewitz)가 쓴 동화인 페터 일행의 달나라 여행(Peterchens Mondfahrt)에 빗댄 표현으로 문맥상 버스는 이미 떠나갔다 정도로 보면 되겠습니다.

빈 국립가극단 단장인 요안 홀렌더(Ioan Holender)는 클라이버가 다시끔 복귀할 걸 대비해 수년 동안 백만 달러가 넘는 수표를 금고에 비축해 두었다. 그러나 저 문제아는 더이상 사람들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당연히 거기엔 온갖 불안과 자기회의, 그리고 "자신의 천재성에 대한 공포"(카이저)가 있었다. 클라이버, 이 기가 막힌 재능을 타고난 사나이는 동시에 전 세계 관혁악업계에서 제일로 유명세를 떨치던 불안덩어리였다. 아무도 믿지 않기. 우스꽝스런 괴팍스럼과 기괴한 젠체하기. 디바. 이 사람 자체가 수수께끼였다.

클라이버가 도착할 때까지 공연주최측은 벌벌 떨었다. 클라이버가 도착하자 단원들이 벌벌 떨었다. 그러나 "클라이버가 지휘를 하자" "세계"가 일제히 열광하며 "모든 게 용서되었다". 그렇다, 단지 그가 지휘를 할 때만은... 예전엔 종종 몇 달은 유고슬라비아의 산속으로 사라져 "양들 무리에 섞여 종적을 감췄고", 어느 친우가 기억하듯 이동식 주택으로 돌아다니거나 텐트에 머물기도 했다.

이미 1966년부터 당시 서른여섯 살이던 악단장 클라이버는 온갖 관습들과 계약들에 야유를 퍼부었다. 에딘버그에서 가진 슈트트가르트 가극단의 초청공연에서 베르크의 오페라 "보첵"으로 기가 막힌 데뷔무대를 막 가진 지휘자 클라이버는 다음날 밤, "위가 무지막지하게 쓰리다"는 이유로 계획해 놓은 모든 BBC 실황공연들을 최소하였다.

갖은 뒷말을 낳은 배앓이였다. 독일무대협회는 시말서를 제출해야만 했고 의사들은 서로 일치하지 않는 소견서를 내놓았으며 몇몇 슈트트가르트 공연단체들을 이 반항기 가득한 마에스트로와 공연하길 거부한데다 심지어 시의회마저 이 사태를 놓고 장시간 논의를 가졌다. 클라이버? 고개만 젓게 만들 따름이었다. 

그래도 그 당시엔 가끔은 개근정신이 살아나기도 했는데 예를 들면 듣는이를 최대로 감격에 젖게 만들던 그의 "엘렉트라" 라이브 공연, 무섭게도 타오르던 "카르멘"이나 장엄하게 감감적인 극점에 다다르던 바그너의 "트리스탄". 클라이버? 멋진 친구.

그러나 항상 좋지만은 않았다? 1973년엔 "팔스타프" 갈라공연 도중엔 함부르크 국립가극단을 방치해 놓았고 1년 뒤엔 "슬픔에 잠겼다"는 말을 남긴 채 사라져 가극단이 "장미의 기사"의 손가락이나 빨게 만들었다. 뉴욕에선 "트라이바타"를, 빈에선 "트라비아타"와 "카르멘"을 내동댕이쳤다. 1974년 바이로이트 축제에서 화끈한 "트리스탄"을 선보여 놓고는 다음해에 계약한 라디오중계를 취소해 버려 전 세계 청취자들이 대타에나 만족하게 하였고 초록 언덕(그뤼너 휘겔, Grüner Hügel)은 그렇게 진동하였다.5) 이후 사탄이 성배를 기피하듯 이곳을 기피하게 되었다.6)

5) 초록 언덕(그뤼너 휘겔)이 진동하다(Es bebt am Grünen Hügel)는 바이로이트 축제와 관련, 뭔가 의미심장한 사태가 발생했음을 표현하는 관용구.
6) 이후 바이로이트 축제에 참여하지 않았다는 말.


1980년, 베를린 필은 처음으로 클라이버를 객원지휘자로 모셨음을 발표했다. 그러나 클라이버는 도착하자마자 공연도 갖지 않고 달아났다. 1982년 12월에는 클라이버의 뒤꽁무니만 졸졸 따라다니던 빈 필을 리허설 도중 방치해 두고 떠나 버렸다. 중지신호를 주고는 지휘봉을 내려 놓은 채 휙 사라져 버렸다. 그냥 의욕을 잃어 버렸다는 것이었다. 호텔에 쪽지 한 장을 남겨 뒀는데 거기다 이런 말을 남겼다. "미지의 세계로 떠납니다".

클라이버의 기이한 악행 목록, 슈피겔에서도 이를 보도한 바 있지만, 어쨌든 이 목록을 보다 보면 이야깃거리가 끊이질 않아 지루할 틈이 없어 진다. 변덕스런 클라이버와 변덕스런 이탈리아 피아니스트 아르투로 베네데티 미켈란젤리, 이 특급 예민덩어리 두 명이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을 협연하여 대성공을 거뒀다. 얼마 뒤 이 "음악계 정상회담"(남독일신문)이 음반녹음을 위해 재차 성사되었다.

그러나 두 신사분들의 하모니가 돌연 깨지고 말았다. 미켈란젤리가 악보의 특정 부분에 토를 달려고 피아노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러나 실로 거만하게 바라보는 명피아니스트의 "악랄한 낯짝"에 속이 상한 클라이버는 아무 말 없이 짐을 꾸려 도주해 버렸다고 어느 귀가 밝던, 내부관계자쯤에 해당되는 사람이 털어놓았다. 녹음은 중단되었다. 

지휘자 클라이버가 지인에게 최근께가 되어서야 사건의 전말을 고백하였다. 미켈란젤리가 그 구절에 이상이 있음을 옳게도 집어내며 평소라면 한 치도 틀림이 없던 지휘자 클라이버의 오류를 잡아낸 것이었단다. 클라이버 입장에선 "이 순간" 더 이상은 이 이탈리아인 스타 피아니스트가 아니라 자신의 아버지이자 위대한 지휘자이며 무자비한 교육자였던 에리히 클라이버(1890~1956)의 생전 모습, 이 끔찍스런 환영을 눈 앞에 두게 되었단다.

평생 동안 이 전제군주 같은 아빠는 카를로스에게 모든 것의 척도로 존재하였고, 평생 동안 클라이버 2세는 이 클라이버 1세를 보며 거진 무기력하게도 열등감에 시달렸다. "나는 아버지만큼 할 수 없다". 오랫동안 클라이버의 아버지는 자신의 Filius7)에게 음악공부를 포기하라 종용하고 그가 화학 계통 직업을 얻기를 강요하려 했다. 하지만 무의미한 시도였다. 카를로스는 1954년 포츠담에서 카를 켈러(Karl Keller)란 가명으로 데뷔하였다.

7) 아들. 원문이 라틴어로 쓰임.

"걔한테 음악적 재능이 있어 유감이군"이라고 고압적인 아버지는 이제서야 현실을 인정하였다. 그러나 너무 늦어 버렸다. 카를로스는 강방즉 환자처럼 일생 내내 자신을 B급 클라이버라 여겼다. 지휘대에 한 발짝 내딛기까지 갖게 되는 머뭇거림, 비판에 대한 기괴스런 경계심, 항상 남보다 부족하기만 하던 레퍼토리, 이 모든 게 그런 연유로 생겨났다. 결국에 이 척척박사는 기껏해야 한 줌밖에 안되는 작품들만 갖고 겨우 청중 앞에 나서길 감행하였다.

모두다 한 목소리로 자신을 세계에서 가장 흥미진진한 지휘자라 칭송하는 언사에 휩싸인 채 클라이버는 자신만의 그리스도가 되었으며 스스로를 수도회승으로 치장하였다. 40년 이상 한 차례도 인터뷰를 하지 않았는데 인터뷰를 요청하면 대개 엽서를 통해, 되도록이면 영어를 써서 항시 공손한 말투로 거절통보를 보냈다. 유감입니다만 "잘 아시잖아요". 인터뷰에 관심 없단다. "Yours sincerely CK"8).

8) 원문이 영어로 쓰임.

이 CK는 토크쇼에도 출연한 적이 없었고 축제 등에도, 막판엔 빈이나 뉴욕, 뮌헨 같은 교향곡의 대단위 종착역에도 모습을 드러낸 적이 없었다. 1996년 봄에 그랬던 것처럼 그곳 아우디 사에서 출연료 대신 내놓은 (여섯 자리짜리 금액에 해당되는 세금을 포함해 14만 마르크에 달하는) 아우디 A8 "밍블라우"(mingbalu) 기종을 행사비로 받으며 인골슈타트 같은 변두리에서 지휘하는 걸 좋아했다. 그외에는 일흔 번째 생일을 맞은, 자신의 오랜 후견인 레오 키르히(Leo Kirch)9)에게 교향곡 세레나데를 바쳤다. 그리고 "그곳엔 비평가가 오지 않는다"며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과 사르데냐로 교향곡적 탈출을 결행하였다.

9) 독일을 대표하는 언론재벌.

막판엔 이 자폐아스런 기인에게서 기력이 빠져 버린데다 그 유명하던 익살에 대한 욕구마저 사그라졌다. 그가 뮌헨 사육제 콘서트에서 도인으로, 테니스선수 보리스(Boris)로, 그리고 일어선 채 바이얼린을 켜던 슈트라우스로 분장하던, 그리고 테니스 라켓으로 지휘를 하곤 하던 시간들도 영영 지나가 버렸다. 이 부단히 침묵하는 사나이 클라이버가 아르투로 토스카니니를 자처하며 슈피겔에 전문을 보내 "하늘나라"의 소식을 전하며 세르쥬 첼리비다케를 따스하게 꾸짖은 지도 벌써 15년이 흘러 버렸다.     

슈피겔은 당시 첼리가 동료들에 퍼부은 온갖 독설들을 보도했는데 토스카니니로 분한 클라이버는 윗 동네에서 그 독설들을 접수했다고 "친애하는 세르쥬"에게 통지했다. "우리 속을 긁어 놓긴 했지만 그래도 용서해 주겠소. 이곳에선 용서하는 게 미덕이라서 말이지"10).

10) 클라이버가 움바흐에게 1994년 2월 10일에 보낸 편지에 이 에피소드의 후기가 있어 소개합니다. 특이하게도 이 구절만 영어로 썼네요. "매력과 재치가 넘치는 편지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토스카니니 편지를 좋아하셨다니 참으로 기쁘네요. 사실 영어 원본이 훨씬 깜찍하게 쓰였는데 말이죠. 칼하인츠 뵘이 너무 기쁜 나머지 나한테 전화를 다 했습니다. 얘기를 듣자 하니 카라얀도 낄낄거렸다고 하네요". <- 칼하인츠 뵘(Karlheinz Böhm. 오스트리아의 배우)

남은 이야긴 이젠 저 구름 너머에서 클라이버와 첼리비다케 둘이서 나누게 될 것이다.
작성 '13/01/08 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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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

괴슬링을 비롯한 베를린필 단원들이 상임지휘자가 되어달라고 부탁했을 때..레퍼토리가 많지 않아 메이저 상임으로는 적절하지 않다는 반응을 보였다는 일화가 생각나네요. 겪어 보지 않았지만, 클라이버가 출연하는 공연은 정말 무대로 지휘자가 등장하기 전까지는 주최측이나 청중들에게 쓰릴만점이었겠군요.

13/01/08 0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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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

클라이버가 말러 중에서 대지의 노래만은 연주하고 해적음반도 남아있는데 그건 고려하지 않았나보네요. (혹은 교향곡으로 보지 않았던가^^)
레브레히트인가? 가 그랬다죠.. '지휘 한것 보다 지휘 안한것으로 더 유명한 지휘자' 라고..^^

머, 클라이버 음반이야 아쉬운게 한두개가 아니겠습니다만, 거의 성사단계까지 갔다가 뒤집었다는 정경화와의 브람스 바협이 특히 우리 애호가들 입장에선 무척 아쉽죠

13/01/08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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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

그렇죠..전성기 정경화와 클라이버가 브람스 바협을 녹음할뻔 하다가 못한 것 많이 아쉽죠. (이후 전성기가 지난 정경화가 래틀과 녹음을 하기는 했으나..음질도 좋지 않고..) 그외에도 파바로티, 코트루바스를 기용한 라보엠이 무산된 것, 또 베르디 오텔로의 정규녹음을 남기지 못한 것이 가장 아깝습니다.

13/01/08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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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i***:

클라이버는 솔직히 좀 신비주의에 기대어 과대평가된 점도 있지 않을까요? 베토벤5번 녹음(1974년 DG)이 유명하기는 하지만 실황에서 그에 비견되는 연주를 남긴 것 같지도 않고...무엇보다 레파토리가 세계적 지휘자 수준에서는 너무 협소하고 말이죠. 농구로 치자면 카라얀에 뭐든 잘하는 '허재'라면 클라이버는 3점슛에만 특화된 문경은 쯤?

13/01/08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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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g***:

저도 개인적으로 동의합니다. 그런데 그 평가라는게 베를린 필 단원들의 평가라는 것이죠. -_- 단원들이 곡에 대한 이해도가 장난이 아니라고 하는 것 보면.

13/01/09 0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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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

클라이버가 레퍼토리가 협소하다는 평을 듣는 이유는
본인이 정말 잘하는 것만 하려 했기 때문일 겁니다.
조금이라도 남보다 못하거나 스스로 자신이 없다면
안하는 성격이었구요.
대신 본인의 레퍼토리에선 항상 최상급의 연주를 보여주는
기인이었죠.
세상에 거장이라면서 근 흔한 베토벤 합창 음반 하나 없는 지휘자가
어딨겠습니까?

13/01/08 2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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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

대가의 기행을 Vaterkomplex 하나로 다 설명해버리네요...?
그렇더라도 움바흐 이 양반의 글 참 재미있습니다.
좋은 글 찾아서 언제나처럼 훌륭한 번역으로 소개해주시니 감사합니다.

13/01/09 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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